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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신부]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산 위의 마을 취화당>
옛날 수안보 온천 계곡에는 전국에서 많은 나병 환자들이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치료 효험의 소문 때문이었겠지요. ‘베짜타’라는 못은 주기적으로 샘물이 솟구치는 현상이 있는데 그 순간 제일 먼저 물에 들어가면 신묘하게도 치유된다고 합니다.
어떤 사족을 못 쓰는 불구자가 치유의 기적을 얻고자 여차저차 어떻게 해서 그곳 까지는 갔는데, 물이 솟을 때면 다른 장애인이 잽싸게 들어가 버리니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가 봅니다.
“낫고 싶으냐?”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곁에 나타난 한 젊은 예언자에게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했습니다. 자신의 처지 그대로 “나는 이런 사람 이예요!” 그 진솔함이 그분의 연민을 얻어 치유의 은사를 받게 됩니다. 자신의 처지와 한계성을 있는 대로 고백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에 대한 진솔함이 자신을 치유하는 힘입니다.
장님, 맹인, 봉사, 시각장애인... 하나의 사물에 붙어진 여러 명사인데 장애인들은 호칭에 따라서 자신이 존중받고 무시당하거나 놀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화를 내면서 싸우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주의해야겠지요.
그런데 그러지 말고, “나는 앞 못 보는 불구자예요!”, “박 신부는 귀가 나빠서 보청기를 써야 들을 수 있거든요!” 라고 하면 어떨까요? 애꾸눈이건 외눈박이건 곰배팔이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호칭해 주더라도 ‘나는 여전히 나’라는 당당한 자의식이 더 중요한 거 같습니다. 너도 사람, 나도 사람일 뿐! 베짜타 못의 장애인이 바로 그런 당당한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내 처지가 이렇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공동생활에서 우리 모두는 작고 큰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배운 가정교육과 교양과 학습된 경험으로 이루어진 습성들이 있는데요. 혼자 살거나 가족끼리 살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공동체 생활에서는 타인에게 영향을 줍니다. 기쁨과 우애로움을 주기도 하고 짜증과 분노와 스트레스, 상처를 주기도 하지요.
“이제까지 문제없이 살아왔으니 그건 내 습성이다”라며 당연시 여기는 태도라면 공동생활에서의 갈등과 불화는 피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여러 사람의 마음이 다치게 됩니다. 그도 공동체를 떠나게 되지요. 공동체가 생활성찰을 중요시 하는 이유입니다.
‘자기 성찰 능력’ 이란 것이 참 중요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어떤지 봐야합니다. 중요하든 사소하든, 내게 어떤 문제가 있는가를 알면, 수행과 자기 발전이 가능합니다.
“나는 말이 많은 편인 것 같아요. 특히 아는 체 하는 게 많은 가 봐요. 고치려고 노력합니다.”
“나는 논쟁할 때 종종 목소리가 너무 커져서 싸우는 듯이 주변을 긴장시킬 때가 있어요. 내 목소리가 커질 때 마다 손가락을 들어서 사인을 보내주세요.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주의가 떴구나!’ 생각할께요”
“나는 아이들의 잘못을 보면 그 때마다 야단치는 습관이 있는데, 애들도 여러 가족들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스트레스 받을 거예요.”
“담당자에게만 알리는 방식을 존중하겠습니다.”
이런 것이 매일 매일의 생활성찰에서 포착되고 나누면서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스스로 안 되면 서로에게 들어야 하는데, 한국인 정서나 공동생활 가족들은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고 받아들이는 게 잘 안됩니다. 우리 마을은 가족들의 수행생활을 위해서 종종 ‘상호교범(공동상호평가)’을 합니다. 여러 가족들이 나에 대한 좋은 태도 나쁜 태도를 지적하면 그것을 모아서 본인에게 수행자료로 주는 거지요. 상호교범은 효과가 좋은 방식입니다.
“당신은 좀 정직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더 당당한 듯 보이려고 하는 게 있더라.”
“당신은 대화 중 화답할 때 어~ 엉~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은 기분 나빠해.”
“당신은 실수나 실패에 대해서 지적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물쩍 넘어가는 태도가 있는데 그렇게 하면 공동체의 시행착오가 계속되지 않을까?”
여러 사람의 눈에 비친 나에 대한 칭찬과 지적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아, 이런 사소한 것에서 감동을 받는구나! 내 스타일이었을 뿐인데 그게 기분 나쁘게 하는구나! 명확히 하자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상처가 될 수 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면모를 보게 해주는 공동수행은 정말 보배로운 것입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이런 면을 고치려고 하는데 잘 안됩니다”. 스스로 치유 받으려 애쓰는 진솔함이 있으면 도움주려는 좋은 마음들이 치유의 은사를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공동생활의 위력이고 은총이고 축복입니다.
“선생님, 내 육신이 불구라서 샘물이 솟는 순간을 보더라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그래, 물에 들어갈 것도 없다. 다 나았으니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가거라!”
소백산 보발리에 봄이 찾아왔습니다. 초봄의 된장 냉이국은 역시 최고입니다!
박기호 신부(예수살이 공동체 산위의 마을 대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산 위로 가는 길
해발 500m에 불과했지만, ‘산 위의 마을’로 가는 길은 험했다. 산길은 좁고 한켠은 낭떠러지였다. 중앙선을 따라 차를 몰았지만 그마저도 없어진 후에는 산 밑으로 붙어서 가야했다. 게다가 쌓인 눈….
‘산 위로 가는 길’은 인생길을 닮았다. 길이 넓었다면 혹은 눈이 안 내렸다면 조금은 수월했을 것을. 세상의 논리에 매이고 탐욕에 눈이 가리고 미끄러운 빙판 같은 아집에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기 일쑤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기대하고 실망하고 또 기대하는, 그 반복되는 과정에서 그분의 사랑을 봅니다.”
“내 마음의 밭이 척박함을 느낍니다. 여전히 저는 인간의 논리로 판단하고 포기합니다.”
저녁기도 시간, 묵상과 생활나눔이 어우러졌다. 단순한 일상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자신과 공동체, 세상을 참 많이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것 같았다. ‘산 위의 마을’ 하루는 나눔으로 끝난다.
■ 소박하고 단순한 하루
일과는 단순하다. 아침 미사 후 식사를 하고 오전 노동을 한다. 점심식사 후에는 다시 오후 노동을 한다. 저녁기도와 묵상 후 밤 10시에 소등하고 일과를 마친다.
각자 능력에 따라 노동을 한다. 농지 5만9504㎡(1만8000평)에 먹거리 자급과 농산물 판매가 일상이기에 농사일이 만만치 않다. 겨울철엔 조금 낫지만 산골 생활이 워낙 손 가는 일이 많아 종일 바쁘다.
이날 노동은 청국장 포장, 닭장 수선, 장작패기, 그리고 청소며 세간살이 단속 등으로 나뉘었다. 마을 설립자인 박기호 신부(서울대교구)와 설립 초기부터 함께해온 이동율(바오로·61)씨가 장작을 팼다.
해마다 마을에서 일주일씩 머물다 간다는 와타나베 히로시게 신부(도미니코 수도회)는 능숙한 솜씨로 허술해진 닭장을 수선했다. 그는 “결국 공동체가 인류의 대안”이라며 “교회부터 참된 공동체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소 7마리와 염소 20여 마리가 밥을 먹는다. 그 앞에 박 신부의 숙소가 있다. 들고 나며 가축들을 들여다보려는 애틋한 마음에서 잡은 자리다.
■ 2% 부족한 삶, 복음과 일치
쪼갠 장작더미를 옮기는 것은 김정훈(진길 아우구스티노·39)씨의 일이다. 기도시간이면 기타 반주도 하는 김씨는 2012년에 아내 유광현(테오도라·39)씨, 두 남매 다예(로사·11), 대철(대철 베드로·5)과 함께 입촌했다. 둘째는 ‘산 위’에서 낳았다. 입촌을 하는데 큰 결심은 필요 없었다. 김씨는 유씨와 결혼할 때 세례를 받았다. 유씨는 복음적 삶을 살려는 공동체운동인 ‘예수살이 공동체’(대표 이정훈 신부)를 통해 이미 ‘예수살이’를 평생의 지향으로 삼았고 김씨는 아내의 뜻에 공감했다.
“살면서 항상 2%가 부족했어요. 왜, 무엇을 위해 사는가 늘 고민했지요. 아이들도 경쟁으로 더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태적 삶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요.”
무언가 놓치고 무언가 원하는 일이 계속 되던 중 아이가 유산됐다. 건강한 생태적 삶이 필요했다. 몸을 쓰는 힘든 노동이나 함께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기에 길게 의논할 필요도 없이 ‘산 위의 마을’로 들어왔다.
입촌한 지 8년째인 김정하(베네딕토·55)씨는 “복음이 항상 삶과 유리돼 있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예수의 제자로 살기 위해서는 공동체에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자기 포기의 과정은 진행 중”이라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는 결국 내 고집을, 나 자신을 못 버리는데서 생긴다”고 말했다.
■ 공동체 삶, 학교가 필요해
다예와 대철이는 공동체의 귀염둥이들이다. 그런데 다예가 다니고 있고 대철이가 앞으로 다닐 보발분교는 폐교의 위기에 처해 있다. 학생 수가 불과 5명. 폐교 위기의 보발분교는 마을의 노력으로 간신히 회생 기회를 얻긴 했지만 숙제가 많다.
마을은 산촌유학에 공을 들인다. ‘산 위의 마을 산촌유학센터’(※문의 010-4184-8633)를 활성화해 작지만 ‘위대한’ 학교를 만들 생각이다. 기초교육은 보발분교에서, 방과 후 교육과 숙식은 ‘산 위의 마을’에서 이뤄진다. 센터는 6개월~1년 기간의 농촌유학생을 상시로 모집한다.
1년간의 산촌유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정지성(윤일 요한·13)군은 “자연 속에서 동물들이랑 노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어머니 류경주(실비아)씨는 “이미 몇 년 전에 형인 지창이가 산촌유학을 했었다”면서 “도시에서는 생각도 못할 귀한 체험들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예수살이 공동체’를 꿈꾸며
‘산 위의 마을’은 ‘예수살이 공동체’의 지향을 실현하는 도장(道場)과 같다. ‘예수살이 공동체’는 1998년 박 신부 등 몇 명의 뜻있는 사제들로부터 시작됐다. 소비주의 사회에서 예수를 본받아 ‘지상에서 천국처럼’ 살아가는 것을 지향한다.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기쁨’, 그리고 세상의 평화를 위한 ‘투신’이 그 정신이다.
‘산 위의 마을’은 ‘예수살이’의 이상을 살려는 이들의 대안 공동체 마을로서 2004년 3월 건립됐다.
공동체 삶의 큰 특징은 ‘한솥밥’과 ‘한 지갑’, 즉 공동생활과 소유의 공유다.
박 신부는 “‘대가족 제도’가 현대 세계의 많은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공동체적 삶은 형제적 사랑으로 이루는 대가족 제도”라고 말했다. 공동 소유는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사도행전 4,34)는 초대교회의 기적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 이상은 현실이다
이들의 이상은 예수의 삶, 제자 공동체, 초대교회의 공동체적 삶이다. 이상을 현실로 살아낼 수 있을까? 가능하다 해도 그것은 그저 소수의 특별한 이들의 특별한 삶은 아닐까?
‘예수살이 공동체’ 사무국장 김미애(오틸리아)씨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며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 “당연한 일을 특별한 일이라고 외면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보면 초대교회의 이상은 당연한 삶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살이’는 당연하다. 완성은 하느님의 일이되, 이상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은 신앙인들의 몫이다.
박 신부는 “본당 공동체가 복음적 삶의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기쁨, 함께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본당 공동체를 통해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산 위의 마을’에서의 공동체적 삶의 경험이 복음적 삶을 안내하는 등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첫댓글 무한경쟁 속에 내몰린 사람들...오로지 남들을 재치고 먼저 뛰어 들어야 하는 사람들..남을 디딤돌 삼아 위로 솟아야 하는 사람들..그 경쟁속에 자기를 잃고 자기안에 성공이라는 두 글자로 채워진 사람들...그 경쟁의 틀을 부수고 우리에게 온 새로운 존재. 그분은 말한다. 너 하나로 충분해...승패와 상관없어... 그냥 그대로...하마트면 열심히 살뻔했네..이제 그 분의 길..승자도 패자도 같은 한길 믿음의 길 은총의 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