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개수가 무려 1004개. 측량에 따라 그 수가 조금 변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섬이 가장 많은 전남 신안군은 그래서 ‘천사의 섬’으로 불린다. 홍도와 흑산도, 비금도, 도초도 역시 천사가 내려앉았다. 이른 새벽 자욱한 안개를 뚫고 번지는 초록빛깔 싱그러움, 따뜻한 햇살까지 감싸면 더 짙고 선명한 색을 드러내는 바로 그런 섬이다.
홍도 일몰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왼쪽으로는 홍도항이, 오른쪽으로는 몽돌해변이 펼쳐진다. |
홍도 하면 떠오르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있다. 젊은 시절 홍도에서 찍은 아버지의 모습이다. 8대 2 가르마에 꽤나 촌스러워 보이는 양복을 입고 계셨다. 분명 여행이었을 텐데 양복 차림이라니 그땐 그랬나보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홍도는 참 볼만한데 배멀미가 참 고약하다고. 웬만하면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는 당신께서 하신 말씀이라 어릴 때부터 머릿속에 ‘홍도=배멀미’라고 저장되어 있는데, 이 험난할지 모를 여정을 경험할 때가 왔다. 이번엔 홍도와 흑산도, 비금도, 도초도를 모두 아우르는 2박3일 패키지 여행이다.
홍도, 그 어떤 수식어로도 부족하다
홍도 33경을 모두 돌아보는 유 람선 투어는 홍도 여행의 하이라이트 |
SRT를 타고 수서역을 출발한 지 약 2시간 20분 만에 도착한 목포역. 지체할 틈도 없이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로 이동해 홍도행 쾌속선에 몸을 실었다. 출발과 동시에 요동치던 배는 바다 위를 달리면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다행히도 파도가 잔잔하단다. 목포에서 홍도까지는 115km, 2시간 반 만에 홍도에 입성했다. 걱정과 달리 기별조차 오지 않은 배멀미. 가장 큰 산을 넘었으니 이제 섬을 즐길 차례만 남았다.
홍도 1경인 남문바위, 석굴문을 지나면 일 년 내내 더위를 먹지 않고 소원도 성취한다고 전해진다 |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홍도에서 꼭 해야 할 것은 유람선 투어다. 배를 타고 남문바위, 실금리굴, 슬픈여바위, 탑섬, 독립문바위 등 홍도 33경을 돌아보는 코스로 2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바다 위로 우뚝 솟은 기기묘묘하고 신비로운 바위의 향연. 베트남 하롱베이는 감히 비할 바가 아니다. 게다가 바위마다 재미있는 사연까지 있어 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든다. 섬 내 마을은 그리 크지 않다. 동백군락지, 몽돌해변, 전망대 등을 돌아보는데 30분이면 충분하다. 해 질 무렵에는 섬 전체를 감싸는 붉은 빛깔을 보기 위해 일몰 전망대로 사람들이 몰린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 섬이 왜 홍도(紅島)가 되었는지를 풍경으로 답한다.
홍도산 돌미역에 회 한점을 얹고 칼칼한 갈치속젓을 올려 먹으니 기가 막히다 |
파도 소리와 돌이 굴러가는 소리가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몽돌해변 |
아침저녁 밥상에는 홍도산 돌미역과 해산물, 젓갈 등이 푸짐하게 올라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아따, 기분이다! 자연산 회도 한 접시 주문해본다. 쫄깃하게 씹히는 회 한점에 소주를 곁들이니 이 맛이 꿀맛이로세. 입에서는 배가 부르다고 말하지만 젓가락은 자꾸만 음식으로 향한다. 도통 멈출 수가 없다.
흑산도, 해안 일주도로를 따라 한 바퀴
여행 첫째 날 홍도의 아름다움에 반했다면, 여행 둘째 날에는 흑산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홍도에서 배를 타면 고작 30분 거리, 산림이 울창하게 발달해 멀리서 보면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 하여 흑산도라 이름 붙은 섬이다. 면적 21.7㎢, 해안선 59.2㎞ 규모로 해안 일주도로 코스와 해상 유람선 코스 중 선택해 돌아볼 수 있는데, 고민 끝에 해안 일주도로 코스를 선택했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
“어여 오소!” 버스에 오르자마자 안내와 운전을 동시에 담당하는 가이드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우리를 반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여행자의 추임새가 더해지면 주거니받거니 오고 가는 사투리 대화가 꽤나 흥미진진하다. 예리항을 출발한 버스가 구불구불한 12고갯길을 달려 처음으로 멈춘 곳은 흑산도 최고의 전망대로 꼽히는 상라봉이다. 전망대 중심에는 50년 넘게 사랑받아온 대중가요 ‘흑산도아가씨’를 기념하는 노래비가 서 있고, 그 아래로 흑산도 앞바다와 예리항, 더 멀리 장도와 홍도까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어디선가 애절하고 구슬픈 이미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나 싶더니만 가이드의 센스만점 맞춤형 선곡이다. 우리는 그렇게 ‘흑산도 아가씨’를 들으며 섬을 달렸다.
섬 전체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해안 일주도로는 25.4㎞로 1984년에 착공해 27년 만인 2010년에 완공되었다. 얼마나 산세가 험한지 1년에 1km 정도밖에 만들지 못했다는 말이다. 좁고 가파른, 심지어 이리저리 구부러진 길을 버스가 오르내린다. 어떤 구간은 교각이 없이 만들어져 하늘에 떠 있는 착각마저 든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옹기종기 작은 마을을 지나고, 지도바위, 피바위, 간첩굴, 정약전 유배지, 최익현 유배지 등의 볼거리와도 마주했다. 짙은 해무로 경계가 사라진 하늘과 바다, 흑산도는 홍도와는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흑산도에 왔응께 홍어 쪼까 하고 가소!” 코끝을 쏘는 삭힌 홍어 한점을 초고추장에 푹 찍어 먹어보곤 지갑을 열고야 말았다. 홍어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서다.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한 마리는 엄두도 못 내지만 먹기 좋게 썰어 포장한 작은 상자는 하나 구입했다. 이제 또 배를 타고 다음 섬으로 이동한다.
조용하고 아늑한 비금도와 도초도
연인들이 꼭 방문하는 하트 모양의 하누넘 해변 |
비금도에 도착하자 이곳에서 낚시를 즐기며 산다는 가이드가 마중을 나왔다. 이번 패키지 여행의 특징은 섬마다 현지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직접 섬을 안내한다는 점이다. 덕분에 섬에 대한 알짜배기 정보는 물론 생생한 생활 이야기까지 전해들을 수 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비금도 최고 볼거리이자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로 유명한 하누넘 해변이었다. 하누넘은 북서쪽에 하늬바람이 넘어오는 곳이란 의미로 산과 섬에 둘러싸인 모양인 꼭 하트를 닮아 연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완전한 하트 모양을 보려면 하트 조형물이 설치된 전망대에 올라야 하는데, 해 질 무렵과 만조 시기까지 맞추면 비금도 최고의 로맨틱 스폿이 된다.
바둑판처럼 이어지는 비금도 염전 |
바람에 살랑살랑 초록빛 물결을 이루는 청보리밭 |
소금 짠내 가득한 염전이 바둑판처럼 이어지는 비금도는 우리나라 최초로 천일염을 생산한 섬이라 '소금의 섬’으로도 불린다. 대동염전, 남일염전, 신안염전 등 섬의 생계를 책임지는 염전도 볼만하지만 자동차로 타고 달려도 모래에 빠지지 않는 4km 길이의 명 사십리 백사장과 초록빛 싱그러움을 뽐내는 청보리밭도 눈을 시원하게 한다. 가이드가 갑자기 바둑 이야기를 꺼낸다. 무슨 얘기를 하나 했더니 비금도가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의 고향이고 여전히 어머님이 살고 계신단다. 바둑 천재가 자란 곳이라니 어찌 자랑하고 싶지 않을까. 바둑을 좋아한다면 이세돌기념관을 추천한다는 귀띔도 놓치지 않는다.
고기잡이 그물을 햇볕에 바짝 말리는 풍경도 멋스럽다 |
도초도 시목해변에서 체험하기 좋은 맛조개 잡기 체험 |
비금도에서 다리만 건너면 도초도다. 1996년 서남문대교가 완성되면서 자유롭게 오가는 섬이 되었다. 도초도는 산지가 적고 평야가 많은데, 그중 고란평야는 신안군에서 규모가 가장 커 섬인지 육지인지 헷갈릴 정도다. 섬이지만 어업보다 농업이 발전한 것도 넓디넓은 평야 때문이다. 도초도 최고 절경으로 꼽히는 시목해변으로 향했다. 한 아주머니가 해변에서 맛조개를 잡고 있다. 조개구멍을 찾아 호미로 살짝 땅을 판 뒤 구멍에 소금을 뿌렸더니 맛조개가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이때를 놓칠세라 재빨리 조개를 잡아 꺼내는 것이 포인트. 크고 작은 녀석들이 하나둘 잡히는 게 거참 신기하다. 제대로 팔 걷어붙이고 뛰어들면 하루 24시간도 모자라겠다.
언제 지나는 줄도 모르게 홍도와 흑산도, 비금도, 도초도 여행이 끝났다. 목포로 돌아와 여행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유달산 정상에 올랐다. 산 아래로 펼쳐지는 탁 트인 바다, 2박3일 동안 힐링의 시간을 만들어준 섬들을 떠올려본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 내 손에는 흑산도 홍어 상자가 들려 있다. 좋아하실 아버지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난다.
SRT 타고 떠나는 여행
㈜SR에서는 국내는 물론 해외여행 상품을 다양하게 선보인다. 국내 여행상품은 SRT 서울 시티투어를 비롯해 부산, 경주, 울산, 덕유산, 부여, 홍도, 흑산도까지 당일여행과 1박2일, 2박3일 등 여행자의 취향을 고려해 구성했다. 특히 아름 여행사가 주관하는 홍도&흑산도&비금도&도초도 2박3일 상품은 목포를 기점으로 전남 신안을 대표하는 4개 섬을 모두 돌아볼 수 있는 알찬 구성으로 여행자를 반긴다. 가격은 대인 31만 원, 소인 22만 원.
- SRT여행상품 http://tour.srail.co.kr
- 아름여행사 https://arumtr.co.kr
- 02-722-0419
글 김정원 사진 오진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