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9. 큐티
마태복음 25:24 ~ 30
천국은 마치 – 달란트 비유 ②
관찰 :
1) 한 달란트 맡은 자의 잘못
- 24절.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 한 달란트 맡은 자의 가장 잘못된 것은 그가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자기 스스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 자기 멋대로 주인이 그렇다는 것ㅇ입니다. 굳은 사람이라는 것은 냉혹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 이 종은 주인이 심지도 않은데서 거두려 하고 노력하지도 않고서 얻으려고 한다고 주인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 25절.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 (그래서) 두려워함으로 한 달란트를 땅에 묻었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한 달란트 맡은 자는 주인이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면서 어이없게도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모순을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서 한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 말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스스로 만든 틀 속에 주인을 가두어 두려하고 있습니다.
-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 이 완악한 종은 주인을 자신의 논리로 설복하려들고 이제는 그것을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2) 주인의 반응
- 26절.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제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 “악하고 게으른 종아” => 주인의 이러한 평가는 너무나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이 종은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자신의 게으름을 포장하여 주인을 설복하려고 들었습니다. 그러한 종이 악하고 게으르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 27절.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 주인이 어떠한지 알았다면 당연히 취리하는 자들에게 맡겨서 원금과 이자를 받게 했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맡은 자는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종의 논리를 주인이 논리로 깨고 계십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거짓된 논리를 참되신 주님의 논리로 깨버리시는 것을 보는 것 같습니다.
- 28절.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 열 달란트를 맡았던 자는 그의 성실함을 그 만큼 인정받은 것이기에 한 달란트를 받아서 관리하기에 합당하다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맡았던 자보다 더 인정받는 것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 29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 주님은 상식적이십니다. 매우 논리적이십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이 비상식이 아니라 초상식이 되는 이유입니다. 여기서의 주인 역시 매우 논리적이고 합당하게 일처리를 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 30절.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 악하고 게으른 종의 최후입니다. 반드시 이러한 결과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가르침 :
1)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가지고 각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두 종들을 칭찬한 주인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가 가지고 온 종을 나무라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주인의 마음이 천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4절의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라는 구절이 1절 “그 때에 천국은 마치 ~”의 구절을 이어서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이 달란트 비유 역시 천국에 관한 비유이며, 이 비유는 달란트를 종들에게 맡기고 멀리 타국에 갔다가 오랜만에 돌아온 주인이 종들과 셈하는 광경을 통해서 천국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또한 이 말씀은 말세에 관한 설명에 이어서 나오는 말씀이기에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그 종들에게 맡기신 것을 정산하는 일들이 있는 상황에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설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은 달란트를 종들에게 맡기고 떠났다가 돌아와 정산하는 주인의 모습과 같이 천국에 대하여 마지막에 정산하는 일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면서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갈리게 될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 뒤에 이어지는 비유는 양과 염소의 비유로 그렇게 나뉘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5) 악하고 게으른 종이 가장 악하고 게으른 요소는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그리고 그 오해에 기반하여 자신 스스로의 룰에 따라서 판단하고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악한 종은 다른 종들에게 주인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두 종의 하는 일을 보지도 듣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종은 그저 자신의 잘못된 판단에 따라 주인을 굳은 사람으로, 냉혹하고 악독한 존재로 여겼던 것입니다.
6) 게으른 종은 자신이 판단한 주인의 냉혹함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판단한 바와 같이 냉혹한 주인을 위해서라도 최소한 원금과 이자라도 만들도록 취리하는 이들에게라도 맡겼어야 했지만, 그마저 귀찮아서, 게을러서 땅에 묻어버렸습니다. 이 행위는 그의 게으름을 극명하게 드러내지만, 또한 그가 주인을 얼마나 무시했는지를 볼 수 있게 되는 행위입니다.
7) 악하고 게으른 종은 주인의 종이 되었었지만 그 주인이 누군지도 몰라보고, 자신이 판단한 것에 대해서마저 게으르게 행동함으로 주인의 저주가 임하는 것이 마땅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8)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아야 마지막 때에 주님의 정산에 온전히 반응할 수 있게 됩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반드시 오실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 분이 나에게 맡기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바르게 알고 바르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성경 말씀을 주셨고, 성령을 보내주셨으며, 교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최소한 우리는 이것을 나누고 퍼뜨리는 사명을 받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인의 즐거움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주님이 맡기신 것을 통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다른 것으로 일하는 것은 주인이 기뻐하는 바가 아닙니다.
적용 :
1) 생명의 말씀, 성령의 임재, 바른 신앙고백 위에 세워지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주님이 주신 소중하고 귀중한 달란트 들입니다. 개인의 은사를 넘어서는 이러한 분명한 것들이 더욱 많이 나눠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착하고 충성된 종이 가야할 길입니다.
2) 악하고 게으른 종은 주인을 무시하고, 주인이 누구인지 관심이 없는 자였습니다. 주님이 내게 맡겨주시는 주님의 백성들을 그렇게 양육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님을 바로 알고 주님을 바로 섬길 수 있는 존재가 되도록 나부터 주님을 바로 알고 주님을 바로 섬기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3) 천국에서 칭찬받는 착하고 충성 된 종과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나는 악하고 게으른 종에 대해서 오늘 하루 좀 더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