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학사지(金鶴寺址)
문경읍 마원리(聞慶邑 馬院里) 봉명산(鳳鳴山)에 있었으나 지금은 유지만 남았고, 석탑은 문경서중학교 교정으로 이전해 관리해 오다 현재는 문경새재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세워놓았다.
봉서사유지(鳳棲寺遺址)
호계면 봉서리에 있다. 주변 일대에는 와편이 산재하며 석불과 마애불석탑이 도괴되어 파손이 심한 채 남아있던 것을 석탑은 복원을 해 놓았다. 석탑의 사리탑이 도굴되었으나 한일 국교 정상후 문화재 반환품목의 제1호에 등재되어 있었다. 지금은 국립박물관에 보존해 있다.
동민들은 월방산 산정 가까이에 위치하는 이 마을까지 일치단결된 힘으로 시멘트 포장을 했으며 석탑 복원에 힘을 쏟고 있다. 석조여래좌상 2기가 있어 이 마을 사람들의 신앙을 모으고 있었으나 올겨울 어느날 밤(1987)에 도난을 당하고 말았다고 아쉬워 하고 있다.
오정사유지(烏井寺遺址)
호계면 호계리(虎溪面 虎溪里) 오정산(烏井山) 중턱에 위치한다. 창건의 내력은 알 길이 없으며 유지에는 많은 수량의 맑은 계곡의 물이 오정사의 식수(食水)였으며 가지런히 정리된 기왓장들이며 거대한 맷돌 바탕과 전각의 주춧돌이 옛을 말없이 전하고 있다. 석종형부도는 동강이 난 채 밭가에 묻혀 있다. 폐사가 된지는 100년은 되었다고 한다. 필자의 조모는 오정사 주지스님을 기억하고 있어 함창 장날에는 장짐을 지고 가다가 친정집(흥덕)에서 쉬어 갔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대국스님이라고 했다.
김룡사 대웅전 용마루에는 청기와 3장이 나란히 덮혀 있어 필자는 노스님께 물었더니 오정사에서 가져온 것이라 답해 주었으나 지금은 그 자취가 묘연하다.
선암사유지(仙岩寺遺址)
호계면 선암리(虎溪面 仙岩里) 주월산(舟越山) 불당골에 있었다. 지금도 기왓장이 산재하며 은행나무가 최근까지 서 있었으나 밭 주인이 베어 버리고 말았다.
봉정사지(鳳亭寺址)
산양면 봉정리(山陽面 鳳亭里) 탑골에 소재한다. 도괴된 석탑이 반쯤 매몰돼 있다가 복원되었다.
봉서리마애불상(鳳棲里磨崖佛像)
호계면 봉서리 산 100번지에 소재한다. 봉서리에서 봉정리로 가는 노변 벼랑끝 바위에 조각된 2구의 불상이 있다. 주변에 와편이 산재해 있는 것으로 보아 암자나 전각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좌상은 높이 3m, 폭 3m의 바위에 높이 153m, 폭 116m의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을 조성했으며, 또 다른 바위에는 높이 187㎝, 폭 54.5㎝의 보살입상이 조각되어 있다.
원래는 삼존불상인 것이 분명하나 또 하나의 협시보살상은 보이지 않는다. 여래상은 결까부좌하고 왼손에 약호를 들었으며 통견이고 두광과 신광이 구비되어 있다. 보살상은 왼손은 가슴에 얹고 오른손은 내렸으며 의문(衣紋)과 보관(寶冠)은 화려하다. 조성연대는 조각술로 보아 통일신라기로 보인다.
반암리마애불좌상(盤岩里磨崖佛坐像)
반암리와 봉서리 사이의 거대한 암석에 조각된 여래상(如來像)이다. 불상의 높이는 340㎝, 폭은 210㎝이고 하부처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약간 균형을 잃었다. 조각술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이곳에도 와편이 산재하는 것으로 사지였음이 분명하나 전설에 의하면 반암사(盤岩寺)가 있었다고 한다.
봉서사지여래좌상(鳳棲寺址如來坐像)
호계면 봉서리에 있다. 3층석탑에서 20m 지점에 석담으로 둘러싸인 곳에 부락민의 예배 대상으로 안치된 2구의 불상이 있다. 주위에는 와편이 산재되는 것으로 보아 봉서사지임이 분명하다. 두부가 절단된 것을 시멘트로 보수했고 다른 한구의 불상 역시 두부가 잘린 것을 두상에 가까운 다른 돌을 올려 놓았다. 2구 모두 심히 훼손이 심하여 알아보기 힘들다. 팔도 잘리어 수인도 보이지 않아 존명(尊名)도 알 수 없으나 석가여래상인 것으로 추측된다.
불상의 높이는 135㎝, 86㎝이고 폭은 104㎝와 50㎝로 2구가 모두 결가부좌상이다. 의문(衣紋)은 선각되었으나 분명치 않다. 1988년 이른 봄 2구의 불상이 모두 도난 당하고 말았다고 봉서2리 이장은 울상이었다.
생달리여래좌상(生達里如來坐像)
동로면 생달리에 있다. 속칭 약사재 산록 밭 가운데 두상(頭像)이 잘린 높이 70㎝의 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하대석과 상대석에 연화문이 정교하나 풍마우세(風磨雨洗)로 마멸이 심하다. 하대석은 방형(方形)을 이루고 복연(覆蓮)이 조각되었으며 그 위에 팔각형의 중대석 고임이 있으나 중대석은 없어졌고, 그 위에 결가부좌한 여래상이 안치되어 있다. 불상은 마멸이 심하여 의문(衣紋)은 명확치 않으며 배면에는 광배(光背)를 부착했던 구멍이
금학사지삼층석탑(金鶴寺址三層石塔)
석재는 화강암으로서 원래는 봉명산 금학사지에 있던 것을 옮겨와서 문경서중학교 관산지관 뜰에 안치해 놓은 것을 지금은 다시 문경새재박물관 뜰로 옮겨 놓았다. 높이는 1.8m로서 상대중석과 1층옥신은 완전하나 나머지 탑재는 훼손이 심하고, 2,3층 옥신과 상륜부가 없다. 1석 옥석 받침이 4단이라 다른 탑재로 보완해 놓은 것 같다. 하대갑석은 폭 96㎝, 높이 10㎝이고 상대중석은 폭 60㎝, 높이 33㎝로 하대중석에 우주와 탱주가 있으며 1층 탑신은 폭 28㎝, 높이 30㎝이다.
봉서사지삼층석탑(鳳棲寺址三層石塔)
호계면 봉서2리 밭가에 도굴단에 의해 도괴된 채 방치되어 있던 것을 복원해 놓았다. 이 탑은 바위 위에 세워져 있으며 도굴된 사리합이 한.일 양국간의 문화재 반환 협정에 따라 반환되어 현재 국립박물관에 보관중이다.
봉정사지삼층석탑(鳳亭寺址三層石塔)
산양면 봉정리 월방산(月方山) 기슭 밭가에 도괴된 채 방치되었으며 지금은 거의 지하에 매몰되었다.
천주사지삼층석탑(天柱寺址三層石塔)
원래는 신라 진평왕 때에 창건된 천주사(天柱寺)에 있었으나 폐사가 되고 동로초등학교로 옮겨지긴 일제때의 일인 교장의 교정미화책에 따라 이전하여 관리되어 오던 것을 최근 천주사가 있는 동로면 간송리 마을에 임시로 두었다가 지금은 천주사로 옮겨 복원해 놓았다.
성불암오층석탑(成佛庵五層石塔)
문경읍 상리에 있으며 원래는 의성 고운사(孤雲寺)의 산내 암자터에 있던 것을 1986년에 현 위치로 옮겨 왔다고 한다. 조성연대는 통일신라기로 보이는 석탑이다. 높이는 280㎝ 정도의 화강암 석재로 조성되었으며 아무런 장식은 없으나 매우 균형이 잡혀 있다. 그 앞에는 망부석 처럼 보이는 신장(神將)상이 2구 섰다.
개운사사층석탑(開雲寺四層石塔)
문경읍 상리에 있으며 높이는 220㎝의 화강암 석재의 석탑이다. 원래는 5층탑으로 추측되나 어느 신도가 이곳으로 옮겨 놓았기 때문에 상세한 유래는 알 수가 없다. 지대석은 없고 중대석은 폭 65㎝, 높이 32㎝이며, 상대석은 한 돌로 되었으며 1층 옥신은 폭 47㎝, 높이 40㎝이고 옥개석은 3단으로 고려후기의 조성으로 추측되며 탑재가 부분적으로 훼손되고 1층, 2층의 옥신만 완전하며 3층 옥신은 없다. 중대석에는 우주와 탱석이 조각되었고 탑신에는 우주만 조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