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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다음까페 한민족 옛 제국을 찾아서의 『 趙光祖』 靜庵-孝直 <<文正>>님이 쓰신 글입니다. 고려가 황제국이라는 이유를 근거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좋아 다른 님들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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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고려를 '왕국'(王國)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송(宋)나라의 책봉(冊封)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 요(遼. 거란)나라에게 '복종'하고(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요 나라가 무너진 뒤에는 금(金. 여진)나라에게 굽힌 나라. 금(金)나라와 송(宋)나라가 원(元)나라에게 무너진 뒤에는 원(元)나라의 책봉을 받은 속국. 이 고려를 우리는 제후국인 '왕국(王國)'이라고 배웠고 조선이나 신라와 마찬가지로 중국에 저자세를 취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지금의 국사교과서에서 고려를 '왕국(王國)'이라 부르고 고려의 임금을 '왕(王)'이라고 부르는 근거는,『고려사』와『고려사절요』, 그리고 조선시대 쓰여진 여러 역사책들에 '왕(王)'이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고려사』에는 고려 '왕'이 스스로를 '짐(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짐(朕)'은 제국에서 황제가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고, 이론상 황제가 '임명'한 '제후'인 왕이 쓸 수 없는 말입니다. 만약 고려 임금이 '제후'일 뿐이었다면 스스로를 '짐(朕)'이라고 일컬을 수 있습니까? 이것은 조선시대에 쓰여진 고려 역사책『고려사』에 나오는 사실입니다.
『고려사』는 주자학을 '국교'로 삼고 한족에 저자세를 취한 조선시대에 조선 사대부들이 적은 역사책이니만큼, 고려가 칭제건원( : 황제라 칭하고 연호를 쓰는 일. 즉 제국임을 나타내는 일이다 - 필자)한 사실을 깎아 내렸으면 깎아내렸지 자랑스럽게 적을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사실로 믿어도 될 것입니다.(아울러『고려사』에서 고려 임금들을 '왕王'이라고 적는 까닭은, 그 책이 '조선이 인정하는 고려의 정식 역사서'이자 명나라의「검열」을 받는 책이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삼국사기』와 마찬가지로『고려사』도 검열을 받은 거죠 : 필자)
고려가 황제국이었다는 증거는 또 있습니다. 다름 아닌 고려시대 관료체제입니다. 고려시대 관료체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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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성(省) 중서성(中書省)·문하성(門下省)·상서성(尙書省)
6부(部) 이부(吏部)·호부(戶部)·예부(禮部)·병부(兵部)·형부(刑部)·공부(工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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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들 부서(황실에 딸린 부서)의 이름이 중요한가 하면, " '성(省)'과 '부(部)'자는 천자국에서 쓰던 것으로 제후국은 함부로 쓸 수 없던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중국의 '신하'임을 자처했던 조선시대에는(물론 형식상이지만) '부(部)'라는 말을 '외람되이' 쓸 수 없다고 하여 고려의 6부(部)와 같은 역할을 맡은 부서를 '조(曹)'라고 고쳐 불렀습니다. 이부·호부·예부·병부·형부·공부를 이조(吏曹)·호조(戶曹)·예조(禮曹)·병조(兵曹)·형조(刑曹)·공조(工曹)로 바꾸었지요. 또 '성(省)'자는 대진국(발해)시대에도 '3성(省) 6부(部)'제 라는 이름으로 대진국의 행정체제에도 쓰였고, 조선시대에 와서 사라지게 됩니다.(대진국과 고려가 제국을 자처했음을 알 수 있죠)
'조서(詔書)'·'제서(制書)'·'칙서(勅書)' : 고려 임금들이 명령을 내릴 때 쓰던 용어입니다. 천자국의 황제만 쓸 수 있던 말로 제후국에서는 '교서'라는 말을 써야 했습니다.(당연한 얘기지만 '제후국'이던 조선은 '교서'라고 했지요) 또, 고려 인종대의 문신인 김부식은 [진삼국사표]에서 인종을 '성상 폐하(聖上陛下)'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이 글귀는 김부식이 흔히 알고 있던 모화주의자나 사대주의자가 아니었음을 알려 줍니다. 만약 그가 중화사상에 빠져 있었다면 고려 인종을 '전하'라고 불러야 합니다. 김부식은 현실주의자인 정치인이었지 사대주의자나 소중화 사상가는 아니었습니다 - 필자)
고려 문인이었던 이규보의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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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천하가 일가(一家 : 한 집안)되니 천자(天子)의 성스러우심이라.'
- 서기 1209년(단기 3542년, 고려 고종 5년), 이규보가 지은 연등회 의식을 축하하는 시(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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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는 고려의 연등회를 축하하면서 이 시를 지었습니다. 즉 이 시는 연등회를 열게 지시한 고려 임금을 '천자(天子)'라고 부르고 있고, 연등회에서 고려라는 이름으로 "온 천하가 한 집안이 되니" 이는 (고려) 천자의 성스러움 덕분이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만약 고려가 제후국이었고 고려 임금이 단지 '왕'이었다면 일개 문인이고 고려의 녹을 먹는 관리였던 이규보가 '감히' 고려 임금을 '천자'라고 부를 수 없으며 고려의 깃발 아래 '온 천하가 일가(一家) 되니'라고 읊을 수도 없습니다.(제후국이 '외람되게' 천하가 제후국 아래 '일가(一家)'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려의 임금들은 아들들을 '제왕(諸王)'이라 불렀는데 이는 중국 왕실에서 황제의 아들을 '왕'이라고 부른 것과 비슷합니다.(중국에서는 임금을 '황제皇帝'라 하고 황제의 동생이나 형, 그리고 친척들을 '왕王'이라고 불렀습니다. 고려도 이런 체제였다는 얘기입니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고려가 서주(西周)처럼 '봉작제'(물론 주나라와는 달리 형식적인 작위이고 실권은 없지만)를 실시한 사실도 살펴봅시다.
봉작제(封爵制)는 '신하'나 왕족을 작(爵)에 봉(封 : 임명)하는 제도입니다. 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 의 다섯 등급으로 나뉘는데(따라서 서양의 귀족이나 영주들을 '공작, 백작, 남작'이라 부르는 것은 이 말을 '빌려온' 것일 따름입니다 - 필자) 왕족을 작(爵)에 봉합니다. 이는 천자국에만 있는 제도였습니다.
고려에서는 왕족뿐만 아니라 일반 신하들도 작위를 받았는데, 왕족은 백작에서 출발하는 데 비해, 일반 신하들은 남작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달랐습니다. 이 봉작제는 '제후국'이었던 조선시대에는 없던 제도입니다. (:봉작제의 등급은 공작이 가장 높은 작위(爵位)고 그 다음이 후작이며 그 다음이 백작, 그 다음이 자작이고 가장 낮은 작위가 남작입니다)
고려태조 왕건은 '천수(天授 : 하늘이 내린 권력)'라는 연호를 만들어 썼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는 스스로 연호를 만들어 쓰지 않고 요나라나 금나라, 송나라의 연호를 받아 썼으나 시작부터 연호를 만들어 썼다는 것, 그리고 '하늘이 내린' 권력이라는 뜻인 '천수'를 연호로 만들어 썼다는 것은 고려가 태봉의 자주정신을 어느 정도 이어받았음을 말해 줍니다. 또 고려는 황제의 생일을 나타내는 '절일', 황제의 부인을 뜻하는 태후(太后), 황제 계승자를 뜻하는 '태자(太子)'라는 명칭을 썼습니다. 고려는 원나라에 항복할 때까지 이 명칭들을 썼습니다.(원나라에 항복한 뒤 원나라가 제후국 주제에 '외람되이' 태후, 태자란 명칭을 쓸 수 없다고 해서 바뀌게 되지요)
또 고려 사람들은 송악(개경)을 황도(皇都)·황성(皇城)이라고 불렀습니다. 조선시대의 역사책인 안정복 선생의『동사강목』에는, 고려 역사를 설명하면서 "왕건은 불의로써 나라를 얻고는 외람되이 천자(天子)라 칭한 부류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고려태조 왕건이 건국하면서부터 스스로를 '황제'로 일컬었음을 알려 주죠.
그러나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고려의 기록이 아니라 금나라의 기록입니다. 『제왕운기』를 쓴 이승휴는 책을 쓰면서 예전에 금(金)나라가 고려에게 보낸 조서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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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大金)황제가 고려국 황제(皇帝)에게 글을 보낸다.'(大金皇帝奇書于高麗國皇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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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스스로를 일컬은 기록이 아니라 금(金)나라가 고려에 보낸 금(金) 황제의 조서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고려가 스스로를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라고 했고, 이를 대외적으로도 인정받았다는 소리죠.(그런데도 교과서는 고려를 '왕'이 다스린 나라였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문헌상에 나타난 증거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시는 분들을 위해, 이번에는 '고고학 자료'인 금석문(金石文)을 살펴보겠습니다.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교산리에는 마애약사상(바위 벽에 약사여래불이 새겨져 있다)이 있는데, 그 옆에는 27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내용은 고려 경종의 만수무강을 비는 것이지요. 그 금석문에는 '황제만세원(皇帝萬歲願 : 황제께서 만세토록 - 오래오래 - 사시길 빕니다. 라는 뜻)'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고려의 경종을 황제라고 불렀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고려시대 송악의 궁궐에 딸려 있던 원구단(圓丘壇) :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 이곳에서 고려 황제가 제천(祭天 : 하늘에 제사지냄)도 '물적 증거'의 하나입니다. 동아시아 질서에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권한은 천자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하늘의 아들'로써 우주만물을 주관하므로) - 조선시대에 '격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원구단을 없애버린 이유이기도 하죠. 고려가 천자국이었음을 알려주는 증거입니다.
지금까지 고려가 제국이었다는, 그리고 스스로 제국을 일컬었고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라고 말한 증거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지금의 교과서에서 고려가 왕국일 뿐이었다는 주장은 - 기록과 물적 증거를 살펴보았을 때 - 크게 잘못된 주장입니다. 송나라에게는 '왕'이라고 칭했으나 그 밖의 다른 나라에는 스스로를 '황제'라 칭한 나라 고려. 세상의 중심이 고려라고 여긴 나라. 이제 우리는 이 나라를 '천자국'으로 복권시켜야 합니다. 교과서의 서술은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모자라는 글을 끝까지 참고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덧붙여서 : 어떤 사람들은 송나라가 '천자국'이고 고려는 송나라 - 또는 금나라의 - '제후국'일 뿐이었다고 주장하는데, 역사를 살펴 보았을 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천자국'이 해마다 많은 물품을 '제후국'인(?) 요나라, 금나라, 탕구트(西夏. 서하라는 말은 송나라가 자기들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탕구트족은 자기들의 나라를 '대하大夏'라고 불렀습니다)에게 거의 공짜로 바칩니까? '천자국'이 자기를 쳐들어온 '제후국'에게 '왕'과 '공'이라는 작위를 받나요? - 금나라는 북송을 무너뜨린 뒤 사로잡은 송나라 왕족들에게 '왕'과 '공'이라는 작위를 내려 깎아내렸다 - 오히려 금나라에도 '황제(皇帝)'임을 인정받았고 요나라의 침략을 자기 힘으로 싸워 물리쳤으며 스스로 황제라 칭한 고려가 진짜 천자국이 아닙니까? 고려시대의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지당하신말씀.긍지와자부심으로세계속의 대한으로 거듭 탄생되길,,,,,,,
정말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