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학》 56집 <특집>
붉은 감기
김영철
가을 산
다녀와서
홍시처럼 앓는 여인
가슬가슬한 이마 위에
낙엽 타는 냄새가 난다
단풍만
담으라 했는데
불을 안고 왔는지
아름다운 손
김영철
파도가 쉬지 않고 바다를 닦는 것은
햇빛을 볼 수 없는 고기들 때문이다
하늘이 잘 보이라고 문을 여는 것이다
바람이 부지런히 들판을 쓰는 것은
혼자서 꼼짝 못 하는 씨앗들 때문이다
마음껏 세상 구경하라고 길을 트는 것이다
나 그대에게 그랬으면 참 좋겠네!
김영철
숨어 우는 그늘 안에 한 톨 빛 씨앗이라면!
옥죈
마음 감옥에 손바닥만 한 창이라면!!
세상에
발 내밀 수 있는 낮고 편한 길이라면!!!
운명의 한 줄 글처럼
뜨거운 한잔 술처럼
선명한 이정표처럼
살가운 보름달처럼
이 한 몸 무엇이 되든지
그랬으면 참 좋겠네!
시작 노트:
낮은 곳에서 키 작은 꽃으로 살다가 시들지 않는 조화 몇 송이 가슴에 안고 잠만 자는 작은 유리 상자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살아낸 시간의 얼룩진 필름이 돌아가고 4차원으로 연결된 통로에는 기력 없이 널브러진 내가 보인다. 길어야 고작 100년인데 너나없이 욕심은 영원을 뛰어넘는다.
글 값은 고사하고 지면 값을 요구하는 문학판에서 어쭙잖은 필력으로 발을 빼지 못하는 내가 불쌍하고 시고 단 줄줄이 사탕으로 완장 하나 차지해서 사람 위에 군림하려는 뱃살들이 가엾다.
언제 어떻게 별이 될지 먼지가 될지 모르는데 사람들은 뒤돌아보는 것에 인색하다. 어쩌면 우리가 찾는 모범 답안은 디디며 건너온 발자국에 있을지 모른다.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내일에 우린 너무 많은 것을 걸고 있다.
다시 두 손을 모은다.
다만, 오늘 하루 깃털이 되도록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