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다르다
박노해 시인
초등학교 일학년 산수 시간에
선생님은 키가 작아 앞자리에 앉은
나를 꼭 찝어 물으셨다
일 더하기 일은 몇이냐?
일 더하기 일은 하나지라!
나도 모르게 대답이 튀어나왔다
뭣이여? 일 더하기 일이 둘이지 하나여?
선생의 고성에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예, 제가요, 아까 학교 옴시롱 본깨요
토란 이파리에 물방울이 또르르르 굴러서요
하나의 물방울이 되던디라, 나가 봤당깨요
선생님요, 일 더하기 일은요 셋이지라
우리 누나가 시집가서 집에 왔는디라
딸을 나서 누님네가 셋이 되었는디요
아이들이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으로 손바닥에 불이 나게 맞았다
수업시간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 손바닥을 어루만졌다
어쩌까이, 많이 아프제이, 선생님이 진짜 웃긴다이
일 더하기 일이 왜 둘뿐이라는 거제?
일곱인디, 우리 개가 새끼를 다섯 마리 낳았응께
나가 분명히 봐부렀는디
쇠죽 끓이면서 장작 한 개 두 개 넣어봐
재가 돼서 없어징께 영도 되는 거제
그날 이후, 나는 산수가 딱 싫어졌다
모든 아이들과 사람들이 한줄 숫자로 세워져
글로벌 카스트의 바코드가 이마에 새겨지는 시대에
나는 단호히 돌아서서 말하리라
삶은 숫자가 아니라고
행복은 다 다르다고
사람은 다 달라서 존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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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고흥 벌교에서 자랐다.
16세에 상경하여 선린상고(야간부)를 졸업한 후 섬유, 화학, 금속, 운수 노동자로 일했다.
현장 노동자로 일하던 중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펴내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85년 결성된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고, 1989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 결성을 주도했다.
1991년 3월 체포되어 24일간의 불법고문 끝에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수괴’ 죄목으로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형에 처해졌다.
1998년 8월 15일, 8년여 감옥 생활 끝에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되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선언 직후 전쟁터로 날아가 반전평화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2005년에는 쓰나미 이후의 아체에 다녀와 《Pamphlet 001: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를 펴냈다.
현재 ‘생명˙평화˙나눔’을 기치로 내건 사회단체 ‘나눔문화(nanum.com)’를 통해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살아가는 대안 삶의 비전 제시와 ‘평화나눔’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첫댓글 반갑고,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精誠이 깃든 作品
拜覽하고 갑니다.
恒常 즐거운 生活 속에
健康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