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이상해
박재형
“이젠 그만 놀고 모두 도서관으로.”
선생님이 예전처럼 익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 화요일 5교시 도서관에서 국어공부를 한다. 국어시간에 책을 읽는 거다. 책을 읽는 게 공부라니. 동권이는 짜증이 났다. 교실에서 하는 공부도 마지못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데. 지루하게 한 시간 동안이나 책을 읽는다니. 도서관 책을 모두 폐품 처리하면 얼마나 좋을까.
동작 빠른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책을 좋아하는 도현이랑 온겸이, 지현이, 다혜가 앞장서서 교실을 빠져나갔다. 걸음이 가볍다.
‘아이, 또 책. 짜증나.’
동권이는 기분이 갈아 앉았다. 도서관에 가는 건 그렇다 해도 한 시간 내내 책을 읽는 건 왕짜증이다.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의 얼굴도 동권이랑 별로 다르지 않다.
“자 빨리 가자. 제일 늦게 간 아이가 끝나서 도서관 책상 정리하기.”
선생님의 소프라노 음성이 날아왔다.
느릿느릿 움직이던 아이들도 빠른 걸음으로 교실을 빠져나갔다.
동권이는 마지못해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은 2층 중앙에 있다. 교실보다 넓은 공간에 책상과 전시대, 책꽂이가 놓여있다. 엄마를 따라 가 본 찻집처럼 도서관은 디자인이 아주 멋있다. 아줌마들이 몰려와 차를 마신다면 딱 카페분위기다. 그래서 책읽기를 싫어하는 동권이마저도 도서관 자체는 마음에 든다. 그런데 동권이를 낭떠러지로 밀어 넣는 것은 책이다. 책꽂이에 가득 꽂혀 있는 책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저학년들이 보는 그림책부터 동시책, 동화책, 역사책, 과학책들이 책장마다 빼곡히 늘어서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인기가 있는 몇 권의 책은 너덜거리지만 대부분의 책은 서점에서 구입한 그대로 반질반질하다.
그런 책을 볼 때마다 동권이는 속이 상했다.
‘읽지도 않을 책을 뭐 하러 잔뜩 꽂아놨을까? 비싼 돈 주고 사다가.’
저학년 어린이와 여자 아이들만 도서관에 들락거릴 뿐 남자 아이들, 그러니까 동권이네 반 남학생들은 도서관을 거의 찾지 않는다. 화요일 5교시 국어시간에는 팔려간 소처럼 도서관에 가서 앉아 있긴 하지만 마음은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있다. 축구공을 쫓아다닌다면 얼마나 즐거운 시간이 될까.
“책을 읽는 건 지루해. 축구라면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지.”
동권이처럼 책읽기를 싫어하는 동휘가 쫑알대며 동권이보다 앞서서 도서관으로 걸어갔다. 동권이는 책상정리를 하기 싫어 동휘를 앞질러 갔다. 그러자 동휘가 뛰어 동권이를 앞질렀다. 그래서 동권이가 다시 앞지르려고 뛰어가다가 교장선생님에게 들켰다.
“복도에서 뛰면 쓰나. 걸어 다녀야지.”
마주 걸어오던 교장 선생님의 엄숙한 목소리에 동권이는 얼굴이 붉어졌다. 동휘도.
동권이와 동휘는 얼른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먼저 온 아이들이 책을 고르고 있었다. 벌써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아이도 있었다.
“빨리 빨리 책을 골라 읽기 시작. 책을 읽어야 똑똑한 사람, 착한 사람이 되는 거야.”
선생님이 잔소리처럼 책을 읽으라고 강요했다. 마치 책이 요술방망이라도 되는 양 늘 하던 말을 또 했다.
동권이도 제목이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 골라 구석 자리에 앉았지만 견디기 힘들었다. 읽고 싶은 마음이 멀리 달아나 버렸다. ‘검둥이를 찾아서’ 책을 열어 들여다보았지만 재미가 없었다.
‘순동이 아버지가 어쨌다는 거야. 차라리 만화영화를 틀어주면 얼마나 좋아.’
동권이는 읽지도 않고 대강 보는 체 하며 휙휙 넘겼다. 그림책이면 예쁜 그림이라도 보겠지만 선생님은 지금 읽는 책을 다 읽은 다음 보라고 한다.
‘정말로 책들이 없어지면 좋겠어!’
잔뜩 짜증을 내며 고개를 들던 동권이는 깜짝 놀랐다. 도서관이 이상했다. 눈을 크게 뜨고 책장을 보니 지금까지 동권이를 힘들게 했던 책들은 한쪽 구석에 있는 책장으로 밀려나고 과자가 꽂혀 있었다. 동권이가 좋아하는 쵸코칩이랑 빼빼로, 꼬깔콘 등 과자들이 책장 가득 쌓여 있었다. 마트 과자코너를 통째로 옮겨온 듯했다.
‘와, 과자다!’
동권이는 벌떡 일어났다. 오래 살고 볼 노릇이라고 할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정말 살다보니 도서관이 과자가게로 변한 것을 보게 되었다. 놀라서 입이 딱 벌어졌다.
선생님이 싱글거리며 상황을 말해 주었다.
“너희들을 위해 교장 선생님이 책 살 돈으로 과자를 사다 놓으셨다. 우리 교장 선생님 멋있지? 앞으로 매일 과자를 먹는다. 맘대로 하나씩만 골라 먹으렴. 두 개 고르면 안 된다.”
“와!”
아이들이 좋아서 소리를 지르며 과자를 향해 전진했다.
동권이도 그 틈에 끼어 있었다. 동권이의 머리와 눈이 재빠르게 돌아갔다. 맛있는 과자를 고르려면 재빨라야 한다. 친구들이 맛있는 걸 다 골라 가기 전에 얼른 과자를 손에 넣어야 하니까.
동권이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눈을 굴렸다. 동권이가 좋아하는 과자들뿐이어서 얼른 손이 나가지 않았다. 한참 동안 눈알을 굴리던 동권이는 뿌셔뿌셔 바비큐맛을 골랐다.
“많이 먹고 빨리 커라.”
동권이가 비닐포장지를 찢는 순간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동권이는 교장 선생님께 큰절을 했다. 아이들도 이구동성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교장 선생님이시다. 귀찮은 책은 과감하게 치워주시고 과자를 먹게 해주신 훌륭한 분. 꽃다발이 있다면 한 아름 안겨드리고 싶었다. 자주 먹는 과자지만 도서관에서 먹게 될 줄이야. 우리나라에서 아니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학교에 다닌다는 생각에 풍선을 타고 둥둥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짝꿍인 도현의 손에 수박바가 들려 있었다.
“아니, 아이스크림도 있어?”
“그럼, 저 통 안에.”
도현이가 한 구석에 놓여 있는 냉장고를 가리켰다.
아이들 서너 명이 냉장고에 붙어 서서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있었다. 붕어빵을 들고 있는 아이, 구구콘이랑 빵빠레를 혀로 핥고 있는 아이를 보는 순간 동권이는 머리가 띵했다. 아이스크림이 있는 줄 알았으면 뿌셔뿌셔를 고르지 않았을 텐데. 겉봉만 뜯지 않았다면 얼른 바꾸면 될 일이지만 이미 물 건너 간 일이다. 한 개만 고르라고 말한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그 때 온겸이가 눈에 띄었다. 온겸이는 수박바를 먹고 있었다. 수박바가 얼마나 맛있을까.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였다. 승준이는 메로나를 들고 있었다.
“온겸아, 한입만.”
동권이가 사정하자 온겸이가 얼른 입을 벌리더니 수박바를 단숨에 삼켜버렸다. 두 볼이 볼록했다.
“아이고 차가워! 머리 아파.”
온겸이가 얼굴을 찡그렸다. 차가운 수박바를 한입에 털어 넣었으니 머리가 아플 수밖에.
동권이는 온겸이가 정말 얄미웠다.
그 때, 옆에서 선생님이 한 입 먹은 수박바를 내밀었다.
“너 수박바가 정말 먹고 싶었구나. 이거라도 먹을래?”
“예, 주세요.”
동권이는 얼른 선생님께 손을 내밀었다. 선생님이 수박바를 동권이의 손에 올려놓았다. 동권이는 얼른 수박바를 베어 물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수박바 맛이 기가 막혔다. 평소에 먹었던 수박바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동권이는 수박바를 먹고 나서 뿌셔뿌셔에 양념을 묻혀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뿌셔뿌셔는 언제 먹어도 맛이 좋았다. 동권이는 친구들이 달라고 할까 봐 얼른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뿌셔뿌셔가 금세 사라져 버렸다. 동권이는 과자가 더 먹고 싶었다. 선생님이 한 개만 먹으라고 했는데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 눈치를 보다가 얼른 빼빼로를 집어들었다. 그 순간 과자가 모두 책으로 변해버렸다. 친구들의 놀란 얼굴이 동권이의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이럴 수가?’
동권이는 믿을 수 없었다. 과자 하나 몰래 들었다고 과자가 책으로 변하다니. 친구들의 화난 얼굴, 선생님의 실망한 얼굴이 다가왔다. 아이들의 표정은 정말 무서웠다.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책 한 권이 책장에서 튀어나오더니 동권이 앞으로 점프를 하면서 뛰어왔다. 동권이는 놀라서 뒤로 넘어질 뻔 했다.
“넌 왜 우리를 싫어하니?”
갑자기 책이 동권이를 다그쳤다.
“재미없으니까 그렇지. 만화영화처럼 재미있으면 매일 읽지.”
동권이는 솔직히 말했다. 선생님이랑 부모님이 책을 읽으라고 하지만 책을 읽는 게 너무너무 지루하다.
“난 네가 더 사랑스런 아이, 재미있는 아이로 만들어 줄 수 있어.”
“난 책이 싫어. 가만히 앉아서 널 읽는 건 너무 힘들어. 난 노는 게 좋아.”
“어릴 때는 당연히 많이 놀아야지. 그렇지만 책 속에는 온갖 지혜가 들어있어. 책을 읽으면 멋진 아이가 될 걸.”
“알았어, 알았어. 앞으로는 널 사랑할게.”
동권이는 얼른 책에게 말했다. 책의 잔소리도 듣기 싫고 책의 말을 들으면 다시 과자와 아이스크림으로 변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아이들이 자기를 쏘아보는 눈빛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동권, 정신 차려. 급식 먹어서 졸렸나 보네.”
동권이는 얼른 눈을 떠서 고개를 들고 책장을 바라보았다. 동권이의 눈에 들어온 건 책이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과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동권이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과자랑 아이스크림이 많았는데….”
“그새 꿈을 꾼 거니? 꿈에 마트에 갔구나.”
선생님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아니고 도서관 책들이 모두 과자와 아이스크림으로….”
“뭐 책이 과자랑 아이스크림으로? 후후. 꿈도 야무지다.”
“그게 아니고 교장선생님이 책장을 과자로 채워놓았어요. 아이스크림통도 들여놓고요.”
“그러니까 책은 읽기 싫고 과자랑 아이스크림은 먹고 싶었구나. 책을 잘 읽으면 과자를 사줄 수도 있지.”
“정말이요?”
“그럼 정말이고말고.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더니. 참.”
선생님이 웃으며 장난스레 말씀하셨다.
동권이는 기분이 좋아졌다. 책을 읽으면 과자를 사준다니. 도서관 책들이 모두 과자로 변하는 꿈이 현실이 되는 건가.
동권이는 ‘검둥이를 찾아서’를 읽기 시작했다. 검둥이가 누구지? 강아지 이름인가? 참 소였지. 동권이는 검둥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새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동권이는 순동이 아버지를 따라 검둥이를 찾아 안개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박재형_ 1951년 제주 출생, 1983년 《아동문예》 등단, 동화집 『까마귀 오서방』, 『내 친구 삼례』, 『고래굴의 비밀』, 『이여도로 간 해녀』 『검둥이를 찾아서』 『다랑쉬오름의 슬픈 노래』 『박재형 동화선집』 외 다수, 계몽아동문학상, 제주문학상 외 다수
출처 : 생명과문학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