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장 1 - 10절
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3.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4.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이고
5.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죽이니
6.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매
7. 아도니 베섹이 이르되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8.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 성을 불살랐으며
9. 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
10.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모세나 여호수아처럼 모든 백성을 이끌어갈 수 있는 탁월한 지도자가 부각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여전히 침략해야 할 가나안 땅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유다 지파가 선봉에 서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8절부터 10절의 말씀에서는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예루살렘 성 전체를 점령했던 것은 아니고 일부 지역에 대한 승리를 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대한 완전한 정복은 다윗 왕 때 비로소 완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하 5장 말씀에 보면 다윗이 점령한 성이기 때문에 그 성을 다윗 성리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다가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가장 큰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유다가 시므온 지파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수아 19장에서 봤지만 시므온 지파의 포악한 성품 때문에 시므온 지파는 이스라엘 안에서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지파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지파처럼 정상적으로 기업을 받지 못하고 유다의 남은 땅에 빌붙듯이 사는 모양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함께 거주하게 된 시므온 지파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고 배려하는 차원과 협력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유다 지파가 이와 같이 제안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연합군을 이루어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전쟁을 하게 되는데 도망치는 전쟁 포로들을 잡아서 엄지발가락을 잘랐던 것입니다. 지금처럼 전쟁 포로의 인권에 대한 규정들이 없었던 때였기 때문에 도망치지 못하도록 발가락을 자르거나, 엄지손가락을 잘라서 무기를 잡지 못하게 한다거나 눈을 빼서 앞을 못 보게 하는 잔혹한 일들이 흔히 일어났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문화와 상황이 그렇다고 해도 엄지발가락을 자른 것은 너무 한 것이 아닌가 싶겠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심판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7절에 보면 아도니 베섹이 자신의 군대가 이런 벌을 받게 된 것이 자신이 저질렀던 흉악한 태도 때문이었다고 자백을 하고 있습니다. “아도니 베섹이 이르되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전에 칠십 명의 왕들의 엄지손가락과 발가락을 자른 후에 자신의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게 만든 적이 있었는데 돌이켜 보니 그 때의 자신의 잘못은 심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군대에게도 이런 벌을 내리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솝 우화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어미 독수리가 먹이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하늘 높은 공중에서 빙빙 돌며 땅 위의 먹을 것을 찾던 중 홀로 놀고 있는 여우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쏜살같이 내려왔습니다. 한편, 어미 여우도 자신의 새끼를 위해 먹을 것을 찾으러 돌아다니던 중에 공중에서 날고 있는 독수리를 발견하였습니다. 어미 여우는 독수리가 쏜살같이 내려가는 바로 그곳이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새끼 여우가 놀고 있는 곳임을 알아차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버렸고 독수기가 새끼 여우를 낚아 채 가지고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 다급해진 여우는 독수리에게 사정을 했습니다. “독수리님, 제발 제 새끼를 살려 주세요. 제게는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새끼입니다. 만약 독수리님의 어린 새끼가 누구에겐가 잡혀간다면 얼마나 속상하시겠어요? 제발 부탁입니다. 불쌍한 제 새끼를 돌려주세요.” 눈물을 흘리며 사정하는 여우의 말에 잔인한 독수리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새끼 여우를 움켜쥔 채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여우는 새끼 독수리들이 어미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의 보금자리로 달려갔습니다. 독수리의 집은 큰 소나무의 꼭대기에 있어서 여우로서는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우는 곧장 장작에 불을 붙여 소나무에 불을 질러 버렸습니다. 큰 소나무는 금새 불이 붙었습니다. 한편 ‘참 좋은 먹이를 얻었구나.’하고 생각하며 멀리서 날아오던 어미 독수리는 화염에 휩싸인 소나무를 보고는 급히 날아왔으나 번져 오르는 화염으로 인해 새끼 독수리들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소나무의 둥지에서 먹이를 가지고 올 어미를 기다리던 새끼 독수리들은 자기들이 왜 죽어야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어린 날개를 파닥거리며 불타는 소나무 위에서 가련하게 죽어가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동해 보복법을 율법에 두신 이유는 보복을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 법을 만들어 놔야 법 집행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른 사람을 헤치려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한 사람은 자기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려 봐야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법을 만드신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 속한 아도니 베섹 또한 자신의 군사들의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나서야 그때 일을 기억하면서 후회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이런 상황들을 고려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나 혼자만 잘 살면 된다는 마음이나 자신의 잘 됨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피해에 대해서 유념치 않는 사람의 최후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이런 사례들을 보면서 많은 도전을 받으며 우리의 생각과 삶의 모습을 새롭게 고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영원히 살기 원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이런 하나님의 원칙들을 잘 지켜 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는 우리의 무관심이나 무책임한 모습 때문에 상처받은 영혼들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고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도록 더 배려하고 양보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