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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 코너 스크랩 수필 피렌체에 있는 단테Dante의 집에서
황종원(중앙대) 추천 0 조회 61 08.11.09 22: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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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불 구불 골목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리 일행이 벌써 현장에 와서 벽쪽을 뚫어져라보고 있는데...

 카메라를 들이대고 열심히 찍는 것은....

 

바로 이 벽이며 단테의 흉상이다. 집안 구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담벼락만 보여주면서 여기가 단테의 집이란다. 단테의 담벼락이라고 해야 맞겠지. 

 

 

 

 

 

 

 

 

 

 

우리 일행의 아줌마께서도 사진 몇 방을 찍는다.

가끔 보면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많은 사진은 추억도 많이 남긴다.

 

 


 

 

[유럽여행 5국 10일/ Italy] 2007/09/17 Monday 피렌체 Firenze에 있는 단테Dante의 집에서

 

피렌체의 구불 구불 골목을 걷는다.

이 길바닥 돌 위에 지나간 시간을 달려가면 뚜뻑뚜뻑 걷는 이가 있어

뉘시오하고 물으면 그는 돌아보며 손짓하며 가리라.

길이 옛길이나 그 길을 걷던 추억은 남아있다.

여기요 이쪽요

황지희 씨가 길을 일러주고 우리 부부는 서둘러도 늘 꽁지로 간다.

이미 현지 길라잡이가 단테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잠시 뒤에는 중국 관광객이 한떼가 온다.

사람수가 우리보다 많다. 안내인은 휴대용 확성기로 왕왕 설명을 한다.

우리 안내인의 표정이 굳는다.

여기서는 큰소리 안내를 안 하기로 서로 정했단다.

중국이 깼다는 거겠지.

단테의 집 앞의 담벼락과 단테의 흉상만을 보고 가는 것도 관광이라니 관광은 이런 것도 되는구나.

여기 온 사람 중 어느 누구 하나가 신곡은 다 보았을까.

그 긴 여정의 하늘 나라는 나중에 다 가볼 것이나 책을 볼 것이 없다는 거겠지.

 

 

단테의 집에서 세월의 강 건너 나는 천국 연옥 지옥을 거쳤다.

삶이 바로 그런 계단 밟기가 아닌가.

죽은 사람 중 아무도 다시 와서 사후 세계를 방송한 사람은 없다.

현실의 천국 연옥 지옥을 거쳐 나는 단테의 흉상이 있는 그의 집 벽 앞에 사람들은 다음 일정에 ?겨서 금세 작별을 하여야 한다.

  

단테의 신곡에 대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 아래에 달았다.

단편적인 여러 자료 중에서 충실한 도움이 된다.

 

 

  

단테의 '신곡'을 생각하며
이탈리아의 대시인이며 문장가인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의 서사시 '신곡(La Divina Commedia)'에 대해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뭅니다. 혹시 지금은 기억 못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학창 시절 세계사나 서양사를 배우면서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때 단테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단테의 신곡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 그것을 다 읽어본 사람은 드물다고 하는군요. 아마 수업이나 시험 준비를 하며 신곡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읽기도 전에 다 읽은 것처럼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단테의 신곡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신곡의 내용이나 단테의 일생에 대해서는 이미 백과 사전이나 인터넷 여러 곳에서 잘 정리되어 있으니 그런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구요. 이 신곡이 역사 속에서 미친 영향에 대해 잠깐 살펴 보려합니다. 13세기 후반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에 있는 피렌체에서 태어난 단테는 중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남긴 글 중에는 라틴어로 씌여진 글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단테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신곡은 라틴어가 아니라 당시 피렌체의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세속어로 씌여졌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 단테는 라틴어가 아닌 세속어로도 철학과 사상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단테의 이러한 작업을 르네상스의 시초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단테의 신곡은 단테가 죽은 이 후에도 꾸준히 사람들에게 읽혀졌는데 그것 때문에 신곡은 19세기에 와서 현대 이탈리아의 탄생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종종 사람들은 이탈리아라는 나라와 로마 제국을 연관시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로마 제국은 로마라는 도시 국가가 성장을해서 전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한 것이지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그 일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탈리아라는 나라는1860년대 이 전까지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는 "이탈리아는 하나의 지리적인 명칭(Geographical Expression‎!)"에 불과하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5세기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통치한 단일 정치 세력은 없었습니다.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의 중, 북부는 작은 도시들이 저마다 힘을 겨루었고 중부에는 교황령이,  그리고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는 프랑스와 스페인이 번갈아 가며 통치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있던 이탈리아 반도에서 나폴레옹 이 후 19세기 유럽을 휩쓴 민족주의에 고취된 엘리트들이 북부의 사르데니아 왕국을 중심으로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것이 1860년대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가리발디, 마찌니, 카부르 이런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 바로 이 시기이지요.


그런데 이 무렵 민족주의에 고취된 이들은 정치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문인들도 있었고 예술가들도 있었지요. 그 중 한 사람인 알레싼드로 만조니(Alessandro Manzoni)는 문학가로서 이탈리아 말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천 년 이상을 정치적인 구심점 없이 존재한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많은 방언이 존재했습니다. 실제 지금도 사르데니아나 시칠리아, 혹은 나폴리의 방언은 표준 이탈리아어와 많이 다릅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탈리아가 탄생한 그 시기에는 북부의 사람과 남부의 사람이 서로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해 통역이 필요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국가를 통합시킬 수 있는 요소로서 언어를 중요하게 생각한 만조니는 자신의 대표작인 소설 '약혼자들(I PromessiSposi)'을 자신의 고향인 밀라노 지방의 언어로 발표하고 난 후 이 작품을 전 이탈리아 반도의 사람들이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언어로 고쳐서 다시 발표합니다. 이 때 만조니가 가장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읽을 수 있으리라 판단한 언어가 바로 피렌체 지방의 방언이었습니다. 그러한 판단의 근원에는 바로 14세기에 씌여진 단테의 신곡이 있었습니다. 이 작업을 위해 만조니는 몇 년에 걸쳐 피렌체 지방의 이탈리아어를 다시 공부했다고 전해집니다. 그 결과 만조니의 소설 '약혼자들'은 전 이탈리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이탈리아 학교에서 신곡 다음으로 중요하게 가르치는 작품이 이 '약혼자들' 입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도 소설의 구조는 이 '약혼자들'에서 빌려왔다고 저자 자신이 밝히고 있지요. 어쨌든 14세기 이래 전 이탈리아반도에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읽은 '신곡'에서 사용된 언어가 오늘날 현대 이탈리아어의 근본이 된 것입니다.

장황하게 이런 역사 이야기를 늘어 놓는 이유는 우연한 기회에 구 동독에서 온 학생과 이야기를 하다가 공산 정권 시절에도 독일의 문호,괴테나 쉴러의 작품들은 동,서독이 공히 학교에서 교육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일이 통일되고 난 이후에도 언어적인 차이나 문화적인 차이를 덜 느꼈고 쉽게 통합될 수 있었다는 말을 하더군요. 그만큼 언어가 한 국가를 통합하는데 중요하다는 의미이겠지요.

우리의 상황은 어떨까요? 원치않은 분단 이 후 5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면서 서울의 '표준말'과  평양의 '문화어'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직까지는 서로 의사 소통이 되지만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는 단어들도 많이 있더군요. 언어라는 것이 결코 입에서 나오는 말과 글자 그리고 문법만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때 남,북한의 사이에는 단순한 언어 차이 그 이상의 차이가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남한과 북한이 공동으로 읽고 교육하는 문학 작품은 없을까요? 실은 오늘의단 테 이야기는 바로 이 질문을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남한과 북한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읽고 생각하는 문학 작품이 있다면 통일은 그곳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혹시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이 글을 생각하고 있을 때 블로그 이웃 한 분이 단테의 신곡에 대한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질문에 답하며 '신곡'의 원문을 볼 수 있는 싸이트를 몇 곳 소개합니다.
  • La Divina Commedia by MediaSoft: 이탈리아어 신곡을 매우 자세한 각주와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어를 아시는 분들에게는 매우 유용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매 장(Canto) 마다 관련 이미지도 실려있습니다.
  • Digital Dante: 콜럼비아 대학에서 운영하는  Digital Dante  웹싸이트에서는 이탈리아어와 영어 번역을 동시에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 번역에 포함되었던 각 주들을 같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 Google Book Search: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신곡'의 저작권은 소멸되었습니다. 그래서 Google Book Search를  검색해 보시면 20세기 초반에 출판되었던 '신곡'의 원문을 PDF 로 보실 수 있습니다. 원문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책 만을 검색하여 그 결과 페이지를 링크해봅니다.
  • La Divina Commedia Parlata: 신곡은 운율을 갖춘 서사시입니다. 그래서  원어로 직접 들어보시면 비록 이해는 할 수 없더라도  시의 느낌을 제대로 느끼실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국영 방송국인 RAI 에서는 이탈리아의 명배우 빗또리오 가스만(Vittorio Gassman) 이 낭독하는신곡 중 지옥 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좀 경망스럼게 들릴 수도 있는 이탈리아어가 얼마나 아름답고 듣기 좋은 언어인지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Realaudio 필요)
**이 글에서 사용된 이미지들은  Wikipedia 에서 가져왔습니다.
 

출처 : http://cliomedia.egloos.com/1421167

 

 

 『신곡(神曲)』(La Divina Comedia) 에 대하여

                                    -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

 1. 작품 해제

(1) 『신곡(神曲)』의 의의

 중세의 모든 학문을 총괄하고 그리스의 호메로스와 로마의 베르길리우스가 쌓은
 장편서사시의 전통을 계승하여 저술한 불멸의 고전이다.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은
 단테가 로마의 대시인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지옥(地獄)과 연옥(煉獄)을 방문하여
 천태만상의 인간들의 죄와 벌을 목격하고, '구원의 여인' 베아트리체의 안내로
 천국의 비전을 보는 것을 중심 플롯으로 하는 『신곡(神曲)』은 단테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의 자서전적인 이야기와 당대의 정치상황에서 시작하여,
 궁극적으로는 기독교가 삶의 틀이었던 중세의 세계관을 총체적으로 집약하고 있다.

(2) 『신곡(神曲)』의 모습

 이 작품은 단테가 작중의 인물로 등장하여 하나님의 은총으로 지옥·연옥·천국 등
 내세의 영혼의 세계를 두루 편력하면서 내세의 이상한 모습을 모두 목격하고 거기서
 심판을 받고 있는 명사(名士)들의 모습을 상세히 그리고 있다. 35세 되던 해 성(聖)
 금요일 전날 밤 단테는 길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맬 때 언덕 위에 빛이 비쳐 다가가려
 했으나 3마리의 야수가 길을 막아 올라갈 수 없었다. 그때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그를 구해주고 길을 인도했다. 그는 우선 단테를 지옥으로,
 다음에는 연옥의 산으로 안내하고, 이 산의 꼭대기에서 단테를 베아트리체에게
 인도했다. 베아트리체를 따라간 단테는 천국에 이르러 성 베르나르의 안내로 천상
 속에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맛보게 된다는 내용이다. 전 일정은 7일 6시간이다.

 

(2) 베르길리우스 - 로마 최대의 시인

 

2. 단테의 생애

(1)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괴테와 더불어 세계 4대 시성(詩聖)이라 일컬어지는 단테.
『신곡(神曲)』은 밀턴의 『실락원』이나 번연의 『천로역정』과 더불어 최상의
기독교 문학으로 불려진다. 단테는 르네상스의 요람이며 유럽 중세학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에서 귀족출신으로 태어났으나, 아버지 대에 와서는 가문이 많이 기울게
되었다. 세례명은 두란테(Durante)인데, 후에 생략하여 단테(Dante)라고 고쳐 불렀다.

 단테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계모의 손에 키워져서 그는 모성애를
 알지 못한 채 동경의 마음만을 키웠다. 그의 아버지는 평범했으나 장남인 단테의
 교육만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직 어린 나이에 양친을 잃게 된 단테는 책임감이
 있고 학구심이 불타는, 그리고 자신에게 엄격한 젊은이로 성장했다.

 『신곡』에서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지옥'·'연옥'을 안내하는
 데서도 나타나듯, 단테는 그리스·로마 고전작가들의 문장을 규범으로 삼았다.
 동시에 새로운 사조에도 민감했다. 당시 이탈리아 각 지역에서 일어난
 속어시(俗語詩)에 눈을 돌렸고, '사랑'을 주제로 하는 새로운 시법(詩法)을 익혀 그
 분야에서 제1인자임을 자인했다.

 그의 생애에 큰 영향을 주었던 베아트리체는 그가 9살 되던 해에 만났다. 그후에도
 단테는 그녀의 모습을 가슴 속에 새기며 성장했는데, 고독한 청년의 마음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현실에서는 맺어질 수 없는 꿈속의 연인(戀人)이기에 그 사랑은 더
 깊었고 어느덧 성모 신앙과도 같은 마음의 지주가 되었다.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녀는 단테의 영원한 연인이 되고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승화되었다.
 『신생(新生)』은 그녀가 죽은 뒤인 1292년에 만들어진 작품인데, 이 책 끝머리에서
 그녀에게 품은 지극한 사랑에 부응할 예술작품을 쓰겠다는 결의를 피력하고 있다.
 이처럼 베아트리체는 그에게 있어서 창작의 원동력이 되었다.

 단테의 청춘시대는 이상과 같이 교우와 학문과 시와 슬픈 사랑 속에서 지나갔다.
 그러나 필생의 대작 '신곡'의 집필을 시작하기 전에 그의 앞길에는 뜻하지 않은
 기구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단테가 피렌체 공화국의 정치에 참가한 것은 1295년
 카피타노 델포플로의 일원이 되면서부터였다. 동시에 그는 통령선출 심의위원회의
 고문을 겸했고 '의사. 약제사 조합'에도 가입했다. 이것은 귀족 출신자가 공적
 정치활동을 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또 이듬해에는 1백인 위원회 위원이 되고,
 그 뒤 3년간 도시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단테에게 있어서 운명의 해라고 할 수
 있는 1300년 그가 [신곡] 서두에서 노래한 '인생의 반'을 맞이한 해다. 그의 나이 35
 세, 그해 6월 14일 그는 도시국가의 최고지위인 통령에 선출되었다. 공직에 참여한
 지 불과 5년인 그로서는 파격적인 승진이었다. 이 제도는 독재를 방지하기 위해
 피렌체 공화국이 채택한 것으로, 시내 6지구를 대표하는 6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2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무렵 피렌체에서는 집권세력인 겔프 당이 백당과
 흑당으로 갈려 또다시 격심한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백파에 속해 있던 단테는 통령의
 임기가 끝나자 2명의 피렌체 인과 함께 로마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그 동안에
 국내의 사태가 급전했다. 흑파가 정권을 잡아 백파를 추방하기 시작했다. 단테도
 예외는 아니었다. 1302년 1월 27일, 그는 정치적 반역자로 기소되어 벌금과
 공직추방, 그리고 2년간 국내에 들어올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았고,  출두를
 요구받았다. 그러나 단테는 출두하지 않았다. 이에 3월 10일에는 영구추방이
 결정되는 한편, 시 정부에 체포될 경우 화형에 처한다는 가혹한 조처가 취해졌다.
 이런 이유로 단테는 그리운 고국의 땅을 두 번 다시 밟지 못했다. 1302년 봄은
 단테에게 있어서 정말 쓰라린 시기였다. 고국에 돌아가 마음의 준비라도 한 뒤
 처벌을 받았다면 그래도 좀 나았을 텐데 여행길에서 가혹한 추방의 통보를 받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단테는 고독한 천애의 표랑생활이 시작되었다. 단테는 이 무렵
 대서사시 [신곡]의 완성을 목표로 하여 외길을 걷기 시작하고 있었다. 추방 후 얼마
 되지 않아 붓을 들기 시작한 걸작은 [지옥] [연옥]으로 진행되어 마침내 [천국]의
 가경으로 접어들었다. 마지막 편은 특히 신학적인 논의를 초래할 만한 대목인 만큼
 용의주도한 학문적 준비가 필요했다. 그러나 맑은 심경에 도달한 시인은 한걸음
 한걸음 정진해나갔다. 1315년 피렌체 공화국은 단테가 개심의 뜻을 보이고 일정기간
 금고형에 응한다면 은사를 내리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그러나 단테가 이를 거절하자
 또 다시 그의 죄상을 추인함과 아울러 자식들에 대해서도 영구 추방령을 내렸다.
 그러나 만년의 단테에게는 파란 많은 반생을 위로하기라도 하듯 조용한 안주의 땅
 라벤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1317년 여름 이후 그가 죽을 때까지 기도 노벨로 공의
 작은 궁전이 그를 따뜻이 예우해주었던 것이다. 1321년 여름, 사소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이웃나라 베네치아 공화국과 불화가 시작되자 기도 노벨로 공은 그 화평교섭을
 단테에게 요청했는데, 단테는 이 교섭을 끝내고 돌아오던 길에 말라리아에 걸려 귀국
 후 얼마 되지 않은 9월 13일 밤 파란 많은 일생을 라벤나에서 마쳤다. 필생의 대작
 [신곡]은 죽기 직전에 탈고되었다. 기도 노벨로 공은 이 시인의 머리 위에 월계수
 화관을 정중히 바쳤다. 그의 관은 시민의 애도 속에서 성 프란체스코 교회에
 안치되었다. 

 단테가 숨진 이후 뒤늦게 단테의 위대성을 깨달은 피렌체 시민들은 단테의 유골을
 옮겨가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실패하자, 그 대신 사원에 등을 달고 해마다 단테가
 세상을 떠난 날 불을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평생 그렇게도 피렌체의 계관시인이
 되고 싶어했던 단테의 소망이 후에 뒤늦게나마 이루어진 셈이다. 단테의 사후 수년
 뒤 피렌체에서는 국보와 같은 대인물을 이유 없이 괴롭힌 것을 후회하고 그의 작품을
 모든 사원이나 일반에게 널리 읽도록 하고 연구, 주해하게 했다. 그리하여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가 이를 최초로 주해했다.

 

(2)

3. 작품의 구성

(1) 지옥편 - 9개의 지옥으로 분류

(2) 연옥편 - 하의 연옥, 상의 연옥, 지상낙원 하의 연옥

(3) 천국편 - 10개의 천국

 

4. 작품의 주요 내용

(1) 지옥편

 지옥은 어둠과 증오와 영원한 저주의 세계로 이곳에 있는 영혼들은 죽을 때까지 악과
 이웃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본격적인 지옥에 이르기 전에 지옥의 안뜰이라고 하는
 컴컴한 들판이 있는데, 여기는 태만한 자들이 있다. 이어 카론이 사공이 되어 지키고
 있는 아케론 강이 나타난다. 이 강은 지옥문을 지나 곧이어 펼쳐지는 지옥 안뜰과 본
 지옥을 구분 짓고 있다.

① 제1지옥 : 이곳은 그리스도가 오기 전의 무신론자·이교도들이 벌을 받는 곳인데,
아담·하와·노아·모세·아브라함·다윗왕 등은 특사를 받은 사람들이다. 거기에는
호메로스·헥토르·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히포크라테스 등이 그
지옥에 있었다.

② 제2지옥 : 여기서부터가 진짜 지옥인데 여기에는 애욕의 죄를 지은 자들의
지옥이다. 죄를 저지른 사람, 즉 시저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한 클레오파트라, 트로이
전쟁 원인이 된 미녀 헬레나 등이 등장한다.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얼굴을 한
미노스가 공정하게 심사를 한다.

③ 제3지옥 : 이곳은 미식가와 폭식가의 지옥으로 실컷 먹어도 양이 차지 않는
체르베로스라는 삼두견이 살을 찢고 있었다.

④ 제4지옥 : 재산을 모은 자와 낭비자가 모여 있는 지옥이다.

⑤ 제5지옥 : 여기는 분노에 몸을 맡긴 자들이 지옥이다.

⑥ 제6지옥 : 이곳부터 하부지옥이다. 독신죄(瀆神罪), 이교도의 쾌락을 생활최고의
원리라고 주장한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이 벌받고 있다.

⑦ 제7지옥 : 이곳에는 폭력을 행사한 죄인들이 미노타우루스에 의해 감시 받고 있다.

⑧ 제8지옥 : 자신을 신뢰하지 않은 자를 사기친 죄인들이 있는데 10개의 골짜기로
나뉘어져 있다.

⑨ 제9지옥 : 반역의 죄, 폭정의 죄를 지은 자들이 있다. 예수를 배반한 유다, 아우를
살해한 카인, 단테의 정적(政敵)인 황제당의 죄상을 다룬다.

 

(2) 연옥편

 연옥은 정죄(淨罪)와 희망의 왕국으로 영적 구원을 받을 만한 여망이 있는 망령들이
 천국에 가기 전에 수양을 하는 곳이다. 천사들은 이곳에서 칼로 단테의 이마 위에
 P자를 새겨주는데, 이는 연옥에서 자기가 참회해야 할 죄(Peccata), 곧
 오만·질투·분노·태만·탐욕·폭식·애욕의 일곱 가지로 이러한 죄들은 벼랑을
 차례로 지나면서 하나씩 씻어진다.

 이 모든 죄를 씻고 나면 영혼들은 구원을 받게 되고 이어 지상낙원으로 오를 수
 있다. 이 연옥에서 정죄하고 있는 죄들이 지옥에서 벌받고 있는 것들과 비슷한
 것임을 보고 당혹감을 느끼는 수가 있다. 그러나 지옥의 죄들은 뉘우치지 못한
 자들의 것이고 연옥의 죄들은 구원받은 영혼들로서 천국에 올라가기에 앞서 이곳에서
 정죄할 수 있는 죄인 것이다. 이 지상낙원은 지상에서의 완전한 행복을 의미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의지에 복종하며 교회와 군주국의 보편적인 권력들을 조화시킬 수
 안다면 이 행복을 누릴 수 있지만, 엠피레오에 올라가기 전에 그들은 지상의 죄를
 망각케 하는 레테 강에 몸을 씻고 선행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 에우노에 강물을
 맛보는 정화과정을 거쳐야 한다. 단테는 이 두 강에 몸을 적신다.

 이윽고 수레를 탄 베아트리체가 모습을 드러내고, 천국 여행에 대비하여 자신과
 그리핀의 눈에 비친 태양빛을 단테의 눈에 반사시켜 눈을 단련시켜 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베르길리우스와 스타티우스에게 작별을 고하고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천국으로 오른다. 연옥편은 가장 철학적인 부분이어서 <신곡>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3) 천국편

① 제1천 : 월천          ② 제2천 : 수성천        ③ 제3천 : 금성천

④ 제4천 : 태양천        ⑤ 제5천 : 화성천        ⑥ 제6천 : 목성천

⑦ 제7천 : 토성천        ⑧ 제8천 : 항성천        ⑨ 제9천 : 원동천

⑩ 제10천 : 지고천

 

 

 천국은 빛과 춤과 노래와 완전한 덕이 있는 왕국이다. 여기 있는 영혼들의 본거지는
 정화천이나, 단테가 도착하자 그에게 축복의 여러 계층을 알려주기 위해 각각
 그들에게 적합한 지역으로 내려가 그를 맞는다.

 천당은 10개의 천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8천에서 영혼의 구원에 가장 중요한
 신학상의 질문을 받는다. 성 베드로가 신앙에 대해, 성 야고보가 희망에 대해, 성
 요한이 사랑에 대해 각각 질문을 하는데, 단테는 훌륭히 합격하여 제9천으로
 승천한다. 베아트리체는 여기서 '관조'의 상징인 성 베르나르에게 안내역을
 넘겨준다. 새로운 안내역 성 베르나르는 성모 마리아에게 단테의 염원을 무언 중에
 전달하고 이리하여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에게 기도를 올리게 되어, 모든 사람이
 기도하는 중에 시성의 눈앞에 하나의 바퀴가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셋이면서 하나인
 바퀴가 빛을 낸다. 그 바퀴 속에 하느님의 얼굴이 나타나 배례하며 법열에 취한다.
 성자들의 기도하는 동작은 마치 대성당의 집사를 집례하는 성직자들의 조용한 동작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하여 단테의 소망은 이루어지고 <신곡>의 여행은 막을 내린다.

 <신곡>은 풍부한 지식과 깊은 인생체험을 가진 희귀한 재능에 의해 씌어진 중세
 문학의 보석이다.

5. 문학사적 의의

(1) 베아트리체와의 사랑

 『신곡(神曲)』은 단테가 조국 이탈리아에서 추방당해 방랑지에서 19년 동아에 걸쳐
 완성된 신학적 장편 서사시이다. 전국 14,233행 100가지로 나누고, 다시 <지옥>편
 34가(서곡포함), <연옥>편 33가, <천국>편 33가로 구성되어 있다. 33이란 숫자는
 그리스도가 속죄에 오른 연령에 해당하는 수이며 100이란 완전수 10의 재곱수의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신곡>은 일시에 발표된 것이 아니고 <지옥>편은
 1300∼1308년에, <연옥>편이 1313년에, <천국>편은 사후에 유고작으로 발표되었다.

 제목은 최초에는 『Comedia』라고만 발표되었으나 16세기 중엽 이후 후세인들이
 내용의 숭고함에 연유하여 Divina(신성한)를 붙여 『La Divina Comedia,
 신곡(神曲)』라 부르게 되었다. 작가가 코메디아라고 붙인 것은 시가 고뇌와
 증오로부터 시작하여 미와 희망으로 그친다는 의미를 상징한 것이며, 그 내용은
 인간의 영혼이 죄악의 생활로부터 회오와 정화로 다시 염원의 복지에 도달한다, 항상
 정진의 여로를 그린 자유의식의 일대 신비적·종교적 환상의 시다. 단테가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는 청춘기에 큰 영향을 준 베아트리체에 대한 숭고한 플라토닉 러브에서
 연유되는데, 그의 사망이 준 충격을 종교적 차원에서 승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연애사건은 위대한 작품을 쓰게 한 하나의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녀가 죽은 뒤 10년 동안에 걸친 단테의 타락한 생활에 대해서는 『신곡』의
 첫머리의 캄캄한 숲을 방황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지상낙원에
 모습을 나타내어 단테를 천국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2) 인생의 행로 또는 절대자에 대한 염원

 <지옥>편과 <연옥>편에 걸쳐 단테의 동반자인 베르길리우스는 인간의 '이성'과
 '철학'을 상징한다. 그런데, 목적지인 천국을 편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인간적
 능력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때문에 천국까지 인도자의 구실을 한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영원한 여인 베아트리체에게 인도하는 것이다. 이 경우 베아트리체는 '신앙의
 지식'과 '신학' 및 '종교적 상념'을 상징하게 된다. 『신곡』에서 골짜기는
 <지옥>편, 언덕은 <연옥>편, 하늘은 <천국>편을 시사한다. 아홉 구역으로 분류된
 지옥은 영원한 슬픔과 괴로움의 세계이다. 일곱 개의 구역으로 구성된 연옥은
 구원받은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그 죄를 끼끗하게 하는 곳이다. 열개의
 구역으로 되어 있는 천국은 인간들이 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그 결말은
 기쁨으로 넘쳐흐른다. 단테는 이 작품을 통해 지옥에 울고, 연옥에서 기대했으며,
 천국에서 웃었다.

 

(3) 문학적·사회적 의의

 중세 당시 라틴어가 주로 사용되었던 때에 단테는 토속어인 이탈리아어로 『신곡』을
 쓴 것도 획기적 사실이었으며, 이는 당대의 다른 국가에도 큰 영향을 미쳐 유럽에
 민족주의 물결이 일어난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런 언어학적 의의 또한
 의미있는 것이다. 한편, 조국으로부터 추방당해서 20년이나 표랑한 단테가
 정치이상과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이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신곡』의 자료는 '성서'·'그리스·로마의 모든 고전'·'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플라톤 파의 우주론'·'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오거스틴의 신학' 등의
 영향을 받았다. 이상에서 밝힌 바와 같이 <신곡>은 인간의 상상력이 낳은 최고의
 창작 중의 하나이며 인류 문학사상 불후의 금자탑이다. 이로써 이탈리아 문학은
 라틴어로부터 분리, 국민문학이 완성되며 단테는 국민 문학의 비조(鼻祖)가 되었다.
 괴테도 이 시를 가리켜 "인간의 손으로 된 최고의 것"이라고 칭송했으며,
 헤겔·쇼펜하우어·셀링 같은 철학자도 이 연구를 평생 계속하였다.

 중세기 사상의 총괄인 동시에 토마스 아퀴나스 스콜라 철학의 지적 심오,
 신비주의자의 정신적 비약, 문예부흥의 선구자로서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인곡"이라 한 것은 단테의 『신곡』에 대한 대칭
 개념이며, 보카치오·페트라르카와 함께 르네상스의 3대 작가로 지칭하는 것도 그의
 문학이 모든 중세사상을 총체적으로 정리 새로운 세계로 비약시켰기 때문이다.

 

출처 : http://user.chol.com/~moon2923/Dant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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