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호는 역대로 조선(朝鮮), 고려(高麗), 삼한(三韓), 부여(夫餘)가 많이 알려져 있다. 조선은 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과 이성계가 세운 조선이 있으며, 고려는 고주몽이 세운 고구려와 왕건이 세운 고려가 있다.
삼한은 고조선의 조직체계로 지역통치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낱말이었으나 고조선연방이 해체된후 그 유민들이 한국의 남부에 이주하여 세운 마한, 변한, 진한을 아울러서 붙인 이름이 국호처럼 불려진데서 유래한다.
그리고 부여는 고조선의 다음, 고구려에 앞선 나라의 이름으로 만주평원의 송화강 유역에 세워졌으며, 해모수가 세운 북부여, 해부루가 세운 동부여, 동명왕이 세운 졸본부여, 그리고 고구려에 멸망한 동부여의 후예가 다시 세운 서부여가 있다.
이런 여러가지 나라이름 중에서 외국에 가장 많이 알려진 국호는 고려와 조선이다.
먼저 조선은 단군왕검의 고조선이 중국에 알려져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호로 굳어졌다. 관포지교로 알려진 관자의 책에서도 조선에는 문피(文皮)라는 특산물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산해경에는 조선에 군자가 살고 있으며 무궁화가 많이 핀다고 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중국 이외의 외국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국호이다. 그것은 고조선시대에는 많은 나라들이 활발하게 교역을 하거나 외교를 하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국 이외의 여러 외국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고려이다. 이 고려는 흔히 왕건이 세운 고려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고구려의 정식 국호였다. 중원고구려비에도 고구려는 스스로를 ‘고려’라고 하였으며, 발해도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스스로를 ‘고려국왕’이라고 하였다.
이 고려는 본래 고조선의 제후국이었던 고리(高夷) 에서 기원한다. 고리국은 서기전 7세기경에 황하의 북쪽, 요동의 동쪽지역에 있었던 기마민족의 나라였으며 진나라가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중국을 통일하는(BC 221) 서기전 3세기경(BC 238 년)에 지금의 송화강 중류에 이동하여 그 일파인 해모수가 북부여를 세운다.
그 북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고주몽이 바로 자신의 조상들이 세운 고리의 나라를 그대로 옮겨다가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하였다.
그리고 고려의 끝자인 려(麗)는 본래 나라이름으로 할 때는 리(麗)로 읽어야 하는데 아름다울 려로 굳어져 지금은 고리국(高麗國)을 고려라고 부른다.
바로 이 고려가 외국에 알려져 COREA가 되었다.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드에 있는 벽화에서도 고구려의 사신이 다녀왔던 것을 알려주는 그림이 있는데 이때에 이미 고구려는 서역과 교통하였으며, 적어도 이 시기에 중국의 동쪽에 고려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서역이나 유럽, 아라비아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발해를 거쳐 고려가 들어 섰을때 아랍의 상인들은 이전부터 들었던 정보를 통해 고려와 교역을 하였으며, 이때부터 고려는 더욱 서방에 알려졌다. 이것이 코리아의 연원이다.
따라서 1900년대 이전의 외국 지도에는 거의 우리나라 국호의 영문표기가 C로 시작하는 코리아였다. 1982년 체결한 한미수호통상조약, 1984년의 한영수호조약의 원문에도 C로 시작하는 코리아였다. 그런데 국권을 빼앗긴 1910년 이후 외국의 잡지나 신문에 K로 시작하는 코리아가 표기되기 시작하였다.
주로 영국이나 미국의 선교사들이 조선에서 보내는 편지나 정보에 의한 변화였다. 1919년 3.1만세운동이후 문화정치를 표방한 일본제국주의는 일본에 우호적이었던 영국, 미국선교사들에게 포교의 자유와 학교설립이 되었고, 많은 외국인들이 조선에 왔는데 바로 이들에 의해 K로 시작하는 코리아가 굳어졌다.
그렇다면 어떤 연유로 C로 시작하는 코리아가 K로 시작하는 코리아로 바뀌었는가?
본래 서방에서 중국이나 일본, 한국등과 교역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아라비아(아랍) 상인들이었다. 이들에게 고려는 주로 금, 인삼, 종이등을 수출하였으며, 그 품질은 아랍의 서쪽에 있는 로마(대식국)와 스페인, 포루투갈등에도 알려졌다. 아랍에 이어 동방에 진출한 사람들은 주로 스페인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코리아의 키읔 발음(설근음)을 C로 표기하였다. 포루투갈, 네덜란드의 상인들도 마찬가지로 C로 표기하였다. 이후 15세기에서 20세기초 까지의 외국 지도에는 거의 C로 표기가 되었다.
1910년 이후 국권을 빼앗긴 우리나라는 외교적으로 우리를 외국에 소개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따라서 일본이나 외국인에 의한 소개가 대부분이었다. 그 이후로 영국이나 미국의 기자, 선교사들에 의해 우리가 소개되기 시작하였고, 이들은 설근음인 코리아의 영문표기를 자신들이 선호하는 K로 하기 시작하였다.
일부에서는 일본이 자신들의 영문표기인 J가 C보다 뒤이므로, J의 뒤에 오는 K로 표기하는 영문표기를 외국에 소개하였다고 하는데 일리있는 말이다. 일본인들은 의도적으로 항전시대에 C보다는 K를 선호했다.
그렇지만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미국이나 영국의 표기수단에 의한 K의 고정이었으며, 해방이후 국호를 제정하는데 있어서도 미국에서 유학온 친미파들에 의해 영문표기는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K로 굳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따라서 역사적 연원이나 전통, 그리고 민족자존의 회복차원에서 우리나라 국호의 영문표기는 C로 하는게 옳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