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과학적 비밀'의 배광석 원장의 어린시절 경험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라.
당신이 현재 가진 것만으로 행복하지 않다면, 더 많이 받는다고 해도 결국 행복해지지 못한다.”
- (비키 킹)
필자인 나의 어린 시절에 옛 경험을 소개합니다.
6·25전쟁 종전 후 얼마 되지 않아, 내가 태어나고, 일제 때에 지병을 가졌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지극 정성의 간병에도 제 나이가 3살인 어린나이에 일찍 돌아가셨다.
홀로되신 어머니는 부산 해운대에서 두 형제 중 막내아들인 어린 나를 키우며, 동네시장의 장사판에서 간신히 시골 초등(국민)학교 3학년까지 보냈으며, 말썽꾸러기인 나를 제대로 된 교육을 받도록 이미 하나뿐인 형님(배광웅:광운대학원 사회복지학 교수 역임)이 먼저 가 계신 경북 문경 고아원(신망애육원)을 운영하는 외삼촌(황용석 원장)댁으로 외할머니,외할아버지가 모두 계시는 곳에 보내졌다.
이곳은 전쟁고아들을 위해 문경군내에서 설립된 유일한 고아원인데, 그 당시에 원생들이 100여 명이었고, 원사 숙소 2동과 시골교회가 원내에 있어서 기상과 동시에 전체 원생들이 직원들과 새벽기도부터 신앙 교육과 학교 교육을 잘 받도록 생활하는 곳으로, 나를 작은 외삼촌의 고아원생의 교육 생활로 양육 받도록 위탁하셨다.
그 이후 고아원에서 함께 사시는 외할머니께서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어도 학급성적이 항상 꼴찌인 75명 중 74등을 하고 있는 외손자를 온 가족들이 말썽꾸러기에다 학업성적 부진인 나를 두고 원생들과 가족형제들 까지도 무시하고 있었는데, 유독 외할머니는 항상 주위 어른들과 형들 앞에서 당다히 큰 소리로 ‘광석이 저놈은 앞으로 자라서 크게 될 것’이라고 장담하며 은근히 외손자를 심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해주셨다.
다른 형제들이나 가족들도 은근히 염려와 걱정을 하는 고아원 내 분위기인데도,
외할머님만이 항상 ‘우리 손자 광석이는 이제 어른이 되면 큰 인물이 될끼다(‘될 것이다’란 경상도 방언).’ 라고 학교 성적이 미진한 손자인 내가 조금도 기가 죽어 살아가지 말라고 외손자를 위하는 격려와 할머니 스스로 자존심을 세워주며, 막연한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런 무언의 격려와 칭찬을 얻은 나는 초등학교 5학년 2학기에서야
뒤늦게 국어책을 펼쳐 보며, 한글을 터득하고 읽기 떠듬거리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 번은 5학년 반장으로 부터 종래시간에 담임선생에게 커닝했다고 고자질까지 당하였는데,
그 내용인즉 학교 다니면서 최초로 5학년 2학기, ‘세계지리’ 과목 시험 때, 100점 만점을
받기도 했지만, 항상 만년의 성적 꼴지에 학업 부진한 문제아인 나에게 모든 학급 친구들은 그 성적을 인정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아했으며, 나 자신도 그 성적이 의심스러워할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 담임선생님도 당연히 부정행위자로 간주하고 크게 혼내주실 것으로 생각하고, 혼자서 물끄러미 선생님의 표정과 처신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 시간에 환한 밝은 미소뛴 담임선생님은
'배광석! 일아봐!'하시면서 나를 일으키고 세우고선, 전체 학급 학생들에게 담임선생님은
“오늘,우리반의 배광석이가 학교 다니면서, 처음으로 학교 시험에서 100점 만점을 받았으니
모두 축하 박수를 힘차게 쳐주자!” 하고 크게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나는 그 때서나 공부를 어렵고 힘들게 생각하지않고 신나게 잘하면 칭찬을 받는 일이 되는 것으로
믿게 되며 학습에 조금씩 자신감을 갖게되는 계기가 된 듯하다.
또한, 담임선생님이 “너희들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 각자 일어서서 전원 이야기해 봐요!”라고 질문하면 같은 학급 친구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장군, 경찰서장, 의사, 박사, 선생님, 간호사 등 여러 가지로 좋은 직업인이 되겠다고 의기양양하게 발표하면서 자랑스럽게 자신들의 장래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그다음 광석이는 장래희망이 무엇인지를 질문하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큰소리로 “아이스께끼 장사요!”라고 힘주어 말했던 때,
학급 친구들이 폭소로 응대했던 때도 있었다.
그 당시 소시민에게 벅찬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정치외교학과를 입학하여 간신히 1학년을 수료하고,
2학년에는 학비 없이 아현시장에서 시골 점촌 신망애육원의 계란을 자전거로 운반하여 상인들에게 배달, 판매하며 공덕동 산 언덕 위 셋집에서 사촌형님(황영일 사장(CTS 사장 역임)댁에서 기거하며 생활하다가 자원입대로 육군 병장으로 베트남 전쟁터에서 백마부대사령부의 정훈부 전장보도기자(병장)으로 2년간 필수요원으로 참전하고 월남폐망 2년전 귀국하였다.
제대 후, 대학 2년에 복학하여 성적우수장학생으로 대학내 법정대학의 정경연구반원으로 대학구내에서 대학이 제공하는 숙소와 식사를 제공받으며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75년에서나 대학 입학한뒤 군대, 데모로 인한 여러 사연으로 8년 만에 대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게 되었고,
고귀원권사인 외할머니께서 늘 기도로 기대했던 대로 나는 4,000여 동기졸업생 중에서 영예의 동창회장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렸으며 나로선 평생에 성적우수상은 학교 공부를 한 후 최초이며 처음있는 일 무척 기쁘고 신나는 사건이다.
그래서 시골 외할머니께서 무척 기뻐하셨다고 외숙모(안재희)가 자랑스레 뒤늦게 전해 주셔섰다.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KBS 2TV의 인기 프로 김동근 아나운서가 진행을 맡아서 하는 우리나라의 명사들만 1시간여 대담하는 『11시에 만납시다』에서 대우전자의 일개 회사원으로는 처음으로 「여성교육의 남성교육전문가 배광석」이란 타이틀의 프로에 출연하는 계기가 주어졌으며, 이 출연과 더불어 (주)삼성출판사 여성인력개발원 원장으로 발탁되는 계기가 되었고 직장생활 30년 평생의 직장생활을 '여성교육과 정신교육'의 명가사로 전념하는 행운을 가졌으며,
직장 은퇴한 후에도 사회교육과 기독교계 지도자 교육, 장애자협회 지원 그리고 청소년과 노인 인성교육, 지역사회 인문학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어린시절의 철부지에 학습미진아의 소년인 저를 오늘날, 당당한 이 땅의 소시민으로
한가정의 두 딸의 아버지로 살아가도록 성장시켜 주시려고 애써주신 우리 외할머니의 무한한 사랑과 신뢰에 '감사'하려는 그 정신이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반문할 때도 있다.
정신의학자 ‘빅터 플랭클’ 교수가 주창한
의미 지향적인(will to meaning) 삶을 살려고 다짐하며 결코 돈이나 명예나 권력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해서도 인간의 삶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지향하는 의지를 가진 자'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에는 전국 각지에서 감사, 인성, 행복 교육을 위해 유·무료 출강으로 어린 청소년과 성인, 그리고 어르신들에게 우리 사회의 감사, 행복, 인성의 교육자로 당당히 서게 해주고, ‘감사&행복 리더십 센터’ 원장으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려고 한다.
이런 나의 성장의 배경은 시골 국민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던 지혜로운 시골 고아원에 계신 외할머니의 절대 신뢰와 끊임없는 긍정적 격려의 말씀으로
“광석이 너는 앞으로 누구보다도 잘될 사람이다.”라고 각별히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늘 미안함과 안타까운 심정으로
외손자를 위한 절대 지지와 사랑이 언제나 무언의 후원이고 회복력의 근원이라고 믿고 싶다.
매일 새벽기도 시간에는 “우리 외손자 광석이가 잘되도록 하나님께 꼭 기도하셨다.”고 들려주며,
잠재의식 속에서 긍정심을 심어주었고, 정서적 지지와 무한한 성원은 외할머니의 긍정적 말씀이
못나고 무능했던 외손자에게 무한한 신뢰감을 갖게끔 해주었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 나에 대한 외할머니의 절대 신뢰와 적극 지지의 격려와 긍정적 말씀이 초등 학교에서 가졌던 열등감은 사라지고 항상 긍정적 사고로 이겨냈던 저의 어린시절의 경험처럼, 이러한 현상을 최근 현대 심리학에서 강조하는 바로 ‘회복 탄력성(워너 교수)’이라 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이론에 크게 공감하게 된다.
출처: 감사의 과학적 비밀-배광석 원장 저(성원과 격려 말의 위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