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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개통된 북악산 등산로
▲청와대 관람 약도
▲운동기록과 렘블러 괴적
▲3호선 전철 경복궁역에 내리니 이동 통로에 청와대 가는 길 안내 표시가 바닥에 붙어있다.
▲국립고궁박물관&경복궁 담장을 따라 가면 청와대 세군데 개방문 중 왼쪽에 있는 영빈문으로 이어 진다.
▲영빈문 앞 쪽 화단에 백합꽃이 탐스럽게 활작 피어 있다.
▲청와대 앞 분수대.
▲영빈문에서 관람 신청자 확인받고 입장하여 첫번째 관람할 영빈관으로 이동중 전 깁대중 대통령의 기념 식수도 보이고,
▲07시가 조금 넘은 시각인데도 벌써 대기 줄이 길다. 보통 한 곳에서10~15분 정도 대기해야 입장 할 수 있다.
▲영빈관 현관앞
▲왼쪽의 석조 기둥들은 거대한 통돌로 깍아 만든 기둥으로 규모가 굉장하다.
▲영빈관 내부,샹들리에도 화려하고
▲100여평의 국빈 만찬장으로 사용하던 곳
▲금색의 봉황문양과 태극문양이 샹들리에 불빛에 실내가 더욱 화려하게 보인다.
청와대 영빈관
영빈관(迎賓館)은 대규모 회의, 외국 국빈들 영접, 여러 공식 행사 등을 개최하는 건물로
1978년 12월에 준공됐다
현재 청와대 경내의 현대식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1층은 대접견실로 외국 국빈의 접견 행사를 치르며 2층은 대규모 오찬 및 만찬 행사를 하는
곳으로 무궁화와 월계수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하지만 용도가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지는 않다고 한다.
수용 인원은 250명 정도인데 숙소가 따로 없으며 한국적인 멋을 느낄 수 있는 장식이나
시설도 부족해 오·만찬 장소로 이용되는 거대한 연회장에 가깝다.
과거에는 청와대 내에 국빈을 맞이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조선호텔, 워커힐호텔 등을 활용하거나 한국의 집[내용 1]을 영빈관으로 사용했다.
1958년 이승만 정부는 영빈관을 짓기 위해 장충단공원을 국유화하여 공사를 시작했다.
4·19 혁명과 5·16 군사 정변으로 공사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1967년 2월 신라호텔
영빈관이 완성됐다.
하지만 국빈 위주로 운영되어 경영난을 겪었고 결국 1973년 일반에 매각되어
지금의 신라호텔이 되었다.
이후 청와대 내에서 행사를 치를 공간이 필요하고 국가 위상에도 걸맞지 않다는
주장이 계속되었고 조선 시대 때 농사를 장려하는 뜻에서 만들었던 경농재(慶農齋) 옛 터에
지금의 영빈관을 짓는 공사를 1978년 1월 시작했다.
영빈관은 그해 말에 완성되었고 1998년 10월에는 주변의 노후 건물들을 정비해 2000년 6월 새롭게 단장했다
▲관람 동선은 안내소에서 받은 팜플렛을 보고 따라가면 큰 도움이 된다.영빈관을 구경하고 청와대 본관 방향으로 이동중
▲전에는 TV뉴스에 매일 방영 되다시피하는 대통령 집무실 등등이 있는 청기와 지붕의 청와대 본관 건물
청기와 1만 5천 장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여기에도 줄이 길게 서 있다. 10여분 정도 기다리니 입장이 된다.
청와대 관람 동선은 어디나 한 방향으로 만 해야한다.
청와대 본관
본관(本館)은 대통령의 집무 등에 사용되는 본 건물로 1991년 9월에 신축되었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으며 국무회의가 열리는 장소이다.
과거에는 수석보좌관 회의도 이곳에서 열렸다.
공간이 필요 이상으로 넓고, 업무와 소통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의전만을 위한 건축물에
더 가깝다는 비판도 존재하여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공식적인 업무만 이곳에서 보기로 하였다.
본관 출입시에 사용되는 청와대 정문은 11문이라고도 부르며, 국무회의 때 장관급 이상이 출입하는 곳이다.
출입증을 보이고 얼굴 대조를 거쳐 통과가 허용된다. 내부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당일에 일부 공개된 바 있다.
전통 목구조와 궁궐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2층 본채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단층의 별채가
배치되어 있고 팔작 지붕을 올린 뒤 한식 청기와 15만 장을 이었다.
지붕에 올린 청기와 모습을 자세히 보면 수키와와 암키와, 수막새와 암막새 등 일반 기와 이외에
잡상(雜象)·취두(鷲頭)·용두(龍頭)·토수(吐首) 등 궁궐에서 볼 수 있는 장식 기와를 사용했다.
본관 1층에는 영부인의 집무실과 접견실인 무궁화실, 규모가 작은 오찬·만찬이나 다과 행사 때
사용하는 인왕실이 있다.
2층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 소수 인원이 참석해서 회의하는 집현실, 소규모 인원이
식사하는 백악실이 있으며 건물 앞의 잔디 마당은 국빈 환영 행사나 육·해·공군 의장대, 전통의장대
사열 등이 이루어진다.
서쪽 별채인 세종실은 국무회의와 임명장 수여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며 동쪽 별채인 충무실은
중규모 오찬·만찬이나 간담회 등이 열리는 장소였다.
▲청와대 현관 앞, 귀빈이 탄 차가 이곳에 도착하면 바로 집무실로 안내를 받던 곳
▲본관 중앙 계단, 2층에서 대통령이 내려오는 모습이 뉴스에 소개되곤 하던 그 본관 내부
▲인왕실,노무현 대통령 때 걸었던 통영항 그림, 이명박 대통령 때 떼었다가 문재인이 다시 걸었고. 현재까지 붙어있다.
▲만찬이나 오찬을 했던 인왕실
▲붉은 카펫이 인상적이다. 건물 내부 입장은 덧신을 신고 들어가야 하고 나올 때 벗어 놓고 나온다.
▲완전히 국민 품으로 돌아온 대통령의 집무실
▲대통령 집무실, 이곳에서 결재하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격세지감이다.
▲넓은 집무실 공간
▲집무실 옆 접견실
▲1층의 영부인 집무실
▲무궁화실 내부 모습
▲영부인 집무실 옆 방에 역대 영부인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복도에도 휘황 찬란한 샹들리에가,
▲본관 관람을 마치고 나와서, 내가 여기에 들어와 볼 기회가 주어지다니?
▲본관 앞 잔디광장.
▲휴게실 식수도 준비 되어 있다.
▲본관을 나와 뒷산으로 올라 미남불, 오운정 관저쪽 방향으로 이동 한다.
▲가파른 계단길을 올라 미남불에 도착 통일 신라시대에 제작 되었다고.
▲본래 경주에 있던 것을 일제가 남산총독 관저로 옮기고, 다시 이곳 청와대로 총독 관저가 이전하면서 옮겨오게되었다.
아마도 원래의 경주로 다시 내려가게 될 수도 있을거란 설이 있다.
▲오운정 앞에서 본 청와대 경복궁 광화문등 서울 시내와 남산 서울 타워
▲경복궁 후원에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지은 오운정, 오색 구름을 뜻하는 이름의 오운정,
▲인수문, 대통령 관저 출입문
▲가까이 들어가 볼 수는 없어도 문을 열어두어 내부를 볼 수 있다.
▲드레스룸 내부, 거실 침실 식당 만찬장 가족침실 등등 엄청 넓고 큰 규모의 내부를 보고 국민들의 엄청난 세금으로
이렇게 호사를 누리고 살았다니? 세상과 단절된 현대판 구중궁궐 이고, 영욕의 공간이라 생각된다.
▲관저 뒷 편에서
▲상춘재
상춘재(常春齋)는 청와대의 정원인 녹지원 뒤에 위치한 전통 한옥으로, 외빈 접견 등에 사용되는 곳이다.
상춘재의 뜻은 '봄이 늘 계속되는 집'이다.
지금의 상춘재 자리는 일제 시대 때 일본식 목조 건물인 매화실(梅花室)이라는 별관이 있던 자리다.
약 66m2 규모의 크기였다.
정부 수립 이후 상춘실(常春室)로 바뀌었는데 다과나 만찬 행사 등 의전용 건물로 쓰였다.
이후 1978년 3월 상춘실을 헐고 73m2 규모의 천연슬레이트 지붕의 양식 목조건물인 상춘재를 신축했다.
1982년 11월 기존 상춘재를 헐어버리고 417.96m2 규모의 한옥을 반년 만에 완성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청와대 경내에 건립된 최초의 전통 한옥인데 200년이 넘은 춘양목(春陽木)[내용 2]을 활용했다고 한다.
내부는 대청마루로 된 거실과 온돌방 2개가 있다.[25][26]
전두환은 상춘재에서 외빈을 접견하고 비공식 회의를 자주 열었다고 한다.
후임 대통령들도 비공식 간담회나 외국 정상과의 회담 장소로 사용했다.
박근혜는 임기 중 상춘재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다가 탄핵 심판이 진행중이던 2017년 1월 상춘재에서
신년기자간담회 등을 열었다.
문재인은 취임 후에 상춘재를 애용했으며 습기 등으로 곳곳이 훼손된 상춘재의 보수 공사도 이때 진행됐다
녹지원
녹지원(綠地園)은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일컬어지는 곳으로 120여 종의 나무가 있다.
이 중에는 역대 대통령의 기념 식수도 있다.
일제 시대 조선총독 관저의 정원이었으며 가축사육장과 온실 등의 부지로 사용하기도 했다.
정부 수립 이후인 1968년 청와대 내에서 야외 행사장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지자 잔디를
심고 녹지원을 조성했다.
초기의 녹지원은 5,289m2 규모였지만 1985년 5,620m2 규모로 확장됐다.
현재 녹지원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국제 장애인의 날 등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녹지원의 반송과 누렇게 익은 보리 이삭들
▲녹지원을 나와 춘추관으로 이동 중 헬기장에 세워진 그늘막들, 누구나 먼저 본 사람이 주인이다.
▲춘추관은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머무는 곳이다.
경내 외 따로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경내출입이 제한 되어 있고 당연히 취재 활동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어 국민과 소통이 될리가 없다.
현재 용산 시대와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일 수 밖에 없다는 걸 보여준다.
기자회견을 하러 여기까지 온 다는 자체가 거리가 넘 멀다.
춘추관[편집]
춘추관(春秋館)은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소와 출입기자들의 기사송고실로 사용되는 곳으로
1990년 9월에 준공되었다.
연건평 1,028평 규모로 지상 3층·지하 1층 구조이며 맛배 지붕에 토기와를 얹었다.
춘추관이란 명칭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있었던 춘추관에서 유래했다.[28]
김대중 정부까지는 기자들이 자유롭게 청와대 경내의 비서동에 가서 비서관을 취재하는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부터 보안이 강화되면서 출입 기자들의 청와대 경내 출입이 전면 금지되고
춘추관에서만 취재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청와대 관계자가 브리핑을 할 때는 춘추관을 찾아와서 브리핑을 한다.
기자들은 순번에 따라 대표로서 취재한 뒤 그 내용을 공유하는 풀(Pool) 기자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어 청와대 취재에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칠궁쪽에서 올라오면 만나게 되는 백악정 삼거리
▲기념식수와 백악정
▲아침시간이 지나니 지방에서 올라온 많은 등산객들까지 몰려들어 좁은 나무계단 길은 걷기 불편하다.
▲오늘은 청와대 전망대 까지만 걷기로 하고, 칠궁쪽으로 하산하여 칠궁을 관람하고 경복궁으로 이동 할예정이다.
▲많은 경비초소에 병사들이 없다. 모두 비어 있다.
▲전망대에서 본 모습, 청와대 울타리와 경복궁 광화문 남산 타워까지,
▲북악산을 뒤로 하고 칠궁쪽으로 하산하면 청와대를 안팍으로 한바퀴 도는 경로다.
▲건너편 인왕산 모습
▲칠궁에서 북악산 오르는 등산로, 이 철문은 청와대 내부 관람 신청을 안해도 통과할수 있다.
▲가파른 칠궁쪽 계단을 하산하여 칠궁을 관람하고 경복궁으로 이동할 계획이다. 칠궁 출입구 방향.
칠궁은 왕의 후궁으로 입궐하여 왕자를 생산한 후궁들로 7인의 사당을 지어 위패를 모신 사당을
한 곳에 모셔둔 곳이다.
청와대 관람을 마치고...
지난 5월 중순경에 관람 신청을 해놓고 기다리니 정확히 관람 8일전에 연락을 받는다.
09시부터 11시까지로 신청을 했지만 일찍 70시쯤 경복궁역에 내려 4번 출구로 나와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영빈문 앞 출입구에서 신청 확인하고 청와대 경내로 입장 한다.
팜프렛을 참고하여 덩선을 따라 순서대로 영빈관을 먼저 보고난후 본관 집무실 쪽으로
이동하여 청와대의 상징인 대통령 집무실로 이동 한다.
순서를 기다려 드디어 본관으로 들어가 빨간 카펫트를 밟고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 집무실과 인왕실 무궁화실 등등을 둘러본다.
동선을 따라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무궁화실인 영부인 집무실을 둘러본다.
한쪽 벽에는 역대 대통령 영부인들의 사진이 걸려있는데 두번째 걸려있는
영부인 사진은 생소 하여 뵌적이 없는 기억에 없는 영부인이 있어 의아했고,
과연 이렇게 큰 집에 불과 몇사람이 업무를 보고 생활을 했었는지는 의문이다.
집무실을 나와 본관앞에서 기념 사진도 남기고 다음 코스로 이동 하는데
청와대가 워낙 넓고 규모가 크기에 걸어서 이동 하는데는 시간이 꽤 많이 걸린다.
심지어 비서관들은 대통령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도 없을것이다.
이러니 구중 궁궐이라 하는구나 이해가 된다.
북악산 산책로를 따라 가파른 계단을 올라 경주에서 왔다는 미남불을 보고
내려와 오운정이라는 정자도 보며 조망처에서 청와대와 경복궁등 서울 시내의
풍경도 내려다 보며 뒷길로 돌아 내려와 대통영의 살림집인 관저를 돌아본다.
북악산 암벽 밑에 위치한 인수문, 여기가 관저 이다.
사랑채도 있고 규모가 굉장하다,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창문을 열어 두고
표지판으로 안내를 하고있었다. 미용실 침실 식당 드레스룸 가족침실 주방 등등
많은 방이 있고 관저 뒷편에는 장독대와 김장을 담아둘 수 있는 항아리들이 놓여 있었다.
여염집과 크게 다를바는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민초들의 세상과는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을듯한 느낌이였다.
조용한 북악산 산중턱 암벽밑에 숲이 우거져 산속의 관저다. 우리가 TV에서 보고 상상하던
그런곳 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고 저 아래 비서동이나 집무실에서도 한참을 올라와야 하는곳이다.
비서동에서 보고할 서류를 가지고 집무실까지도 500여m 자전거를 타고 이동한다는
소리가 사실로 공감이 간다. 이런 큰 공간에서 대통령과 격의없이 소통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란 점 충분히 이해할수 있었고, 74년만에 국민품으로 돌려 드린다는 말에 별로 동의하지
않았는데 실제 와서 보니 왜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 하였는지 이해가 된다.
과감하게 용단하여 용산시대가 열린게 잘 된일이라 생각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권위주의적 제왕적 대통령들이 살았던 청와대가 온전하게 개방되는 획기적인 일이
성공적으로 잘 이루어져 앞으로도 더 좋은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관저를 나와 침류각을 돌아 보고 백악교를 건너 한옥으로 지어진 상춘재로 이동하여
녹지원을 둘러보고 헬기장으로 이동한다. 춘추문으로 퇴장하여 잠겨있는 춘추관을
보고 가파른 북악산 등산로를 따라 백악정을 지나 청와대 전망대까지,수많은 사람들 틈에
전망대에서 멋진 풍경을 보고 다시 백악정으로 하산하여 칠궁쪽으로 이동하여 칠궁을 보고
청와대 정문에서 경복궁 후문인 신무문으로 입장하여 경복궁을 돌아보고 6시간여의
청와대와 경복궁 관람을 마무리 한다.
칠궁 관람부터 경복궁 관람기는 생략하기로 하고 400여장이 넘는 사진을
선별하는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여기까지...
감사 합니다.
2022. 6.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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