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아(Syria) = 아람(Aram)
아시아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대에 따라 경계가 달라지기는 하였으나 남쪽은
이스라엘, 북쪽은 소아시아(터키), 동쪽은 메소포타미아, 서쪽은 지중해를 경계로 한다.
아람이라고도 불렸다(삼하 8:5; 대상 18:5). 헬라 시대에 수리아는 안디옥을 수도로
하는 셀류쿠스 왕조가 다스렸으며 이스라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BC 200년경부터
이스라엘은 수리아의 통치 하에 들어갔으며, BC 168년 셀류쿠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왕이 유대교를 위협하는 법령을 내리자 유대인들은 이에 항거하여 마카비
반란을 일으켰다. 수리아는 BC 64년 로마의 폼페이에 의하여 점령당하고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예수님 당시 수리아:
수리아는 이스라엘과 지역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관계로 신약 시대에는
많은 유대인 공동체가 수리아 전역에 형성되어 있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자 그 소식은 인접지역인 수리아까지 퍼져나갔다(마 4:23-24).
수리아의 안디옥:
BC 300년경 셀류쿠스 제국의 니카토르에 의해 셀류쿠스 제국의 수도가 된 곳이다.
신구약 중간 시대와 신약 시대에 이곳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유대인이 거주하는
중요한 도시였다. 요세푸스는 이곳에 거대한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로마 시대에 안디옥에는 유대인이 점점 많이 거주하게 되었고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의
수도 늘어났다.
이곳에는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자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여 최초의
이방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행 11:19-21).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이곳에
바나바를 파송했으며(행 11:22) 바나바는 다소에 있는 바울을 안디옥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교회에서 가르쳤다(행 11:25). 이곳 안디옥 교회의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행 11:26)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을 위하여
구제헌금을 하는 등(행 11:28-30) 모범을 보였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를 최초의
선교사로 파송하는 등 초대 교회 선교 사역의 중심지였다(행 13:1-4).
안디옥은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어 AD 3세기와 4세기에 번성하였으며 안디옥 학파를
형성하였다. → 아람, 안디옥을 참고하라. <비전성경사전>
아람(Aram) = 수리아(Syria)
셈의 아들인 아람의 후손들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서쪽의 레바논 산맥에서 유프라테스,
타우러스 산맥에서 다메섹까지를 말한다.
이곳은 성경에서 ‘수리아’라고도 번역되었다(왕상 11:25; 렘 35:11).
아람은 구약 시대 오랜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던 근접 국가이다.
아람 사람들은 셈족으로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 작은 도시 국가를 이루며 널리 퍼져
살았다.
사사 시대에 아람은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적의 세력으로 나타나 있다(삿 10:8).
아람의 수도였던 다메섹(창 14:15; 왕상 11:24; 사 7:8)은 다윗 왕 때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었으며(삼하 8:5-6) 솔로몬 때에는 아람 왕국 성읍 중 하나인 아람
소바(Aram Zoba)의 르손에게 정복당했다(왕상 11:23). 그리고 르손이 죽은 후 앗수르,
바벨론, 바사, 로마 제국 등에 의해 정복당했다.
<인명>
1. 셈의 아들이며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의 아버지이다(창 10:22-23; 대상 1:17).
2. 압라함의 조카인 그므엘의 아들이다(창 22:21).
3. 길르앗의 아버지인 마길 자손 중의 한 명이다(대상 2:23).
4. 아셀 사람인 소멜의 아들이다(대상 7:34).
5. 헤스론의 아들이며 아미나답의 아버지인 람(룻 4:19; 대상 2:9; 마 1:3-4),
아니(눅 3:33)와 동일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비전성경사전>
안디옥(Antioch)
바울의 전도여행을 시작으로 교회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지중해 연안
도시이다. 성경에 중요하게 언급된 안디옥으로는 비시디아 안디옥과 수리아의 안디옥이
있다.
비시디아 안디옥:
소아시아의 비시디아에 있던 중요한 도시이다(행 13:14).
수리아의 왕인 셀류쿠스에 의해 세워졌고 후에 로마의 영토가 된 이곳은 많은 유대인들이
살게 되었으며 회당도 있었다.
바울은 이곳에서 바나바와 함께 전도하여 상당수의 이방인들이 믿음을 가지게 된 반면,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기도 했다(행 13:14-52). 바울은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왔던
유대인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을 뻔 하기도 했으나(행 14:19),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전도하였다(행 14:21).
수리아 안디옥:
BC 300년경 수리아의 셀류쿠스 왕에 의해 세워진 수리아의 수도이다.
안디옥은 셀류기아 항에서 32km 내륙에 위치해 있으며 오론테스 강이 흐르고 있다.
안디옥이라는 명칭은 셀류쿠스의 아버지인 안티오쿠스를 기념해서 붙여졌으며, BC 64년
로마 폼페이우스에 의해 정복된 후 로마의 수리아의 수도가 되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예루살렘에 박해가 시작되어, 흩어진 사람들이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 등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이때 안디옥에도 교회가 세워졌다(행 11:19-20).
안디옥 교회는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곳으로(행 11:26),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을 했고(행 11:27-30), 최초로 이방선교를
시작했던 교회(행 13:1-3)였다. 또한 이방 출신 신자들은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대표로 예루살렘에 파송하기도 했다
(행 15:2). → 수리아를 참고하라. <비전성경사전>
다메섹(Damascus) = 다마스커스(Damascus) = 디마시크(Dimashq)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심했던 곳으로 고대 수리아의 성읍이다.
현재 시리아 공화국의 수도로서 영어로는 다마스커스(Damascus) 아랍어로는
디마시크(Dimashq)라고 부른다.
레바논 산맥의 동쪽, 해발 약 600m 고지의 평원에 위치하는데 헤르몬 산과 레바논
산맥 등 삼면이 산으로 둘러져 있는 시리아 사막 중앙부 서단의 오아시스에 발달한
도시이다.
중동에서 군사적, 상업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곳으로 지중해에서 약 100km,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240km 떨어져 있다. 두 개의 강으로부터 물을 공급받는
(왕하 5:12 참고)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또한 근동의 땅들을 연결하는 왕의
도로와 큰 중앙도로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큰 상업도시로 발전했다.
역사 속의 다메섹:
BC 10세기부터 8세기까지 아람 왕국의 수도로서 그 부와 영향력이 최고에 달하였다.
디글랏 빌레셀 3세는 BC 732년에 다메섹을 파괴하고 그 주민들을 이주시킴으로써
독립적이고 강력한 국가로서의 다메섹의 시대를 종결시켰다. 그 후에 다메섹은 정치적인
힘을 빼앗겨 버렸고 앗수르의 일개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메섹은 BC 64년에
수리아가 로마의 주가 된 후에 번영하였다. 비록 안디옥보다는 덜 중요하였지만, 크기에
있어서는 놀랍게 커졌으며 AD 33년에는 나바티안의 왕 아레다의 지경 안으로 병합되었다.
성경 속의 다메섹의 주인들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수리아 → 아람 → 유다(다윗 왕 때) →
아람 → 앗수르 → 바벨론 → 바사 → 로마(수리아 주에 속함)이다.
성경 속의 다메섹:
다메섹은 성경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도시였다. 아브라함은 롯을 구하기 위해서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갔고(창 14:15), 다윗은 이 도시를 정복했으며(삼하 8:5-6;
대상 18:3-6) 다윗이 죽은 후에는 다시 수리아 왕조의 수도가 되었다(왕상 11:23-25).
문둥병에 걸린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요단 강에서 몸을 씻으라는 엘리야가 보낸
사자의 말에 “다메섹 강이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라고 말했다(왕하 5:12).
이사야와 예레미야는 이곳의 멸망을 예고했고(사 17:1; 렘 49:27) 바울 시대에는 이곳이
아레다 왕 치하의 아라비아에 의해 통치되었다(고후 11:32).
다메섹의 거리, 직가:
‘의로움’, ‘곧은 길’이란 뜻을 가진 직가는 바울의 영적인 고향이자 아나니아의 거주지로
다메섹에 있는 거리 이름이다. 바울이 다메섹에 왔을 때 이곳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으며 그리스도인들도 적지 않았다(행 9:2이하). 사도행전 9:11에 나오는
직가는 약 3.2km의 다메섹을 동서로 꿰뚫는 곧은 길로 현재는 빈약하지만 당시는
고린도식 원주가 늘어선 대로였다. 아나니아의 집(행 9:10),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행 9:22) 광주리를 타고 내려왔다고 하는 성벽(행 9:25; 고후 11:33) 등은 현재의
다메섹에서도 볼 수 있다. <비전성경사전>
* 직가(Straight Street)
다메섹을 동서로 관통하는 거리의 이름이다. 이 거리에 유다라는 이름을 가진 한 유대인이
살고 있었는데,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울이 그 집에 거하였다(행 9:11).
표준새번역에는 ‘곧은 거리’로 옮겼다. <비전성경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