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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김선태주교 교구장사목교서 실천사항
-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에서 ‘제4장 혼인의 사랑’ 일고 묵상하기 실천하기 관련한 ‘제4장 혼인과 사랑’의 내용을 [오늘의 묵상]으로 연재해 드리고 있습니다
열정적인 사랑
142.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러한 부부 사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부부 사랑은 "인간 전체의 행복을 다 포괄한다. 따라서 이 사랑은 몸과 마음의 표현을 특수한 품위로 풍요롭게 하고 또한 이 표현들을 부부 애정의 특수한 요소와 표시로 삼아 고 귀하게 할 수 있다."138) 이러한 이유로 즐거움이나 열정이 부족한 사랑은 인간의 마음이 하느님과 함께 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모든 신비가는 초자연적 사랑과 천상의 사랑 의 상징들을 우정이나 효도, 또는 봉헌보다는 부부 사랑에서 발견 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바로 부부 사랑의 전체성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139) 혼인에 관련된 감정과 성에 대하여 이제부터 찬찬히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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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사목 현장 49항.
139.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그리스도인의 사랑』(L' Amour chreien), 파리, 1920, 174면.
감정의 세계
143. 고전들에서 열정'으로 불리는 욕망, 느낌, 감정들은 혼인 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다른 이가 나타나 나의 삶 안으로 들어올 때에 생겨납니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대상을 추구하는 특성이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언제나 즐거움이나 괴로움, 기쁨이나 고통, 편안함이나 두려움과 같은 기본적 감정의 표징을 지닙니다. 이러한 감정들은 가장 기초적인 심리적 활동의 전제 조건입니다. 인간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존재이기에, 그가 행동하고 추구하는 모든 것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44. 예수님께서는 참된 인간으로서 다양한 감정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의 거부에 한탄하셨으며(마태 23,37 참조) 이러한 상황에 눈물 흘리셨습니다(루카 19,41 참조). 또한 고통을 겪는 백성들 을 보시고 연민을 느끼셨습니다(마르 6,34 참조).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셨으며(요한 11,33 참 조) 친구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한 11,35 참조). 예수님께서 이렇게 당신의 감정을 드러내신 것은 당신의 인간적 마음이 다른 이들을 향해 얼마나 많이 열려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145.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 자체로 도덕적으로 옳거나 그른 것 이 아닙니다. 140) 욕망이나 반감이 들기 시작하는 것은 죄가 되거나 비난받을 만한 일이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옳거나 그른 것은 열정으로 또는 열정에 이끌려 실행한 행위 자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감정을 촉발하고 그 감정을 살피면서 감정에 따라 나쁜 행동을 하 게 된다면, 그 감정을 더욱 키우려는 결심과 그 감정에 굴복한 악한 행위 안에 악이 존재하게 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어떤 이에게 끌리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에 대한 끌림 으로 그 사람을 좌지우지하려 한다면, 나의 감정을 오로지 이기적 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단순히 어떤 '좋은 감정을 지녔다고 해서 자기가 선하다고 믿는 것은 커다란 착각입니다. 단지 스스로가 애정이 절실히 필요하기에, 자신이 위대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는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하여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이 없고 자신의 욕구와 욕 망 안에 갇혀 살아갑니다. 이러한 경우, 감정은 고귀한 가치들로부터 멀어지고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발전시킬 수 없도록 하 는 이기심을 감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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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신학대전』, I-II, q.24, a.1 참조.
146. 다른 한편, 열정이 자유로운 행동을 이끌어 낸다면, 그 열 정은 그러한 선택의 깊이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부부 사랑은 모 든 정서 생활을 가정 전체에 이로운 것으로 그리고 가정의 공동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만들어 줍니다. 가정 구성원의 정서 생활이, 중대한 결정과 가치를 억누르거나 흐리지 않는 감수성으로 변할 때에 가정은 성숙해집니다. 오히려 이 감수성은 모든 이의 행복을 위하여 저마다의 자유를 존중하고141)이 자유에서 흘러나와 이 자유를 풍요롭고 아름답게 해 주며 더욱 조화를 이루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의 기쁨을 사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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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신학대전」, I-II, 4.59, a.5 참조.
147. 이는 훈육의 길, 곧 절제도 수반하는 과정을 요구합니다.
교회의 이러한 확신은 종종 마치 인간의 행복에 반대되는 것으로 거부되어 왔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이러한 비난을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매우 명료하게 요약하십니다. "교회가 그 모든 계명과 금기로 삶의 가장 고귀한 것을 쓰디쓴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가? 창조주의 선물인 기쁨이 우리에게 하느님의 것을 어 느 정도 미리 맛보게 해 주는 행복을 주는 바로 그 순간에 교회가 금지 명령을 내리는 것은 아닌가?" 142) 이어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비록 그리스도교에 가식과 그 릇된 금욕주의가 있었지만 성경에 충실한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 은 "에로스 그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왜곡되고 파괴적인 형태의 에로스를 물리치고자 하였습니다. 에로스를 그릇되게 신격화하는 이러한 행위는 사실상 에로스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에로스를 비인간화하기 때문입니다."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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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3항.
143.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4항.
148. 감정과 본능에 대한 훈육이 필요하며, 여기에는 때때로 제한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한 가지 즐거움에만 지나치게 빠져 있거나, 자제력을 잃거나, 집착하면 결국 바로 그 즐거움은 약해지고 병들어서144)가정생활에 해를 입히게 됩니다. 사실 인간은 열정 으로 아름다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열정은 헌신과 온전한 자아실현을 향하여 더욱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가정의 품 안에서 인간관계를 증진시켜 줍니다. 이는 강렬한 기쁨의 순간을 포기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145) 오히려 그 기쁨을 받아들이면서 관대한 헌신, 인내심 있는 기다림, 어쩔 수 없는 피로, 이상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의 순간들과 함께 어우러지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정생활은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것으로 온전히 살아갈 만할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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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신학대전』 I-II, q.32, a.7 참조.
145. 『신학대전』 II-II, q.153, a.2, ad 2 참조. "이성에 따른 성행위에서 오는 풍 부한 쾌락은 성덕의 수단에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다."(Abundania delectationis
quae est in actu venereo secundum rationem ordinato, non contrariatur medio virtutis.)
149. 일부 영적 사조에서는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욕망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기쁨을 사랑하신다고, 곧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어 우리가 "그것을 누리게 해 주신다."(1티모 6,17 참조)고 믿습니다. 하느님의 온유함 앞에서 기뻐합시다. 그분께서는 크신 사랑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얘야, •••••• 자신을 잘 보살피고 •••••• 그 날의 행복을 마다하지 마라" (집회 14,11.14). 이와 같이 혼인한 부부 도 "행복한 날에는 행복하게 지내라."(코헬 7,14)라는 성경 말씀을 따르면서 하느님의 뜻에 응답합니다. 즐거움이라는 것이 상호 사랑의 필요에 따라 삶의 여러 시기에 다양한 형식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유를 지니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의 시야를 가릴 수 있는 편협한 경험에 갇혀 있지 않으려면 우리의 의식을 넓혀야 한다고 촉구하는 일부 동방 스승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의식의 확장은 욕망을 거부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넓히고 완성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성애적 차원
150. 이 모든 것은 혼인에서의 성생활에 대한 논의를 이끕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성은 당신의 피조물들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 입니다. 이 선물을 가꾸고 그 선물이 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면 "참된 가치의 빈곤“146) 내에 이르지 않게 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는, 교회의 가르침은 "인간이 지닌 성의 가치를 부정"하도록 이끈다는 주장, 또는 "성은 출산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147)교회가 성을 단순히 용인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거부하셨습니다. 부부의 성적 욕구는 경시의 대상이 아니며, "어떠한 경우 에도 그 욕구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것“148)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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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요한 바오로 2세, 1980년 10월 22일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5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 III/2(1980), 951면.
147. 1980년 10월 22일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3항.
148. 요한 바오로 2세, 1980년 9월 24일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4항, 「교황 요 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 III/2(1980), 719면.
151.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는 열정과 성에 관한 교육이 성적 사랑의 자발성을 손상시킬지 모른다고 염려하는 이들에게 인간은 "관계의 자발성을 온전히 성숙시키라는 부르심을 받는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러한 자발성은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충동에 대한 현명한 식별을 통하여 단계적으로 얻게 되는 열매"149)입니 다. 이를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모든 이는 "인내와 끈기로 육체의 본질적 의미를 배워야 하기"150) 때문입니다. 성은 만족이나 쾌락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성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어로, 상대방이 지니고 있는 거룩하고 침해할 수 없는 가치로 상대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은 이른바 다른 차원의 자발성에 참여하게 됩니다."151)이러한 맥락에서 육체적 사랑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성의 표현이 됩니다.
이는 우리가 "혼인에서 몸의 의미와 이 선물의 참된 존엄"152)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는 몸의 신학에 관한 교리 교육에서 성적 차이가 있는 육체는 "풍요와 출산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사랑을 표현하는 능력"을 지니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바로 "그 사랑으로 인간은 선물이 됩니다."153) 건전한 성적 욕구는 비록 쾌락의 추구와 결부되어 있지만, 언제나 경외의 마음을 전제로 하기에, 그러한 충동을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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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요한 바오로 2세, 1980년 11월 12일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2항, , 「교황 요
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 II/2(1980), 1133면.
150. 1980년 11월 12일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4항.
151. 1980년 11월 12일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5항.
152. 1980년 11월 12일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1항.
153. 요한 바오로 2세, 1980년 1월 16일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1항, 「교황 요 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 III/1(1980), 151면.
152. 그래서 우리는 사랑의 성애적 차원을 용인되는 악이거나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견뎌야 하는 짐으로 여길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는 하느님께서 부부의 만남을 아름답게 해 주시려고 우리에게 주신 선물로 여겨야 합니다. 사랑의 성애적 차원은 다른 이의 존엄을 존중하는 사랑으로 승화된 열정이기에, 이는 "사랑의 순수하고 절대적인 동의가 됩니다. 이러한 동의는 인간 마음이 해낼 수 있는 많은 경이로운 것들을 보여 주며, "잠시라도 ••••• 삶은 좋 은 것이 됩니다."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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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요제프 피퍼, 「사랑에 관하여」(Cher die Liche), 뮌헨, 2014., 174면.
폭력과 악용
153. 성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 시각의 맥락에서, 이 주제를 건전한 현실주의에서 온전하게 전개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사실, 성은 종종 비인간화되고 건전하지 못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성은 "자기주장과 개인적 욕망과 본능의 이기적 만족을 위한 기회와 도구로 전락하였습니다."155) 이시대의 성은 이용하고 버리는' 사악한 정신에 지배당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만족감을 주는 한, 종종 다른 이의 육체를 이용의 대상으로 여기고, 매력이 사라지면 거부해 버립니다. 성의 의미의 왜곡으로 야기되어 상대방의 존엄과 사랑의 소명을 추한 사욕 아래 에 묻어 버리는 지배, 횡포, 학대, 성적 타락, 폭력이 여전히 존재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거나 숨길 수 있겠습니까?
154. 혼인에서조차 성이 고통과 악용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언급 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배우자의 조건이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한 부부 행위는 참된 사랑의 행위가 될 수도 없고 따라서 부부 관계의 바른 질서가 요구하는 내용에 위배된다."156)는 사실을 분명히 하여야 합니다. 부부의 성적 결합의 행위가 "참으로 인간다운 방법"157)으로 이루어질 때, 이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성의 본질에 맞갖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오로 성인은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이러한 일로 형제에게 잘못을 저지르거나 그를 속이지말아야 합니다"(1살 4,6). 비록 바오로는 여자가 남자에게 완전히 종속된 것으로 여기는 가부장주의 문화의 시대에 글을 썼지만, 성은 부부가 서로 상의하여야 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바오로는 "합의한 경우"(1코린 7,5)에는 성 관계를 얼마동안 미룰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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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 (Erngein Fiae), 1995.3.25., 23항, 한 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2(제2판 4쇄), AAS 87(1995), 427면, 「생명과 가정」, 13면.
156. 「인간 생명』, 13항.
157. 사목 현장 49항.
155.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는 부부는 "탐욕으로 위협받을"158) 수 있다고 매우 조심스럽게 경고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부는 더 깊은 결합을 요청받을 때에, 그들이 서로 다르며 적절한 거리를 두어 야 한다는 것을 잊을 위험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배우자는 저마다 자신의 고유하고 빼앗길 수 없는 존엄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우 소중한 상호 소속이 일종의 지배로 변하면, "인간관계에서 친교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하게 됩니다."159)지배의 논리에서, 심지어 지배하는 이 조차도 결국 자신의 존엄을 부인하고, 160) 마침내 더 이상 "자기 자신과 자신의 육체를 주관적으로 동일시하지"161) 않게 됩니다. 몸의 모든 의미가 박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을 일종의 탈출구로 이용하고 부부 결합의 아름다움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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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요한 바오로 2세, 1980년 6월 18일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5항, 「교황요 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 III/1(1980), 1778면.
159. 1980년 6월 18일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6항.
160. 요한 바오로 2세, 1980년 7월 30일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1항, , 「교황 요
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 III/2(1980), 311면 참조.
161. 요한 바오로 2세, 1981년 4월 8일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3항, 「교황 요 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 IV/1(1981), 904면.
156. 모든 형태의 성적 굴종은 반드시 거부되어야 합니다. 그러 므로 바오로가 에페소서에서 "아내는 ....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 니다."(에페 5,22)라고 한 말에 대한 부적절한 해석을 피하여야 합니다. 이 구절은 그 시대의 문화적 범주를 반영한 것이지만, 우리는 그러한 문화의 틀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되고, 그 구절이 전하고자 하는 본뜻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는 지혜롭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아내를 남편의 종이나 노예가 되도록 하는 모든 굴종의 형태를 배척합니다. ·•·••• 혼인으로 이룩 해야 하는 공동체나 일치는 상호 증여를 통하여, 곧 서로 순종하는 가운데 실현됩니다." 162)그래서 바오로도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남편도 이렇게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에페 5,28), 사 실이 성경 구절은 모든 이가 안일한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끊임없 이 다른 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초대합니다. "서로 순종 하십시오" (에페 5,21). 부부가 서로 순종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며, 이는 신의와 존경과 배려를 바탕으로 서로가 자유롭게 선 택한 상호 소속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부부의 우정을 위하여 남성 성과 여성성을 구별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는 상대방이 충만한 삶을 살도록 해 주는 것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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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요한 바오로 2세, 1982년 8월 11일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4항, 「교황 요 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 V/3(1982), 205-206면.
157. 그러나 성과 성애에 대한 왜곡을 거부하여야 하지만, 이러 한 거부가 경멸이나 무시에 이르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배우자들 이 저마다 모든 개인적 요구를 포기하고 자신의 만족은 생각하지 않은 채 상대방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그저 관대하며 희생적인 자 기 증여를 혼인의 이상이라고 여길 수는 없습니다. 참된 사랑은 또 한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취약함과 부족한 점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진실하고 기쁜 감사의 마음으로 애무, 포옹, 입 맞춤, 성적 결합을 통한 사랑의 육체적 표현의 수용을 거부하지 말 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베네딕토 16세께서는 이에대하여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순전히 영적 인 존재가 되기만을 갈망하고 육체를 단지 인간의 동물적 본성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 거부하려 한다면, 영혼과 육체 모두 그 존엄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163)이러한 이유로, 인간은 내려오는 사 랑, 주는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줄 수만은 없으며, 받기도 하여야 합니다.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선물로 받기도 하여야 합니다."164) 어떠한 경우든, 인간의 평정심은 깨지기 쉬우며 결코 인간답게 되지 못하는 부분이 늘 남 아 있어서, 언제든지 이것이 다시 분출하여 가장 원초적이며 이기 적인 기질을 새롭게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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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5항.
164.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7항.
혼인과 동정성
158. "혼인을 하지 않은 많은 이들은 자신의 가족에게 헌신적일 뿐만 아니라 종종 자신의 친구들 관계, 교회 공동체, 직업 생활에 힘을 쏟습니다. •••·• 많은 이들이 자신이 가진 재능을 자선과 자원 봉사 활동을 통하여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기여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와 이웃을 사랑하는 데에 바치기 위하여 혼인을 하지 않은 채로 있습니다. 그들의 헌신으로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매우 풍요로워집니다."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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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2015 최종 보고서, 22항
159. 동정성은 사랑의 한 형태입니다. 동정성은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의 중요성과 그 선포에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표징입니다(1코린 7,32 참조). 이는 또한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는"(마태 22.30) 하늘 나라의 완성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은 동정성을 권장하였습니다. 그는 예 수님께서 곧 돌아오실 것이라고 기대하여 모두가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만 집중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 다"(1코린 7,29). 그렇지만, 바오로는 동정성의 권장이 그리스도의 명령이 아니라 개인적 선택이나 바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였습니 다(1코린 7,6-8 참조). "내가 주님의 명령을 받은 바가 없습니다" (1코 린 7.25). 또한 바오로는 "이 사람은 이런 은사, 저 사람은 저런 은사, 저마다 하느님에게서 고유한 은사를 받습니다."(코린 7,)라고 말하면서 서로 다른 소명의 가치를 인정하였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은 이 성경 구절이 "혼인이 열등하다 거나" 성적인 절제 때문에 동정이나 독신이 우월하다는 주장에 대한 어떠한 근거가 되지 않는다."166)라고 말하였습니다. 모든 면에서 동정성이 우월하다고 말하는 대신에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상호 보완되어 어떤 이는 이런 방식으로 다른 이는 저런 방식으로 더 욱 온전해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예를 들어, 헤일즈의 알렉산더는 어떤 의미에서 혼인성사가 다른 성사 들보다 우월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 곧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결합" 167)이라는 위대한 실재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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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요한 바오로 2세, 1982년 4월 14일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1항, 「교황 요 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 V/1(1982), 1176면.
167. 헤일즈의 알렉산더, Classa in quor toras senentiarum Peni Lombudi, IV.
XXVI, 2 (Quaracchi, 1957, 446).
160. 그래서 "정절을 지지하고자 혼인의 가치를 축소시키는 것이 아닙니다."168) "이는 전혀 대립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 만약 특정한 신학적 전통에서 '완덕의 신분'(status perecionis)에 대하여 말한 다면, 이는 정절 그 자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복음적 권고를 바탕으로 하는 삶 전체와 관련된 것입니다."169) 그러나 혼인한 사람은 가장 높은 차원에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권고의 정신에 충실할 때 사랑에서 나오는 완덕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 한 완덕은 모든 사람이 이룰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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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요한 바오로 2세, 1982년 4월 7일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2항, 「교황 요 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 V/1(1982), 1127면.
169. 1982년 4월 14일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3항.
170. 1982년 4월 14일 수요 일반 현 교리 교육, 3항
161. 동정성은 상대방을 소유할 필요 없는 사랑의 상징적 가치를 담고 있어서 하늘 나라의 자유를 반영합니다. 동정성은 부부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사랑에 비추어 하늘 나라의 완성을 향하여 함께 나아가는 여정으로서 부부 사랑을 실천하라는 초대입니다.
또한 부부 사랑은 다른 상징적 가치들도 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부부 사랑은 삼위일체를 특별하게 반영하는 것입니다. 사실, 삼위일체는 온전한 일치를 이루면서도 그 안에 구분이 있습니다. 그런 데 또한 가정은 그리스도론적 표징이 됩니다. 가정은 하느님께서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심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강생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인간과 하나 되시어 인간의 모든 삶에 함께 하셨습니다. 부부는 서로 '한 몸'이 되어 죽을 때까지 모든 것을 서로 나누며 헌신합니다. 동정성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표징입니다. 반면, 혼인은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위한 '역사적' 표징, 곧 우리와 하나 될 것을 선택하 시어 피 흘리시기까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으신 지상 그리 스도의 표징입니다. 동정과 혼인은 사랑의 서로 다른 방식이고 그 렇게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사랑이 계시되지 않을 때 ••••·• 인간은 자기에게도 불가 해한 존재로 남게 되며 그의 생은 무의미합니다."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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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인간의 구원자」 (Rdenptor Homins), 1979.3.4., 10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1(제2판 1쇄), AAS 71(1979), 274면 참조.
162. 독신은 안일한 고독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독신은 자기 마 음대로 활동하고, 장소와 일과 선택을 바꾸며, 자신의 돈을 마음대 로 쓰고, 기분에 따라 여러 사람들과 만나는 자유를 줍니다. 여기에서 혼인한 이들의 증언이 빛을 발합니다. 동정으로 부름 받은 이들은 하느님께서 당신 계약에 너그럽고 흔들림 없이 성실하시다는 것에 대한 구체적 표징을 많은 혼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 고 이는 매우 구체적이고도 헌신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내어드릴 수 있도록 합니다. 배우자가 육체적으로 더 이상 매력이 없거나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부정의 유혹과 배우자를 떠나라고 부추기는 유혹이 많다 하더라도, 서로에게 신의를 지키는 부부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내는 병든 남편을 돌볼 수 있으며 이때 에 십자가에 가까이 다가가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고 한 약속을 새롭게 합니다. 이러한 사랑 안에서 참된 사랑을 하는 이의 존엄, 곧 카리타스를 반영하는 존엄이 빛나게 됩니다.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172) 우리는 또한 부모를
힘들게 하고 심지어 부모의 은혜도 모르는 자녀들이 있을 때에도 그들을 헌신적으로 온유하게 돌볼 수 있는 가정을 찾아 볼 수 있습 니다. 이는 그 부모들이 예수님의 무상의 헌신적인 사랑의 표징이 되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독신 생활을 하는 이들이 좀 더 넓은 마 음으로 그리고 더욱 헌신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위한 봉사로 나아가 도록 초대합니다. 오늘날 세속화는 평생을 지속하는 결합의 가치를 흐리게 하고 부부 헌신의 부요의 의미를 약화시켰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부부애의 긍정적 측면들을 심화" 173)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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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신학대전」, II-II, q.27, a.1 참조.
173. 교황청 가정평의회, 「가정, 혼인, '사실혼' ramigia Marimonioe "Lmioni di Fab), 2000.7.26., 40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8호(2001), 18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