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송년 모임에서 한 수면의학 전문의를 만나 이 문제를 얘기했더니 "코를 많이 고시죠?"라고 물었습니다. "피곤하거나 술을 많이 마신 날엔 많이 골지만 평소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니 "턱 길이가 조금 짧고, 약간 들어가 있어 똑바로 누우면 혀 뿌리가 기도를 막아 수면무호흡증을 유발할 수 있다. 코를 골지 않는 수면무호흡증도 있다"고 했습니다.
2주쯤 뒤 수면 중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모니터링하는 '수면다원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 수면무호흡증과 하지불안증후군이 발견됐습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다리에 불편한 감각이 느껴져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를 자꾸 움직이는 병인데, 주로 밤에 증상이 나타나므로 수면을 방해하게 됩니다.
뇌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의 불균형 때문으로 추정되는데 우리나라 성인의 5~10%에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수면의 질(質)이 나빠 낮잠을 자고 졸음운전을 한다. 코는 큰 문제가 없으므로 턱을 앞으로 빼는 성형수술을 받거나, '양압기'라는 기계장치를 끼고 자라"고 했습니다.
양압기는 일정한 압력의 공기를 코로 불어 넣는 기계인데 공군조종사 마스크 같은 것을 껴야 합니다. "수술은 싫고, 중환자처럼 기계장치를 끼고 자는 것도 싫다"고 했더니 "장비를 렌트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마스크 자체가 스트레스여서 오히려 잠을 더 설쳤습니다. 그러나 2~3주쯤 지나자 별 불편함을 못 느끼게 됐고, '플라시보 효과'인지는 모르지만 잠을 더 잘게 자고 피곤함도 덜 한 것 같았습니다.
"예전엔 잠귀가 엄청나게 밝았는데, 많이 어두워졌다"고 아내가 말하더군요. 기계에 장착된 메모리 카드를 들고 병원에 갔더니 "수면의 질이 많이 좋아졌다"며 기계 구입을 권했습니다.
한껏 고무돼 대졸 직장인 초봉에 해당하는 기계와 마스크를 큰 맘 먹고 구입했습니다. 4개월쯤 됐는데 지금까지는 아주 만족합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수면검사를 권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비용입니다. 코 전체를 덮는 마스크 외에 콧구멍에 끼우는 '간이 마스크'를 하나 더 장만하고 싶었는데 30만원이라고 해서 포기했습니다. 예상 가격의 딱 10배 수준이었습니다. 기계 값과 마스크 값이 왜 이렇게 비싸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수면은 한 사람의 건강과 업무효율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입니다. 수면 전문의들은 수면장애 환자가 성인 인구의 30% 정도 되는데, 양압기 등으로 치료 받고 있는 사람은 3%도 안 된다고 얘기합니다. 병에 대한 인식 부족이 원인이겠지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비용도 중요한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4/8일자 조선일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