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수필/노인과 바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란 작품으로 1953년에 퓰리처 상(Pulitzer Prize for Fiction)을, 1954년에는 노벨문학상(Nobel Prize in Literature)을 받았다. 당시 1952년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노벨상 수상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소설 <노인과 바다>는 폭력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현실 세계에서 선한 싸움을 벌이는 모든 개인에 대한 자연스러운 존경심을 다루는 작품이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이 작품을 고1 때 처음 읽었는데 하도 지루해서 몸이 배배 꼬이는 경험을 한 적 있다. <노인과 바다>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나 듀마 휴이스의 <춘희> 같은 스토리가 전혀 없다. 그냥 망망대해에서 청새치 잡다가 돌아온 이야기가 전부이다. 스토리가 없어도 너무 없는 그런 소설이 16세 소년에게 무슨 흥미를 주겠는가.
그런데 중년 들어 영화를 통해서 본 <노인과 바다>는 전혀 달랐다. 앤서니 퀸과 스펜서 트레시가 주연한 영화 두 편을 다 보았는데, 주연 배우들이 천재들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500K 넘는 거대한 청새치가 수면 위로 비상하여 바다에 떨어지는 장면이 너무 실감나서 그랬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 했다. 이 영화는 이례적으로 여자가 없고 노인의 상대역은 바다인데, 단순한 무대 설정에서 내밷아지는 노인의 독백 하나하나는 의외로 너무나 의미심장하다.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낚시하는 샌디에이고라 부르는 노인이 있었다. 그는 84 일째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처음 40 일 동안은 소년이 동행했다. 허지만 고기를 못낚은지 40 일이 지나자 소년의 부모는 그를 다른 배에 태운다. 동네 사람들은 허탕치고 다니는 노인을 비웃지만, 소년은 자기에게 낚시를 가르켜준 노인은 좋아했고, 매일 빈 손인 노인을 보고 슬퍼했다. 소년은 노인이 바다에서 돌아오면 작살과 돛 챙겨 오는 일을 돕는다. 돛은 낡은 밀가루 자루로 때워져 있어, 마치 영원한 패배의 깃발 같았다. '카페에서 맥주 한 잔 하실래요?' 소년이 묻자, '그럴까? 어부끼리' 노인이 대답한다. 카페 주인 로페즈는 노인에게 호의적이다. 매번 노인에게 커피나 병맥주를 제공한다. 노인은 소년에게 '나중에 큰 고기를 잡으면 뱃살 부분을 드려야겠다'라고 말한다. 카페를 나온 소년과 노인은 야자수가 선 바닷가 모래밭을 걸어간다. 84일째 고기를 못 잡은 노인은 큰 고기를 잡은 다른 어부가 옆에 지나가자 남의 고기를 쳐다본다. 집에 돌아오자, '야구 이야기 좀 해주세요' 소년은 부탁하고, '정말 또 듣고 싶어?' 노인이 묻는다. 뉴욕 양키즈와 디트로이트 타이거 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디마지오의 아버지가 어부였다고 말한다. 소년이 돌아가자 노인은 잠이 들고, 꿈에 사자 꿈을 꾼다. 헤밍웨이는 모험을 즐긴 상남자여서 가장 남자다운 남자는 야구와 사자를 좋아할 것이라 믿었던 모양이다. 작품에 아프리카 사자와 야구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85일째 되던 날, 노인은 큰 고기를 잡아볼 결심을 하고 엘프만의 깊은 바다로 나간다. 한참 나가 뒤를 돌아보니 뭍이 보이지 않는다. 바늘엔 싱싱한 정어리가 달려있다. '먹던 안 먹던 네 자유지만, 날 갖고 놀지는 마라!' 노인은 중얼거린다. 그러다 마침내 마지막 염원이던 거대한 청새치를 낚시에 걸었다. 정말 엄청나게 큰 고기다. 바위처럼 끄떡도 않는다. 고기는 미끼를 입에 물고 3일간을 북서쪽으로 달린다. '손이 왜 이러지?' 노인의 손엔 쥐가 난다. 수건을 감았으나 손바닥에 피가 홍근하다. 노인은 땀에 흠뻑 젖었고, 뼛속까지 피곤하다. 3일째 잠을 못 잤다. 노인은 '이 고기를 잡을 수 있다면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열 번이라도 외치겠어' 중얼거린다. '코브레 성녀에게 성지순례 다녀올 걸 약속하지' 다짐도 한다. 노인은 굵은 낚싯줄을 허리에 감고 고기에게 끌려가면서 젊은 시절 흑인 남자와 돈 걸고 팔씨름했던 일을 회상한다. 그동안 소낙비가 지나가고, 아침 해가 비치고, 밤하늘 별이 찬란하다. 노인은 별을 보며 친구 얼굴을 떠올린다. '고기도 내 친구야'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죽여야 돼. 별을 죽이지 않아서 다행이군' 하고 노인은 중얼거린다.
마침 북쪽에서 작은 새가 배 위로 날아왔다. '괜찮아 작은 새야! 여기서 잠시 쉬렴. 새야 너 몇살이니?' 노인은 새에게 말을 건다. 그러나 망망대해의 유일한 벗이던 새는 날아가버린다. 고래가 잠시 물결 위에 올라왔다가 작난치듯 꼬리만 남기고 사라진다. 노인은 고독하다. 키요가 옆에 있어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한다.
고기는 며칠 째 노인을 끌고 다녔지만 멈출 기세가 아니고 노인도 포기하지 않는다. 세 번째 밤이 밝을 무렵 마침내 청새치가 물 위에 올라왔다. 주둥이가 창날처럼 뽀쭉한 거대한 청새치다. 노인은 고기가 뱃전에서 몸부림치며 공중에 높이 솟구치고, 파도에 물보라 일으키며 떨어지는 힘찬 모습을 보며, '정말 대단한 놈이야. 내 배보다 더 길군. 자신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려고 그런 것 같군' 혼자 중얼거린다. 그러면서 '인간이 뭘 할 수 있고, 버티는지 보여주지!' 노인은 다짐한다. 노인은 낚시줄을 당기면서, '고기가 점프를 하여 등에 공기를 맞았으니, 이젠 물 위에서 빙빙 돌 테지.' '그럼 싸움이 끝날 테지. 머릴 노리지 말고 심장을 찔러야지' 혼자 중얼거린다. 그리고 드디어 창살로 고기 심장을 찔러 보트에 매달자, 노인은 청새치 등을 손으로 만져보며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팔 걸 생각하며 흐뭇해한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싶어 자꾸 고기를 쳐다본다. 집이 있는 남서쪽으로 가는 데는 나침반이 필요 없다. 조류만 따라가면 된다. 찢어진 손은 소금물이 낫게 해 줄 것이다.
그렇게 1시간쯤 항해했을 때 바다의 폭군 상어가 나타난다. 바다는 인생처럼 항시 위험하다. 덩치 큰 마코 상어가 가장 빨리 헤엄친다. 노인은 상어가 사정없이 고기를 물어뜯자 작살로 상어를 마구 찌른다. 그러나 노 걸이에 비틀어맨 작살 끈이 툭 떨어져 버린다. '피를 많이 흘렸으니 피냄새 맡고 다른 상어들이 더 몰려오겠지'. 노인은 고기가 엉망이 되자 더 이상 고기를 쳐다보지 않는다. 그러나 상어 떼가 와서 고기가 공격받을 때 노인은 마치 자기가 공격받는 느낌을 갖는다. 살점을 찢어먹기 시작하자 바다는 피로 홍건히 젖는다. 잠시 속수무책이던 노인이 이번에는 노의 끝에다 칼을 매달아 상어 떼를 막아보지만, 금방 칼끝이 부러진다. 몽둥이까지 동원했지만 튀긴 물로 전신은 흠뻑 젖었고 옷은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노인은 가지고 있던 작살과 칼, 몽둥이까지 상어에게 몽땅 다 빼앗겼다. '남은 거라도 조금 가져 갈 수 있을꺼야!' 노인은 스스로 위로한다.
밤 10시쯤 마을의 불빛을 볼 수 있었다. 그때 피 냄새 맡고 다시 온 상어 떼가 물고기를 뼈만 남기고 다 먹어치워 버린다. 노인이 혼신의 힘을 다해 사투를 벌였으나 결국 진 것이다. 노인이 항구에 닿았을 땐 주변이 조용했다. 밤하늘에 별만 깜박이고 아무도 그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 바다는 그의 친구이기도 했지만, 적이었다. 피곤한 몸을 뉘일 침대만이 유일한 친구였다. 자신을 패배시킨 건 다만 '너무 멀리 나간 것'이라고 노인은 생각한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노인은 중얼거린다. 노인은 돛대를 둘둘 말아 어깨에 메고 걸어가다 피곤해서 몇번이나 땅에 주저앉는다. 노인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간다. 노인은 오두막까지 가면서 다섯 번이나 쉰다.
키요가 아침에 와보니, 사흘 만에 집으로 돌아온 노인은 침대에 죽은 듯이 잠들어 있다. 소년은 노인의 찢어진 손바닥을 보고 울먹인다. 담요를 덮어주고 울면서 카페로 달려간다. 어부들은 노인이 잡아 온 고기를 보고, 그 크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내려가서 뼈의 길이를 재고 있다. '커피에 우유랑 설탕 가득이요!' 키요가 부탁하자, '끝내주는 고기야! 저런 고기는 없었어' 카페 주인이 대답한다.
키요가 오두막에 돌아왔을 때 노인은 그때까지 곤히 자고 있다. 키요는 노인이 깰 때까지 기다렸다가 따끈한 커피를 건넨다. '많이 힘들었지요? 이제부턴 나와 같이 나가요' 그리 말하자 노인은 고개만 끄떡인다. '바람이 언제 그쳐요? 3일?' 키요가 묻자, '이틀' 노인이 짧게 대답한다. 키요가 노인 손에 바를 약을 사려고 밖으로 나가자, 노인은 '그동안 못 읽은 신문도 사와!' 부탁한다. 노인은 잠이 들고, 꿈에서 사자 꿈을 꾼다.
그날 오후 하바나 관광객들이 밀어닥쳤다. 한 여자가 저 거대한 고기가 뭐냐고 묻자, 남자가 상어라고 대답한다. '상어 꼬리가 저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네' 여자가 말한다.
헤밍웨이는 이 소설을 무려 20년 동안 벼르다가 썼고, 200번을 고쳐 썼다고 한다. 이 작품은 헤밍웨이 사상과 인생의 결정판이고 과연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답다. 글 쓰는 사람은 헤밍웨이의 간결하고 남성적인 hard-boiled 문체 먼저 생각한다. 그는 18세에 기자가 된 후, 1차 대전 시 미국 적십자가 구급차 운전수로 참가하여 오스트리아-이탈리아 전선에서 부상을 입은 후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란 작품을 썼고, 1936년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란 작품을 남겼다. 헤밍웨이를 흔히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를 대표하는 작가로 보는데, 헤밍웨이의 사상은 단 두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다).' 아마 끝까지 굴복을 거부한 이 두 문장이 아닐까 싶다. (지구문학 2021 가을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