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곳 : 2002년 1월 8일 오후 6시, 서울 인사동 찻집 ‘다울’
함께한 사람들 : 서경은(서울 중앙여고 교사), 송승훈(경기 남양주 광동종고 교사), 이성수(경기 구리 인창고 교사)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이름, 이상석. 79년 교편을 잡기 시작해서 80년대 글쓰기회의 회원으로 활동을 하며 그가 펴낸 책들의 이름도 우리에게 낯익다. 처음 그의 이름을 선생님들 사이에 퍼뜨린 학급문집 <여울에서 바다로>를 비롯해서 아이들과 어울려 살아 온 흔적을 고스란히 전해 주었던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 1, 2』가 그것들. 글쓰기를 통해서 아이들이 자기 삶을 반성하고 변화시킬 수 있음을 가르쳐 준 결과물들이다.
전교조 결성 문제로 교직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지 이제 6년째, 이따금 교단일기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오던 그의 근황은 많이 지쳐 있는 모습이었다. 희망과 사랑을 말하던 그의 글에서 짜증과 무기력이라는 단어들이 흘러 나왔으니…. 그의 책에서 교단의 미래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걱정할 무렵, 그가 새로운 책 한 권을 우리에게 보냈다.
『못난 것도 힘이 된다』. 잘난 사람, 잘난 것을 바라는 이 시대, 스스로 못나다고 당당하게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값지다. ‘우등생이 어찌 열등생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랴’는 윤구병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는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아픈 경험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드러냈다. 그 솔직함이 그를 세상의 중심으로 거듭나게 한 힘은 아니었을는지.
1월 8일 저녁 인사동. 날이 몹시 추웠다. 모임을 갖기로 한 찻집에 들어서니 중앙여고 서경은 선생님이 먼저 와 계신다. 오늘 자리는 책따세(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회원으로 활동하시는 서경은 선생님, 송승훈 선생님과 내가 『못난 것도 힘이 된다』의 저자 이상석 선생님을 만나는 자리다.
우리가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쑥, 정말 불쑥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초면인 자리에 오면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들이 맞나 확인하지 않던가? 그런데 이상석 선생님은 발이 먼저 쑤욱 들어오곤 그만이다. 처음 뵙는 이상석 선생님의 모습은 이오덕 선생님이 ‘우리 시대의 큰 일꾼’이라 칭찬해 마지않던 그 모습 그대로다. 천상 없는 막걸리 선전 모델감. 서글서글한 눈매에 굵은 뿔테 안경, 그리고 품 좋은 생활한복까지. 그의 책에서 말한 ‘대견 아제’의 모습 그대로다.
“아제는 마치 소파 방정환 같았다. 모습도 그랬지만 마음도 그랬다. 나는 소파 방정환 선생님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으로 알았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아제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퉁퉁한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서 이야기할 때는 눈이 반쯤 감긴다. 아주 우스운 옛날 이야기, 훌륭한 사람 이야기, 공부보다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 사람끼리 친하게 지내라는 이야기… 나는 그런 아제를 어린 마음에도 무척 존경했다. 다른 어른들은 조심스럽기나 했지 ‘좋다’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아제는 달랐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늘 곁에 있고 싶었다.” 『못난 것도 힘이 된다』 제2권, 100쪽
이상석 선생님은 천상 그 아제의 모습이 되어 자리에 나오셨다. 그러니까 이 기록은 우리가 ‘아제’의 구수한 이야기 한 말씀을 듣고 적은 것쯤이 될 것이다. 이후 이상석 선생님을 ‘아제’라고 부르자.
글 두 편 - 달라진 세상, 달라지는 아이들
참으로 기뻤습니다.
이상석 선생님.
학급문집 <여울에서 바다로> 감사히 받았습니다. 중학생들의 글을 읽으면서 웃다가 다시 마음이 가다듬어집니다. 책머리에서 “우리 교실은 전교에서 제일 시끄럽다…” 했는데 참으로 기뻤습니다. 대양중학교 2학년 8반은 참 좋은 선생님을 모셨구나 싶었습니다. 안쪽에 그려진 연탄 나르는 그림도 참 재미있게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2학년 8반 학생들이 3학년이 되었어도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써 주기를 빕니다. 고맙습니다.
1984. 3. 27 권정생
- 『아이들을 하늘처럼 섬기는 교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엮음
설상가상 처참하다.
재미없다 생각하고 만사 포기하고 그냥 지낼까. 그런다고 월급 안 나올 일도 없고, 아이들이 들고일어날 일도 없지. 시간 안에 내가 해 줄 만큼만 해 주고 그냥 그렇게 지낼까. 선배들도 이렇게 지냈을 거야. 설렁설렁 날이나 때우고… 안 그런 사람? 우리 학교에는 윤권중 선생님 같은 분이 있지. 그런데 그분도 이젠 지쳐 보여. 나는 이렇게 안 살려고 했는데, 평생 평교사로 아이들과 함께 살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교장, 교감 따려고 하는 것이 이것 때문이었나? 나도 선생 노릇 대강 하고, 내 글이나 쓰면서 살까? 흥, 글도 내 삶을 쓰는 것인데, 삶에 충실하지 못하면 글도 안 나오지…. 우짜꼬, 술이나 마셔?
- 이상석의 교단일기, 『함께여는 국어교육』, 1999년 가을호.
앞의 글은 84년 아제에게 보낸 권정생 님의 편지글이고, 뒤의 글은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펴내는 계간지에 실린 아제의 교단일기다. 84년과 99년의 거리. 햇수로 15년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가? 몇 년간 교단 밖에 계시다가 복직을 한 아제, 그 사이 아이들은 쉴 사이 없이 달려가서 아제의 입에서도 ‘처참하다’는 탄식이 나오게 만들었지. 나는 아제에게 직접 요즘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 듣고 싶었는데, 그건 나뿐 아니었나 보다. 서경은 선생님이 먼저 선수를 치시네.
“선생님은 몇 년 정도 공백이 있으셨잖아요. 공백이 있고 나서 다시 돌아왔을 때에 아이들이 참 많이 달라져 있었지요? 그걸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처음에는 풍선 바람 빠지는 느낌이었어요. 헌데 지금은 내가 너무 기대를 하고 그랬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주위에서도 ‘더 이상 못하겠다’며 교직을 떠난 친구들이 있어요.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변한 것을 선생이 힘들어도 따라가야 된다, 이렇게 생각해요. 복직해서 처음에는 ‘교실이 무너졌다’ 이런 말하면 나도 ‘그래, 그래’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아이들은 그대로 있어요. 아직도 우리 교사들에게 가장 진실한 것이 아이들이에요. 그것이 내 믿음일 수도 있지만, 나는 ‘아이들은 내게 진실하다’는 믿음 없이는 교단에 설 수 없다고 믿고, 또 그러면 아이들에게서 진실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지금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내 아들들보다 어려요. 그러니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꼰대야. 나는 형, 오빠 이렇게 지내고 싶은데, 아이들 편에서는 내가 자기들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아요. 그러니 아이들이 예전처럼 허물없이 다가서진 않아요. 그게 나도 섭섭하지만, 인정해야지요. 내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서자, 이런 마음을 갖고 살지.”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송승훈 선생님이 한 마디 거든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 정도까지의 선생님들, 자기 나름대로 교육운동의 격동기를 진지하게 보냈다고 생각하시는 선생님들이 가진 배신감에 대해. 자신의 옆자리 선생님이 어쩔 줄 모르고 터뜨리셨던 그 말씀을.
“지금 40대 전후이신 선생님들 중에 교육운동에 몸 바치신 분들 많이 계시잖아요. 아이들에게 진지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하셨던 분들. 그런데 그분들이 요즘 아이들에게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 같거든요. ‘왜 우리의 진심을 아이들은 몰라주는가, 아이들은 왜 진지하지 않은가’ 이런 것. 그것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세요?”
“그런 감정 가질 수 있죠. 저도 처음에 그랬어요. 언젠가 아이들에게 5월 광주를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맹하니 가만있어요. 그래서 ‘야, 이 녀석들이 이럴 수가 있나’ 이런 생각을 했는데, 곰곰 보니 광주 사건이 이 아이들 태어나기도 전이에요. 제가 52년생인데, 저도 한국전쟁에 대해 들으면 별로 가슴에 와 닿는 것이 크질 않거든요. 감이 오질 않아요. 이게 지금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그걸 인정하지 않고는 아이들에게 배신감만 생길 뿐이죠. 아이들은 내가 모르는 감각과 정서를 가지고 있고, 또 나는 내가 살던 시대의 한계가 있어요. 우리는 아이들이 진지하게 살지 않는 것,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을 못 견뎌 하지만, 지금 아이들이 사는 사회 자체가 그렇게 진지하게 되어 있질 않아요. 그런 사회에서 성장한 아이들에게 우리의 잣대로, 우리 식의 생각을 요구하면 아이들은 멀어질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과 내가 가진 거리,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못난 것도 힘이 된다고?
오늘 자리 사회자인 송승훈 선생님은 평소 독서교육에 관련한 글로 필명을 날리는(?) 사람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많이 읽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책 열심히 찾아 읽는다는 국어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그의 독서교육 방법은 참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니, 그런 그가 아제의 책 한 권 안 읽혔을 리가 없다.
“우리 학교 아이들이 선생님의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 참 좋아해요.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참 못하는 아이들이라 선생님이라는 지위가 사회적으로 굉장히 높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선생님이 사고를 치고 그러는 것이 나오는 게 재미있었나 봐요.”
역시 송승훈 선생님과 같이 책따세 회원으로 활동하시는 서경은 선생님도 아제의 글을 좋아했었나 보다. 자신의 교단 경험을 털어놓으시며, 『못난 것도 힘이 된다』에 대한 자신의 첫 기억을 말씀해 주신다.
“제가 교직에 있으면서, 처음에는 대학교 도서관 사서를 같이 하느라고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한 5, 6년 전부터는 중고등학교 도서관만 맡게 되었어요. 재단에서는 제가 대학 도서관을 맡기를 바랬는데, 제가 ‘대학교 도서관에 있으면 난 거기 직원이지만, 학교에 있으면 선생님 소리 듣는다’ 이러고 중고등학교 아이들을 챙기기 시작했어요. 선생님 책도 그러면서 처음 만나게 되었구요. 이번에 새로 나온 좬못난 것도 힘이 된다좭 광고를 보고서는 이 책 재미있겠다 싶어서 사서 아이들과 같이 보아야지, 그랬거든요.”
자연스레 책 이야기로 화제가 이어진다. 아제가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나. 누구에게 읽히려고, 또 어떤 속생각이기에 ‘못난 것이 힘이 된다’고 들고 나섰나? 잘난 사람도 살기 힘든 세상에 말이다. 아제가 아니면 생각하기 힘들었을, ‘못난 것들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자.
“처음 이 책을 쓸 때에는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글쓰기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보니까, 우리가 자라 온 시대를 배경으로 한 성장소설들이 전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내 자라 온 이야기를 읽혀 보자’ 이렇게 시작했지요. 그런데 쓰다 보니까, 학부모들에게 읽혀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부모들이 읽고는, ‘아이들 닦달하고 이래 하는 거 안 해도 된다, 아이들이 그러는 거 다 까닭이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죠. 내가 살면서 공부 안 하고, 사고 치고, 술 먹고 이러는 것들을 그대로 읽고 나서, ‘그래 괜찮다. 이런 개망나니도 이래 사네’ 하고서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으로 썼어요. 또 이 책을 읽다 보면, 군대 이야기가 나와요. 원래 출판사에서는 그 부분을 빼라고 했어요. 첫 부분에 해병대 욕을 조금 썼고, 또 이야기의 흐름이 군대 부분에서 깨진다면서. 그런데, 삽화를 그린 박재동이 하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군대 이야기를 제대로 해 주는 사람이 없다. 아들한테 자기가 군대 가서 병신 짓 하는 거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그걸 넣어야 된다’ 악착같이 그래서 결국 다시 넣었어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못난 짓 하는 것, 그것이 힘이 되는 거죠.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람도 이랬구나, 지금 내가 겪는 거는 대단한 게 아니구나’ 이러면서 힘을 얻기를 바래요. 그게 선생님이건, 학생이건, 학부모이건 누구나 좋겠지만, 특히 학부모들에게 많은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못난 사람의 이야기가.”
못난 선생이 필요하다
아제가 대학교 다닐 적에 학비를 벌기 위해 ‘돼지치기’를 했단다. ‘돼지치기’는 그 당시 아이들 과외를 부르던 말이다. 과외를 하면서 아제는 자기가 가장 못하던 수학을 아주 ‘잘’ 가르쳤다고 한다. 서경은 선생님의 고등학교 경험담이 이어진다. 수학을 못해서 1학년 때에는 아주 곤욕을 치렀는데, 2, 3학년 올라가서는 친구들이 서경은 선생님의 풀이가 가장 머리에 잘 들어온다고 해서 늘 친구들에게 문제를 풀어 주었다고.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져 주는 건 ‘공부도 못해 봐야 공부 못하는 아이들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이겠다. 그러니 공부 잘해서 선생님 되신 분들, 아이들이 자기 설명 이해 못 한다고 아이들 야속해할 것은 없겠다. 사실 공부뿐만 아니다. 흔히 모범생으로 성장한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말 안 듣고, 사고 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럼, 흔히 하는 말로 밑바닥까지 경험했던 아제는 어떻게 생각할까? 아제가 모범생 교사에게 하는 말.
“신임 교사를 처음 보고 놀란 것이, 요즘 선생님들은 엄청나게 공부해서 되는구나 하는 거예요. 우리 학교 신임 교사들 공부했던 걸 보면 파일이 몇 권이 넘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이렇게 준비를 많이 하고 오는구나 하면서 기뻐했는데, 가만 옆에서 아이 다루는 걸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선생님들은 ‘아이들은 반듯하게 이래야 한다’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하는데, 아이들이 안 따라 주지요. 그러면 선생님 스스로가 견디질 못해요. 거기다가 교장, 교감 선생님이 아이들이 어떻다고 뭐라고 하면 더더욱 아이들을 닦달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를 했어요. 선생을 하려면 용기가 있어야 된다. 모르면 모른다 하는 용기도 중요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망가지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걸 하자,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그게 삶 속에 녹아 있지 않으면 또 안 되더라고요. 난 요즘 선생님들에게 바라는 것이, 미리 아이들의 세계를 많이 경험하고 오면 좋겠다는 겁니다. 제가 부산에서 ‘학교랑 살기’라고 소모임을 하는데, 거기에 경력 3년의 한문 여선생님이 나오세요. 이분이 참 맑고 깨끗하게 살던 사람인데, 상고에 배정을 받은 뒤로는 배겨나질 못해요. 아이들을 다루지 못하는 거죠. 내가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아이들에게 잘 해 보려고 이것저것 해 보다 아이들이 관심을 안 가지니까 감정 싸움을 해요. 혼자 그렇게 화를 내고 답답해하고 상처 받는 걸 보면서 제가 그랬어요. ‘힘들면 힘든 대로 울어라. 대신 사랑은 놓지 마라. 사랑이 있으면 지금 안 되는 것은 괜찮다. 공부 말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것들, 다른 것들을 준비해서 계속 해 봐라. 못나게 굴어 봐라. 망가져 봐라. 걱정하지 말고 그래 봐라. 바탕에 흐르는 사랑이 있으면 방법 몰라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경험하면서 알게 된다.’ 이랬지요.”
일과 자연, 교사가 가르쳐야 할 것들
그러면 아제가 생각하는 교육의 내용이란 무엇일까? 아제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장 신경 써서 가르치고자 애를 쓰고 있을까? 그 이야기를 들어 보자.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것은 분명히 있습니다. 모든 것이 시장 논리 속에 던져지고, 돈이 가치의 기준이 되는 이 시대에 교사들이 무얼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지만, 나는 딱 두 가지만 가르치면 이 시대도 이겨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봐요. 그건 자연을 일깨우는 것과 일하는 것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 이겁니다. 이 두 가지는 아이들 마음속에 반드시 집어 넣어야 된다고 봐요. 저는 아이들에게 자연을 보러 가자고 끊임없이 졸라요. 아이들은 물론 처음에는 안 좋아하죠. 심지어는 산에 가서 정상까지 올라가자니까, ‘야 파묻어라, 우리 선생 안 되겠네, 묻어라’ 이러는 겁니다. 그럼 내가 ‘좋다, 해산이다. 나하고 같이 갈 사람만 남아라’ 이렇게 하고는 남은 몇몇을 끌고 산에 가서 온갖 대접을 해서 보내거든요. 그러면 다음 날 학교에 소문이 짠하게 돌아요. 고생 끝에 낙이 있었다고. 그러면서 산에 데리고 가는데, 처음에는 자연을 보는 게 아니고, 선생님한테 대접받는 게 좋아서 나서는 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을 느끼게 되더라구요.”
송승훈 선생님 근무지가 서울 사람들 제일 가고 싶어 하는 광릉수목원 옆 광동고등학교이다. 자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다. 도시 아이들이야 못 보고 지냈으니, 깨우치는 방법이 필요하다 하겠는데, 그렇다면 늘 자연 속에서 살아서 오히려 자연에 정이 떨어진 아이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자연의 소중함을 말해 줘야 할까?
“제가 수목원 가자 하면 그렇게 싫어해요. 어릴 적부터 거기만 갔으니까. 대신 롯데월드 같은 데를 그렇게 가고 싶어 해요. 제가 ‘이 촌놈들아, 롯데월드는 촌놈들만 가는 곳이야’ 이래도 거기 가고 싶다 그래요. 그런데 저는 등산반을 하면서 아이들을 막 끌고 올라가거든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극렬 저항을 하지요. 제가 대꾸도 않고 그냥 가면, 아이들이 결국 끌려와요. 또 담배를 피우다 걸려도 산에 일주일씩 저랑 같이 가자고 그러거든요. 읽을 책 한 권하고. 나중에 졸업하고 와서 아이들이 아주 좋았다고 그래요. 애들이 돌아보면 학교 생활에서 남는 것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산에 올라가면서 저희들끼리 이야기하고 그러잖아요. 과정에서는 욕해도 올라가서 욕하는 애는 없어요. 지나고 보면 그게 다 남는 거예요.”
송승훈 선생님은 나보다 한 살이 위다. 그런데 생각은 한 열 살쯤 내 윗길이다. 아이들이 담배 피는 걸 보면 일단 잡아 패고 보는 나랑은 아이들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르다. 좋은 선생 되려면 아직 멀었구나 이러고 있는데, 이야기는 ‘일’에 대한 관심으로 넘어간다. 사실 우리 선생님들은 자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해도 일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나만 해도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일의 소중함을 무시하기 일쑤다. 요즘 아이들은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의 기쁨을 모르고 살지 않나. 이런 기쁨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몸 놀려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야 해요.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한다 해도 어느 누군가가 땅에 엎드려 농사짓지 않고서는 삶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아이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해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이 사실을 경험하게 할 곳이 없어요. 겨우 찾을 수 있는 것이 청소죠. 사실 청소는 엄밀히 말하면 일이라고 하기엔 곤란하지요. 일이란 항상 생산과 연관이 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청소에서도 우리가 배우고 가르칠 것이 있어요. 청소 기계 잠깐 돌려서 깨끗하게 하는 것과 직접 손에 더러운 것 묻히며 걸레질을 해서 교실을 깨끗하게 하는 것, 그 차이는 엄청나거든요. 내가 흘린 땀만큼 환경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경험, 나는 그걸 아이들에게 전해 주고 싶어요. 저는 출장이 있을 때 이외에는 교실 청소에 빠진 적이 없어요. 아이들과 같이 마음껏 청소하면서 일의 기쁨을 가르치고 싶기 때문이에요. 졸업한 뒤에 험한 일 하는 아이들이 참 많이 찾아와요. 저한테는 당당하게 말하는 거죠. ‘선생님 나 노가다 합니다. 선생님한테는 자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왔습니다. 우리 반 급훈이 일하는 삶 아니었습니까’ 이렇게. 일을 하는 것이 당당하다, 이걸 심어 주는 것도 굉장히 귀한 것이고 또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아이들에게는 일하며 사는 사람들의 삶을 글로 쓴 걸 읽어 주죠. 당당하게 일하는 삶을 자꾸 보여 주자. 그리고 그걸 글로 써 보게 하자. 글을 쓰는 것은 경험을 자기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자기 삶을 드러내면서 자기 확인을 한 사람은 변화할 수 있다. 지금 아무리 세상이 그렇다 해도, 아주 한 구석에서라도 그런 변화를 일궈 내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해요.”
그리고 남은 것은 무엇인가?
계속 질문을 받기만 하다 보니 아제께서 궁금하셨나 보다. 우리는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자기가 이야기한 것, 일과 자연 이외에 또 무엇을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하는지 대답하라신다.
“제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아까 자연을 알게 하고, 자연 속에서 배우게 하고 일을 귀하게 생각하고 이런 것이 우리가 이 시대에 가르쳐야 할 귀중한 덕목이라고 얘기했지만, 그거 말고, 우리가 진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덕목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이런 걸 묻고 싶어요. 사회자는 아니지만.”
송승훈 선생님이 있는 광동고등학교는 종합고등학교에서 올해 인문계 학교로 바뀌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종합고등학교 아이들은 공부 못한다는 이유로 많은 상처를 안고 고등학교에 진학해 온다. 오늘 아제의 이야기를 옆에서 같이 듣고 있었더라면 그 아이들의 얼굴에 얼마나 많은 웃음꽃이 피어났을까?
“저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부드럽게 푸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은 좀 어렵게 사는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무척 공격적이고 늘 남을 헐뜯고 상처를 받고 그래요. 무슨 말이든 하려면 인상부터 쓰는 식이지요. 시장판에서 보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막 기를 쓰고 싸우고 욕하고 그러잖아요. 그게 어떻게 보면 생명력이지만, 같이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게 살기 위한 투쟁이거든요. 무척 힘든 거예요. 그런 속에서도 서로가 잘 조절하면서 부드럽게 갈등을 풀면서 지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 반 구호로 ‘인상쓰지 말자’를 늘 주장해요. 인상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삶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거든요.”
아제는 송승훈 선생님의 의견에 고개를 무척 크게 끄덕이신다. 지난 9월 일어난 테러 사건에 어떻게 접근할지 곤혹스러우셨단다. 거기다가 덧붙여 통일의 문제까지도. 전쟁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가. 그 문제는 결국은 삶 속에서 갈등을 풀어 가는 능력을 기르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귀한 가치일 수 있겠다.
서경은 선생님은 무엇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고 있으셨을까? 선생님이 계시는 중앙여고는 공동학군이다. 공동학군이란 말은, 학교 내외의 극비라는 선생님의 너스레를 앞세우면, 실은 전국 최하위권 학생들도 진학한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여러 사건이 일어나는가 보다.
“제가 있는 학교가 여학교라 그런지, 아이들이 윤락가에 빠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걸 보면서 ‘자기 몸을 소중히 하기’라고 할까요? 그런 걸 강조하지요. ‘남성 중심으로 사회가 돌아가니까 남자들은 어떻게든 나락에 떨어져도 나올 구멍이 있지만 너희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스스로 제 몸을 사랑하고 소중히 생각해라.’ 이런 식으로요. 여성 남성을 가른다는 게 의미가 없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특히 여자가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제도 여고에 계셨던 적이 있다. 서경은 선생님의 말씀이 결국은 ‘자기 지키기’라는 수동적인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안타까우셨나 보다. ‘자기 지키기’가 수동적인 데에서 끝나지 않고, 남자 여자를 가릴 것 없이, ‘자기 존엄’을 위해 싸우는 능동적인 데까지 이르는 길에 대해서 한 마디 덧붙이신다.
“제가 여고에 있을 때 아이들에게 자기 존엄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어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는 사실 인간의 존엄을 끊임없이 파괴하는 사회예요. 이건 여자나 남자나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궁극적으로 나는 자기 존엄성을 위해서 싸워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결국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까지 나와요. 윤구병 선생님이 시골로 들어간 이유 중 하나는 ‘자본의 늪에서 한번 떠나 보겠다. 자급자족을 해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었다고 보는데, 나는 그게 이 사회에서 가장 급진적인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지금 앉아 있는 이것도 자본을 적당히 즐기는 것이거든요. 이걸 딱 끊어 내는 것, 우리 삶 속에 너무 깊이 뿌리박고 있어서 이걸 딱 끊는다는 게 어려운 일이겠지만, 궁극적으로 거기까지 가 닿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결국 자기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싸움, 그게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싸움이 아닌가 하고, 또 교사는 그걸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리는 이렇게 끝이 났다. 약 한 시간 반에 걸친 자유롭고도 진지한 이야기는 자본주의 시대에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의 최전선은 어디인가, 모든 걸 돈으로 가치를 매기는 세상에 일과 자연과 그 밖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을 기르는 일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하는 질문을 남긴 채 끝이 났다. 아제의 모습은 이제 ‘여울에서 바다로’ 뛰어든 사람처럼 보였다. 재작년 잡지에 연재하던 그의 교단일기에는 새로운 학생들을 맞이한 고단함과 피곤함이 담겨져 있었지만, 지금 만난 그의 모습에서는 그걸 이겨 내고 더욱 아이들에게 진실하게 다가서는 ‘못난 놈’의 뚝심이 느껴졌다. 서울 시내가 전에 없는 강추위에 휩싸였던 그날, 자리는 푸근하고 따뜻했다. 학생에 대한 고민과 대화가 있는 자리라면 이 나라 어디라도 이렇게 달구어지고 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