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고대 그리스의 해양사를 더듬어 볼 차례이다. 카메리니 감독의 <율리시즈>는 거친 파도 속에서 노를 저어 항해하고 있는 오디세우스의 배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카메리니 감독의 <율리시즈>에 나오는 배를 보면 이물(뱃머리) 쪽에 눈 모양이 그려져 있고, 네모돛 하나가 달려 있다. 또 <율리시즈>에는 오디세우스가 폴리페무스의 동굴로 항해해 가는 장면에 나타난 배를 보면, 고물(배꼬리) 쪽이 물고기 꼬리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콘찰로프스키의 <오딧세이>에도 오디세우스 선단이 트로이로 가기 위해 항해하는 장면, 트로이 전쟁 뒤 이타케를 향해 하다가 포세이돈의 노여움으로 폭풍우 속에서 항해하는 장면, 물 웅덩이 카립디스에서 빠져나와 홀로 오리온을 보며 항해하는 장면 등 여러 곳에서 그리스 배가 등장한다. 콘찰로프스키의 <오딧세이>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배도 역시 이물에는 눈이 그려져 있고, 돛 대 한 개에 네모돛을 달았고, 돛에는 여자의 얼굴과 새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 배는 전체적으로 물고기 모양을 흉내내어, 이물에는 사람의 눈을 그려 넣었고, 고물은 물고기 꼬리 모양으로 만들어 매우 날렵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영화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리스 배들은 이물의 아래에 충각(衝角, ram)을 갖추고 있다. 이물의 충각은 페니키아의 군선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으로 그리스인들이 이를 수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물에 눈을 그려 넣은 것과 고물을 물고기 꼬리 모양으로 만든 것은 그리스 배에만 나타나는 독창적인 양식이다. 이런 점에서 카메리니 감독과 콘찰로프스키 감독은 고대 그리스 배의 특징적인 모습을 잘 재현해 내었다고 할 수 있다.
콘찰로프스키의 <오딧세이>를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이 어떻게 항로를 찾았는지에 대한 약간의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오디세우스가 테이레시아스를 찾아가 이타케로 돌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길 부탁하자 테이레시아스는 "수평선 밑으로 가라앉지 않은 별 자리의 가장 밝은 별을 향해 항해하면 스킬라와 카립디스 섬에 닿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화면에는 오리온이 나타난다. 이는 그리스인들이 별자리를 보며 항해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콘찰로프스키 감독이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콘찰로프스키 감독은 원작을 다소 다르게 이용하였다. 원작 『오디세이아』에는 칼립소가 오디세우스에게 이타케로 가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으로 되어 있다.
"오디세우스는 줄곧 플레이아데스(Pleiades, 비둘기 자리)와 늦게 지는 보오테스(Bootes, 목동 자리), 큰곰자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큰곰은 같은 자리를 돌며, 오리온을 마주보고 있다. 큰곰은 오케아노스(Oceanos)의 목욕에 참가하지 않기(지지 않기) 때문에 칼립소는 바다를 항해할 때 이 별을 왼쪽에 두라고 말했던 것이다."
배를 타 본 사람이라면 항해하는 데 가장 긴요한 것은 침로와 동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늘날 뱃사람들이야 자이로 콤파스나 나침반을 통해 방향을 알 수 있지만, 자이로 콤파스는 말할 것도 없고, 나침반이 항해에 이용된 것은 기록상으로는 중국의 경우 11세기, 그리고 유럽의 경우 12세기에 이르러서였다. 따라서 이 이전까지 난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은 낮에는 해를, 그리고 밤에는 별을 보며 방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서 콘찰로프스키 감독은, 카메리니 감독과는 달리, 고대 그리스인들이 어떻게 항해했는지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다소나마 풀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카메리니 감독의 <율리시즈>와 콘찰로프스키 감독의 <오딧세이>를 통해 고대 그리스의 배와 항해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배를 어떻게 만들었고, 배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으며, 항해를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자료를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선 고대 그리스인들이 배를 어떻게 지었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가 배를 짓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오디세우스는 나무 스무 그루를 베어 청동도끼로 옆가지를 친 다음 먹줄에 따라 똑바르게 했다. 칼립소가 송곳을 가져오자 나무마다 구멍을 뚫어 그것을 함께 이어 붙인 다음 나무못과 꺽쇠로 배를 만들었다.…그리고 나서 촘촘히 설치된 늑재(frame)에 붙여 외판을 세웠고, 마지막으로 늑재 위에 긴 널빤지를 댔다.…그는 칼립소가 갖다 준 천으로 돛을 만들고 활대줄을 달고 나서 배를 바다로 끌어내렸다. 나흘째 되던 날 그는 모든 것을 완성했다."
이를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이 외판을 먼저 만들고 난 뒤 늑재를 붙이고 그 위에 갑판을 까는 '외판 먼저 짜기 방식'(shell first)으로 배를 지었음을 알 수 있다. 나무배를 짓는 방법으로는 오디세우스처럼 외판을 먼저 만들고 늑재를 대는 방식과, 늑재를 먼저 만들고 외판을 대는 '골격 먼저 짜기 방식'(frame first)이 있는데, 배짓는 법은 '외판 먼저 짜기 방식'에서 '골격 먼저 짜기 방식'으로 발전해 갔다. 고대 조선술에서 골격 먼저 짜기 방식이 나타난 것은 대략 기원후 2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영화를 보면 오디세우스가 만든 배는 뗏목으로 나타나 있지만, 『오디세이아』를 보면 오디세우스가 외판과 갑판을 만든 것으로 되어 있어 작은 보트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면 호메로스 시대의 그리스 배들은 얼마나 컸을까?
알키노오스가 오디세우스가 이타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를 내어 주면서 뱃사람 52명도 함께 가도록 했다. 이들 중 최소한 두 명은 고물의 양쪽 뱃전에서 키를 잡았을 것이기 때문에 알키노오스가 내어준 배는 노가 50개인 '펜테콘토로스'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펜테콘토로스는 '쉰명이 탄 배'(fifty-er)란 뜻으로 기원전 550년경 그리스 도시국가의 주력선이었다. 알키노스가 내어준 펜테콘토로스가 1단 갤리선이라면 노잡이 한 명당 대략 90cm의 공간이 필요하고, 앞 갑판과 뒷 갑판, 충각을 합한 길이가 대략 12-15m 가량 되므로, 이물에서 고물까지의 전체 길이는 대략 34-38m 정도였고, 2단 갤리선이었다면 대략 20-24m 정도로 추정된다.
『오디세이아』에는 노가 20개인 배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어 있다. 오디세우스가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는 데 사용한 나무는 폴리페모스가 베어 놓은 몽둥이였는데, 그는 그것이 "노가 스무 개 달린 짐배의 돛대만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밖에 노잡이가 30명인 '트리아콘테레스'도 있었는데, 트리아콘테레스는 길이가 23m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고대 그리스의 배는 가로들보의 길이가 배의 앞 뒤 길이의 1/10 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길이에 비해 너비가 아주 좁았다. 『오디세이아』를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이 배의 외판을 검은빛, 흰빛, 주홍빛 등으로 칠했으나, 검은빛이 가장 널리 애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고대 그리스 인들은 어떤 방법으로 항해를 했을까? 두 영화 속에 나오는 그리스 배들은 주로 노를 저어 항해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물론 네모 돛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 배의 주된 동력원은 노였다. 지중해는 비교적 잔잔한 바다였으므로 항구에서 출항하거나 입항할 때, 그리고 바다를 잔잔할 때에는 기본적으로 노를 저어 항해하였고, 뒷바람이 불 때는 이따금 돛으로만 항해하기도 하였다. 돛으로 항해할 때는 키잡이가 방향을 조정했다. 그리스 배는 말할 것도 없고, 이집트와 페니키아의 배에도 키가 달려 있었다. 카메리니 감독의 <율리시즈> 속에 나오는 배에도 키도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요즈음 우리가 사용하는 '가운데 키'(船尾 中央舵)가 아니라 '뱃전 키'(舷舵, side rudder)라는 것이 다르다. 가운데 키는 훨씬 뒤인 12세기 한자도시의 코그(Cog) 선에 처음으로 장착되었다.
위에서 살펴본 고대 그리스의 배는 기본적으로 호메로스가 생존했던 기원전 8세기 경의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대 그리스의 도자기에 이 시기 그리스의 배의 전형적인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기원전 6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만들어진 이 유명한 도자기에는 세이렌(Seiren) 자매의 곁을 항해하는 오디세우스의 배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오디세우스는 사람을 홀리는 세이렌의 노래를 듣지 못하도록 뱃사람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았으나, 세이렌의 노래를 듣기 위해 자신의 귀는 막지 않았다.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해 돛대에 자신의 몸을 묶고 노래를 들었다. 이 도자기에 새겨진 그림을 보면, 이물에는 눈 모양이 새겨져 있고, 고물은 물고기 꼬리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뱃전키가 달려 있고, 네모돛은 감아올린 채 노로만 항해하고 있다. 이것이 호메로스 시대 그리스의 전형적인 배였다.
기원전 15세기 중엽 미케네가 선문명인 미노아(Minoa) 문명을 몰락시키고 에게 해의 패자가 되었고, 이어 기원전 12세기 경에는 북방에서 이주해 온 도리아족(Dorians)이 그리스 본토로 밀려들어 왔다. 도리아 족의 남하로 미케네 문명은 완전히 파괴되어 기원전 1100-800년 사이에 그리스는 이른바 '암흑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도리아 족을 피하여 남하한 무리들이 아테네와 에게해, 그리고 소아시아 지역에 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를 건설하고,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바로 이 시기 그리스 폴리스들의 활발한 해외 활동을 배경으로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그리스 폴리스들의 해외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그리스의 배들도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펜테콘토로스 단층선이나 2층선은 기원전 500년경에 등장한 3층 갤리선(삼단노선)인 '트리에레스'(trieres)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이 3층 갤리선이 기원전 500년에서 300년에 이르기까지 지중해 수역을 지배하는 주력 전함이 되었다.
<참고자료>
호메로스, 천병희 역, 『오뒤세이아』(단국대 출판부,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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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o Camerini, (Paramount, 1954), <유리시즈>(대영비디오프로덕션,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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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근, 『배의 역사』(서울대 조선공학과 동창회, 1980)
민석홍, 『서양사개론』(삼영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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