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남부 말라가에 사는 키케 에스파냐는 길 건너 메르세드 광장을 응시했다. 늦은 아침이라 아직은 평화로운 곳이다. 자카란다 나무가 광장을 가득 메웠고, 중앙에 오벨리스크 탑이 자리하며, 끝 쪽에는 파블로 피카소가 태어난 주택도 있다. 하지만 근처 카페에 죽치고 있는 관광객들 때문에 키케는 걱정이 많다고 했다.
그는 “상황이 너무 무르익어 말라가는 정말로 사람들이 이 도시가 붕괴되고 있다고 느낄 전환점에 이르렀다”면서 "당신이 테마파크에 들어갈 때 느끼는 감정과 똑같다. 사람들이 그저 이 도시를 소비하려고만 할 뿐 거주할 생각은 전혀 없는 식”이라고 말했다고 영국 BBC가 1일(현지시간) 전했다. 키케는 이 스페인 남부 도시가 관광을 관리하는 방식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캠페인을 펴고 있는 말라가 거주자 연맹의 도시 계획자 겸 현지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이 조직은 지난 6월 수천명의 현지인들이 참여한 가두 시위를 주도했는데 관광이 이 도시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 예를 들어 주거비를 끌어올리고 젠트리피케이션과 소란 등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
물론 말라가만 그런 것은 아니다. 바르셀로나를 비롯해 알리칸테, 카나리아 제도, 발레아레스 제도 등 유명 관광지들에서도 똑같은 이유로 올여름 항의 시위가 열렸다. 4월에는 테네리프섬의 활동가들이 새 관광 메가프로젝트 건설에 반대하며 3주의 단식 투쟁을 벌였다. 바르셀로나 시위 참가자들이 해외 관광객들에게 물총을 쏴댔는데 그들이 펼친 현수막에는 “관광이 이 도시를 죽인다”와 “관광객들은 집에 가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스페인은 반 세기도 전에 북쪽 유럽인들이 해안과 섬들에 몰려들기 시작하자 관광 허브가 되겠다고 선언한 나라다. 오늘날 관광 수입은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13%가량을 차지하며 코로나19 팬데믹의 침체에서 반등하고 있다. 관광 수입액과 내방객 숫자 모두 기존 기록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해 스페인은 해외 방문객을 8500만명 받아들였는데 올해는 9000만명을 넘길 것으로 점쳐진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프랑스를 바짝 쫓는 2위 관광국이다. 관광산업 협회인 '엑셀투르'(Exceltur)의 호세 루이스 조레다 회장은 관광객 숫자보다 업계가 창출하는 수입액에 대해 얘기하길 선호하는데 올해는 직접과 간접을 합쳐 2000억 유로(약 296조원)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또 코로나19의 여파에 허덕이는 대부분의 유럽 나라들을 앞지르며 관광이 스페인 경제를 살리는 데 기여했는지 강조했다. 지난해 스페인 GDP 성장의 80%를 관광산업이 떠맡았다고도 했다. 그런데 이를 모두 인정하더라도 이런 성공을 거두는 데 따른 비용이 막대하다는 믿음도 덩달아 커졌다. 최근 시위가 잇따르는 것도 티핑 포인트(변곡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스페인인들이 거주하는 도시와 마을이 주민보다 관광객에게 편리한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마드리드에 있는 콤플루텐스 대학 관광지리학과의 파코 페메니아세라 강사는 "관광은 우리 GDP의 굉장한 몫을 차지하는 긍정적 경제 활동으로 여겨지지만 너무 많은 해외 관광객들이 쏟아져 들어와, 특히 도시들에 유입되는 부정적 영향을 목격하고 있다"면서 "관광은 공간을 경쟁하며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숫자를 많은 주민들이 견뎌내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런 장소들을 덜 즐거운 곳으로 만드는 것 말고도 현지인들은 관광이 많은 소상공인 점포들을 도시 중심에서 몰아낸다고 입을 모은다. 대신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바, 가게들이 들어서 결과적으로 물가를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문제는 역시 주거비 폭등이다.
스페인의 주요 관광지들은 관광객들을 겨냥한 단기 렌탈 부동산들을 많이 갖고 있다. 최근 일간 엘 파이스는 말라가 중심가가 스페인에서도 에어 BNB 부동산 비중이 가장 큰 것으로 조사했다. 메르세드 광장 주변 모든 아파트 4분의 1은 여행객 임대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파트 주인들은 장기 임대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단기 임대인으로부터 빼낼 수 있어 값을 올리게 한다. 현지인들은 이제 말라가 중심에서 월세 1200~1300유로 미만에도 아파트를 임대하기 힘들다고 불평한다. 주변 안달루시아 지방의 평균 월 임금은 1600유로에 그쳐 이들은 살던 도시에서 밀려나고 있다.
집권 사회노동자당(PSOE)의 이사벨 로드리게스 주택부 장관은 “말라가 사람들이 어디에선가 살 곳이 없다면 누가 이 관광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냐"고 되물었다. 지난 7월 이 도시에서 열린 주거 포럼 도중 그녀는 “우리에게 와인 한 잔, 정어리 한 접시를 서빙하는 웨이터들은 어디에서 산다는 말이냐”고 물었다. 그녀의 발언대로 스페인 정치권에서는 이제 막 관광 수수께끼(conundrum)와 씨름하기 시작했다.
카탈루냐와 발레아레스 제도는 이미 '관광세'를 도입해, 하루 한 명당 4유로씩을 받아내고 있는데 숙박 유형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다. 팔마 드 마요르카는 바다로 도착하는 숫자를 제한하기로 해 하루 세 척 이상 크루즈 유람선이 정박하지 못하게 하되 한 척의 승객을 5000명 이상 넘지 않도록 했다.
관광객의 숙박 이슈를 제한하는 조치들도 시행되고 있다. 올해 안달루시아 지방정부는 도시와 마을들이 단기 임대업자들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했다. 이에 따라 북동부 바르셀로나는 현재 1만장에 이르는 관광객 숙박 면허를 모두 취소하고 2028년까지 순환적으로 부여하는 방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페메니아세라는 업계의 경제적 비중을 감안해도 스페인 관광의 지배적인 지위가 "아주 힘겨운 문제"라고 인정하면서도 제재는 필요하다고 믿는다. “우리가 지속 가능한 관광이나 더 적은 숫자의 관광객에 대해 얘기하고자 하면 이들 활동을 제한하고 관광 부문의 제한을 더 높이 더 많이 규제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그냥 마음대로 굴러가게 한 것이다.” 그는 가능한 통제 수단으로 특정 목적지로 향하는 비행기 운항 편수를 줄이는 방안도 제안했다.
말라가로 돌아와 키케 에스파냐는 임대료 상한을 정하거나 즉각적인 조치로 현지인들에게 더 많은 주거를 제공하는 노력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과 동료들이 관광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그 항의는 계속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관광에만 초점을 맞추는 시의 모델에 반대한다. 우리는 우리 도시의 모든 에너지와 복잡성, 그리고 독보성을 잃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