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正見] (350) 자각몽과 깨달음의 본질은 같다
늘 눈 앞의 삶을 '자각몽' 보듯 하라
공부인은 늘 자기 눈 앞의 삶(현실)을 자각몽 보듯이 해야한다. /셔터스톡
자각몽은 꿈은 꾸지만 그 꿈이 다 의식의 장난(마음활동)임을 아는 꿈입니다. 깨어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삶의 모든 일들이 다 이것(의식의 장난)이라는 본질을 매순간 분명하게 보고 아는 것입니다. 이걸 [깨어있음]이라고 말하는 거지요.
지금 아침에 식사한 아침밥의 이미지를 눈 앞에 한번 떠올려보세요. 이건 분명히 뭔가가 잠시 나타나있지만(색) 그러나 곧 사라지지 않습니까(공)?
삶의 모든 것들이 다 이러합니다. 모든 크고 작은 일들도 이 범주를 벗어나 스스로 늘 따로 마음밖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중대한 사건도 그 본질은 이렇게 다 생각 느낌과 이미지정보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일체가 헛되다는 것이며 불교는 통째로 공하다는 겁니다.
이젠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말이 별게 아니란 걸 아셨지요?
즉 이말은 평생을 의식장난으로 분별을 일으킨 정보 속에서 울고 웃으며 사는 삶의 본질을 간명하게 줄여서 말한 것입니다. [공수래공수거]도 똑같은 말입니다.
하지만 중생은 아직도 의식의 장난 속에서 뭔가 건질게 있을거라고 믿는 반면, 부처는 의식의 장난(분별심)이 본래없는 환영임을 늘 정견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 중생이나 부처나 본래는 하나의 영원한 생명현상이긴 마찬가지인 거지요. 그래서 성경도 '일체가 다 하나 안에서의 일(요한 17;21)'이라 말하는 것이며 불교도 '일체가 다 이것하나의 일(변화무쌍한 변화)일 뿐'이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이란게 절대 복잡하고 어려운게 아닙니다. 세상이란 본질적으로 생명 한자리가 일즉다다즉일로 수많은 생명체를 뿜어내어 각 생명들이 각각 자기 삶을 살지만 그 본래자리는 단 하나인 생명으로써 그 능력인 봄과 앎, 육식활동 속에서 꿈처럼 펼쳐지는 다양한 환영세계란 것입니다.
따라서 공부인은 늘 자기 눈 앞의 삶(현실)을 자각몽을 보듯이 해야합니다. 즉 [이게 다 의식이 분별해서 일으킨 마음장난이다]란 진실을 잊지 말아야하며 동시에 그런 안목으로 눈앞의 삶을 애틋하게 바라보지만 돈이나 이성, 명예 등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은 채 순리대로 물 흐르듯 대하며 살아가야 하는 거지요.
글 | 김연수 한양특허 대표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