지난 2일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여야 의원들이 기자들에게 북한 무도 진지 주변을 찍은 위성사진을 보여주며 브리핑하고 있다. [뉴시스]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는 최근 미국의 외교 비밀문서 1300여 건을 공개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위키리크스 파문은 역설적으로 국가기밀 관리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비슷한 때 한국에서도 국가기밀 유출 논란이 발생했다. 그러나 논란의 진원지는 위키리크스 같은 사설 기관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회(정보위)’였다.
1일 정보위가 끝난 뒤 여야 간사인 한나라당 이범관·민주당 최재성 의원이 공동브리핑을 하자 청와대가 발칵 뒤집어졌다. 정보당국이 북한의 서해 5도 공격 계획을 이미 8월에 ‘감청(監聽)’을 통해 알고 있었다는 브리핑을 하면서 비밀정보를 다룰 때 금기에 해당하는 ‘정보수집방법’까지 노출했기 때문이다. 당시 브리핑엔 “‘무선’ 통신으로 감청을 해왔는데, 연평도 포격 당일인 11월 23일과 그 직전엔 북한이 감청이 어려운 ‘유선’ 통신으로 작전을 수행해 (포격을) 미리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한국의 감청능력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정보위는 지난해 11월엔 국가정보원의 ‘패킷감청장비’(인터넷 회선을 오가는 신호를 제3자가 통째로 감청하는 방식) 보유현황까지 공개했다. 이런 ‘유리알 정보위원회’ 때문에 기밀에 해당하는 국정원의 대테러작전 등이 노출됐고, 대북 정보 능력이 공개됐으며, 외국인에 대한 수사정보도 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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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0일 김성호 당시 국정원장은 정보위에서 “김정일이 뇌출혈 또는 뇌일혈 등으로 쓰러졌지만 뇌신경계 질환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라고 보고한 적이 있다. 이 보고 내용 또한 정보위를 통해 미주알고주알 새 나갔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병명, 수술 여부 등과 같은 근접정보를 알려줄 수 있는 북한 측 인사는 제한돼 있다. 그 때문에 “이렇게 하면 대북 ‘휴민트 라인’(대인첩보망·human+intelligence)이 남아 나겠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본지는 여야 정보위원 12명에게 “정보위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한나라당 이범관 의원은 “정보위 활동을 통해 알게 된 기밀 정보를 외부에 무분별하게 발설하는 의원들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같은 당 이두아 의원은 “처음 정보위에 왔을 때 야당 의원들끼리 ‘여야 간사 합의가 안 돼도 야당 입장에서 발표할 건 그냥 해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걸 듣고 놀랐다”고 했다. 반면 민주당 신학용 의원은 “정보위를 더 자주 열어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주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잦은 ‘기밀 유출’ 사고와 관련해선 정보위원들의 자질 문제를 제기한 의원도 있었다. 국정원 간부 출신인 한나라당 이철우(전 정보위 간사) 의원은 “정보위가 비전문가로 구성돼 전문성이 떨어진 것도 잦은 기밀유출 사고의 원인”이라며 “정보위는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 출신 의원으로 구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여야 정보위원 12명은 ▶검사(2명·모두 공안분야) ▶군 장성(1명) ▶교수(2명·모두 비외교안보분야) ▶관료(2명·모두 비외교안보분야) ▶정당인(3명) ▶변호사·언론인(이상 각 1명) 출신이다. 검사 출신 2명, 군 출신 1명 정도만 외교안보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셈이다.
명지대 신율(정치외교학) 교수는 “정보위에서 거의 위키리크스 수준으로 정보가 나오는데 의원들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며 “너무 자세한 내용이 알려지는 건 알 권리의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서강대 김영수(정치외교학) 교수는 “17대 국회 때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만든 정보위 브리핑 제도를 여야가 정치적으로 악용하거나 개별 의원들이 자기 홍보 및 과시수단으로 쓰고 있다”며 “관련 학회 등에서 정보위원들의 브리핑이 국익에 도움이 됐는지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