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감탄하려고 산다. 아닌가?
인간이 모든 행위 뒤에는 감탄의 욕구가 숨겨져 있다.
음악을 도대체 왜 작곡할까?
그림은 또 왜 그릴까? 먹고사는 것과 아무 상관없는
이런 종류의 다양한 인간의 행위를 도채체 왜 하게 된 것일까?
간단하다.
감탄하기 위해서다.
왜 여행을 가는가? 에펠탑을 보러 가는가?
아니다.
에펠탑을 보는 순간 모두 “와~~ ! 하며 그 꼭대기를 올려다 본다.
에펠탑을 보러가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에펠탑을 보고 “감탄하러” 가는 것이다.
여름이면 다들 바닷가로 휴가를 떠난다.
왜 바닷가로 가는가?
바다 보러가는가?
아니다... 바다가 보이는 순간 모두들 한결같이 반응한다... “우아~~!”
바다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바다 보고 “감탄하러”가는 것이다.
산에 모두들 열심히 올라간다. 도대체 왜 산꼭대기에 오르는가?
누군가는 폼 잡고 이렇게 이야기 했다.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산에 오른다고..... 또 라 이 다...
왜 그렇게 산에 오르는지 자기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폼 잡고 이야기 하는거다.
산꼭대기까지 죽어라 오르는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건강하려고 산을 오른다면 중간까지 왔다 갔다 하면 되지,
왜 그렇게 죽어라 하고 정상에 까지 올라가는가?
산에 오르는 이유는 산이 거기 있기 때문도 아니고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다.
감탄하기 위해서다.
산꼭대기에 올라 막혔던 숨을 토해내며.. “우아!~~”하며 감탄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때 엄마가 날 보고 끝없이 반복해서 해준 그 감탄이 그리워서다.
나이가 들수록 아무도 나를 보고 감탄해 주지 않는다. 감탄한 일도 없다.
그래서 한국 남자들이 죽어라 골프장에 가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한국 남자들만큼 골프에 미친 사람들이 없다.
전날 손바닥 물집이 잡히도록 연습하고 새벽 네 시면 벌떡벌떡 일어난다.
도대체 왜 그럴까?
왜 우리는 그토록 골프를 좋아하는 것일까?
앞서 설명한 스토리 텔링의 힘도 있지만 또 한가지,
골프장에 가면 “감탄”이 있기 때문이다.
드라이버 한번 치고 나면 모두들 외친다.
“나이샷!”, “우아~!” 바로 그 맛이다.
그 감탄의 맛을 보고 싶어 몇 야드 더 나가는 드라이버가 나왔다 하면 바로 바꾼다.
“나이샷~~!” 하는 그 소리를 듣고 싶어서..
다른 곳에서는 아무도 나보고 감탄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골프장에서는 감탄이 된다.
그것도 네 시간 다섯 시간 동안 계속된다.
그래서 골프에 그토록 미치는 것이다.
허나 그 다양한 삶과 문화의 영역을 제쳐두고 오직 산비탈 한구석에 모여서
자기들끼리만 감탄을 주고 받는 것처럼 소외된 삶은 없다.
그래서 시간 나는 대로 음악회도 열심히 가야하고
미술관도 아내와 팔짱끼고 가야 하고,
축구장과 야구장에 아이들 손잡고 가야 하는 것이다.
여자들이 오래 사는 이유중 하나도 바로 이 “감탄” 때문이다.
찜질방에 가보면 안다.
옆자리의 아줌마들의 수다가 하도 시끄러워 들고 있는 책에 도무지 집중할수 없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면, 이야기 내용은 별게 없다.
그저 “맞아, 맞아. 그래, 그래”만 반복할 뿐이다. 서로 돌아가며 그 소리만 2박 3일 한다.
이 집중적 감탄의 효과는 바로 수명연장으로 나타난다.
이땅의 사내들은 나이가 들수록 이 감탄의 욕구를 채우지 못해 어쩔 줄 모른다.
아무도 자신을 보고 감탄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에 가면 감탄은커녕 책임만 늘어난다.
집에 오면 아내는 돈 이야기밖에 안한다.
아이들은 클수록 내 곁에 오지 않는다.
아직 아이들이 어릴때는 놀러 가자면 흥분해서 따라 나서고,
내가 조금 늦기만 해도 전화를 해 “아빠, 지금 어디야?” 했다.
그런 그 애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함께 놀러 가기는커녕,
얼굴보기도 힘들다. 어쩌다 말을 걸어도 대답이 우물 쭈물, 영 신통치 않다.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 지는 느낌이다.
어디서도 이 감탄의 욕구는 채어지질 않는다.
충족되지 않는 감탄의 욕구는 욕구좌절이 된다.
욕구좌절은 심리학적으로 뒤집어져 분노가 된다.
적개심이 되고 공격성이 된다. 모두들 “어디한번 건들기만 해봐라” 하는 표정으로
거리를 헤맨다.
아 그러나 이 아저씨들에게 감탄을 연발해 주는 곳이 단 하나 있다.
룸싸롱이다. 화려한 화장을 한 젊은 아가씨들은 밤마다 끝없이 외친다.
“어머, 오빠!” “오빠는 왜 이리 멋있어?”
이 싸구려 감탄에 환장한 사내들은 넥타이를 푸어헤친다. 지갑까지 풀어 헤친다,
정말 슬픈 이야기 아닌가?
내 삶이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정치가 개판이라서가 아니다.
이 감탄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문화적, 예술적, 종교적 체험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게는 감탄이 존재하지 않는다.
서양 사람들은 “원더플”이라는 단어가 아예 입에 붙어 있다.
가만히 살펴보라. 별일이 아니어도 “원더플”을 끝없이 반복한다....
내가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의 기준은 아주 간단하다.
하루에 도대체 몇 번 감탄하는 가다.
사회적 지위가 부의 여부에 관계없다.
내가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다 할지라도 하루종일 어떠한 감탄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내 인생이 아니다.
바로 그만두는게 정신건강에 좋다.
내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그 돈으로 매개된 감탄이 없다면
그 돈은 내것이 아니다.
일정 수준의 돈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어떤 한도를 지나치게 되면 돈은 내게 더 이상 감탄을 주지 않는다.
걱정과 불안의 원인이 될 뿐이다.
그러니까 자산에게 필요한 일정 수준의 재산이 넘어가면
다양한 방식의 기부를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 부부관계가 좋다면 내 아내, 내 남편이 나와 있을 때,
끊임없이 감탄해야 한다.
“여보, 와~!, 당신 이야~!” 그러나 이런 젠장, 감탄은커녕 서로 한탄만 한다.
“내 참, 어휴!~~
아 그래도 우리가 계속 함께 사는 이유는 감탄하고 감탄 받고 싶어서다.
서로 살을 부대끼는 관계속에서 그 작은 감탄을 얻고 싶어 가족을 꾸리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만큼은 지키고 싶은 것이다.
감탄하고 감탄받고 싶어서...
아닌가?...
누가 나보다 더 분명하게 우리의 삶의 목적을 설명할 수 있다면 나와보라~~
우리는 감탄하려 산다.
김정운 교수의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