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첫날인 10일은 빠지기 힘든 수업으로 인해 가지 못하고, 11일 목요일에 혼자 가서 공연을 관람하였다. 처음가보는 국립극장을 찾느라 허둥거리며 겨우 간신히 도착한 달오름극장. 허겁지겁 극장에 도착해서 매표를 하려 하자, 이미 좌석은 매진이고 입석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였다. 하는 수 없이 입석을 구입하였다. 맨 뒤에 서서 두 시간 동안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였지만 충분히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값진 공연이였다.
생각보다 아담한 장소와 자리를 꽉 채운 사람들, 그리고 많은 외국인들.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을 쯤 강은일 해금연주가의 다랑쉬라는 곳이 시작되었다. 해금이라니.. 지난 중간고사때 ‘두 줄로된 악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쓰지 못했던 나로서는 더욱더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처음 딱 드는 느낌은 단 두 줄의 현으로 어쩜 저리 또렷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나올까. 어디 다른 현이나 무슨 장치가 되어있지 않을까.. 하고 해금을 멀리서나마 자세히 째려보기까지 하였다. 다랑쉬라는 제목부터가 왠지 귀엽고 동글동글한 느낌이고 이 느낌처럼 다람쥐와 속삭이며 뛰노는 듯한 평화로운 느낌이 들었다. 중반부터는 다람쥐가 폴짝폴짝 뛰노는 느낌과 합주하는 가야금의 튕기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 굵게 튕기는 소리는 경쾌하며 빠른 느낌을 더해주었다. 또한 가늘고 길게 이어지며 끊어질 듯 하면서도 이어지고 하는 전통음악의 특징이 해금에서는 더욱 돋보였다. 해금이란 악기의 특징을 알아낸 것 같아서 혼자 괜히 기뻤다. 다음 곡은 서커스였다. 스크린에 곡에 대한 해설이 나와서 연주를 감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서커스의 곡 설명은 바람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는 공중그네, 삐에로의 외발자전거 등 극한의 긴장과 아름다움, 가볍지만 슬프고도 감미로운 춤이였다. 듣기 전부터 어떤 느낌인지 기대되었다. 둥둥둥 하는 북과 같은 퍼커션소리가 인상적이였고, 해금이 트레몰로로 곡을 엄청 빠르게 몰고가는 부분에서는 어떻게하면 저리 빨리 연주할 수 있을까 하는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조명이 꺼지고 아시아 전통음악인들이 모두 나와서 인사를 하였다. 전통의상까지 갖춰입은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 미얀마의 사운은 작고 귀여운 하프 같은 느낌이 들었고, 소리가 굉장히 맑고 또렷해서 피아노와 같이 정확하고 많은 음계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몽골의 샹즈는 도로롱도로롱 하는 소리가 났고, 거대한 실로폰같이 생긴 여칭은 두르르르릉 하고 다양하고 아름다운 음색이 나와서 깜짝 놀랬다. 너무 깨끗하고 예쁜 소리였다. 말레이시아의 세루나이의 소리를 듣고 딱 떠오른 것은 드넓은 초원의 모습이였고 이는 알프스 산맥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같았다. 이어서 필리핀의 반둘리야,옥타비나가 나왔고 마지막으로 베트남의 단보, 단쳉 단 티바,단 탐 타블로가 나왔다. 오묘한 조화의 아름다움이 느껴지고 중국음악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시아 전통음악의 합주의 첫 곡으로는 고향의 봄이 나왔다. 우선 익숙한 멜로디라서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현악기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이 돋보였으며, 왠지 모르지만 꿈나라에 온 듯한 느낌도 들었다. 아기한테 들려주면 좋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들으면 들을수록 행복해지는 음악이었다. 꿈나라느낌의 음악답게 하프음색 같은 미얀마의 사운이 선율을 주도하는 것이 돋보였다. 그 다음으로는 필리핀민요가 나왔다. tuba라고 불리는 와인의 코코넛 맛과 달콤함의 유혹적인 맛을 노래한 곡으로 동산에서 뛰어 노는 기분이 들고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밝고 경쾌한 곡이였으며, 동동동 하는 음이 반복적이고 짧은 것이 특징이였다. 마지막으로 베트남 민요가 나왔는데 둥둥둥 거리는 타악기의 소리가 내 마음에 매우 들었고, 우리나라의 장구같이 둥둥 쳐주면서 음악의 장단과 중심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둥둥둥 거리는 중심음과 여러가지 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반복적인 리듬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이국적인 리듬과 음이었고 약간 중국음악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대구법같이 처음과 끝부분이 비슷한 곡조로 연주되었다.
2부가 시작되면서 각 나라별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 첫 번째는 말레이시아의 세루나이 였다. 고대 말레이시아 궁중에서 추던 춤 반주곡이라던데 세루나이의 소리는 남성적 악기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고, 우리나라의 굵은 피리소리와 비슷했다.
두번째 주자는 내가 좋아하는 미얀마의 사운이 나왔다. 곡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에는 깊은 숲과 산봉우리에서 다양한 새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노래한 곡이라고 나와있었고, 나는 설명을 그 모습을 상상하면서 음악을 들었다. 정말 악기의 소리가 작고 귀여우면서 맑고 영롱했고 숲속에서 새들이 정말 날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어진 두번째 곡은 평화로운 호수와 새들에 대한 느낌을 노래한 곡인데 자잘한 음들이 새들이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고 새들이 가볍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풍경이 상상 되었다. 숲 속에 가서 이 노래를 연주하면 새들이 하나 둘씩 소르르 다가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마지막에 사운 연주자 라잉 윈 멍이 합장하며 인사하는 모습마저 아름답고 고결해보였다.
다음은 베트남의 악기들이 나올 차례. 첫번째 곡은 황실을 방문하던 손님들을 위해 연주하던 전통음악이 나왔는데 기대했던 거창하거나 중후한 음이 아닌, 너무나 앙증맞고 귀여운 선율이였다. 작고 귀여운 여자가 아름답고 이쁘게 춤추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음악이 여성적인 느낌이 강해 가늘고 이쁘고 부드러웠으며, 하늘하늘한 여성의 곡선 느낌이 자연스럽게 살아났다. 다음 곡은 동탑연꽃의 향기라는 곡인데 우리나라의 가야금과 비슷한 음색을 가진 악기인 단쳉으로 시작되었다. 가야금과 음색이 매우 비슷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그 소리가 하프과 같이 여운을 주며 울리는 소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베트남 음악을 들어보았는데 내가 가장 관심이 갔던 악기는 단보이다. 하나의 줄로 된 현악기, 단보인데, 연주법과 악기의 모양새가 매우 특이했고 뭔가 막힌 소리는 치는 것 같으면서 몽롱한 아름다운 소리이다.
네번째 등장한 것은 필리핀 연주자. 필리핀에서 사랑받는 전통음악이 연주되었는데, 이전까지 연주되었단 아름답고 서정적인 느낌과는 전혀 다른 스페인풍의 강한 열정적 음악이 나왔고 작은 기타같이 생긴 반둘리야는 소리가 탁탁 하고 끊어지는 탁한 음인 것 같지만 매우 구슬프기도 하고 높은 음을 가지고 있다. 두번째 연주곡은바하이 쿠보와 티니클리의 음악 메들리였는데 기타와 협연을 하였다. 탁한 느낌이 들었던 반둘리야가 매우 아름다운 소리로 바뀌었고 연주자중에 가장 연주를 하며 즐거운 표정을 짓는모습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마지막곡은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열정적인 플라멩고풍의 음악이었다. 이 곡이 신나는 분위기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끝부분에 가서는 동남아 해변의 해질녘의 풍경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마지막 주자인 몽골. 먼저 가장 눈길을 끌은 것은 연주자들의 화려한 의상이었다. 첫번째 곡은 고비사막의 선율 이라는 곡이였는데 구슬픈 음악이였고 , 실로폰과 비슷한 여칭이라는 악기의 음이 내 마음과 귀에 쏙쏙 들어왔다. 음색이 깨끗하고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입석으로 보았기에 마지막 몽골의 연주까지 오니 다리가 너무 아팠다. 그래서 잠시 쭈그리고 앉았는데 악기나 연주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직 귀로만 음악을 듣는 느낌은 또 달랐다. 뭔가 소리가 더 선명하고 또렷하게 들리는 느낌이 들었고 소리 하나하나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았다. 또한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써서 듣게 되는 것을 느꼈다.
이제 기다렸던 그룹 그림이 나왔다. 처음 부분을 듣고 생각나는 것은 정말 전통음악이 맞나? 하는 나의 무지한 생각이었다. 내가 이전까지 알던 음악이 아닌 전혀 새롭고 신선한 음악이였기 때문이다. 전통국악기 중에 가장 눈에 띄고 음을 주도하는 것은 태평소와 가야금이였다. 날으는 밤나무라는 곡은 제목부터가 내 마음에 들었다. 음악을 들어보니 정말 흥이 저절로 나고 감동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같고 찌릿찌릿한 느낌마저 들었다. 여기서 밤나무란 가야금을 뜻한다고 하는데 정말 가야금이 덩실덩실 날아가며 춤추는 자유롭고 경쾌한 곡이였다. 다음 곡은 ‘한 판 벌려보자’ 라는 판 이라는 곡이였다. 말 그래도 판을 벌리는 것처럼 흥겨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중반부 절정에 이르러서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얼쑤라고 소리치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억눌렀다. 나도 그들 틈에 같이 끼어서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평소 잘 들어보지 못했던 태평소의 음색은 단연 돋보였고 중간에 꽹과리가 나올 때는 정말 덩실덩실 춤추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에 강은일 해금연주가,아시아 전통음악인, 국립국악관현악단 그리고 그룹 그림의 협연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장엄하면서도 즐겁고 아름다운 음악. 연주가,관객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져 웃는 얼굴로 어깨를 들썩거리며 음악에 집중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였다. 악보없이 서로 연주자들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느낌을 가지고 연주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였고 모두다 하나된 느낌을 분명 느꼈다.
몽골, 베트남, 미얀마, 말레이시아, 필리핀을 대표하는 이 연주자들은 지난해 10월부터 한국에 머물렀다니 더욱 한국음악을 이해하고 서로를 느끼는 시간이 충분했기에 그 날의 훌륭한 공연이 만들어진 것 같다. 국악이라면 그저 사물놀이처럼 흥겨운 리듬을 타거나 아니면 지루하거나 졸린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번 공연의 새로운 시각과 생각을 가져다 주었음이 분명하다. 아시아의 전통음악이 얼마나 다양하고 아름다운지 그리고 그 중심에 우리 나라의 전통음악도 포함되어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또한 앞으로 국악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 나의 바뀐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든다. 더불어 이런 기회를 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