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늦게까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사흘에 걸쳐 상당한 몰입도를 보이며 읽게 된 책입니다. 사실 저는 과문하게도 하루키의 소설은 처음입니다. 시류에 빨리 편승하는 편이 아니라 상당한 시일이 지난 책들을 주로 읽고 있지요. 책에서 곰팡내가 좀 나는 그런 책이 좋습니다.
시간의 손길에 의해 걸러진 그런 책들을 좋아합니다.
이 책에 대해서는 좀 꼼꼼한 독후감을 한 번 써볼까 합니다만 개략적인 제 인상비평이랄까 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영화 <메트릭스>를 떠올리며 읽었다는 것. 조지 오웰의 <1984>를 환기시키는 제목이라는 것. 소설 내의 시간이 1984년과 인식상의 괴리를 불러오는 의문의 겹시공간이라는 것, 그래서 <1Q84>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는 것 등. 사랑과 상처 객관적 시간과 주관적 시간 상의 불일치. 관계에 대한 의문과 사랑이라는 구원. 사이비 종교와 이성의 제휴의 문제. 구운몽의 구조나 실존주의적 결단의 문제. 삶의 불구성에 대한 체념. 육체와 의식의 균열과 그 파괴적 후유증. 종교에 대한 회의. 글쓰기에 대한 메타적 성찰. 불교의 삼천대천세계와 화엄장관을 거꾸로 돌려 놓은 것 같은 느낌. 이 세계의 유일성에 대한 부정과 동시에 긍정. 세계의 틈과 카프카적 변신의 모티프 등이 얽힌 영화적 대화와 속도감. 잘 읽히는 책입니다.
그러나 무언가 화려한 언어와 문장 뒤에 숨겨진 가벼움이 느껴지는 바도 있습니다. 잘 만들어진 공예품과도 같습니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처럼 술술술 읽힙니다. 이는 글쓰는 이가 자신의 글을 어떤 것으로 규정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