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월) 말라기 3:13-15 찬송 323장
13.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개역 개정)
- 경건하게 사는 삶에 대한 백성들의 회의 -
오늘 말씀은 넓게는 이스라엘의 타락을 책망하는 1:6-4:3까지의 일련 기사
가운데서도 백성들의 죄악을 책망하는 2:10-4:3까지의 일련 기사의 연속 부분이다.
그리고 좁게는 최후 심판 날에 있을 의인의 구원과 악인의 멸망에 대해 예언하는
말라기의 여섯 번째 설교에 해당하는 3:13-4:3까지의
일련 기사의 개시 부분으로 의인이 고난받고 악인이 도리어 번영하는
모순된 현실 속에서 경건하게 사는 삶 자체에 회의적인 태도를 지녔던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책망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은 기념책에 의한 의인과 악인의 최종 분리 및
의인과 악인의 최종적인 결국(3:16-4:3)을 예언하게 된 원인으로 주어졌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면
그에 따르는 현세적 보상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현실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여 오히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들보다
하나님을 모르는 불의한 자들이 더욱 번성하고 형통한 삶을 살았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헛된 일이며
아무런 유익도 없는 무가치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14절)
하나님은 공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으며
교만한 자가 오히려 복되다고 말하는 등(15절) 무지하고 교만하여
완악한 말을 함부로 내뱉음으로써 하나님을 대적하였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이
단지 이 땅에서의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그 어떤 이익을 얻고자 함에 있었음을 보여주는데,
이들의 이러한 죄악과 오해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그들의 목적이 잘못 설정된 데서 비롯되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받은 바 은혜에 대한 보답과 책임은 망각한 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반드시 현세에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잘못된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은 영원한 삶과 관계된 것으로서
꼭 현세적인 보상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나아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은 결코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으로
영생의 축복을 보장받은 우리들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애정의 표현이요 감사의 표현임을 직시해야 한다.
이상의 사실이 주는 교훈을 살펴보면,
첫째, 하나님의 백성된 표지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고
이를 자신의 일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이요 즐거움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
특별히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곧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어떠한 환난이나 고난이 임한다 할지라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맡은 바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가리킨다.(마16:24)
따라서 우리들은 비록 세상적인 보상이나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종국적인 위로와 축복을 소망하며
정성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시133:3)
둘째, 우리들이 바라보고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복은
곧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생의 삶을 누리는 것임을 다시 한번 자각해야 한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불의한 자들의 행복은
안개와 같이 일시적인 것이며 온전한 만족스러움이 없는 불완전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릴 참된 행복은 설령 이 땅에서 곤고한 나날이 계속된다 할지라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으로 가득찬 천국에서의 영원한 생명이다.
15절)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15절 말씀은 앞선 14절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주장한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교만한 자가 복되고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하는 현실을 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는 말을 내뱉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을 공의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시각에는 하나님은 전혀 공의로운 분으로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다면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들이
심판을 받고 파멸에 이르렀어야 하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만 보면 교만한 자와 악한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는커녕 도리어 형통하고 복을 받았다.
이에 비해 하나님을 섬긴다 하는 이들은
고난을 당하며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의 무용성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들이 범한 치명적 오류는 하나님의 섭리의 원대성과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선한 계획에 무지하거나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 선하신 분이요 절대 거룩하신 분으로
악인들을 용납하거나 축복하시지 않는다.
또한 의인으로 억울하게 망하도록 방치하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은 궁극적인 측면에서 의인들에게는 복을 주시고 악인들에게는 저주를 베푸신다.
의인들의 결국은 영생이며, 악인들의 결국은 영벌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궁극적 ‘결과’에 이르도록 섭리하시는 ‘과정’에서만큼은
의인들에 대해 무조건 세속적인 축복을 허락하시고
악인들에 대해 즉각적인 심판을 내리지는 않는다.
행한 대로 심판을 내리는 공의로운 심판 역사는
분명 하나님이 행하고 드러내실 것이나
현실속에서는 잠시 동안 모순적인 일이 발생하는 것을 허용하신다.
즉 하나님은 현실적으로는 의인으로 고난을 당하게도 하시고
악인으로 번성을 누리게도 하신다.
이는 현실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로서 시편 기자 중 아삽은
이러한 현실을 목도하고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시73:2-5)라고 토로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의인의 고난이 곧 저주는 아니며 악인의 번성이 축복도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궁극적인 목적,
곧 영원한 선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며 방편일 뿐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이루신 후에는 번성케 한 악인들을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물론 현세상 가운데, 그리고 우리의 인생 가운데
선악이 혼재하는 것, 그리고 선이 악에 짓눌리며 악이 승리하는 것 같은
부조리한 결과들을 보게도 하시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결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당신의 전지하심,
온전한 지혜와 전능하신 능력으로 섭리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다.
그것도 완전한 선, 궁극적인 선,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온전한 유익을 초래하는 선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에서 어떤 일을 겪던지
하나님의 크고 광대하시며 선하시고 의로우신 시각 하에
이를 판단하고 하나님이 그 일을 통해 어떤 일을 이루실 것인지를 헤아려
한결같이 의로운 삶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