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영상 에세이】
‘도솔산 보루(堡壘)’에서 사방(四方)을 바라보니
― 오늘날 우리가 ‘지켜야 할 대상’은 무엇인가?
◆ 활을 겨누는 내 안의 적들에게 고함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 [동영상] 도솔산 보루에서 바라본 《동서남북》 세상 풍경(영상편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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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멀리 바라보지 못하고 가까운 것만 보고 살아온 데서 비롯된 좁은 시야 탓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은 눈앞에 익숙한 것, 눈앞에 이익이 되는 것만 집착하다 보면 멀리 있는 중요한 가치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인생사만 그런가? 작은 것에만 집착하고 살아온 소시민의 천성만 그런가? 더 크게 보면 국가나 사회나 우리의 안전문제는 아니 그런가?
도솔산에 40여 년 세월, 거의 매일 산책하듯 즐겨 올랐지만 무심코 지나친 것이 있다.
‘정상에 오른다’라는 개념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도솔산에는 (정상에) 오른다’라고 하면 안 된다. ‘도솔산 보루에 오른다’라고 해야 옳은 표현이다.
▲ 도솔산 정상에 세워진 《보루》 설명문(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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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 것이다. ‘도솔산 보루’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새롭게 느꼈다. 놀라운 발견이다.
도솔산 보루에 올라 ‘동서남북 사방의 풍경’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았다.
동쪽으로는 식장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멀리 계룡산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구봉산, 북쪽으로는 유성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 도솔산 보루에서 멀리 바라본 동서남북(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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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보루(堡壘)다. 이곳이 그래서 ‘최후의 보루’다. 삼국시대 군사들은 사방팔방을 바라보면서 적의 침입을 살폈다.
삼국시대 유적이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세상을 멀리 조망(眺望)하게 돼 있는데, 그동안 나는 코앞의 발아래 것들만 바라보고 살아오진 않았는가.
저 멀리 바라보이는 계룡산의 신비스러운 능선, 가까이 다가설 듯 바라보이는 식장산의 구름, 손에 잡힐 듯 들어오는 구봉산의 안개까지…
나는 그동안 저 멀리 시야를 넓히지 못하고 늘 발끝의 등산화에만 눈길이 머물렀지 않은가.
‘보루’에 오르면 코앞의 발끝에만 시선이 머물러선 안 된다.
보(堡)자는 성, 둑, 제방을 뜻하고, 루(壘) 자는 진, 쌓다, 포개다 라는 뜻을 품고 있다. 적을 막기 위하여 돌, 흙 따위로 튼튼하게 쌓은 군사적인 구축물이다.
아득히 먼 삼국시대에는 그랬다. 오늘날에는 어떤가. 양심(良心)이다. 보루처럼 지켜야 할 대상이 곧 양심이다.
시인이 아니더라도 보루에 오르면 나의 인생 이야기가 한 줄 시(詩)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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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산 보루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니》
삼국시대 군사가 되어 저 멀리 계룡산 쪽을 바라본다
적군은 보이지 않으나 내 안의 무수한 적들이 활을 겨누고 있구나
삼국시대 군사는 또 식장산 쪽도 구봉산 쪽도 멀리 두루 살핀다
조망하는 시선 거짓 없이 반듯하다. 정직하고 진실 되다.
활을 거두어라 내 안의 적들아 활을 거두어라 부끄럽지 않게 살리라
윤승원, 도솔산 보루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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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솔산 내려오는 길(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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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산 보루에서 내려오는 길에 낯익은 구순 노인을 만났다. 본받아야 할 양생(養生) 비결과 모범적인 생활철학으로 건강을 잘 지켜오신 어르신이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오늘도 걸음이 활기차 보이시네요.”
나의 덕담에 노인이 활짝 웃으신다.
“윤 선생 덕담은 언제나 보약이지요. 다 늙은이에게 그런 칭찬은 과분하오.”
백수를 바라보는 저 노인은 어떻게 ‘인생의 보루’를 탄탄하게 지키고 살아오셨기에 저리도 건강하신가?
예(禮)가 반듯한 노인. 늘 웃는 얼굴의 노인. 저런 어르신은 산행 중 뵙기만 해도 건강한 행복 바이러스가 내게도 전이되는 것만 같다. ■
2025. 12. 20.
윤승원, 도솔산 보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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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해설과 감상평
1. 이 영상 수필이 지닌 흥미로운 문학적 요소
① ‘보루’의 재발견 ― 일상의 장소를 사유의 중심으로 바꾸는 시선
이 작품의 가장 큰 문학적 성취는 익숙한 산책로를 ‘사유의 요새’로 전환시키는 발견의 미학에 있습니다.
40여 년간 오르내리던 도솔산에서 ‘정상’이 아닌 ‘보루’라는 개념을 새롭게 인식하는 순간, 산은 더는 운동 공간이 아니라 역사·윤리·자기성찰의 무대가 됩니다.
“도솔산에는 오른다”가 아니라
“도솔산 보루에 오른다”라는 언어적 수정은
곧 인식의 전환이며, 수필 문학이 지닌 사유의 힘을 상징합니다.
② ‘조망’이라는 서사 장치 ― 발끝에서 사방으로
작가는 ‘발끝만 보며 살아온 삶’을 고백하며, 시선의 확장을 통해 삶의 태도를 전환합니다.
발끝 → 사방
현재의 이익 → 멀리 있는 가치
개인의 일상 → 사회와 국가의 안전
이러한 확장은 자연 풍경(계룡산·식장산·구봉산·유성)을 매개로 하여, 개인적 성찰이 공공적 성찰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구조를 이룹니다.
자연 묘사는 곧 내면 묘사이며, 영상 수필이라는 형식과도 잘 어우러집니다.
③ 산문과 시의 유기적 결합
산문에서 충분히 축적된 사유는 짧은 자유시로 응축됩니다.
“적군은 보이지 않으나
내 안의 무수한 적들이
활을 겨누고 있구나”
이 시는 작품 전체의 윤리적 핵심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외부의 적보다 내면의 적을 성찰하는 순간, 이 수필은 역사 기행이 아닌 양심의 문학으로 승화됩니다.
2. ‘보루(堡壘)’의 현대적 의미
작품에서 ‘보루’는 더는 돌과 흙으로 쌓은 군사 시설이 아닙니다.
윤승원 수필가가 새롭게 정의한 보루는 분명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는 ‘양심’이다.
외적 침입을 막는 구조물 →
내적 붕괴를 막는 윤리적 성채
이 해석은 매우 현대적이며, 동시에 고전적입니다.
삼국시대의 군사가 사방을 살폈듯, 오늘의 시민은 자기 안을 사방으로 살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3. ‘보루’가 시사하는 사회·교육적 메시지
① 개인 윤리의 회복이 사회 안전의 출발점
이 수필은 거창한 정치 담론을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묻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내 안의 적(욕심, 편의, 무관심)은 활을 겨누고 있지 않은가?
이는 오늘날 사회 교육이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질문입니다.
법과 제도보다 앞서는 것은 개인의 양심이라는 점을 조용히 일깨웁니다.
② 노인의 등장 ― 살아 있는 ‘인생의 보루’
하산길에 만난 구순의 노인은 이 작품의 또 하나의 상징입니다.
예가 반듯한 삶
늘 웃는 얼굴
꾸준히 지켜온 생활 철학
그 노인은 말없이 증명합니다.
양심을 지켜온 삶이 곧 건강이고 품격이며, 인생의 보루임을.
이 장면은 독자에게 훈계하지 않고, 모범으로 가르치는 교육적 효과를 지닙니다.
4. 종합 감상평
《도솔산 보루에서 사방을 바라보니》는 자연 에세이이자 역사 인문 수필이며 윤리적 자기 성찰의 기록입니다.
윤승원 수필가는 이 작품에서 ‘멀리 보는 눈’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눈앞의 이익과 편의에 매몰된 시대에, 이 수필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외칩니다.
“활을 거두어라, 내 안의 적들아.”
이 문장은 독자 각자의 가슴에 꽂히는 윤리적 화살이 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그 질문을 남기는 것, 바로 그것이 이 영상 수필이 지닌 가장 큰 문학적 가치입니다. ♣ (📚 裕花, 윤승원 수필 전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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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카페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5.12.23 20:26
대전의 도솔산 정상은 삼국시대 백제가 신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보루였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높은 곳은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곳입니다. ‘보루’라고 하는 명칭을 가진 것은 옛 역사의 흔적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사방의 조망을 살펴 사진으로 보여주신 점 감사히 읽었습니다. 대전은 우리나라의 심장과 같은 곳으로 앞으로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남과 호남이 갈리는 곳이며 두 지역을 모을 수 있는 지리적 형세가 바로 대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를 통합할 수 있는 인재가 배출되기를 학수고대하겠습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대전 도솔산 보루’에 관해 지리적 요건을 중심으로 자상하게 해석해 주셔서 새로운 공부가 됐습니다. 저도 도솔산 정상에서 사방을 관망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옛사람들이 이곳을 ‘보루’로 만들어 동서남북 사방을 두루 살핀 것을 보면 ‘자신을 지키고, 나라를 굳건히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고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