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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8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대림절 두 번째 주일 설교
제목 : ‘마라나타(Maranatha)’ - 2.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이르러
본문 : 출애굽기 2장 23절(23~25절)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집트의 왕이 죽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고된 일 때문에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고된 일 때문에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이르렀다. <새번역>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오늘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간구하며 다시 오실 예수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현실 속에서 절망과 좌절,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을 온전히 해결하사 충만케 하실, 부족하고 완성되지 않은 세상 나라가 아닌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실, 예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신앙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소유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신앙을 소유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반면, 사실 ‘재림’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신 후에 너무도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현재의 내 신앙에는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조금 더 심각한 말은 지금 내가 천국을 살고 있으니 예수님의 ‘재림’은 크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천국을 살고 있으니, 하나님의 나라 안에 거하고 있으니, 예수님이 언제 재림하시든 두렵지 않고, 걱정되지 않는 기다림이다 라는 고백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천국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천국이기에,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재림 신앙’은 반드시 더 큰 소망으로 존재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 시대 속에서의 천국과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히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장소적으로, 상황적으로, 환경적으로, 이미 이루어진 ‘천국’은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와 차이가 있을 수 있기에 ‘더 나은 본향’으로서의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은, 그리고 그 마음으로서의 마라나타의 고백은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재림’에 대해서 지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많은 이단과 사이비들을 통해 이슈가 되면서 왠지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이 여겨지기도 합니다. 괜히 ‘재림’이란 말을 사용했다가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아무리 기도해도 ‘오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언제부터 ‘말세’라는 말을 사용했는지 아십니까? 세상적으로 ‘말세’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 라는 문구는 BC1700년 수메르시대 점토판에서도 등장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AD1세기부터 이 말을 아주 쉽게 사용되던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미 2000년이 훌쩍 지난 것입니다. 여전히 말세는 진행 중인 것입니다. 그리고 시대 시대마다 간절히 ‘마라나타’를 외친 놀라운 믿음의 선배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도 믿음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시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믿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지쳐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재림’에 대해서 묵상할 필요도, 기도할 필요도, 나아가 기대할 필요도 없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어떤 마음이십니까? 솔직하게 스스로의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이 ‘마라나타’가 현재 진행형이십니까? 오늘이라도 당장 이루어지길 전심으로 원하고 계십니까? 가장 큰 소원이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것입니까? 오늘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면 아무 미련 없이 감사함으로 찬양하며 ‘아멘’의 순간이 되시겠습니까?
솔직히 ‘오늘’과 ‘지금’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가끔은 오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마음들이라면 정말 다행입니다. 지금 살고 계신 삶이 그나마 괜찮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살고 있는 삶에 만족하면 만족할수록 ‘재림’ 신앙과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삶, 지금 느끼고 있는 이 행복을 마치 빼앗기는 것 같아서 가능하면 지금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오늘이 너무도 괴로운 분들은, 삶의 희망이 없는 분들은,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분들에게는, 이 마라나타가 유일한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병원에 계신 많은 분들, 특히 중증 환자분들은 거의 동일하게 이야기 합니다. ‘자신이 빨리 죽든! 예수님이 빨리 오시든!’ 그래서 생각해보면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빈부차이로 인해 ‘재림’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병의 유무로, 지금 처해있는 환경으로 인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재림’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게 만드는 환경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환경에 휘둘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은 오늘이 처음이 아닙니다. 역사는 계속해서 반복되어져 왔습니다. 이미 이런 환경에 의한 신앙의 변질은 잦은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참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반복 속에서도 아주 큰 의미가 있었던 사건이 있습니다. 오늘 함께 그 사건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오늘을 반성하고 다시금 묵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건을 살펴보기 위하여 이집트 총리가 되었던 요셉의 죽음 이후로 시간이 돌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들은 다 죽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자녀를 많이 낳고 번성하여, 그 수가 불어나고 세력도 커졌으며, 마침내 그 땅에 가득 퍼졌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었다. <출애굽기 1장 6~8절, 새번역>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곧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들의 노예로 삼아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더욱 더 번성했고, 그럴수록 이집트 사람들의 혐오는 더욱 심해졌고, 더욱 혹독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참혹한 하루가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수모와 감당할 수 없는 노동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늘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한 이집트는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 아이를 모두 강물에 던지라고 하는 끔찍한 일도 자행하게 됩니다. 정말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 질 수 있는지를 모조리 경험하게 된 이집트 종살이였습니다.
사실 요셉을 알던 왕들이 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은 꽤 괜찮은 삶을 살았습니다. 좋은 지역에서 번성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영향력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안전한 보호막이 되어 주었습니다. 어찌 보면 매일 매일 너무도 행복한 나날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그들이 반드시 했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야 오늘과도 같은 종살이의 삶을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흉년이 끝나자마자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조금 늦어졌더라도 빨리 채비를 해서 떠나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가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창세기 12장 1~2절, 새번역>
아브라함에 이어 이삭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이집트로 가지 말아라. 내가 너에게 살라고 한 이 땅에서 살아라. 네가 이 땅에서 살아야, 내가 너를 보살피고, 너에게 복을 주겠다.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내가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약속을 이루어서,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게 하고, 그들에게 이 땅을 다 주겠다. 이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씨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하겠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나의 말에 순종하고, 나의 명령과 나의 계명과 나의 율례와 나의 법도를 잘 지켰기 때문이다." <창세기 26장 2~5절, 새번역>
이삭을 지나 야곱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베델의 하나님이다. 네가 거기에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에서 나에게 맹세하였다. 이제 너는 곧 이 땅을 떠나서, 네가 태어난 땅으로 돌아가거라' 하고 말씀하셨소." <창세기 31장 13절, 새번역>
결국 출애굽한 이들이 향한 곳이 어디였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땅입니다. 그러니 서둘렀다면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었던 땅, 종살이를 하지 않고 진작에 돌아갈 수 있었던 땅으로 향합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이 백성을 이끌고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고 그들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그 땅으로 올라가거라. <출애굽기 33장 1절, 새번역>
그런데 흉년 때문에 잠시 머물렀던 그들의 삶은 처음에는 행복했지만, 그 때 떠나지 못함으로 인하여, 이집트에 정착하게 되고,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게 되고, 처참하고 비참한 가운데 많은 시간이 흘러 가 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산 기간은 사백삼십 년이었다. <출애굽기 12장 40절, 새번역>
떠났어야 했는데, 떠나지 못하자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어야 했는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어야 하는데, 언제나 그 반대가 될 때 이런 안타까운 고통의 시간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여기 이 부분의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진지하게 묵상하며 스스로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어찌 보면 흉년 후 요셉이 있던 시기, 요셉의 이름을 알던 왕이 있던 시기, 요셉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이집트 사람들 이 살아 있던 시기이기에 아직은 약속의 땅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과 함께가 아니더라도, 말씀대로 살고 있지 않고, 순종하지 않아도 괜찮아 보이는 것뿐입니다. 지금 돌아가야 합니다. 다른 곳에서 정착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있는 그 곳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하기에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어영부영 430년이란 시간을 보낸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다행히 430년으로 끝난 것입니다. 그들이 이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암흑기는 더 길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430년이 되어서야, 너무도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야, 인생의 밝은 시기를 거쳐 암흑기가 찾아와서야 이런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집트의 왕이 죽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고된 일 때문에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고된 일 때문에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이르렀다. 하나님이 그들의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자손의 종살이를 보시고,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셨다. <출애굽기 2장 23~25절, 새번역>
왜 이스라엘 백성은 소위 잘 나가고 평탄하고, 강대할 때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이렇게 처절한 순간이 찾아와야만 하나님을 찾는 것일까요? 얼마나 일이 고되었는지 이스라엘 백성은 그동안 잊고 있던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430년의 침묵을 깬 외침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외침이고, 희망의 기도입니다.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늦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아니, 사실은 계속해서 듣고 계시려고 귀를 기울이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찾지 않은 것입니다. 잘 나갈 때는 잘 나가서, 바쁠 땐 바빠서, 힘들 땐 힘들어서, 어려울 땐 어려워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순간까지 와서야 하나님을 찾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왜 잘 나갈 때, 은혜를 입었을 때, 그 순간에는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들으시고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백성 구출 작전을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다시 묵상하게 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출애굽기 2장 23절B, 새번역>
견디다 못하여 신음하며 아우성을 쳤다. <출애굽기 2장 23절B, 공동번역>
그들이 도와 달라고 부르짖었더니, <출애굽기 2장 23절B, 쉬운성경>
정말 다행히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을, 우리의 기도를,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는 구절임과 동시에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구절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오늘 이 기도가 필요합니다. 탄식하며 부르짖는 기도, 견디다 못하여 신음하며 아우성을 치는 기도, 도와 달라고 부르짖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면 도저히 나오지 않은 기도가 아니라 ‘영적 갈급함’을 가지고, 오히려 하나님 없어도 괜찮아 보이는 것 같은 지금의 상황이 우리의 신앙을 더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경계심을 가지고, 다시 어둠이 찾아와 절망과 눈물 속에서 비참한 기도가 아닌 지금 이 모든 기도들이 회복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할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오늘도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하나님과의 동행, 그리고 변하지 않는 믿음,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되기를 간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부르짖음이 하나님에게 이르러,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 홀로 내 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이 볼 때 천국인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출애굽기와 같은 구원 계획을 통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힘들고 배가 고플 때는 간절해졌다가 등 따시고 배부르면 하나님을 찾는 게 아니라 잠을 청한다고 했던가요?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자들은, 다시 오실 예수를 기다리는 ‘마라나타’의 사람들은 등 따시고 배부른 지금 이 순간, 오히려 더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더 나아가 현재 내가 처해 있는 모든 상황을 뛰어 넘어, 그 상황과 상관없이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는 부르짖는, 하나님의 완전한 은혜만을 사모하는, 하나님으로만 진짜 만족을 느끼는 자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우리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하나님의 땅에 삽시다.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말씀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갑시다. 만약 그 곳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평안하고 형통하다면 그건 일시적인 쾌락을 위한 유혹일 뿐입니다. 고센 땅을 벗어나 가나안 땅으로 가셔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로 가셔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로 가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과 손과 발이 향하는 곳으로 우리도 끊임없이 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시다. 늦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읍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시다. 그래서 오늘도 변함없이 ‘마라나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날 다스려 주시길, 그리고 속히 오셔서 완전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살 수 있기를! 그 간절한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가길 축복합니다.
결단 찬양 - 기도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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