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불황 3대 원칙이 있다」 93세 TSMC 창업자가 밝힌 성공비결(1)(2) / 12/2(월) / 중앙일보 일본어판
이건희를 견제하고 애플을 겨냥해 젠슨 후안을 원했다. 대만 반도체업체 TSMC의 창업자인 93세 장충모(모리스 장) 박사가 밝힌 TSMC 40년의 결정적 순간이다.
대만에서 지난달 29일 『장충모자전』 하권이 출간됐다. 미국 반도체 업계에서 일했던 장 씨가 대만 정부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귀국해 TSMC를 설립해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으로 키워 리타이어하기까지 1964~2018년 행적이 적혀 있다. 2018년 출간한 상권에서는 1931년 출생부터 청년기까지를 회고했다. 이번 책에서 그는 "미국 텍사스 주에서 은퇴한 노인이 된 내가 1985년 대만으로 건너가 운명을 만났다"고 썼다.
책에서 그는 TSMC뿐 아니라 인텔, 애플, 엔비디아, 삼성전자 같은 기업들의 비공개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그야말로 세계 반도체의 살아 있는 화석 수준이다. 대만에서는 출판 첫날부터 서점에서 구매자들이 줄을 서는 등 반응이 뜨겁다. 중앙일보는 이 책을 입수해 한국 반도체 산업과도 적집합이 있는 장 씨의 3대 결정적 순간을 소개한다.
◇ 메모리 진출하려다 실패, 이건희 견제
1988~1989년 일본과 한국의 메모리 기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대만은 국가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대만 정부가 자본을 내고 외국 기업의 투자·기술을 더해 TSMC를 설립한 것처럼 같은 방식으로 메모리 회사도 설립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장 씨는 1989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 갑자기 아침 식사에 초대받는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메모리에는 많은 자본과 인력이 필요하지만 대만에서는 할 수 없다"고 말했고, 몇 달 뒤에는 한국으로 초청해 삼성의 메모리 공장을 보여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대만 정부는 메모리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TSMC가 주요 주주로 참여해 1994년 '뱅가드 인터내셔널'이 설립된다. 그러나 1996년부터 D램 메모리 가격이 하락하고 자체 설계인력이 부족한 대만의 한계까지 겹치면서 2000년 이 회사는 메모리에서 철수한다. 철수 발표 기자회견은 장 씨가 했다.
자서전에서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는 대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건희는 (반도체) 전문가는 아니지만 반도체와 휴대전화의 잠재력을 알고 시대의 흐름을 주도한 영웅. 한국에 이건희가 있다면 대만에는 내가 있다"고 말했다. 또 측근에게 "삼성은 거대하지만 고릴라도 발가락을 세게 밟히면 아프듯이 삼성에도 약점은 있을 것"이라고 말해 삼성을 계속 견제했다고 한다.
◇ 수율 불량 은퇴 번복, 젠슨 후안과 담판
※ 수율 : 제조 등 생산 전반에 있어서, 「원료(소재)의 투입량으로부터 기대되는 생산량에 대해, 실제로 얻어진 제품 생산수(량) 비율」을 말한다. 또, 수율은 수율의 구체적 비율을 의미해, 생산성이나 효율성의 우열을 재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예를 들면, 반도체 제품에서는 생산한 제품의 전체 수량 중에서 차지하는 소정의 성능을 발휘하는 「양품」의 비율을 나타낸다. 수율이 높을수록 원료의 질이 높고, 또한 제조 라인으로서는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다.
최고 수율을 자랑하는 TSMC도 '불량 공정'으로 내몰렸다. 2009년 초 TSMC가 내놓은 40나노미터(나노는 10억분의 1) 파운드리의 수율이 낮고, 전년 금융위기 여파까지 이어지면서 증권업계는 'TSMC 위기론'으로 휘청거렸다. 2005년 은퇴한 장 씨는 4년 만에 CEO로 복귀해야 했다.
「나에겐 불황 3대 원칙이 있다」 93세 TSMC 창업자가 밝힌 성공비결(2) / 12/2(월) / 중앙일보 일본어판
78세에 귀환한 CEO는 우선 기술 전문가들에게 공을 들였다. 100여 명의 투자자가 모인 실적 발표 후 장 씨는 말했다. "다들 40나노를 우려하지만 류더음(劉徳音/Mark Liu) 부사장은 생산라인에서 일하느라 너무 바빠서 온라인으로 연결합니다. 화면 속에서 류 부사장은 흰색 방진복을 입고 클린룸 앞에 서서 전문적인 기술을 설명했다. 수율 정상화에는 수개월이 걸렸지만 CEO 정면돌파로 안팎의 불안은 서서히 사라졌다.
장 씨는 또 전임 CEO의 800명 해고 계획을 철회하고 '불황 3대 원칙'을 실천에 옮겼다. 첫 번째로 고객과 이해·조정을 통해 협력을 유지한다. 두 번째로 해고하지 않는다. 세 번째로 연구개발 자금을 늘린다. 그는 은퇴한 장상의(蒋尚義) 박사를 연구개발 수석부사장으로 초빙해 연구개발 예산을 회사 매출의 5%에서 8%로 올렸다.
40나노 불량으로 피해를 본 고객 중에 엔비디아도 있었다. 장 씨는 엔비디아 젠슨 후안 CEO의 미국 자택을 방문해 가족 식탁에서 피자로 저녁을 먹은 뒤 서재로 가 둘만의 협상을 벌였다. "TSMC의 보상안을 받아들이거나 48시간 안에 답하라"는 최후통첩에 후안 CEO가 응하면서 1년간에 걸친 양사의 대립은 극적으로 결말을 맞았다. 이는 파운드리 기업에 거절당하던 초창기 엔비디아에 장 씨가 직접 전화를 걸어 거래를 시작한 1997년부터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서전에서 장 씨는 2013년 후안 CEO에게 두 차례나 전화를 걸어 TSMC 후임 CEO를 제안했다는 일화도 공개했다. 후안 CEO는 "나는 이미 일자리가 있다"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 '애플로부터의 수주'는 4년간 준비한 작품
현재의 TSMC를 만든 일등공신은 애플이다. TSMC가 현재처럼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엔비디아 덕분이지만 지난해 TSMC의 최대 고객은 여전히 애플이었다.
장 씨는 2007년부터 애플을 TSMC의 잠재 고객으로 노렸다고 자서전에서 털어놨다. 스마트폰은 반도체 집약적인 제품 때문에 애플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고 한다. TSMC는 애플이 로직 칩 설계를 위해 삼성을 찾았다는 말과 이후 삼성이 독자적으로 스마트폰 사업을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장 씨는 "내가 스티브 잡스라면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애플 수주에 더욱 공을 들였다.
이때 다리를 놓은 사람은 아내 소피 창(Sophie Chang, 張淑芬)의 사촌인 폭스콘 창업자 궈타이밍(郭台銘)이었다. 폭스콘은 애플의 주요 제조 협력사다. 어느 날 애플의 제프 윌리엄스 최고집행책임자(COO)가 장 씨의 집에 초대도 받지 않고 찾아와 저녁식사를 함께 했고 이때부터 두 회사의 파운드리 거래 협의는 시작됐다. 중간에 인텔과 애플 간 거래 논의가 있었는데 2011년 팀 쿡 애플 CEO가 장 씨를 초청해 점심식사를 하면서 "인텔은 위탁제조가 잘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4년 애플은 아이폰6s용 칩을 삼성과 TSMC로부터 조달해 현재 전량을 TSMC에 맡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