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노래하는 족제비 신화
용감한 족제비 진남이는 후배들을 만날 때가 가장 즐겁다. 교교한 달빛 아래 날렵하게 뛰어올라 거대한 거위의 목줄을 물어뜯던 순간들을 실감나게 말한다. 침이 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횟수가 늘어나면서 몸짓까지 곁들여져서 그의 주위에는 젊은 족제비들이 모였다.
오늘도 진남이는 마을 가운데 호두나무 고목 앞에서 용맹무쌍했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듣는 후배들의 눈이 초롱초롱할 때마다 그는 신이 나서 배우 뺨을 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물었다.
"거위 부리는 대단하다고 하던데, 한 번도 물리지 않았어요?"
"야! 나의 이 날씬한 몸을 봐라. 그 둔한 거위에게 찍히거나 물리겠느냐?"
"거위는 부리로 찍기도 하고, 물어뜯고 흔든다고 하던데요. 무섭지 않았어요?"
"야 임마! 너, 나를 어떻게 보고 그래! 내가 거위 따위를 겁낼 족제빈 줄 알고 있다면, 앞으로 내가 이야기할 때 듣지도 말아!"
"거위는 발도 크다면서요? 그 큰 발로 할퀴고 차고 밟아버린다면서요?"
"그럼, 거위가 덤비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하지. 그러나 나처럼 용기가 있는 족제비가 보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 큰 발과 발 사이로 빠지고 휘저으면서 물어뜯고 할퀴면 큰 발도 소용이 없지. 나의 달리기 실력은 너희들이 다 알고 있잖나! 더구나 나의 날카로운 앞발로 거위의 뱃가죽을 할퀴며 지나갈 때의 스릴이란 경험해 본 족제비만 알 거야. 흠흠!"
"야! 대단해요!"
후배들의 탄성과 부러운 눈길에 힘이 난 진남이는 정말 신이 난다. 세상에 살다가 이런 일이 몇 번쯤 더 일어난다면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산들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것도 다 자신을 위해 부는 것 같다. 개울물 소리가 청량한 것도 다 자신을 찬양하는 소리로 들린다. 새들이 노래하는 것도 모두 자신의 무용담을 전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젊은 족제비들 중에 진남이를 잘 따르는 후배가 있다. 후배인 짝귀는 걱정스런 얼굴로 진남이를 지켜본다. 진남이가 이야기를 반복할 때마다 늘어나는 무용담이 이제 실화를 벗어난 것 같아서다. 닭을 훔치려고 나섰다가 거위를 만났고, 그 거위와 싸우다가 거위를 죽였다는 것은 눈으로 보았으니, 누구나 의심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을 신화처럼 확대 재생산하는 진남이의 앞날이 심히 걱정스럽다.
입이 아플 정도로 무용담을 늘어놓던 진남이가 집을 향해 있는 거드름을 피면서 걸어간다. 조용히 뒤를 따르는 짝귀를 바라보며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어때, 내 이야기, 들을 만하던가?"
"그럼요. 형님의 입심을 당할 사람이 있나요?"
"입심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거야. 그게 모두 사실이라니까!"
"사실은 사실이니까, 신경 쓰실 일이 아니고요.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그날 형님은 한 군데 상처도 없고 터럭 하나 뽑힌 곳이 없었거든요."
"그야 날렵한 내가 요리조리 빠져 다니면서 공격을 했으니까, 그렇지!"
"그래도 궁금한 게 있어요. 그 때 그 거위 발톱 하나가 물어 뜯겨 거의 끊어질 정도가 되어 있었는데요. 그렇게 물어뜯다가 보면 거위의 발에 채이거나 부리에 찍히게 마련인데. 형님은 채이거나 찍힌 상처가 없다니 좀 그래요."
"야. 그것은 거위를 잡은 다음에 화가 나서 내가 물어뜯은 거야! 뭐 그런 것에 신경을 쓰니, 신경을 쓰긴. 할 일도 없니, 너는?"
"더 이상한 것은 거위의 오른쪽 발가락에 족제비의 털이 잔뜩 묻어 있었거든요. 그 정도로 털과 피가 묻어 있었다면, 족제비가 완전히 당한 것이어야 하는데. 형님은 터럭 하나 빠진 곳이 없다 말이에요."
"야! 오래 전에 그런 일들이 일어났을 수도 있잖니? 피곤한데, 그런 이야기 그만 좀 두자. 낮잠이나 자자. 잠이나 자!"
"아네요. 하나 더 있어요. 그날 거위 부리에 족제비의 가죽이 한 조각 물려 있었거든요. 다른 족제비들은 형님의 무용담과 거위 고기 한 점씩을 씹느라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저는 다음에 거위를 만나 싸울 때를 대비해서 요리조리 다 살펴보았거든요. 그 족제비 가죽 조각은 무엇을 말하는지. 말씀해 주세요."
"야, 이 새끼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너, 귀만 짝귀가 아니고, 눈도 짝눈이니? 네 눈이 애꾸눈 아니야? 아무도 못 본 것을 네가 보았다고 하면, 꿈속에서 본 것 아니야? 임마! 가서 자빠져 잠이나 자! 이 새끼야! 후배라고 아끼며 데리고 다녔더니, 이제 보이는 게 없나? 가, 이 새끼야! 꼴도 보기 싫어!"
"예. 알았어요. 그런데 형님과 함께 간 ‘꿩잡이’ 형님은 어디 갔어요? 도통 보이지 않네요."
"야, 이 새끼야. 내가 ‘꿩잡이’ 애인이냐, 보호자냐! 나 모르는 일이야. 그리고 앞으로 꿩을 잡을 때 이야기를 하면 너는 끝장이야 끝장! 알았어?"
그때까지 위풍당당하던 진남이의 태도가 갑자기 바뀐다. 눈은 표독스럽게 파란 빛을 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겸연쩍은 낯빛으로 꼬리를 사리고 집으로 들어간다. 뒷모습에서 냉기가 풍긴다. 짝귀는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비탈길을 오른다.
【비디오 화면 현장 재현】
고만고만한 젊은 족제비 셋이 소풍을 나선다. 진남이, 짝귀, 꿩잡이 세 마리의 족제비는 마냥 한가롭다. 여기도 살피고 저기도 살피면서 궁금한 세상, 모두 구경하리라 길을 나선다. 개구리가 걸리면 개구리를 잡아먹고, 들쥐가 걸리면 들쥐를 잡아먹으면서 산천유람이나 하자며 나선 길이다.
산그늘에 덮인 푸섶을 지날 때 갑자기 푸드덕 날개 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까투리 한 마리가 나타난다. 어디를 가는 나그네냐고 묻지도 않고 앞에 선 짝귀의 머리를 찍어댄다. 그때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족제비 귀는 유난히 작은데, 그 작은 귀를 까투리가 물어뜯어 버린 것이다. 깜짝 놀란 짝귀는 줄행랑을 친다. 귀에서는 붉은 피가 흐른다.
두 족제비도 우선 멀찍이 피한다. 꿩잡이가 끼웃끼웃 하면서 까투리를 살핀다. 까투리는 마른풀로 옷을 해 입은 것처럼 갈색의 조화로운 몸짓이다. 가끔 잡아먹는 닭보다도 작은 것이 앙칼스럽다. 몸집이 더 큰 닭도 족제비를 보면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게 마련인데, 이 조그만 게 까불며 덤빈다.
짝귀가 꿩잡이의 뒤에 숨어 버리자, 진남이는 갈참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동정을 살핀다. 센 놈과 붙을 때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인지, 그는 숨어버리기 대장이다. 꿩잡이와 짝귀가 서로 눈짓을 하더니, 까투리 주위를 빙빙 돈다. 두 마리가 빙빙 도니까, 까투리도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른다. 짝귀에게 달려들었다가, 꿩잡이에게 달려들었다가, 꾸르륵 소리를 내면서 종종걸음이다. 꿩! 꿩! 장끼라도 와주었으면 좋으련만, 단기일전(單騎一戰), 까투리 혼자 외롭다.
빙빙 돌던 꿩잡이가 파도처럼 몸을 움직이다가, 꿩의 목줄을 물어뜯으며 뒹군다. 까투리는 날개를 치면서 발버둥 친다. 짝귀가 꽁지를 물어뜯는다. 잠시 후, 사방은 조용하고, 두 족제비는 고픈 배를 채우기 시작한다.
"이 새끼 별것도 아닌 것이 지랄했어!"
그때서야 용감한족제비진남이정남이가 나타난다. 친구와 후배가 피 흘리며 잡아 놓은 까투리의 몸통을 찢어내며, 게걸스럽게 먹는다.
그날 이후로 물어뜯긴 오른쪽 귀, 갈라져 너풀거리는 귀로 인해 ‘짝귀’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리고 짝귀의 입을 통해 친구는 ‘꿩잡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