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를 입으면서
文 熙 鳳
육십을 한참 넘긴 사람이 생전 처음으로 청바지를 입게 됐다. 아내와 아이들의 성화를 이겨내지 못한 때문이다. 도저히 못 입을 것 같아서 지금까지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이다. 거리에 나가 보면 육십이 아니라 칠십을 넘긴 사람도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걸 본다. 그러나 나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슨 청바지냐고 여러 번 얘기해 봤지만 입어보면 편하기도 할뿐더러 활동성이 아주 좋다면서 여럿이서 나를 설득하는데 그만 내가 진 것이다. 청바지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이 보장되는 옷이라는 걸 나도 안다. 그렇더라도 보수성이 누구보다도 강한 내가 쉬 고정관념을 부수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어느 날 며느리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 허리사이즈를 묻는다. 난 직감했다. 이젠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더 이상 미루다가는 고집불통이란 불명예만 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허락했다. 며느리와 아들이 맘 먹고 사주는 것이니 잘 입겠다고 했다.
요즘 남자들의 차림이 화려해졌다. 나이 든 사람은 더욱 그러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다. 꾀죄죄한 모습은 누구든 싫어한다. 그런 모습을 한 사람들을 보면 아이들은 조건 없이 싫어한다. 한 십년 낮게 보이기 위해서 젊은이들의 취향에 근접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란 생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처음엔 좀 낯설었지만 상상외로 빨리 적응했다. 청바지에 푸른색 계통의 티는 어울리는 한쌍이다. 그리고 신발은 운동화다. 푸른색 계통의 운동화라면 더욱 좋다. 내 모습을 보고 만나는 사람마다 십년은 더 젊게 보인다고 한다. 듣기 싫지 않다. 이런 덕담을 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변화 때문일까. 그러지 않아도 이 더운 여름날 두어 가지 색깔의 양복에 넥타이를 바짝 치켜 맨 사람들이 모여 앉은 모습을 보면 약간은 숨이 막힌다. 물론 예의를 갖추기 위한 차림이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때로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나 편한 차림으로 멋을 내보면 어떨까, 예의에 거슬릴까.’ 하는 생각도 해보긴 했다. 때로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업무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캐주얼 차림이 얼마나 편한지. 나이까지 또 얼마나 낮춰주는지. 요즘 공무원들에게도 야간 근무 때는 반바지와 남방셔츠 차림이 허용됐다 하지 않는가. 정말 입기를 잘 했다. 백 번 잘 했다.
청바지는 여성들의 가장 기본적인 패션 아이템이기도 하다. 얼굴이 예쁘다거나 몸이 가냘프다고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우선 키가 커야 하고, 날씬하고 긴 다리, 그리고 잘록한 허리와 탄력적인 힙이 있어야 잘 어울린다.
거기에다 청바지는 뒤태가 살아나야 한다. 아름다운 힙은 청바지의 가장 섹시한 포인트이자 청바지 스타일을 좌우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는 신체부위다. S라인의 몸매, 단단하고 탄력적인 허벅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춘 여성들의 청바지 차림은 내 시선을 한 동안 머물게 한다. 남자 또한 그러지 말란 법이 없다. 큰 키에 긴 다리, 중량감 있는 허리와 탄력적인 힙이 갖춰졌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인기 연예인들의 청바지 차림을 보면 밑단을 접어올리고 밋밋한 코디를 한층 깔끔하게 만들면서 전체적인 모습에 활기를 불어 넣어 편안하고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는 생각이다.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나는 동시에 남성적인 멋이 묻어 나오는 패션이라는 청바지 차림은 네 계절 내내 사랑 받는 아이템이 아닌가 생각한다.
남녀 모두에게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선물하는 청바지 차림의 대열에 나도 늦게나마 동참하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왕 입게 된 것, 열심히 입으면서 젊은 시절에 못다 누린 낭만까지도 덤으로 얻어보려 한다.(20120721)
첫댓글 섹시한 모습이였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