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 누가복음 11장 14절 - 52절
설교제목 : 어떤 눈을 가졌는가?
말씀심부름 : 김명주목사
이 글은 2013년 2월 17일 주일낮대하설교를 영상으로 올리지못해서 대신 요약글로 올린 것입니다.
어떤 눈을 가졌는가?
1. 편견의 눈 (눅 11:14-28)
(11:14)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11:15)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1:16)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11:17)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11:18)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1: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11:21)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11:22)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11:23)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예수님이 귀신을 쫒아내는 것을 보고 무리 중에 더러는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그렇게 한다고 말하였다.
이는 바리새인들의 예수님을 흠집내기 위한 말이었다. (마12:24)
바리새인들의 눈은 예수님을 대적하고 공격하고 죽이고싶은 눈이었다.
이러한 눈은 편견의 눈이고 삐딱한 눈이다.
이런 눈을 가지면 대상자가 무엇을 하든지 다 나쁘게만 보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할 때 예수님께서는 사단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적극적으로 반론하셨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의 현상은 다음과 같다.
(1) 귀신을 쫒아낸다. (20)
(2) 귀신을 굴복시키고 전리품을 취한다. (22)
그 전리품이란 사단에 속아 그 올무 하에 있던 하나님의 택함 받은 영혼이다.
오늘도 하나님의 품으로 택함 받은 영혼이 돌아옴이 하나님 나라의 현상이다.
(3) 예수님과 함께 한다. (23)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과 함께 하느냐에 달려있다.
오늘 우리가 참빛교회로 모임도 예수님의 몸으로 모인 것이다.
(4) 예수님과 함께 모운다. (23)
모운다는 말은 헬라어로 쉬나고이고 이는 모우다 소집하다 거두어들이다의 의미이고 해치다는 말은 헬라어로 스코르피조이고 이는 흩뿌리다 분산시키다 의 의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과 함께 모우고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창세 전에 택함 받은 이들을 추수한다.
사단은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백성을 모우는 일을 방해하려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그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11: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11:25)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11:26)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기를 거절하는 자들에게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를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하여 예수님과 함께 귀신을 쫒아내며 거두어들이는 일을 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나중 형편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11: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11: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한 여인의 눈은 예수님을 태어나게한 그 어머니에게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를 부정하셨다.
오히려 하는 말은 헬라어로 메눈게 라는 말인데 이는 "아니 오히려" 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앞에 한 말에 대해서 부정하고 다른 것을 제시하는 형태이다.
복 있다는 것은 그 부모가 누구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지키는 데에 달려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다.
2. 성한 눈 나쁜 눈 (눅11:29-36)
(11: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11: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11: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11: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었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된 것은 그의 전도를 두고 한 말씀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그 시대 사람들에게 전도하셨다.
전도는 하나님의 싸인이 되는 것이고 증거가 된다.
이러한 전도를 받아들이는 자와 안받아들이는 자는 하나님의 재판정에서 전혀 다른 판결을 받게될 것이다.
하나님의 재판정에서 남방여왕이 일어나고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난다.
이는 마치 재판정의 배심원들이 유죄 무죄를 판결하기 위해서 일어서는 것과 유사하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재판정에서 배심원으로 앉을것이냐 아니면 유죄 판결 받을 사람으로 앉을 것이냐
이 두 종류의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될 것이다.
(11: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11: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11: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11: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전도를 받고서 보아야할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한다.
보아야할 것은 바로 예수님이요 진리이다.
그런데 볼 수 있는 눈은 성한 눈이고 어두워 보지못하는 눈은 나쁜 눈이다.
성한 눈이란 순진한 눈 천진난만한 눈 성실한 눈이란 의미이고
나쁜 눈이란 병든 눈 악한 눈이란 의미이다.
3. 화있을진저 소경들이여 (눅11:37-54)
(11: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11: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11: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11: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11: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11: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11: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11: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한 바리새인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그 집 사람에게 독설을 퍼부우신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일부러 식사하실 때에 손을 안씻으셨는지도 모른다.
예수님께서는 속을 보지못하고 겉만 보는 바리새인들의 행태를 지적하셨다.
첫번째는 청결을 강조하지만 그 사람 내면의 청결은 무시하는 행태를 지적하신다.
사람의 속을 더럽게하는 것은 탐욕과 악독인데 이를 깨끗하게 하는 방법은 구제이다.
두번째 형식은 온전히 갖출려고하나 그 내용은 부실한 바리새인들의 십일조를 지적하셨다.
십일조에는 공의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담겨야한다.(마23:23)
십일조는 먼저 악이 개입되지 않은 정당한 수입이어야한다. 이것이 공의다.
십일조는 원래 레위지파와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을 방법이었다.
또한 십일조는 그렇게 드리고도 삶을 책임져주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드리는 것이었다.
세번째 자신들이 높은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밟히는 평토장 무덤같은 신세임을 보지못함을 지적하셨다.
(11:45)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11: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11: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11:48)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11:49)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11: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11: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11: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11:53)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11:5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초대받으신 바리새인의 집에는 다른 바리새인들도 있었고 그 중에는 율법교사도 있었다.
이들은 작정하고 예수님을 초대한 것으로 보이는데 예수님의 반응으로 보아서는 그들이 모인 목적이 결코 선한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들이 의롭다고 여기는 바리새인들에게
과거 모든 의인들의 억울한 피값을 그 세대가 치루게될 것을 말씀하셨다.
과거 선지자들이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심정으로 선포했던 메시지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똑같이 하셨다.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이러하신 예수님의 메시지를 마태는 이렇게 표현하였다.
"화 있을진저 눈먼 인도자여!"
이를 오늘 말씀과 연결해서 바꾸어 표현하면
"화 있을진저 소경들이여!"
예수님께서는 그들만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인하여 함께 지옥에 가게될 수많은 사람들을 보시며 그 지도자의 책임에 대해서 엄중하게 말씀하신다.
나중에 주님의 심판대에 섰을 때에 맨앞장서신 목사님께서 이런 말을 하면 큰 일 난다.
"워매.. 여기가 아닌갑시야..."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볼 수 있는 눈을 주셔서 보아야할 것을 보게하신다.
전도를 통해서 예수님을 발견하게하신다.
예수님을 발견하여 예수님과 함께 하고 예수님과 함께 모우는 일을 하는 그 사람은 복이 있다.
그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심판대에서 배심원의 자리에 앉을 것이다.
오늘 누군가를 지옥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로 예수님께로 이끌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달게 듣고 그 말씀을 지키며 사는 삶을 복으로 여길 것이다.
우리 참빛교회 모든 식구들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인 예수님의 몸된 교회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