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1. 한 편의 영화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다큐를 만났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이다. 다큐는 사진작가 낸 골딘이 이끄는 ‘중독 약물 치유’ 단체 ‘PAIN’가 주최한 항의집회에서 시작한다. 시위자들의 집회 장소는 특이하게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로비이다. 그것은 미술관에 엄청난 기부를 통해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약재벌 새클러에 대한 항의표시였다. 세클러는 제약사 퍼듀를 통해 만들어낸 약물을 통해 엄청난 부를 획득했고 그러한 부를 전 세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후원함으로써 부를 세탁하였을 뿐 아니라 문화를 후원한다는 명성까지 얻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중독성 약물에 의해 전 세계 수만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고 있었다. 낸 골딘과 ‘PAIN’는 새클러의 위선과 탐욕을 고발하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하여금 그들의 후원을 거부하게 하여 중독 약물 생산을 중단시키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2. 다큐는 거대 제약 재벌과의 싸움을 벌이는 낸 골딘과 ‘PAIN’ 회원들의 저항을 순차적으로 따라간다. 이러한 재벌과의 투쟁에 더해 다큐는 골딘의 삶을 재구성하고 연계지음으로써 저항의 근본적인 뿌리를 찾는 강렬한 메시지를 구성한다. 사회적 악에 대한 저항의 토대를 탐색하는 작업이라고 할까? 아니면 우리 시대 문제에 대한 예리한 감각을 소유한 천재적인 사람들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낸 골딘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헝끄러져 있었다. 골딘의 언니는 자유롭고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음에도 부모의 무지와 편견에 의해 정신병원을 떠돌다 자살로 삶을 마무리했고, 골딘 또한 부모와의 불화 때문에 입양기관을 전전해야 했다. 어려서부터 고독하고 위선과 권력에 의한 편견에 희생되었던 골딘은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진을 선택했고 그와 유사한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던 예술가들과 어울리게 된다.
3. 골딘의 젊은 시절은 끔찍한 경험의 연속이었다. 부모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났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성매매라는 위험한 선택까지 감행하게 만들었고 창조적인 정신이 넘쳐났지만 약물과 마약 그리고 동성애적인 코드에 익숙한 집단의 분위기는 사회적으로 외면과 단절의 고통을 감내하게 하였다. 더구나 우연하게 동거하게 된 남자는 그녀에 대한 심각한 폭력을 행사해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혔으며, 그녀는 수많은 갈등 속에서 주위 사람들이 죽어가는 아픔을 목격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과 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예리한 인식은 <성적 의존의 발라드>라는 일련의 슬라이드 사진으로 표현되었고 일상의 모습 속에서 나타나는 성적이며 폭력적인 표현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이러한 사진을 통해 일상 속에서 작용하는 폭력, 특히 남성에 의한 여성에 대한 권력과 폭력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4. 낸 골딘과 관련된 사건 중에서 심각한 사회적 파장과 함께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에이즈’ 관련 문화프로젝트였다. 낸 골딘과 동료들은 에이즈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에이즈로 희생당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애도를 위해 사진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적 장르를 종합한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지만 정치계와 종교계로부터 선정적이고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불허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충돌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들의 날카롭고 공격적인 반항을 이끌어내었지만 결국 프로젝트는 중단되어야 했다. 이런 사건을 통해 낸 골딘의 사회적 저항정신과 예술적 감각은 특별한 주목을 받았고 낸 골딘은 점차 중요한 사진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5. 다큐에서 표현된 예술가들의 삶은 이중적인 느낌을 부여한다. 그들은 자신의 내부에서 분출되는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금기에 도전했고 사회적 관습에 저항했다. 하지만 그런 결과 그들은 공격받아야 했고 그러한 공격에 시달리다 약물과 섹스에 탐닉하였으며 그런 혼란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죽음에 이르러야 했던 것이다. 천재적 재능과 사회적 수용 사이에는 거대한 장벽이 놓여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함께 다수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방식이 갖는 거칠고 위험스러운 행위에 대한 불편함은 여전히 공존하는 감정으로 남는 것이다.
6. 제약 제벌 새클러와의 집요한 싸움은 결국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의 호응을 얻어내어 세클러의 후원을 거부하게 만들었으며 그들의 이름을 박물관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결국 세클러는 제약회사를 파산 신청하였으며 약제조를 멈추었다. 그럼에도 파산법원은 세클러 가문의 재산은 보호해주었고 일정 금액의 배상액을 제외한 책임요구는 더 이상 이끌어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낸 골딘과 *의 투쟁은 일정한 성취를 얻어내었다. 우선 치명적인 약물생산을 중단시켰고 그것을 만들어낸 집단에게 사회적인 징벌을 가할 수 있었으며, 문화기부를 통한 그들의 위선을 폭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사회적 편견과 인간적 문제와 싸웠던 골딘의 위대한 승리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7. 다큐의 흐름과 구성은 제약재벌과 벌인 투쟁에서의 승리를 과거 에이즈 프로젝트와 관련된 저항의 정신과 연결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듯하다. 과거의 저항이 지속적으로 현재에 이어져 성공하였다는 결론에 도달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저항의 성공은 저항의 대상과 방법 그리고 태도의 변화에서 기인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에이즈’ 관련 프로젝트는 대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조금은 위험한 광기를 담고 있었다. 에이즈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작업이 지나치게 현실을 선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정치계나 종교계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반면 제약회사에 대한 저항은 명백한 목표와 의도 그리고 시민들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던 운동이었다. 현실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려는 생명과 자유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이 분명하게 표현되었던 것이다. 이런 비교를 통해 ‘저항’은 좀 더 명확한 인간적 목표와 대중들의 이해를 동반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한다. 비록 초기 단계에서의 저항은 사람들의 충분한 이해를 획득하기 어렵겠지만 최소한 폭력적이거나 비윤리적이고 선정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서는 안 된다. 저항의 진성성은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서 회득하는 것이며 저항의 강도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낸 골딘의 저항은 ‘지속성’에서 표현된 용기의 실현이었고 적절한 대상을 선택한 결과였다. 여기에는 분명 오래된 지혜인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선택과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결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첫댓글 ---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선택과 실천할 수 있는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