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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 전례의 실제
1. 사순시기
1) 사순절의 의미와 유래
사순절은 빠스카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설정된 40일간의 기간을 말한다. 사실 이 40이란 숫자는 그리스도께서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며 기도했던 사실에서 유래된 숫자이다. 하지만 성경 안에서 40이란 숫자는 상당히 의미 있는 숫자로 사용된 사실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구약에서는
① 노아 시대에 새 세상을 준비하는데 40주야 동안 비를 내렸고(창세 6,5-7,22)
②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기 까지 40년간 광야 생활로서 준비해야 했고
(신명29,4)
③ 모세가 하느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40 주.야 동안 재를 지켰고(신명9,18)
④ 엘리야 예언자가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가기 위해 40 주.야를 걸었다.(1열왕 19,7-8)
신약에서는
① 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40 주.야 단식하셨으며(마태4,1-11)
②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지상에 머무르셨다.(사도1,3)
성경에서 볼 때, 40이라는 수는 참회와 속죄로 우리 생활 전체의 쇄신을 촉구하며 살아계신 하느님과 만나기 위한 합당한 준비를 뜻한다. 그러므로 사순절은 부활이라는 중대한 사건을 앞에 두고 우리들 각자가 부활을 맞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한 준비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2) 사순절의 유래
부활을 준비하는 40일 기간이 오늘과 같이 처음부터 정해져서 내려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우 오래전부터 사순 시기가 존재했으며, 시간의 흐름 속에 점차적으로 발전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마에서는 처음에 부활 성야 전 주일에, 주님의 수난기를 읽는 것을 시작으로, 한 주간 동안 단식하는 것으로 예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였다. 4세기에는 3주간의 준비 기간을 가졌고, 354-384년 사이에는 예수 부활 대축일의 6주 전에 시작하는 40일간의 기간이 마련되었다. 파스카 삼일중 성 금요일과 성 토요일을 제외하면 6주간은 정확히 40일이 된다.(7일*6주-2=40) 그래서 40일의 시작은 사순 첫 주일이었고, 옛 미사경본의 사순 첫 주일의 봉헌기도에는 ‘사순절의 시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 준비 기간 중에 단식을 지켜야 하는데, 주일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쁜 날이기에 주일을 제외한 34일(6일*6주-2=34)에다가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에는 사순절 시행 이전부터 단식재를 지켜왔으므로 36일 동안 단식재를 지켰고, 이 36일은 1년의 10분의 1에 해당되고 하느님께 1년 중 에 십일조를 바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40일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40일을 채우기 위해 사순 첫 주일에서 4일(수, 목, 금, 토)을 더해서 40일을 만들었고, 따라서 사순절의 시작이 수요일, 즉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되었다.
2. 성주간
성주간으로 불리는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은 특히 주님의 수난 사건들을 기억하기 위해 발전되었다. 특별히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인 예루살렘에서 성지주일부터 부활까지의 사건들을 다루는 전례가 풍부하게 발전되었다. 성주간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 부터 시작한 한 주간으로써 성 목요일, 그리고 성 금요일, 성 토요일을 포함한다. 또한 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부터 부활 성야 미사까지를 파스카 삼일이라 부른다. 원래 성삼일은 성 금요일(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성 토요일(무덤에 묻히심) 주일(부활)을 가리켰으나, 이후 성 목요일의 주님 만찬미사를 포함하게 되었다.
1) 역사
성주간에 대한 특별한 예식들과 관습들에 대해 가장 오래된 설명은 3세기 중반에 쓰인 편지로부터 시작되는 <사도전승> (The Apostolical Constitutions v. 18,19)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침에 따르면 성주간 동안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완전한 단식을 지켜야 했고, 다른 모든 날에는 포도주와 육류를 절제해야 했다.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는 자신의 편지(260)에서 이미 그의 시대에 성주간의 특별한 예식들이 정착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6일의 단식하는 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아타나시오(295 -373) 성인은 <축일 서한>에서 이미 이 시기에 성금요일부터 시작하여 부활 주일 아침에 끝나는 성주간을 지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에제리아(혹은 에테리아)의 여행기>(381-384)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일주일 동안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 사건들을 전례 안에서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 발전
서방 전례는 예루살렘 교회의 전례를 따라 복음서에 기술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 사건을 자신들의 전례 안에서 재현하려고 하였고, 이것이 현재의 성주간의 기원이 되었다. 성주간을 ‘수난(고난) 주간’이라고 부른 중세 시대에는 예수님의 마지막 생애에 일어난 개개의 사건들에 지나치게 집착함으로써 예수님이 겪은 고통과 죽음을 파스카 신비 안에서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을 극화하여 감상적으로 묵상함으로써 예수 수난과 죽음의 참된 의미가 빛바랜 것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성주간이 기념하는 사건들을 ‘파스카 신비’라는 틀 안에서 바라보는 것이 요청되었다.
이를 위하여 교회는 1951년에 부활 성야 예식을 다시 거행하도록 하였다. 교황 비오 12세(1939-1958)는 고대와 중세 교회 때와 같이 파스카 삼일 전례를 복구, 개혁하였고, 이로써 파스카 축제 안에서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단일 축제로 연결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개혁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정신에도 반영되었다.
3. 성지 주일
성주간의 시작인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의 전례에서 특징적인 것은 미사 전 성지 축성과 성지행렬, 그리고 수난복음이다. 성지 행렬 예식은 부활대축일 일주일 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한 일을 재현하는 전례이다. 4세기경부터 예수 부활, 한 주 전 주일에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성대한 행렬’을 하였다. 이것이 동방교회에 널리 퍼졌다. 한편 서방 교회는 5세기경 이 주일을 수난주일이라고 하여 수난 복음을 낭독하였다. 9세기에 와서 이 두 가지 전통이 합쳐져서 팔마가지(종려나무가지)를 들고 행렬을 하며 수난 복음을 듣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 정착되었다.
8세기의 보비오 미사경본(The Bobio Missal)에는 성지 축성 예절과 행렬 예절이 들어 있는데, 행렬은 그리스도의 승리와 악마에 대한 보호를 상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중세기에는 행렬에 그리스도 상, 십자가, 복음서, 목각 당나귀 등이 등장하기도 했다. 1078년경 캔터베리 주교좌성당에서는 성체까지도 행렬에 등장했다. 중세기 초부터 성지 축성 예절이 미사 예절 순서를 본떠서 성대하게 진행되었으나 1955년 교황령으로 대폭 간소화되었다.
본래 성지 축성은 행렬의 도착 성당과 다른 곳에서 행해졌다. 성당에서 거행하는 성지 축성 예식은 속죄 자와 예비자들에 대해 기도하던 고대의 구마식의 일부에서 온 기도이며, 하느님의 평화, 육신과 영혼에 대한 교회의 보호, 죄에 대한 승리,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의미가 담겨 있다. 행렬에 이어 미사가 계속되는데 미사는 본기도로 시작하며 수난 복음이 뒤따른다. 신자들은 미사 중에 성지를 들고 예식을 행하고 집에 가지고 가서 집안의 벽 십자가에 끼워 보존했다가, 다음해 재의 수요일이 시작되기 전에 성당에 가져간다. 성지를 집에 보존하는 것은 악마, 천재지변, 질병으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하는 준성사적인 행위이다. 성지는 승리의 상징(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승리의 상징)이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이루어 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 전례예식
- 예루살렘 입성 예식
예루살렘 입성 예식은 명칭대로 주님께서 바로 이날 군중의 환호 속에 수난과 영광의 장소인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음을 기념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행사가 아니라, 그 내면적 의미, 곧 주님과 함께 수난의 길로 들어가고, 수난을 통해 부활한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는데 있다. 따라서 입성식은 수난 시기에 들어가는 관문이라 할 수 있다. 이날 전례의 큰 특징은 환호(기쁨)와 수난 예고(슬픔)의 교차이다.
성지가지는 원래 종려, 올리브 나무 외에 다른 나뭇가지도 사용할 수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측백나무나 향나무 가지 등을 사용한다. 종려(빨마) 가지는 승리의 상징(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 상징)이고, 올리브 가지는 평화의 상징(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화해를 시켜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날 예식의 중심은 성지가지가 아니라 행렬을 통해 드러나는 메시아이시며 왕이신 주님께 대한 신앙이다.
행렬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시편 24편, 47편을 노래하게 되는데, 백성들의 환호를 나타내므로 모든 교우가 함께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수난미사
행렬이 끝나면 수난 미사가 시작된다. 수난 복음을 봉독하게 되는데, 초와 향, 인사와 책에 십자표도 생략하고, 성서 봉독 후 책에 입맞춤도 하지 않는다. 또한 '그리스도님 찬미 합니다'의 응답도 없다.
4. 성월요일-성수요일
1970년 이전의 성주간의 독서는 수난 복음을 요일별로 읽었는데, 성지 주일에는 마태오 복음, 성화요일에는 마르코 복음, 성수요일에는 루카 복음, 그리고 성금요일에는 요한복음을 읽었다. 그러나 현재의 성지 주일에는 공관 복음의 수난기를 전례주년에 따라 배치하기에 지금 사용되는 예식서는 수난 직전 며칠 동안 일어났던 사건들을 담고 있는 복음 구절들을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 읽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성월요일에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기름을 부어 죽음을 상기시키는 내용(요한 12,1-11), 성화요일에는 유다의 배신과 베드로의 부인에 관한 예언을 담고 있는 내용(요한 13,21-38), 성수요일에는 유다의 배신 예고와 파스카 만찬 준비에 관한 내용(마태 26,14-25)을 읽도록 하고 있다. 제1독서는 이사야서의 고통 받는 종의 노래 중 3개로 구성되어 있다.
4. 성삼일
'전례력과 축일표에 관한 일반지침'은 다음과 같이 상세히 말하고 있다. "인류 구원과 하느님의 완전한 현양의 사업을 그리스도께서 주로 당신의 파스카 신비로 완성하셨으니, 즉 당신이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죽음을 소멸하시고 당신이 부활하심으로써 생명을 되찾아 주셨으니,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삼일은 전례주년의 정점으로 빛난다. 주일이 주간의 정점을 이루듯이 부활대축일은 전례주년의 정점을 이룬다."(전례력 지침 18).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삼일은 주의 만찬으로 시작되고 부활 전야제로 정점에 이르며 부활주일 저녁기도로 끝난다."(전례력 지침 19). 파스카 성삼일은 '삼일에 걸쳐 지내는 파스카'라고 정의내릴 수 있겠다.
요즘 우리는 부활시기, 부활절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사실은 빠스카라는 말이 맞는 표현입니다.
빠스카라는 말의 어원은 분명치 않다. 히브리말의 페사흐를 예수님시대의 유대인들의 일상어였던 아라메아말로 빠스카라 했고 이것이 그대로 희랍어와 라틴어로 옮겨졌다. 성경에선 빠스카 - 이집트 탈출과 직결된 의미 - 거르고 넘어간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문설주 어린양의 피 - 이스라엘 사람들을 건너고 넘어갔다. 오늘날 신학적으로는 속박에서 자유로,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간다는 뜻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빠스카에는 두가지 요소, 즉 죽음과 부활의 복합적 신비가 담겨 있는데, 부활시기라고만 하면 밝은 요소만 말하는 것 같아 미흡하다. 그리고 이 파스카 밤은 두 시기의 가운데에 위치하여 접합점의 역할을 한다.
사도시대에는 주일이외에는 다른 축일은 없었다. 초기 신자들은 매주 첫날 - 즉 주일에 모여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이 날을 주님의 날이라고 불렀다 . 그래서 주일에 미사를 봉헌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했고, 미사 자체도 부활을 기념하는 예식으로 간주되었다. 이 주일에만 이 빠스카를 기념하다가, 다음에는 빠스카 축일이 생겨났지만, 초기부터 예수님의 죽으심과 묻히심을 기억하는 성 금요일과 성 토요일에는 미사가 없었다. 다음에는 빠스카 성삼일이과 부활 축일이 생겨났고, 다음에는 준비 기간과 파스카의 밤 그리고 50일간의 부활시기가 생겨났고, 이후 평일미사의 경문등 여러 가지 축일들이 제정되면서 현대의 전례력, 성탄시기 부활시기 연중시기등이 정착되었다.
빠스카 밤(죽음, 부활의 의미)- 확대: 성금요일(죽음) - (빠스카 밤)- 부활 일요일(부활)
중세기엔 목금토의 수난 성삼일과 일월화의 부활 성삼일로 확대 1955년까지 두 개의 성삼일을 지켜왔다. 빠스카의 의미를 잘 드러내려고 하다가 확대 해석
그러다가 애매하게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빠스카 3일은 주님 만찬으로 시작되고 부활 전야제로 정점에 이르며 부활절 저녁 기도로 끝난다라고 규정. 그렇다면 성삼일이 아닌 성 사일이 되었음
1) 기원
성삼일의 기원은 예수 부활 대축일의 기원과 동일하다. 예수 부활 대축일을 예수님이 돌아가신 니산 달 14일에 지낼 것인가, 아니면 니산 달 14일 이후에 오는 주일에 거행할 것인가 하는 논쟁은 교회를 분열 위기로까지 몰고 갔으며, 결국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가 후자의 주장을 받아들임으로써 논쟁은 끝났다.
4세기에는 예수님의 죽음과 묻히심과 부활을 3일에 걸쳐 기리는 성삼일(금, 토, 일)이 나타났다. 또한 이 시기에는 복음의 내용을 사실적으로 기념하려는 염원에 따라, 최후 만찬을 기리는 성목요일 전례가 등장하였다. 파스카 신비 즉,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3일에 걸쳐 지내는 것을 목표로 한 성삼일 전례의 단일성은 성목요일 전례의 등장으로 깨지고, 결국 성삼일은 주님의 수난을 기리는 3일(목, 금, 토)이 되었다. 오랜 세월 잊혔던 성삼일의 전례는 1951년 부활 성야의 복구와 1955년의 성삼일 전례의 단일성 회복으로 본모습을 찾게 되었다.
2) 의미
인류구원과 하느님의 완전한 현양의 사업을 그리스도께서 주로 당신의 파스카 신비로 완성하셨으니 즉, 당신이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죽음을 소멸하시고, 당신이 부활하심으로써 생명을 되찾아 주셨으니, 주님의 수남과 부활의 파스카 삼일은 전례주년의 정점으로 빛난다.
파스카 삼일에 해당되는 각각의 날은 독립된 주제가 내포된 별개의 축일들이 아니라, 오히려 파스카 신비의 한 측면을 부각시켜 파스카 전례의 본뜻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 점에서 각각의 날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을 때 그 가치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각 날의 주제를 파스카 신비라는 틀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5. 성목요일
1) 역사적 발전
로마전례에 있어 4세기까지 성목요일은 참회자들을 위한 화해 예식을 거행하는 날이었기에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예식에 대한 그 어떤 언급도 보이지 않는다. 그 당시는 부활전야에 지내는 성찬례가 파스카 성삼일 동안 지내는 유일한 성찬례였다. 5세기에 들어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주님 만찬 미사를 파스카 목요일 전례에 도입하였고,7세기에 들어 큰 변화가 일어났으니, 성목요일에 다음과 같은 세대의 미사를 거행하게 된 것이다 : 참회자들을 위한 화해미사(아침), 성유 축성을 위한 미사(정오쯤), 말씀의 전례를 생략한 채 주님의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미사(오후).
8세기 말에 성유 축성 미사는 주교좌성당에서 드리되, 본당에서는 단 한 대의 성찬례(만찬 미사)만 오전 9시에서 오후 3시 사이에 드리게 되었다. 1955년 주님 만찬 미사를 저녁에 지내도록 하였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미사전례서와 전례주년을 개정할 때, 주님의 만찬미사로부터 성삼일이 시작되도록 함으로써 성금요일-성토요일-부활주일의 일체성이 다시 회복되었다. 이렇게 파스카 성삼일은 하나뿐인 파스카 신비를 역사적 차원에서 지내는 반면, 성목요일(주님의 만찬미사)은 예식의 차원에서 파스카 신비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2) 성유 축성 미사
본래 성목요일은 성토요일 부활 전야제의 준비 일로 지냈다. 그래서 부활전야의 세례식에 쓸 예비자 성유와 이를 축성할 크리스마 성유를 축성했다. 성유를 축성하는 관행은 이미 3세기 초의 문헌인 <사도전승> 제5장에 수록되어 있으며, 이 관행이 확립된 것은 8세기경이다. 이날의 독서들은 하느님 백성이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함을 보여 주는 내용이다. 강론 후에는 사제들의 서약 갱신이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사제들이 자신의 사제 직무에 충실하겠다는 것과, 자신들이 받은 사제직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기인한 것이며 따라서 세상에 선포할 예언적 사명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3) 주님 만찬 미사
성 목요일에 주님의 만찬미사를 저녁에 지냄으로써 축제적인 분위기에 싸이게 된다. 이날의 성서구절들과 기도문들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파스카 신비를 만찬예식을 드리는 중 우리에게 전달하시어, 삶의 차원에서 교회가 주님의 수난 신비에 참여하기 위해 봉사와 형제적 친교를 이루도록 하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 날 주례 사제는 흰색 제의를 입으며, 이 미사에서 대영광송을 부를 때 종을 치고 난 뒤 부활성야까지 종을 치지 않는 풍습은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본받아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을 멀리하며 검소한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시이다. 지금은 대영광송때 종을 치고 빠스카 밤까지 종을 치지 않는데, 사실 원래는 단순한 풍습이었다. 옛날에는 미사때 종을 사용하지 않고 언제나 나무 혹은 손뼉등으로 거양성체등을 알렸고 중세 전반기까지는 성당 안에 감실이 없었으므로 미사가 끝나면 으레 성체는 다른 곳으로 모셔놓았다.
말씀의 전례 끝에는 발 씻김 예식을 한다. 이 예식은 이미 아우구스티누스(354-430) 시대에도 있었으나 7세기까지는 예절 밖에서 애덕의 실천으로 행해졌었다. 로마에는 12세기에 도입되었다. 이 예식은 성찬례 제정과 형제적 사랑이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세족례는 원래 이 저녁미사에 딸린 예절이 아니었다. 옛날 많은 수도원에서 수도자들의 봉사 정신을 북돋우어 주기 위해 거행되던 관습인데, 12세기에 처음으로 로마에서 성 목요일 저녁 미사에 도입하였다.
이 날 미사 후 강복은 없고, 영성체 후 기도를 한 다음 성체를 다른 제대로 모시는 행렬이 오래 된 관습이 유지 된다. 사람들은 성체를 모시는 곳을 예수님의 무덤으로 생각했고, 사도들이 무덤을 지키지 못한 것을 우리가 기워 갚기 위해 그 제대를 교대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지금은 감실의 의미) 성체를 옮기고 나면, 성당 안의 십자가는 미사 중 흰색으로 덮었던 것을 자색으로 가리고 제대 보는 벗긴다. 제대 보를 벗기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옷을 벗기우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부활하신 날까지 아무런 감사의 제사가 없음을 의미한다. 성당 입구의 성수 그릇도 비운다.
예식이 끝나고 돌아오면, 제대 보를 벗기는데 예전 같이 시편 22장을 외우지 않고 침묵 중에 제대 보를 벗긴다. 이는 예수의 십자가상의 옷 벗김을 상징한다. 오늘날 부활까지 미사성제가 없음을 드러내준다.
성삼일 동안 성당의 감실 안에 성체가 없는 것은 예수 께서 사흘간 살아 계시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흔히 신자들은 성체를 옮겨놓은 다른 감실을 마치 예수님의 무덤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성목요일예식도 단순히 옛날의 역사적인 사건을 기계적으로 되풀이 하는 연극이 아니다.
6. 성금요일
1) 역사적 발전
교회는 파스카 성삼일의 첫날인 성금요일에 성대한 말씀의 전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신비를 기념한다. 그 기원에서부터 완전한 단식을 거행하는 날인 성금요일에는 성찬례를 거행하지 않았다. 이미 2세기에 성 유스티노가 말한 순서와 같이 독서들을 봉독한 다음 성대한 신자들의 기도 또는 "보편지향기도"라 불리는 기도를 바쳤다.
성찬례 대신 십자가 경배 예식을 거행하는데, 이 예식의 기원은 4세기 예루살렘 교회에 두고 있다. 예루살렘의 주교였던 성 치릴로와 예루살렘 여행기를 쓴 에제리아(혹은 에테리아)가 증언해주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예식은 4세기에 이미 예루살렘에 존재하였다.
로마전례의 옛 관습을 보면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였지만 영성체로 성금요일 예식을 마쳤다. 인노첸시오 3세(1198-1216) 이래로 집전 사제만이 영성체를 하였으나, 1955년 비오 12세에 의해 이루어진 성주간 예식의 개정 때 많은 논란 끝에 신도들도 성체를 영할 수 있는 관습이 복구되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오후 3시경 거행되던 십자가 경배 예식은 중세를 거치면서 점차 이른 시간에 하게 되었고, 16세기에는 예식 시간이 아침으로 고정되었다. 그러나 1955년 예식서는 회중이 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오후 또는 저녁 시간으로 정하였고, 말씀의 전례, 십자가 경배, 영성체로 된 전통적 예식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성금요일은 빠스카 신비 전체(죽음, 부활)중에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날. 더불어 단순히 수난의 길을 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 길을 가게 한 우리들의 죄를 슬퍼하며 통회해야 한다는 뜻이 있다.
2) 말씀의 전례
이 날은 입당 성가가 없으며, 주례사제는 입당하여 바로 제대 앞에 엎드린다. 부복하는 것은 인간이 구원받기 전에 흙으로 된 인간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속죄와 겸손, 고통과 간청의 의미를 지닌다. 제1독서로는 고난 받는 종의 노래(이사 52,13-53,12)를, 제2독서로 예수님의 죽음이 내포하고 있는 구속적 특성에 관한 내용(히브 4,14-16; 5,7-9)을, 복음으로는 요한의 수난기(요한 18,1-19,42)를 읽는다. 또한 이 예절 중에는 10가지 보편 지향 기도가 있는데 이는 구원과 연결된 것이다. 이 10가지 보편 지향 기도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일부 기도문(그리스도인의 일치, 유대인을 위한 기도,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한 기도)을 고치고 특히 이슬람교인 들을 염두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는 믿지 않으나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첨가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신 바로 그 날에 이 기도를 한다는 것은 묵상해 볼 만하다.
1. 말씀의 전례
원래 성 금요일에는 말씀의 전례뿐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예식이 덧붙여짐
2. 십자가 경배 : 예루살렘 수난 현장에서의 십자가 경배 예절이 4세기 말경부터 점차 널리 퍼짐. 십자가를 경배하는 태도는 엄숙해야 한다. 비탄의 노래는 희랍어와 우리말로 후렴을 하는데, 이것은 구세주께서 겪으신 가장 굴욕적인 순간을 묵상하는 동시에 그 분의 불사불멸과 천주성을 고백하는 노래다. 역시 빠스카 신비를 기리는 환호이다.
3) 십자가 경배
성금요일의 예식은 사도 성 요한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십자가 신학을 드러내고 있다. 이날은 교회가 애도를 표하지만, 사실 인류 구원의 원천인 십자가 제사를 고마운 마음으로 묵상하는 날이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은 그분의 부활의 영광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런 뜻에서 "복된 수난"과 같은 전형적인 전례적 표현도 이해된다.
이 같은 구원론적 십자가 신학은 성금요일 전례에 나오는 기도문들뿐만 아니라 특히 이날 사용되는 성서독서들 안에도 드러나고 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성금요일에는 단식을 행하였는데, 이날 하는 단식을 의미심장하게 "파스카 단식"이라고 불렀다. 이미 예수께서 지적하신 대로 "신랑을 뺏기는 날" 제자들도 단식을 하는 것이다(루가 5, 33-35 참조). 그러나 가능하다면 이 단식을 부활전야의 성찬례까지 연장하여 "고상하고 감수적인 마음으로 주의 부활의 즐거움에 다다르도록" 권하고 있다(전례헌장 110 참조). 이런 성금요일의 단식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사에 참여함을 드러내는 성사적 표지이다. 이날 신자들의 경배를 위한 십자가는 하나만 사용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오직 한 분뿐이심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십자가를 가리는 풍습
성 목요일에 주님 만찬 미사가 끝난 후부터 성 토요일까지 성당 안에 있는 십자가는 딴데로 옮기거나 옮길 수 없으면 보로 가리운다.
아주 옛날에는 예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십자가에 금이나 은 보석을 박아서 화려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순절이 되면 화려한 십자가를 가리우고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했었다. 여기서 십자가를 가리우는 풍습이 유래되었다. - 지금은 화려한 십자가가 없기에 사실은 좀 유명무실해 진 경향이있다.
4) 영성체 예식
이 부분은 가장 늦게 들어온 예식이다. 초세기 에는 없다가 중세 초기에 사제만 혹은 사제와 일부 신자가 영성체 하던 것이 1956년 이후 모든 신자들의 영성체가 허용되었다. 영성체를 부활의 성사로 보면서, 부활 성야에 새롭게 영성체하기 위해 이처럼 보류해 왔던 것이다. 영성체 후 남은 성체는 성당 밖의 임시 감실이나 성당 안 감실에 안치한다. 성체를 모신 후 잠시 침묵 시간을 가진 다음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치고, 이어 백성을 위한 기도로 파견 예식을 대신한다. 두 기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백성의 구원을 말함으로써, 파스카 금요일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애도하는 날이 아니라, 부활의 기쁨 속에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는 날임을 드러낸다.
영성체
이날은 원래 미사가 없으니, 영성체도 없었다. 그러나 1955년 비오 12세께서 신자들이 이날 모든 이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예수님의 성체를 영함으로써 더욱더 당신 구세사업의 효험을 힘입게 하려고 영성체를 허용하였다. 그런데 영성체를 허용했으면 미사도 허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옛날에는 평일에는 미사를 드리지 않았고, 본디 주일에만 미사를 드렸기에 평일에는 미사가 없었던 것이고, 이날도 빠스카 밤과 연결된 빠스카 축제일였기에..
미사를 부활잔치로 해석하는 경향이 두드러져서. 하지만 미사는 빠스카 신비의 재현이고 죽음과 부활의 의미가 있는데 미사를 부활잔치(밝은면)로만 생각하기에 영성체만 허용한 것이 아닌가싶다.
7. 성토요일
2세기 이래 성토요일에는 엄격한 단식을 행하였으며, 따라서 영성체도 하지 않는, 성찬례가 없는 날이 되었다. 이날 서로 만나는 기쁨을 포기하기 위해서 모임도 갖지 않았다. 성삼일의 일체성이 사라진 오랜 기간 동안 성토요일의 본래 뜻도 상실되었으니, 이날 아침 부활전야 예식을 미리 앞당겨 거행하기도 하였다. 1955년 비오 12세의 개혁 때 성토요일의 "무성찬례"(無聖餐禮) 성격이 복구되었다.
이날 교회는 시간전례를 거행하기 위해서만 모일 뿐이다. 기도 중 교회는,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승리를 가져오는 투쟁, 영광을 가져올 투쟁 후에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쉬시는 것을 기념한다. 이날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세계에 내려가시어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서 복음을 선포하신"(1 베드 3, 19) 구원신비를 묵상한다. 이날 교회는 "사람의 아들은 죽음을 당한 후 삼일 후에 부활하여야 한다."(루가 9, 22)는 주님의 말씀이 실현되기를 기다린다. 따라서 성토요일은 신앙과 희망의 표현인 참회로 특징을 이루는 날이다.
8. 부활주일
1) 역사적 발전
2세기에는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하나의 전례 행사로 지냈고, 그것은 이미 신약성서에 반영되어 있다(1코린 5,7이하). 성 멜리또(190년경)의 저서 <부활절에 관하여>에 따르면 초대 교회의 수난과 부활의 단일 축제는 유다인 들의 과월제를 그리스도교화한 것이라고 암시한다. 떼르뚤리아누스(225년경)때의 부활절 축제는 밤새워 가며 지냈고, 세례식과 함께 행해졌다고 하며, 이것은 이미 로마서 6장에도 암시되어 있다. 4세기에는 전례력이 발달되어 부활 전야제 예식이 부활을 겨냥하여 행해졌다. 이때쯤 부활초 예식이 그리스도를 빛으로 상징하여 도입되었다. 4세기 중엽에 부활 찬송이 만들어졌는데 7세기에 로마의 일부 교회에서 불리다가 11세기에는 교황청 전례에 도입되었다. 8세기 중반 이후 부활 성야 예식을 드리는 시간이 점차 앞당겨지다가 1570년의 <미사경본>은 파스카 토요일 아침에 드리도록 정해졌다. 이는 밝은 대낮에 그리스도의 광명이 온 누리에 퍼지기를 기원하는 예식을 거행하기 위함이 목적이었지만, 이로써 파스카 삼일의 일체성이 훼손되고, 부활 성야로서의 상징성이 상실되었다.1951년 성주간의 전체적인 재손질이 이루어져 부활 전야제 예식이 성토요일 늦은 밤에 거행하는 것으로 되돌아왔다. 1970년의 <미사경본>은 부활 성야가 성삼일의 정점이자 ‘모든 전야제의 어머니’임을 확인시켜 주면서, 밤이 시작된 다음에 예식을 시작하고 주일 새벽 전에 마치도록 규정지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로마전례의 부활전야 예식은 본래 로마 것이 아닌 요소들의 첨가로 인하여 더욱더 화려해졌는데, 예를 들어 부활전야의 시작부분을 이루는 빛의 예식이 바로 그것들이다.
2세기 이래로 부활전야에는 세례성사를 거행하는 것이 특징을 이루게 되었다. 이날 읽는 성서독서들 역시 물과 성령 안에서의 세례를 통하여 실현된 부활신비들을 예형적으로 선포하고 있다(새 세상과 새 인간의 창조, 세례, 하느님의 약속, 부활 …). 이어 성찬례를 지냄으로써 부활전야 예식을 끝맺는데, 새로 영세 받은 이들은 처음으로 성찬례에 참여하게 되는 셈이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른 전례개혁 이후에도 부활전야는 세례성사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가능하다면 세례서원의 갱신 예식만을 거행할 것이 아니라 세례거행을 실제로 거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활전야 예식은 부활의 기쁨 가운데 행해지는데, 참된 파스카 성찬례인 이날의 성찬례로 예식을 마감하기까지 절정을 향해 상승 운동을 계속한다. 불과 초의 축복 그리고 부활찬송으로 이루어진 준비예식 다음에 말씀의 전례를 거행하는데, 이를 위해 9개의 독서가 마련되어 있다. 이어 세례성사를 거행하고 성찬례가 그 뒤를 따른다. 부활전야 예식을 이루는 여러 의식들은 말씀의 선포와 입교성사를 통한 그 말씀의 실현과 함께 부활신비를 뚜렷이 드러내주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부활전야 예식이 드러내고자 하는 근본 상징은, 이 밤이 "밝게 비추인 밤"이자 "낮에 의해 정복당한 밤"이라는 것이며, 여러 상징들을 통하여 은총의 삶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부터 솟구쳐 나왔음을 보여 준다. 이렇게 부활전야의 성격상 밤에 전례를 지내야 한다. 어둠에서 빛으로, 밤에서 낮으로의 바뀌는 것과 같은 실감나는 상징은 그 어떤 추상적 개념보다 그리스도와 우리 안에서의 파스카 신비의 실체를 더 잘 표현해준다. 이날의 예식은 빛의 예식 + 말씀의 전례 + 세례식 + 성찬의 전례로 구성이 된다.
빠스카 축제는 사순절을 끝마무리하는 대단원인 동시에 부활절의 시작이기도하다.
빠스카 축제의 시작 시간은 초기부터 지역 별로 조금씩 달랐으나, 끝나는 시간을 대부분 비슷 -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시간 주일 아침 해가 뜬 후에 예식을 끝냈다.
이렇게 밤에 시작해서 해가 뜬 후에 끝내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시간에 맞추려는 역사적인 동기뿐 아니라, 빠스카의 신비를 뚜렷이 드러내려는 전례상의 상징적인 동기에서 비록했다. 즉 빠스카 신비의 어두운 면(수난)과 밝은 면(부활)을 재현하기 위해 예식을 어둔 밤에서 l작하여 해가 뜬 밝은 아침에 끝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 본당 편의상..
2) 빛의 예식
원래의 이 예식의 의미는 암흑, 죽음에서 기쁨으로 넘어감을 뜻한다. 2-3세기 때 세례식에서 빛의 예식이 있었고, 4-5세기에 부활성야 예식 때 로마 전체에 불을 밝히는 관습이 있었다. 부활초 점화는 8세기에 정착되었다.
주례자는 성당 문 밖에서 새 불을 축성하고 이 불로 부활초에 불을 붙이는데, 이 때 부활초에 십자형을 그리고 그리스 글자 알파와 오메가를 써넣고 그해의 햇수를 그려 넣는다. 이 때 성당 안은 모든 불이 꺼져 있고 어둠 속을 부제가 불 켜진 부활초를 들고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부제나 사제는 행렬 중 세 번 멈추어 큰 소리로 “그리스도의 빛”이라고 노래한다. 이때 초를 손에 들고 있던 신자들은 부활초에서 불을 붙인다. 부활초 행렬이 제단에 도착하면 성당 안은 환히 불을 밝힌다. 부활초를 제대 옆에 세운 다음 부활 찬송(Exultet)을 노래한다. 이 노래가 끝나면 신자들은 들고 있던 초를 꺼 옆에 놓는다. 불을 축성할 때의 활활 타오르는 불은 하느님의 현존과 출현을 의미한다. 부활초를 축성할 때에는 매년 한 개만 축성해야 하고 새로 만들어야 한다. 부활초에서의 아라비아 숫자는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해가 거저 주어진 은총에 힘입음을 상징하는 것이며, 5개의 향덩이는 그리스도의 오상을, 향덩이의 색깔이 홍색인 것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피 흘림을 상징한다. 또한 밀초는 동정 마리아의 잉태를 상징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느님인 동시에 참 사람임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활초를 점화하는 것은 신과 인간의 접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행렬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를 때 비로소 구원된다는 의미이다.
부활 찬송에는 암브로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이 많이 혼합되어 있는데, 광명과 구원의 사상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 있다. 서론에서는 찬미에의 초대와 대화를 하는데 이는 신자들의 마음을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며, 본론에서는 찬미의 동기가 설명되고 청원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청원은 호칭, 업적 나열, 상황 설명, 성삼 찬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영광송으로 끝을 맺는다.
빛의 예식
원래 어두운 방을 밝히기 위해 촛불을 켜놓는 관심에서 기원했다. 밤이니 당연히 불이 있어야 했고, 그래서 현재 처럼 상징적인 의미는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촛불을 켜놓고 모임을 준비하는 것은 부제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부제가 있는 경우 빛의 예절에 초를 들고 부활 찬송을 한다.
그러다가 후에 이집트를 탈출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불기둥을 상징하는 것으로 자리잡는다. 즉 하느님은 당시에도 그러했듯이 언제나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이 촛불이 상징한다. 그래서 행렬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후대에 연필로 십자가를 긋고, 향덩이를 꽂는 예식이 첨가 되는데, 이 초는 불기둥의 상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빠스카 신비를 상징하게 되었다. 다섯 개의 향덩이는 그리스도의 다섯 개의 상처를 상징한다. 따라서 빠스카 초는 죽음과 부활을 잘 드러내 준다고 하겠다.
3) 말씀의 전례
그리스도의 부활 신비로 정점을 이룬 구원 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성서 독서들로 구성된다. 구약 독서 7개와 신약 독서 1개 그리고 복음 낭독을 하는데, 이러한 것은 초세기 때 일반 예비자들을 교육하던 내용이기도 하다.
사목적 이유가 있을 경우 구약 7개 중 2개 또는 3개만 할 수 있으나 홍해를 건너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 탈출기 14장은 부활 신비의 표상이라는 점에서 생략할 수 없다.
독서 사이사이에 화답송과 성서 찬가 그리고 기도들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구성은 밤 기도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독서 후의 기도들은 6-7세기에 만들어진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에 나오는 것들로써 독서의 내용을 반향 하는 것들이다.
구약 독서 후 제대 위의 촛불을 켜고 대영광송을 부르는 동시에 종을 울리면서 부활의 기쁨을 드러낸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를 따르게 됨을 말하는 신약 독서 후, 사순시기 동안 절제하였던 기쁨과 찬미의 환호인 알렐루야를 노래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복음을 선포한다.
초대교회에는 지역마다 독서의 수가 달랐으나 오늘날에는 아홉 개 혹은 네 개의 독서를 하도록 되어 있다.
조용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느님께서 일찍이 당신 백성을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묵상하며, 또한 이 구원의 빠스카 업적으로 완전한 구원을 이루시도록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것이다.
빠스카의 역사인 구세사의 줄거리를 더듬으며 빠스카 신비를 묵상하는 것이다.
1독서
옛날의 독서에는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그 전통을 따라 현재도 독서의 첫머리에 창세기 1장을 읽는다. 또한 빠스카 신비는 새로운 창조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첫 창조에 관한 말씀을 듣고 창조의 신비를 묵상할 필요가 있다.
2독서
아브라함의 제사에서 이사악은 인류를 상징하고 그를 대신하여 번제물로 바쳐진 수양은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3독서
말씀의 전례에서 특별한 사목적 이유가 있으면 구약 독서의 수를 줄일 수있으나 이 탈출기 14장만은 절대로 생략할 수 없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를 건넌 것은 빠스카의 첫 사건이기 때문이다. 홍해의 물은 세례를 예표한다.
4독서
이사 55-1
물있는데로 오너라는 말씀은 세례를 상기
그러나 전체적으로 영원한 계약을 강조하고 있으니 신자들의 성세서원 갱신에 부합하는 내용이다.
이사 54,5
구세주의 자비
6독서
우리의 빠스카를 윟나 지혜의 길을 가르치고 있다. 주님의 광채와 빛 속에서 걷는 것이 곧 그 지혜의 길이다. ld 말씀의 전례에서 주님의 빛은 촛불로 상징되고 있다.
7독서
에제
깨끗한 물은 세례를 예표하고, “새 마음”은 빠스카의 새로운 정신을 가리킨다.
4) 세례식(세례갱신식)
- 왜 부활축일날 세례식을 거행하는가? 세례의 바탕이 부활이요 세례가 부활의 의미를 성사 적으로 실현시켜 주기 때문이다(그리스도와 함께 죽음과 부활). 세례는 부활의 신비를 성사 적으로 실현(죄에서 죽고 주님 안에서 새로 태어남)하고,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 신비에 동참하고 있음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부활 성야 예식의 의미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사실 부활은 세례의 공식적인 집전일이다. 세례는 세례대 주위에서 행해진다. 이때 세례대가 멀리 있으면 부활초를 앞세워 행렬을 한다. 이 행렬 때에는 “모든 성인의 호칭기도”를 노래한다. 행렬이 세례 대에 도달하면 세례수의 축성이 뒤따른다. 세례수의 축성을 위해 부활초를 물에 잠기게 했다가 꺼낸다. 세례 받을 이가 없고 세례수도 따로 보관하지 않을 경우에는 신자들에게 세례를 상기시켜 줄 성수를 축복한다. 세례 후 또는 성수 축복 후 이미 세례를 받은 신자들은 세례 서약 갱신 식을 함으로써 자신이 세례를 받으면서 다짐한 신앙을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세례수 또는 성수를 신자들에게 뿌려 준 후 보편 지향 기도를 바친다.
5) 성찬의 전례
이 날의 성찬례는 역사적인 성찬례를 거행하는 것이기에 그 의미가 다르다 하겠다. 이 날 처음으로 영성체를 하게 될 새로 세례 받은 이들에게 제물을 바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감사송은 희생된 파스카 양인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다시 한 번 노래한다. 끝으로 마침 예식 때 백성들에게 성대한 축복을 베풀고, 이어 알렐루야를 두 번 덧붙인 파견의 말로 부활 성야를 마친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에 그 기원을 둔 사도시대의 전통을 따라, 그리스도의 성교회는 여덟쨋 날마다 빠스카 신비를 경축한다. 바로 이 때문에 이 날을 합당하게도 주의 날 혹은 주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날에 신자들은 함께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미사 성제에 참여함으로써 주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과 영광을 기념하고, 하느님께 감사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게하신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일은 근원적 축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이 외에도 일요일이라는 의미는 태양의 날이라는 의미 -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부활을 상징
9. 부활 대축일
성삼일의 마지막 날이자 부활 시기의 첫 날을 장식하는 날로써, 원래 부활 성야가 새벽녘에 마치는 까닭에 별도의 전례를 거행하지 않았다. 그러다 주일에도 전례를 거행하기 시작한 것은 부활 성야를 자정 전에 마치는 관행이 자리 잡으면서부터였다.
부활 성야는 토요일 자정 전에 드려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예수 부활 대축일의 성찬례이므로 부활 대축일에 다시 성찬례에 참석할 의무는 없다. 그리고 이날 성찬례의 주제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하하고 기뻐하는 점에서 부활 성야의 주제와 다르지 않다. 성금요일이나 성토요일이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부활의 신비 안에서 기념하듯이, 주일의 명칭이 ‘예수 부활 대축일’이라고 해서 주님의 부활만을 별도로 기념한다는 것은 아니다. 부활이 뜻 깊은 것은 바로 수난과 죽음이 있었기 때문이며, 이 각각의 사건들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신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부활주일
파스카 밤 미사가 해가 뜬 후에 끝났기에 빠스카 밤 미사는 주일 새벽 미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날 미사는 없었다. 빠스카 축제가 성삼일로 확대된 후부터 부활 대축일 낮 미사가 생겼다. 그러나 미사경본에 보면, 오늘날에도 미사는 비록 밤중에 드리게 되더라도 부활주일 미사다. 따라서 필요 없는 경우에는 낮미사를 봉헌하지 않아도 된다.(수도원이나 기타 등등)
하느님께서는 역사상의 사건ㅇ르 통해 우리에게 빠스카 신비를 보여 주셨다. 그렇기에, 이 신비를 설명하려면 필연적으로 그 역사적 사건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사건은 무엇보다도 이집트 탈출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다. 따라서 신약의 빠스카와 그 전례 행사를 해설할 때는 이 두사건과 반드시 결부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단순히 옛날 이야기를 하는데 그쳐서는 안된다.
성목요일의 주님 만찬 미사때의 세족례, 성지 주일의 예루살렘 입성식에서의 빨마 가지 들고 행렬, 부활대축일 미사때의 빛의 예식등 이런 예식들은 구세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전례적으로 표출하는 행동이지만, 그 보다 우리 자신의 빠스카를 위한 상징적인 행동으로도 해석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사도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당신이 섬기러 오신 것을 보여주셨듯이 우리도 서로 봉사해야 하고, 예루살렘 사람들 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들어야 한다. 이렇게 우리가 받아들이려고 할때 성주간 전례는 연극처럼 반복되는 예식이 아니라,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살아있는 빠스카 예식이 된다.
참고 도서
1. 『교회의 전례로 함께 기도하고 묵상하자』, 도요안 신부, 가톨릭 출판사, 2010.
2. 『성지 주일·성삼일 예절 준비와 해설』, 천주교대구대교구전례위원회,
가톨릭출판사, 2009
3. 『전례와 생활』, 최윤환 신부, 수원가톨릭대학전례연구소, 2006.
4. 『전례주년과 파스카 신비』, 백 플라치도, 분도출판사, 1983.
5. 『전례학』, 통신신학교육부 엮음, 가톨릭교리신학원, 2007.
6. 『제대와 감실의 싸움』, 김인영 신부, 분도출판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