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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청산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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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갯벌,습지 이야기 스크랩 바다와 함께 죽어가는 새만금 어민들
청산별곡 추천 0 조회 101 07.04.26 17: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바다와 함께 죽어가는 새만금 어민들


허 정 균


  동진강 만경강 하구를 33km의 방조제로 막아 4만 2,000ha의 간척지를 조성하는 새만금간척사업은 1987년 대선정국에서 노태우 후보의 선거공약으로 탄생하였다. 그러나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미뤄지던 이 사업의 착공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서였다. 1991년 7월에 열린 여야영수회담에서 신민주연합당의 김대중 대표는 호남지역의 숙원사업이라며 착공을 강력히 요구하였고 여당에서 이를 받아들였다. 이어 9월 정기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 200억원을 책정하여 이 해 11월 기공식을 갖고 방조제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후 계속사업으로 매년 예산을 투입하여 2006년까지 모두 2조 2300억원의 국민의 세금이 들어갔다.

  민관합동으로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하는 동안, 또는 법원의 결정에 의해 공사가 중단되기도 하였으나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공사가 재개되었고 작년 4월 21일 방조제 끝물막이공사를 완료하여 결국 새만금 갯벌의 숨통은 끊기고 말았다. 지난 4월 10일부터 부안에 머물며 방조제 완공 후 1년이 지나면서 변화한 새만금방조제 안팎의 모습을 둘러보았다.


  어항 기능마저 상실한 군산


  군산시 해망동 금강 끝자락에 자리잡은 군산 내항은 1899년 개항한 이래 국제무역항으로, 인근 도서지역을 잇는 여객항으로, 멀리 동지나ㆍ남지나 해상에까지 출어하는 어선들이 머무는 어항으로 기능하며 영화를 누려왔다. 1965년 이후 군산 외항 건설이 본격화 되면서 여객선과 화물선은 모두 외항으로 옮겨갔지만 최근까지 인근 연안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이 정박하는 어항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군산 내항에 들어서자 부두는 100여톤급 어선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그러나 출어를 한 기억은 없어 보이고 배들은 녹슬어가고 있었다. 이들을 맞이하던 길게 늘어선 어판장도 텅텅 빈 채로 시멘트 바닥만 내보이고 있다. 상설어시장에는 온갖 어패류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부분 여수나 목포 등지에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이러한 변화의 근본원인은 1990년도에 완공된 금강하구둑이다. 동고서저의 한반도 지형은 대부분의 큰 강들이 서해로 흘러들도록 하고 있으며 하류 부분에서는 경사가 지극히 완만한 특징을 갖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밀물 때가 되면 바닷물이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썰물 때 급히 빠지며 쌓인 토사를 먼 바다까지 끌고 내려가 인근 해안에 부려놓아 드넓은 갯벌이 발달하였다. 금강은 부여의 규암포까지, 만경강은 전주포까지, 동진강은 신태인까지 조수가 드나들었다.

  강하구가 둑으로 막히면서 하루에 두 번씩 어김없이 일어나던 이러한 자연현상이 차단되었다. 이로 인해 갈 곳을 잃은 토사가 하구둑 안쪽에 쌓이기 시작했다. 금강호 전역에 이러한 토사퇴적이 누적되어가며 호수는 점점 얕아져가고 있는 것이다. 토사퇴적 현상은 하구둑 밖에서도 심각하다. 하구둑이 생기면 거센 조류가 토사를 몰아와 강어귀에 부리는 일이 없어질 것이므로 군산과 장항 항구의 준설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실제로는 그 반대현상이 일어났다. 장항·군산항의 박지 및 항로상의 토사 퇴적양만 해도 연간 220만㎥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반해 준설양은 약 100만㎥에 그치고 있다. 군산과 장항의 항구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준설비용으로 매년 드는 비용은 연간 130여억 원으로 우리나라 준설 예산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하구둑 축조 이전에는 한 번 준설하면 2~3년 정도는 유지됐다고 한다. 그러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국민 혈세를 쏟아 붓고도 매년 20cm 이상 토사가 쌓여가고 있다.

  군산 내항이 토사 퇴적으로 어항기능을 상실하자 정부는 군장산업단지 조성사업으로 갯벌을 메워 육지가 된 군산시 비응도 동남측 해상에 국고 594억원, 민간자본 1,181억원 등 총 1,775억원을 투입, 방파제, 호안, 물량장 시설과 횟집단지 등 배후부지 15만1,579평에 이르는 다기능 복합어장인 ‘비응항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새만금방조제가 뻗어나가며 전북의 어업생산량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방조제가 완공된 2006년에는 2만4천여톤으로 방조제 공사 시작할 무렵의 약 1/4로 줄어들었다. <표1 참조>

 


 

     <출처 해양수산부>


 비린내가 사라진 포구들


  <방조제 안>

  

  10만여 명의 고용 창출과 3조 5천억원의 생산효과가 나타난다고 선전하며 1990년도에 착공한 군장산업단지 조성공사는 8,200억원을 들여 오식도, 비응도, 가도 등의 섬을 삼키며 ㄷ자로 서해로 뻗어나가 482만평의 갯벌을 매립하여 2006년에 완공을 보았다. 이로 인해 이미 1988년 완공된 군산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갯벌매립으로 육지가 된 내초도는 다시 서쪽의 갯벌 절반을 내주었다. 마을 전체 126세대 중 농사를 짓는 6가구를 제외한 주민들은 해면어업을 포기하고 맛조개, 가무락조개, 백합 등을 채취하며 갯벌에만 의지하게 되었다. 이들이 받은 보상은 가구당 평균 950여만원 정도였다.

  91년 착공한 새만금간척사업으로 방조제 4공구가 비응도에서 야미도를 향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군장산업단지 착공으로 보상을 받았다며 새만금간척사업에서는 보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2003년 6월 4공구가 막히기 직전만 해도 하루 평균 5만여원의 소득을 올리며 살아갈 수 있었다. 비응도~야미도 간 4공구가 막히자 갯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래갯벌이 점점 뻘갯벌로 변하면서 주 수입원인 맛조개와 가무락조개 등이 잡히지 않게 되자 주민들은 어업을 포기하고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잔디를 심는 일이나 인근 쓰레기 선별장에서 일당 노동자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왔다.

  황량한 벌판으로 방치되어 있는 군장산업단지를 지나 내초도 앞 갯벌로 들어갔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게구멍이 끝간 데 없이 펼쳐져 있다. 물길이 막히자 게들이 구멍을 파고 살던 집은 일시에 그들의 무덤이 돼버린 것이다. 마을은 인적이 드물었다. 횟집도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저녁밥 지을 시간인데도 사람 구경을 하기조차 힘들었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열 집 건너 한 집은 마당에 작년에 무성하게 자란 풀이 누렇게 변한 채 폐허가 돼가고 있었다.

  내초교회 임춘희 목사를 만났다. 97년부터 이곳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주민들과 함께 새만금갯벌을 살리는 운동에 열심히 참여해 왔다. 그를 통해 마을 형편을 알 수 있었다. 4공구가 막히자 주민들은 갯벌을 완전히 포기했다. 젊은 사람들의 거의 마을을 떠났고 이제 200여명 남았다. 280여 명이던 초등학교 학생도 현재 7명으로 줄었다. 현재 94세대 200여명의 주민 가운데 60세가 안된 주민 13명은 쓰레기 선별처리장에 나가 일하고 나머지 노동력이 있는 사람들은 군산 시내 건축 공사장이나 공장에 나가 일한다고 한다.


  군산시 옥서면에 있는 하제 포구는 예로부터 인근 연안에 멸치어장이 형성되어 4~500척의 어선들이 북적거리던 2종항이었다. 포구에 들어서자 50여척의 배들이 포구를 빽빽이 채운 채 녹슬어가고 있다. 어촌계 사무실에 들어서자 7~8명의 어민들이 화투판을 벌이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촌계 간사인 김평운(44)씨 등 어민 세 분과 얘기를 나누었다. 하제를 중심으로 중제, 난산, 신난산의 4개 마을 500여 세대는 미군기지 탄약고 안정거리 안에 든다는 이유로 국방부에서는 마을 주민 모두를 이주시킬 계획을 세워 이를 실현해오고 있다. 이미 하제마을 주민 80%는 이주를 했고 나머지 마을에서 30% 가량 이주를 하여 현재 250여 세대가 남아있다. 남아있는 주민들은 대부분 배를 부리던 어민들이다.

  이들은 지난 3월 28일 김제, 부안 지역의 어민들과 함께 김제시에 있는 농촌공사 새만금사업단 앞에 모여 3일 동안 집회를 열었다. 방조제 보강공사를 위해 지난 2월부터 새만금사업단은 배수갑문을 일체 열지 않는 바람에 갑문 근처에서 밀도가 높게 서식하던 백합이 일체 나오지 않고 있어 방조제 안쪽 어민들은 가용돈 마저 끊기자 ‘새만금연안어민대책위’를 구성하고  “배수갑문을 열어 해수유통을 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 선주들은 백합이 많이 잡히자 3~4천만원을 들여 배를 조개채취선으로 개조하였다. 그런데 작년 겨울 뻘 속 깊이 동면에 들어간 백합들이 봄이 되어도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은 배수갑문을 통한 해수유통이 차단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제 포구에서 만난 어민들은 한결같이 배수갑문 18개를 모두 열면 갯벌은 살아나고 2개만 열어도 백합잡이는 계속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현재 방조제 안에는 선외기를 비롯해서 10여톤에 이르는 크고 작은 어선 1,200여척이 갇혀있다. 끝물막이 공사 직후인 작년 6월부터 12월까지 정부는 특별예산을 편성하여 하제 포구에서만 42척의 감척을 추진하였다. 정부가 어업을 포기한 선주들로부터 포구 안에 갇힌 배들을 시세의 절반값 이하로 사들여 폐기처분하는 것이다. 한 어민은 7, 8천만원 하는 배를 3,500만을 받고 처분했다고 한다. 포구 한 켠에서는 이러한 배를 파쇄하는 포클레인이 작업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감척대상의 배는 갯벌에서 조개채취를 하는 저인망 어선인데 선주협회에서는 감척 수를 작년과 같이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 선주들은 가망도 없는 싸움을 아예 포기하고 떠나버릴 것인지 아니면 얼마라도 받아내기 위해 계속 매달릴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심정을 털어놓았다.

  하제포구 바로 아래에는 유종근 당시 전북 도지사에게 4억원의 뇌물을 주고 용도변경하여 포뮬라원(F1) 그랑프리 대회를 유치하겠다며 1천억원의 은행대출을 받고 부도를 낸 세풍그룹 소유의 한국염전 자리가 있는데 문제의 이 땅에는 결국 골프장이 들어서고 있었다. 이 땅의 염분을 제거하기 위해 다량의 제염수를 뿌린다는데 제염수에 오염된 오폐수가 그대로 갯벌로 흘러들어 악취가 나는데도 전주지방환경청에서는 제염수에 대해서는 단속기준이 없다는 이유를 대며 단속을 회피한다고 주민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새만금갯벌을 찾는 도요새들의 쉼터이던 어은리의 옥구염전은 소금막과 창고건물들이 폭삭 주저앉은 채 폐허로 방치되어 있었다. ‘어은리어촌계’라는 간판을 단 창고 건물 안에서 아낙네 둘이 트럭에 실려온 소라와 백합, 키조개 등을 작은 자루에 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가져온 것이냐고 묻자 “모른다”고 답하였다. 몇 마디 더 질문을 하였으나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도 하지 않았다.


  김제시 진봉반도는 만경강과 동진강 수역을 가르며 새만금갯벌 한 가운데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진봉반도 끄트머리에 거전이라는 마을이 있다. 거전갯벌은 새만금갯벌에서도 백합의 생육조건이 가장 좋아 이를 채취하기 위해 갯벌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긴 행렬이 장관을 이루던 곳이었다. 이들 백합을 실어나르던 거룻배들은 갯벌에 묻혀 간신히 형체만 드러내고 있었고 농게들이 지천이던 갯벌은 하얀 소금기를 내뿜으며 생명체라고는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거전에서 만경강을 따라 2km쯤 올라오면 심포항이 있다. 선외기 20여척과 큰 배 50여척이 싱싱한 어패류를 쏟아내던 심포항에서도 포구 특유의 비린내는 없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실뱀장어를 잡아 4천만원까지 번 사람이 있었는데 올해는 한 사람도 없다고 한다. 실뱀장어잡이 배들은 그물을 모두 올려 말아둔 채 포구에 정박해 있다.

  작년 5월에는 꽃게를 엄청 많이 잡았다고 한다. 알을 풀러 들어온 꽃게들이 방조제가 완공되자 빠져나가지 못하고 방조제 안에 갇힌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고기가 일체 나오지 않고 최근에 녹조가 발생하여 망둥이까지 다 죽어버렸다고 한다. 횟집들도 문을 닫았고 포장마차 몇 군데에서 외지에서 가져온 주꾸미와 멍게, 해삼, 조개 등을 놓고 간간히 찾아오는 손님을 맞고 있었다. 심포항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장엄하기로 유명하여 옆의 망해사와 함께 많은 외지인들이 주말이면 이곳을 찾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의 1/3 수준도 안된다고 한다. 이와 함께 여관 등 숙박업소까지 타격을 입고 있다. 포장마차 아줌마는 작년 여름 “수문만 닫아놓으면 냄새 때문에 살 수가 없었다”며 올 여름에도 악취 때문에 외지 손님들이 뚝 끊길 것을 걱정하였다.

  어민들의 수입이 이처럼 갑자기 끊겼는데 어떻게 먹고 사느냐고 묻자 “선주들은 면세유만 바라보고 산다”고 대답하였다. 이미 보상을 다 해주었기 때문에 방조제 안에서 어로작업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법인 ‘부정업’이다. 그러나 시중 가격의 절반 정도 값인 면세유는 지급을 하고 있다. 남는 면세유를 되팔아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면세유를 타내기 위해 배를 사들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방조제 어민들만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다. 횟집, 어시장, 어구제작업소, 조선소, 수산물 가공업 등이 유발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이사하야만에서 만난 ‘아리아케해 어민·시민네트워크’ 사무국장인 도키츠씨는 이러한 유발피해액까지 합하면 간척사업으로 인한 피해 총액은 수산물 생산 피해액의 10배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부안군 동진면 장등리의 동진강 본류와 고부천이 만나는 지점을 가보았다. 방조제가 막히기 이전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밀고 들어오던 전형적인 기수역이었던 곳이다. 2005년 여름에 왔었을 때는 이곳은 방게들의 천국이었다. 고부천 하구에 쌓인 진펄 위에 어린 방게들이 엄청난 밀도로 서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생명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도요새 10여 마리가 쫑쫑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펄 위 곳곳에 도요새 발자국들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

  계화1방조제가 시작되는 동진면 문포는 한낮임에도 쓸쓸하기가 그지 없었다. 옛날에는 300여호가 들어서 북적대던 큰 포구였는데 80이 넘어보이는 노인 한 분이 봄볕을 쬐며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을 뿐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2.7km 구간이 터져 있을 때만 해도 포구에는 개우렁이나 소라를 까서 가공하는 문포상회가 있었는데 아줌마 7~8명이 분주하게 일손을 놀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포구에 나가보니 강턱으로 올라앉은 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4공구가 막히며 동진강 하구에서 강 중앙에 있던 갯골이 계화방조제 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만경강 하구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져 갯골이 진봉반도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처럼 동진강 하구의 갯골이 이동하면서 계화방조제 바로 아랫부분을 침식해 들어가며 방조제를 위협하자 농촌공사는 토사의 침식을 막는 공사를 벌이기도 하였다. 포구쪽으로 바짝 다가온 갯골에 차있는 강물은 간장 색깔을 띠고 있었다.

  부안군 계화면의 계화도는 새만금갯벌의 중앙에 있는 섬이었으나 60년대 계화도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되었다. 현재 500여 세대 2,0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섬진강 다목적댐으로 인한 수몰민들이 간척지 땅을 불하받으며 이곳에 이주해온 주민들을 제외한 원주민 대부분은 갯벌에만 의지해 살아왔다. 이들 인구가 절반 정도이다.

  작년 4월 방조제로 물길이 완전히 차단되었으나 배수갑문을 통해 해수가 간간히 유통되며 갑문 근처에 많은 백합이 높은 밀도로 서식하였다. 그러나 농촌공사는 갑문 개방을 공사에 맞추어 부정기적으로 해왔다. 그 바람에 물때를 알 수 없는 어민 2명이 갑자기 갑문을 여는 바람에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작년 12월 이후 이들은 백합이 나오지 않아 일손을 놓았다. 맨손어업으로 하루 2~3만원이라도 벌었던 이들은 이웃집 애경사에 가져갈 부조금도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그레(백합을 채취하는 도구)를 끌던 일손을 놓자 아줌마들은 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어떤 이들은 우울증에 시달려 정신병원에 가기도 하였다. 뇌경색 치료약을 장기 복용한다는 은아무개(63) 아주머니는 약을 타러 부안읍내 병원에 갈 차비 마련도 어려워 병원 청소라도 해주고 약을 타다 먹어야 할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바다에만 매달려 생업을 이어온 어민들은 갈 곳이 없다. 선외기를 트럭에 싣고 이웃 고창으로 가서 고기잡이를 해보려 하다가 두 달만에 되돌아온 사람도 있다. 방조제 밖에서도 어족자원이 줄고 있는데 고창 어민들이 그를 반길 리 만무하다.

  새만금연안 1200여척 어선의 선주들 상당수가 수천만원에서 억대가 넘는 빚을 지고 있다. 보상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더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한다. 보상금을 받아 타지에서 양식업을 하거나 배 성능을 강화하는 데 투자하여 더 크게 망했기 때문이다. 생태계 변화로 특정 어류가 일시적으로 개체수가 늘어나 배 용도를 변경하는 데 들어간 비용도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주꾸미잡이 배로 개조했다가 숭어잡이배로, 숭어가 안잡히고 백합이 많이 잡히자 너도나도 조개채취선으로 개조한 것이다. 융자를 받을 때 보증을 서 준 이웃 때문에 개인파산 신청도 쉽게 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한다.

  위도에서도 어민들의 빚은 심각하다. 근해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으니 더 먼 바다로 나가기 위해 더 큰 배로 바꾸었고 이에 따라 기름값도 더 많이 들었다. 10년 새에 규모도 3배로 늘었고 빚도 3배로 늘었다고. 그렇다고 고기가 많이 잡히는 것도 아니다. 투자한 돈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이런 틈을 노리고 들어온 것이 핵폐기장이었다. 3억~5억씩 현금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주민들 대부분 서명을 해주었다.

  계화도 주민들의 구매력이 떨어지자 호프집, 다방, 음식점 등도 장사를 거두었고 여파는 부안읍 시장 상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안읍에서 치킨센터를 하는 한 상인은 “계화도가 저리 되는 바람에 부안 시장 상인 대부분이 장사가 안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계화도가 죽어가는데도 “조합장, 면장, 군수 누구 하나 와보는 사람이 없다”며 계화도 아줌마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당장의 생계를 마련해 준다며 새만금사업단은 몇 개의 사업을 제시하고 있다. 환경감시원으로 일하게 하거나 갯벌에 염생식물이나 보리 종자를 파종하는 일, 갯벌의 비산먼지를 막는다며 거적데기를 덮는 일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어민대책위 고은식(45) 사무국장은 “그런 일시적인 일은 생색내기용일 뿐”이라며 “개인의 고민을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가져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조제 밖>

  지난 3월 31일 새만금방조제 바깥바다에 해일이 일어 전북 부안군과 고창군, 영광군에까지 이르는 해안을 덮쳐 사망자 4명, 주택 점포 등 일시침수 181여동, 차량 20대, 선박 56척이 전복되거나 유실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날 새벽에 발생한 해수면 범람에 대해 기상청은 "지형적 영향과 만조 등의 복합적 상호작용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으나 어민들은 한결같이 새만금방조제 탓으로 돌렸다. 방조제로 막히기 전에는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변산해수욕장 아래 주꾸미잡이를 하는 어민 박진순(56)씨는 바람도 불지 않는데 ‘쉬익-’하는 소리가 나 밖에 나가보니 6미터가 넘어보이는 큰 파도가 곧추 서서 방파제 안으로 밀려와 배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일어나 전복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위도 진리에서는 정금도를 잇는 다리가 파괴되었고 파도가 갯벌을 파 훑으며 올라와 담장을 무너뜨리고 민가를 덮쳤다. 이에 바닷물이 안방에까지 침범하여 텔레비전과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망가뜨렸다. 이날 사건으로 인해 장판을 뜯어내고 도배작업을 하고 있던 진리 마을 이장 서봉신(63) 씨는 바닷물이 저만큼 물러나 100여 미터 이상 갯벌이 드러난 바다를 가리키며 “당시에도 조금 물때였고 만조도 아니어서 저 정도였다.”며 만약 만조 때에 벌어졌다면 마을 대부분이 파괴됐을 거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방조제 밖에서 만난 어민들은 “언제 또다시 이런 일이 닥칠지 알 수 없다”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아직도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방조제 밖의 포구에서도 비린내가 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포구들마다 빈 배들로 가득 채워져 있을 뿐 잡은 고기를 내리거나 출어를 준비하는 모습은 아예 찾아볼 수도 없었다. 격포에서 주꾸미잡이용 소라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어민은 “100개짜리 한 다발 건지면 주꾸미가 들어있는 소라껍질은 서너 개나 될 뿐이고 나머지는 뻘만 가득 차 있다”며 방조제 때문에 유속이 느려져 뻘이 쌓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뻘 속으로 소라그물이 묻혀버린다는 것이다. 어획량은 예전의 1/10 정도 수준이라 한다.

  곰소만 안쪽 모항에서 주꾸미잡이를 해오는 어민 유영춘(48) 씨는 “조류가 곰소만 안으로까지 들어오지 않고 입구인 고창 심원면 부근에서 빙빙 돌다 나가버린다”며 “조류의 방향도 수시로 달라져 어느 방향에 맞추어 그물을 설치해야 할지 결정도 못 내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어민들이 3년 전부터 피해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하면서 간척사업 반대 안한 것을 후회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올해 대학에 들어간 딸과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의 자녀가 있는 김씨는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위도의 치도리 앞 갯벌은 예전에는 축구를 할 정도로 딴딴한 모래펄 갯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발목이 푹푹 빠지는 진펄로 바뀌었다. 인공어초를 심어놓은 해역도 진펄이 쌓여 인공어초를 덮어버릴 정도라 한다. 2005년 9월 부안군은 백합 양식 종패지원 명목으로 총 사업비 1억 2천만 원 가운데 절반인 6천만 원을 지원하여 위도와 변산면 연안 갯벌에 종패를 뿌렸다. 이들이 방조제에 인접한 해역에서부터 폐사하기 시작했다. 위도 근해에서 예전에는 밀물이나 썰물의 한 방향만을 향해 그물을 놓았으나 지금은 유속이 느려지고 예고없이 배수갑문을 열어 그물이 엉키기도 하여 자동으로 방향전환을 하는 ‘뺑뺑이 그물’을 놓기도 했다.

  최종 물막이공사가 끝난 지 한 달쯤 지난 5월부터 방조제 안에서 적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적조생물의 사체로 인해 발생한 거품이 변산해수욕장으로 밀려들면서 여름철 해수욕장을 찾은 많은 관광객들이 발길을 돌렸다. 이러한 적조 발생은 위도 근해에서도 자주 발생하고 있음이 어민들에 의해 관찰되었다. 적조생물의 사체로 인해 생긴 것으로 보이는 거품이 위도 서쪽 해안으로 밀려들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사하야 간척사업의 닮은꼴 새만금 간척사업


  새만금방조제 안팎의 이같은 변화는 새만금간척사업보다 9년 앞선 일본 나가사키현의 이사하야 간척사업으로 인한 아리아케해의 수산업 궤멸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 일본의 규슈의 구마모토, 사가, 후쿠오카, 나가사키현으로 둘러싸인 수역면적 1,700k㎡의 큰 만인 아리아케(有明)해는 하구둑으로 막히지 않은 크고 작은 강들이 미세한 뻘과 영양염류를 날라다 부리며 일본 최대의 풍요로운 갯벌을 이루었다.

  일본 농수성은 아리아케해의 작은 만인 이사하야만을 7.05km의 방조제로 막고, 우량 농지를 조성하는 ‘국영이사하야만간척사업’을 1989년에 착공하여 1997년에 방조제를 완성하였다.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아리아케해 해수 순환에 있어서 펌프와 같은 구실을 하였는데 이사하야만이 막히자 유속이 30% 이상 감소하였다. 약해진 조류는 다시 해수가 상층과 하층으로 나누어지는 ‘성층화’ 현상과 진펄이 침전되는 현상을 불러왔다.

  빠른 조류가 해수를 위아래로 혼합하여 공기 중의 산소를 바다 밑바닥까지 전달한다. 그러나 조석과 조류가 약해져 해수가 성층화하면 공기 중의 산소가 해저까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아 산소 농도가 적은 층이 해저에 발생하였다. 여름철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이러한 빈산소층의 발생은 예전의 아리아케해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현상이었다. 이로 인해 저서생물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또한 예전에 나타나지 않던 적조가 빈발하였으며 그 기간도 길어져 어패류가 집단 폐사했다.

  저서생물의 사멸은 먹이사슬관계에 의해 연쇄 반응을 일으켜 해면어업의 급속한 축소를 불러왔다. 방조제를 막기 직전에 연간 8~9만톤에 이르던 어업 생산량이 방조제 끝물막이 공사가 끝나던 1997년에는 3분의 1로 급감하여 2만 3,000여톤이었으며 2000년에는 1만 톤에도 미치지 못하여 예전의 1/10 규모로 줄었다.

  아리아케해는 특히 대규모 김 생산지로 유명하였으며 일본 전체 김 생산량의 40% 가량이 이곳에서 생산되었다. 겨울에 아리아케해 전면을 수놓은 김발은 장관을 이루었다. 영양염류가 풍부한 아리아케해에서 김은 빨리 자랐으며 아리아케해를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빠른 조류는 적조의 발생을 막아왔다. 1997년 간척사업으로 이사하야만이 닫히자 이러한 장관은 사라지게 되었다. 전에 없던 적조가 자주 발생하였고 그 기간도 해가 갈수록 길어졌으며 이로 인한 김 흉작이 이어졌다.

  새만금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생태계의 변화는 이사하야 간척사업으로 인한 아리아케해의 변화를 거의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 새만금방조제는 강이 바다로 흐르는 것을 차단하여 방조제 안쪽은 육지에서 흘러온 영양염류를 바다로 배출하지 못해 부영양화가 진행되고 방조제 밖은 어패류의 먹이가 되는 영양염류를 강으로부터 공급받지 못해 바다의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바닷물이 밀물 때 만경강과 동진강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썰물 때 후퇴하며 생기는 급한 조류가 사라짐으로써 방조제 밖에서 아리아케해에서 발생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사하야방조제가 아리아케해 전역에 영향을 미쳤듯이 새만금방조제는 서해 전역에 영양을 미칠 것이다. 이사하야만이 아리아케해의 펌프역할을 하고 있다면 만경강 동진강 하구역 갯벌은 서해 바닷물을 뒤집어주는 펌프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사하야 간척사업으로 인한 아리아케해의 변화>



  맺는 말


  지난 3월 13일, 전북도지사와 전라북도 국회의원들이 의원입법으로 ‘새만금종합개발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며 국회의원 173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 의사과에 접수하였다. 간척사업의 주목적인 우량농지 조성 대신 종합관광단지, 복합산업단지, 연구개발단지, 새만금신항만, 국제공항, 배후도시 등을 들여앉히려면 용도변경이 필요한데 이에 따르는 번잡함을 피하고 신속하게 개발을 추진하려면 특별입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반대하는 정부는 지난 4월 3일 국무회의를 열어 ‘농업을 위주로 하되 산업·관광·도시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용도별 개발)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새만금 내부 토지개발 기본구상’을 확정했다. 그러나 새만금특별법안에도 정부의 내부개발 기본구상에도 어민들에 대한 대책은 없다.

   전라북도 외곽 관변단체들이 지역언론과 연대하여 정부를 향해 ‘새만금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외치는 가운데 지난 4월 5일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새만금갯벌에 나타났다. 새만금간척사업을 착공하게 한 장본인인 김 전 대통령은 새만금전시관에 들러 “감개가 무량하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면서 말문을 연 뒤 "새만금은 산업과 농업, 관광 등 다용도로 개발돼 중국과 일본 시장을 집중 공략해야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통해 전북도도 그동안 가난에서 벗어나 잘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튿날 전북 도지사와 도의회 의장, 전북대총장 등 각계 인사 200여명이 참석한 오찬에서 “새만금특별법이 조기에 제정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적극 협조해 줄 것을 당부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정치인들의 ‘새만금 찬가’는 ‘새만금’이 이미 신앙처럼 자리잡은 대다수 전북 도민들의 가슴에 두터운 퇴적층을 형성하며 내려앉고 있다. 그런데 이들 정치인들의 눈에는 33km 방조제에 갇혀 사지로 몰린 어민들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만경강, 동진강 하구를 막아버려 숨통이 끊긴 포구들과 이웃 고을들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새만금특별법 새만금간척사업을 둘러싼 한 단계 높은 정경유착일 뿐이다.  <녹색평론 5,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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