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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이불보·바늘·실… 안에 내가 있고 세상이 있어...
뉴욕 맨해튼에 있는 김수자(52)의 작업실을 찾았다. 작업실은 그다지 넓지 않았지만 방 크기에 비해 창문이 큰 덕에 볕이 아주 잘 들고 있었다. 하얀 책상과 컴퓨터, 책꽂이, 그의 사진작품. 작업실엔 사각형 물건들만 조용히 놓여있어 고요했다. 김수자도 정말 조용한 사람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도 않고, 사람들과 있어도 말을 그다지 많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김수자를 여러 번 만나 봤지만, 인터뷰 하기 쉬운 사람은 아니라고 늘 생각했다.

김수자는 국제 미술계의 주류무대에서 인정 받는 몇 안 되는 한국 작가 중 하나다. 뉴욕을 본거지로 하는 그는 한국, 유럽, 러시아, 아시아 각 지역에서 작품을 제작하며 전시에 초청받고 있다.
지난 10월 3일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파리 시청 파사드(건물 외벽)에서는 김수자의 비디오 작품 ‘바늘여인(A Needle Woman)’의 파리 버전이 상영됐다. 매년 가을 파리에서 하룻밤을 새워가며 하는 ‘뉘 블랑쉬’ 축제에 전시되는 작가로 초청된 것이다. ‘바늘여인’은 그가 1999년 일본 도쿄에서 시작해 상하이, 델리, 뉴욕, 카이로, 라고스, 런던 등에서 꾸준히 찍어온, 그의 가장 대표적인 비디오 작업이다.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가는 수만의 인파 한가운데에 김수자가 등을 돌리고 가만히 서 있다. 옆으로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그의 몸이 인파 사이를 꿰뚫고 지나가는 바늘의 역할을 한다. 작가 자신의 몸을 ‘바늘’이라고 생각하고 이 세상 사람들 사이를 엮는 철학적인 물음과 행위로 해외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2005년 여름에는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스퀘어 광장에서도 상영됐고, 그해 가을 베니스 비엔날레의 메인 전시관에서도 전시됐다.
‘바늘’이 가진 의미가 뭔가요. “바늘은 양면성을 지닌 흥미로운 존재예요. 공격성과 치유의 특성을 공유하고 있지요. 말하자면 양성구유(兩性具有)의 속성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바늘이 가진 이런 속성 때문에 바늘을 더욱 사유하게 되고, 그와 연계된 작업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바늘은 천을 꿰매는 자신의 매개역할을 하고 나면, 실 자국만 남기고 자기 자신은 그 장소에서 사라집니다. 바늘여인 퍼포먼스 비디오에서 저의 몸을 관객이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되는 순간, 관객이 내 몸을 입고 그 자리에 서게 되는 것 역시 사라지는 바늘의 속성과 다르지 않지요. 관객이 내 몸이 빠져 나간 빈 자리(Void) 속에 자신의 몸을 대치해 내 몸을 뚫고 내가 보는 세상을 보게 되지요. 즉 내 몸이 관객들의 자기 성찰을 위한 미디엄(medium)이 되는 것이지요.”

▲ ‘보따리트럭-이민자들’의 퍼포먼스 때 사용됐던 트럭과 오브제가 파리 발데만현대미술관에 전시됐을 때 장면(2008). / photo 김수자 스튜디오
10년이 넘도록 세계 여러 곳에서 ‘바늘여인’을 계속 찍으시는 것을 보면, 다른 작품보다 ‘바늘여인’에 특히 애정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굴절 없이 있는 그대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또한 철저하게 나 자신으로부터의 질문을 통해 진화해온 선문답 같은 작업이니까요. 동시에 내 몸이 시공간의 축(Axis) 역할을 하여 인류의 모습을 성찰하는 바로미터가 되었으면 해요. 군중 속에서 세상의 모든 사람을 만나 그들을 포옹하고 싶어요. 오늘을 살아가는 인류에 대한 연민이라고 할까요?”
바늘’과 함께 김수자 작품의 원천이 된 것은 한국 전통 천으로 만든 ‘이불보’다. 이불보를 빨랫줄에 널어놓는 행위, 이불보를 묶은 보따리를 늘어놓는 설치작품, 보따리를 트럭 가득 싣고 떠나는 퍼포먼스 등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그를 ‘보따리(Bottari) 작가’라 부르기도 한다.
선생님 덕분에 ‘보따리’라는 우리말이 서양 미술계에 알려졌습니다. 이불보 천을 작품 소재로 사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학생 시절에 몬드리안 같은 추상회화에도 관심을 가졌다고 알고 있는데, 이불보 모양이나 무늬와도 관련이 있나요. “회화를 전공한 저는 줄곧 회화의 평면구조에 대한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홍익대 서양화과 대학원 재학 시절이었어요. 1983년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세계의 구조를 수직과 수평으로 파악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캔버스 위에서 드러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그것은 곧 나와 타자(他者)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와 이불을 꿰매려고 바늘 끝을 실크 천에 대는 순간, 번개가 치듯이 머리를 때리는 충격적인 에너지를 체험했어요. 천과 바늘과 내 관계 속에서 어떤 강렬한 결속을 느꼈어요. 그만큼 결속을 느낀 적은 그 이전에는 없었어요. 우주의 에너지와 내 몸의 에너지, 그 모든 것들이 바늘 끝으로 통하는 것을 느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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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니스 테아트로 라 페니스에서 전시됐던 ‘호흡:보이지 않는 거울/보이지 않는 바늘’(2006) / photo 김수자 스튜디오
이불보와 바늘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이불보라는 평면은 타자이고 바늘은 내 몸의 연장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바늘이 내 몸이라면, 실은 내 정신과도 같아요. 나의 정신이 바늘을 통해 천 위에 꿰어지는 것이지요. 결국 타자와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 타자와 나를 끊임 없이 잇고자 함, 치유에의 의지, 그런 것들이 결국 바늘을 꿰매는 행위로 드러났어요. 우리가 태어나고, 사랑하고, 꿈꾸고, 고통하고, 또한 죽어가는 장소가 바로 이불보지요. 이불보에 새겨진 삶의 기원들과, 그 장소성 때문에 보자기가 아닌 ‘이불보’를 고집스럽게 다루고 있지요. 그것은 곧 우리 몸과 삶의 ‘터(Frame)’니까요.”
바늘이든 이불보든, 김수자는 이미 있는 흔한 물건을 사용한다. 20세기 초반 마르셀 뒤샹이 와인랙과 남성 소변기를 들고 ‘레디 메이드(ready-made) 예술’을 시작한 이후 많은 현대미술가들이 새롭게 뭔가 만드는 것을 포기하고 이미 존재하는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작품을 해왔다.
기성 물건을 사용하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아티스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지 않아요.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게 아티스트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어떤 물건을 사용할 때엔 그 물건을 사용한 사람들의 삶을 사유하기 위해서예요. 물건 자체보다 그 물건을 썼던 사람들의 존재나 흔적이 제 작품에서는 더 중요하지요.”
‘레디 메이드’가 아니라 ‘레디 유즈드(ready-used)’ 작품이라고 해야겠네요. “네, 맞아요. 보따리가 담고 있는 한국여인의 삶, 인류의 삶, 그런 보이지 않는 요소에 저는 주목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보따리가 펼쳐졌을 때에는 가족, 부부, 사랑, 정착, 안식, 그런 개념으로 연결되지요. 꽁꽁 싸매진 상태에서는 떠남, 결단, 이별 같은 의미가 있고요. 보따리는 한 장소에 놓여졌을 때에는 한 인간의 삶이 정착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언제라도 다시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어요.”

▲ 1. 비디오작품 ‘뭄바이:빨래터’(2007~2008) 2. 비디오작품 ‘보따리트럭-이민자들’(2007) 3. 인도 델리에서 찍은 비디오작품 ‘바늘여인’(1999~2001) 4. 네팔 파탄에서 찍은 비디오작품 ‘바늘여인’(2005) / photo 김수자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