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일기(14)-내포문화숲길(신리성지-여사울성지)
1. 버그내 순례길은 신리성지에서 끝나지만, 길은 계속 이어진다. 내포지역은 충청도에서 가장 먼저 천주교가 전래된 곳이다. 곳곳에는 천주교 신자들의 고난과 순교의 흔적이 남아있다. 흔적을 따라 길을 떠난다. 행정구역상, 신리성지에서 당진이 끝나고 예산군이 시작되지만 그것은 큰 의미가 없다. 이 지역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내포 사람들’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2. 길은 ‘순례길’이라는 특정한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더라도 충분히 아름답고 고요하고 여유롭다. 한쪽에는 삽교천이 흐르고, 반대쪽에는 넓은 내포평야가 펼쳐진다. 하천은 작은 강에 필적할 정도로 수량이 많고 넓은 편이다. 하천을 둘러싼 갈대와 숲풀들이 풍요롭게 장식하고 있었다. 길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는다. 하늘은 높고 올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농기계들의 움직임이 바쁘다. ‘내포’라는 이름의 풍요로움을 실감나게 한다.
3. 약 100분 정도 걷자, 여사울 성지가 나타난다. 여사울 성지는 이곳의 대표적인 신자의 생가가 있던 곳이라 한다. 옅은 초코렛색의 건물이 이국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건물 뒤쪽에는 휴식하기에 좋은 작은 동산이 마련되어 있었다.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이다. 동산에서 바라본 교회 건물은 예수상과 어울려 특별한 장면을 만들고 있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장소다.
4. 다시 출발점을 향해 회귀한다. 해가 서서히 저물면서 길은 더욱 깊이를 더해간다. 농부들은 하나둘 귀가를 준비하고 있고, 하루의 진한 노동이 마무리되고 있다. 아직 모내기가 시작되고 있지 않지만, 조만간 모가 심어지면 뜨거운 여름의 태양 아래에서 싱싱하게 자라날 것이다. 가을의 풍요로움이 완성되는 그때 다시 이곳을 걷고 싶다. 물결처럼 넘치는 황금색의 들판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얼굴을 지닌 내포의 평야다.
첫댓글 - 발길마다 만나는 얼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