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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묵상 스크랩 선하심과 인자하심 (시136:1~15)
Timothy Choe 추천 0 조회 312 12.02.24 17:08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주님,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저의 기쁨과 슬픔, 인생의 고락이 주 앞에서 티끌과 같도 연기와 같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136:1~4)


 

*******

시 135편14절에 이어, 오늘도 오역은 계속 되는 것 같다. 시 135:14을 개역개정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 라고 하였으나, 실제로 이 본문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For the LORD will judge His people And will have compassion on His servants (NASB)

For the LORD will vindicate his people and have compassion on his servants (NIV)

For the LORD will judge his people, and he will repent himself concerning his servants (KJV)

이 밖의 많은 한글번역본문들도 이 구절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or 변호)하시며, 그리고 그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다"의 형태로써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개역개정은 이러한 의미를, "하나님께서 자기 종들로부터 위로를 받으실 것이다"라고 번역하여, 인간에게 위로받고 영광 받으시는 신, 흡사 올림푸스의 제우스와도 닮은 신의 모습으로 호도하더니, 136편에 이르러서는, "신들의 신이시며 주관자들의 주인이신 하나님"(시136:2~3)을 "신들 중에서 으뜸이며, 주관자들 중에서 으뜸인(뛰어난) 존재"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는 번역을 하고 있다. 만물 위의 하나님을, 만물 가운데 으뜸되는 "만물의 대왕"으로 등극시킨 것이다.

*******

 

 

그러나 개정판이 어찌하든지, 시편 기자가 본래 고백하고 찬양한 136편의 하나님은 만유의 주이시며, 만유 위에 계신 초월의 존재이다. 기자는 1절에서 그 하나님의 은혜로운 품성을 먼저 노래한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다." 善(good / 히:토브)이라는 단어를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할 때에는, 善이란 개념을 가지고 하나님을 평가할 수 없고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의미하는 용어로서 "그는 선하시다"라고 사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善"의 평가를 받으셔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 분안에서만 참된 善이 출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완전하시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만이 의로우시고, 의로우신 그분에게서만이 진정하고 순수한 참 善이 나타날 수 있는 까닭이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에서 비롯되며, 이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도 분리될 수 없는 개념이다. 결국 시편기자가 136편에서 찬송한 선하신 하나님은 홀로 완전하시도 의로우신 하나님이다. 즉, 선하신 하나님은 곧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인자하심(mercy / 히:헤세드)은 히브리어법에서의 특성을 가진다. 이 단어 - 헤세드(2617) - 는 인자함이라는 개념에 한정되지 않고, "이로운 행동"까지를 포함하는 단어이다. 즉, 개념으로서의 인자, 인애는 물론이고 "친절, 도움"과 같이 실제적 행동을 수반하는 의미까지를 내포하는 단어가 헤세드이다. 보다 중요하게, 이 헤세드의 인자함은 "충실한 사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성경에서 언약과 관련되어 사용된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헤세드)를 베푸느니라 (출20:6)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헤세드)를 베푸시되 (신7:9)

 

그러나 이것은 계약에 의하여, 갑이 이행하면 을도 집행하는 기계적 계약조건에 의한 사랑이라고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구약(옛언약)의 관계 안에서 인애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이야기 할 때, 이 단어는 기계적 충실성에 의거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바탕으로 계약을 체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사랑을 주시려는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방편으로서 언약을 체결하신 것이다. 마치, 계약했기 때문에 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돈을 주고 싶어서 일부러 계약을 하도록 한 것과 같다. 이러한 개념은 우리가 죄인이고 반역자이고 무력한 존재였을 때 먼저 아들을 보내시고 심판하사 드러내신 하나님의 새언약의 성취(롬5:6~11)를 상고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결국 그분의 공의와 그분의 사랑을 동시에 드러내는 단어가 된다. 그 동의와 사랑은 참된 것으로서, 순수하고 거룩하며 합당한 것들이다. 시인은 영원에서 출발하는 이 두가지 단어를 시작으로, 신들의 신(=만유 위의 신)이시며 주관자들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홀로 큰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한다. 홀로 큰 일을 행하셨다는 것은, 그 분만이 하실 수 있는 고유의 일들을 전제로 한다. 그분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능히 해낼 수 없는 일이며, 그분께서 빼앗기시지도 않으시는 일이야 말로 하나님이 홀로 행하시는 크고 기이한 일들이다. 4절의 이 고백을 뒷받침하려는 듯, 5절~25절에 이르기까지 기자가 기록하는 것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이집트의 속박에서 건져내시고, 추격해 온 원수들을 멸하시며 홍해의 큰 구원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서사이다.

 

영원의 세계에 속한 고백에서, 만물과 분리되어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의 개념으로, 다시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의 개념으로, 그리고 피조된 인간 중 한 민족인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구원을 이루시는 구원자 하나님으로, 이렇게 시편기자의 고백은 마치 인공위성에서 점차 렌즈의 포커스를 확대하여 지구의 한 점을 향해 화면을 좁혀 가듯이,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을 묘사해 가고 있다. 이제 그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셔서, 지금 말씀 앞에 선 나에게 이 시편 기록을 통하여 동일한 고백과, 자신을 알 수 있는 관계적인 앎으로서의 지식(헬:ginosko,1097)을 허락하신다. 만유 위의 하나님, 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품성, 그리고 그 초월의 존재가 스스로의 사랑과 공의(헤세드와 토브)를 이유로, 그것을 자신의 피조물에게도 주시기 위하여 하신 모든 구원의 역사가 시편을 통하여 내 것이 된다.

 

성령께서 이러한 위대한 기록들을 보존하시고 남겨두신 이유를 생각해 본다. 누가 영원의 하나님에 대하여 맛보고서, 다시 세상 복과 쾌락과 즐거움에 경배하게 될까. 누가 영생의 기쁨, 그 초월자와의 연합을 맛보고서도 이생의 자랑과 욕심과 명예에 목을 매게 될 것인가. 그러나 내 안에 여전한 자아, 나의 자기 주장과 의지는 죄의 몸과 동조하고 협력하여 날마다 죄를 이루고자 한다. 미디어를 휴식과 정보 전달의 도구로 이용하도록 하는데 그치지 않고, 육신의 짜릿함을 채울 양식으로 바꾸어 버린다. 즐겁게 만나서 사랑하고 교제해야 할 친구들과의 만남을, 갈급한 육신의 쾌락과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배설의 시간으로 뒤집어 버린다. 육신의 강건과 생명의 연장을 위하여 필요한 식사의 시간들을, 나의 만족과 탐심을 채우기 위한 게걸스러운 폭식의 현장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사6:5).

만물 안에 갇힌 자리에서 만유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니, 내게 임할 것은 심판 밖에 없다. 이 시간 다시 고백하며, 마음을 만유 위 주님께로 돌린다. 하나님의 긍휼과 선하심을 따라 판단하시며, 죄와 허물과 이 세상에서 건지셔서 올바른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원하는 마음을 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시간 죄인되고 만물 안에 갇힌 나를 구원하셔서, 아버지의 영원의 세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풍성히 흐르는 그 연합의 자리로 건져올리시기를 원한다. 오직 십자가로, 오직 아들의 이름으로.

 

 

 

주 하나님, 이 시간 들려주신 하나님은, 만유 위에 계신 초월자시요, 또한 거기서부터 저에게로 개입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주님의 보내신 성령께선 보존된 당신의 말씀들을 통하여 저를 살리시며 눈뜨게 하십니다. 눈을 뜬 그 자리에, 벌거벗겨지고 부끄러운, 육신의 노예가 되어 세상과 죄를 향해 마음을 쏟는 저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계시되니, 그 빛으로 인하여 저의 실존의 처참함이 드러나게 되나이다. 만물 안에 갇혀서, 만물을 노래하는 타락하고 처참한 아담의 생명을 보았습니다. 아들의 피로 씻으소서. 정결케 하시고 깨끗케 하시며, 이 심령에 새롭고 정직한 영을 주셔서, 주의 영이 다스리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구원을 노래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다시 서게 하소서. I pray in Jesus name. Amen.

 

 

 

 

 

 

 

 

 

2012.2.24. Timothy Ch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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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2.24 22:24

    첫댓글 아멘! 창세전 영원에서 아들에게 준 태어난 생명을 주시려고 십자가에 자신의 아들을 내어준 그 사랑은 아버지 자신을 내어준 생명의 사건임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그사랑에 감격하여 나의 자랑 오직 십자가임을 고백합니다. 샬롬!^^

  • 12.02.25 08:52

    오, 아버지!
    저 또한 심판에만 합당합니다.
    존재물을 이용의 대상 이상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통해 육신의 짜릿함을 맛보려했던 죄악을 토설합니다.
    영생의 기쁨을 맛보고도 무엇이 부족하여 다시 육신의 즐거움을 향하나이까!
    죄의 몸을 지배하는 죄의 세력에서 나를 자유케 하소서!
    이같은 구원을 행하시는 이는 홀로 크신 일을 행하시는 만유 위의 하나님뿐이나이다.
    내게 임한 심판으로서 비천한 가운데 처한 것을 합당히 여기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자비와 긍휼을 구하나이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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