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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사례로 보는 특수한 영재 사례 1 : 한국편 1982년 당시 5세 된 어린 꼬마가 영어, 일어, 불어, 한문, 한글 등을 읽고 쓰고 해석한다고 하여 천재가 났다, 신동이 태어났다며 사회에 큰 관심을 불러모았던 화제의 주인공 정연덕군(17, 부산시 금정구 부곡1동 시영아파트, 지체2급 3종). 사회의 커다란 주목을 받은 만큼이나 사람들의 기억에서 빨리 사라졌던 정군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음이 밝혀져 주위의 관심이 새삼 요청되고 있다. 정군은 아버지 정일홍씨(고물행상)와 어머니 이영희씨 사이에서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으나 5세 전반기까지 엄마란 말 한 마디 하지 못해 타고난 청각장애아로 취급 받았다. 그러던 정군이 5세 후반기부터 갑자기 기상천외한 말문이 열리면서 주위를 경악케 했고 이 사실이 사회에 알려지면서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10년, 20년을 매달려도 어렵다는 외국어를 그것도 국어를 포함 5개 국어를 읽고 말하는 천연덕스러운 어린 모습을 보고 감탄의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사실이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된 이튿날 새벽 3시경 문장철학을 30여년 간 연마했다는, 길다란 흰 수염을 휘날리며 神仙같은 할아버지(87세) 한 분이 마산서 불시에 들이닥쳤다. 돈으로 신문, 방송을 매수하여 꾸민 연극에 불과하다는 등 해괴망측한 소리를 혼자 중얼거리며 곤한 잠에 취해 있는 어린 신동을 강압적으로 깨웠다. 글귀를 내려다보던 신동은 얼굴을 곧바로 세우고는 틀린 글자라고 잘라 말했다. 이 말에 추상같았던 할아버지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 그렇지 어린 놈이 어떻게 어려운 한자를 알 수가 있느냐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재차 틀렸다는 신동의 고집스런 주장에 혹시나 하여 찬찬하게 살피던 할아버지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운데 두 글자의 획수가 틀렸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발견했다. 다시 자신의 경솔함을 감추기라도 하듯 다른 넉자의 한자문을 내놓았다. 역시 가운데 글 한자의 획수가 또 빠져 있다는 지적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10여분이란 짧은 시간에 이뤄진 것이다. 머쓱해진 노인네가 떠나려 하자 이번엔 신동이 불러 세웠다. "이젠 제가 문제를 내겠습니다"며 어른스런 말투로 내놓은 문제가 □안에 "나무 목"자 9개가 들어 있는 것이었다. 괴 노인은 이런 한자는 세상에 없는 것이라며 사람을 놀리면 못 쓰는 법이라고 도리어 타일렀다. 어린 신동은 싱긋하며 "나라동산 유"자라고 했고 이에 괴 노인은 상기된 얼굴로 그냥 묵묵부답. 이어 "용용"자 세 마리를 내놓았다. "용이 나는 모양 답"자를 괴 노인이 알 리가 없었다. 연이어 용 네 마리 글자를 내놓았으나 역시였다. "말 많은 절"자 라는 해석에 상대방은 그제야 잘못을 시인하듯이 들어올 때처럼 부리나케 달아나 버렸다. 그 후 이 소식을 접한 한학 전문가 5인이 모여 연구했으나 도저히 알 길이 없는 문자에 불과했으나, 마지막으로 사람의 1자 반이나 된다는 초대형 옥편을 2시간이나 뒤진 결과 기어코 확인하는 개가를 올려 신동의 실력을 공식 뒷받침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일로 인해 4년 전부터 일반옥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대학생들이 한문, 외국어 등 시험삼아 뜻풀이를 요구하느라 문전성시를 이뤘고, 한학에 조예가 깊다는 시골 노인네들이 찾아 들었으나 모두가 혀를 내두르고 꽁무니를 빼기 다반사였다. 각종 종교단체에서도 포섭하기 위한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으나 모두 거절했고, 모 방송국에서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 외국입양을 권유하며 부산서면에 위치한 1천5백만 원짜리 집 한 채를 제의했으나 이것조차 부모들이 뿌리쳤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얘깃거리가 사회에 알려졌다. 그러나 천재냐 신동이냐로 설왕설래하며 초미의 관심을 기울여 온 사회가 병원 IQ 검사에 110이란 숫자가 나왔다는 소식에 "평범한 아이"로 외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파한다"는 우리의 속담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했고, 돕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던 정부에서는 각 부서끼리 서로 미루다보니 세월만 흘러갔고, 주위의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샌드위치 상태로 현재까지 이른 것이다. 초등학교는 더 이상 배울 게 없어 3학년에서 중퇴했다. 그렇다고 어린애가 상급학교에 진학한다는 문제는 이 사회가 더더욱 허용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희망의 꿈만 먹고 살다보니 12년의 허송세월은 쉽게 지나가 버린 것이다. 요즘은 독일어, 스페인어, 러시아어까지 읽고, 쓰고, 해석하는 중급 정도의 실력은 갖추고 있다. 부산 동의대학 박문현 사회학과 교수는 정군을 그냥 버려 두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라 판단하고 검정고시를 통한 학위취득 과정을 독려했다. 이에 용기 백배한 정군은 지난해 8월 부산 부일고시 학원에 입학, 학원비 면제혜택과 함께 향학열을 열심히 불태우고 있다. 정군은 걸음마를 겨우 시작한 세 살 때 이웃집 노인이 귀엽다며 노인정으로 데리고 나들이 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저녁 무렵 거나하게 취한 이 노인네가 아차 하는 사이 어린 정군은 2층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왼발이 골절된 이 사건은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할 운명의 갈림길이 돼버린 것이다. 밤새도록 고통에 시달려 울부짖던 어린 연덕이를 들쳐업고 부산대학병원으로 내달렸다. 딱한 형편을 파악한 병원 측에서는 수술비를 면제해 주겠으나 치료약값 3만원을 구해오라고 했다. 1백일 전에 치료를 놓치면 앉은뱅이가 될 수 있다는데도 찢어질 듯 가난한 가정형편이 막중한 치료시기를 놓치게 한 것이다. 그 이후 방송 출연비 10만원이 손에 쥐어졌다. 명의를 찾아 전라도 지방을 헤매다 여수애향재활병원을 방문 수술을 받았으나 후유증만 남기는 실패작이었다. 대구 영남대학병원에서 무료로 8개월 정밀검사를 받고 필요한 약물을 6개월 투여하면 치료 가능하다는 기쁜 결과도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석 달 열흘 간(약값 20만원)은 복용할 행운을 잡았으나 나머지 기간은 역시 채우지 못하고 중단해 부모의 가슴만 쓰라리게 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14일 경희의료병원에 입원 2차에 걸친 양하퇴 수술을 받은 결과 많이 양호해졌다. 사회에 뿌리깊이 만연하고 있는 불신풍조가 정군의 앞날을 가로막았다는 슬픈 사실 앞에 우리 모두는 재음미해야 할 것이며 소외 계층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관심도를 문민정부에서는 꼭 높여야 할 것으로 크게 지적되고 있다. -장애인 신문, 1993년 3월 12일자 5면- 사례 2 : 미국편 John(Jack) R. Honor 박사는 모든 학교수업에서 어려움을 보였고 대학에서 낙제를 하였던 사람이다. 그러나 현재는 고생물학계(paleontologist)의 최고 권위자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맥아더 재단이 수여하는 상(一名:碩學 賞)을 수상한 바 있고, 쥬라기 공원이라는 영화 속에 나오는 고생물학자의 실존 모델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 몬타나에 거주하면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공룡의 뼈를 연구하고 있다. 지난날을 돌이켜 기억해 보면 내가 학창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나는 수학과목과 읽기, 그리고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 과목에서 많은 어려움을 경험했었다. 결국 모든 교과목에서 어려움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하여도 학습장애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나의 선생님조차도 내가 게을러서 그런다고 생각하셨다. 그러나, 나는 내가 게을러서 학습에 어려움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내가 멍청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했었다. 또한 돌이켜 보건대 나는 과학에 매우 흥미를 가졌었던 것 같다. 내가 8살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 번은 나의 아버지께서 우리 집이 있는 Montana 근처의 한 곳으로 나를 데려 가신 적이 있었다. 그 곳에는 많은 뼈들이 땅 밖으로 튀어 나와 있었다. 그때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 뼈를 한 개 가지고 나왔다. 나는 그때 이미 화석을 분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져온 뼈에 번호를 붙여 놓았다. 나는 그때 가져온 뼈가 공룡(dinosaur)의 뼈일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그것이 진짜 공룡의 뼈로 밝혀졌다. 나는 공룡 뼈와 과학에 대하여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을, 심지어 학교에서조차도 그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했었다. 내가 7학년과 8학년 때에는 하교시 도서관으로 가고 싶어서 학교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때 내가 살았던 동네의 도서관에 있었던 모든 과학 책을 다 보았다. 도서관에 있는 과학 책뿐만 아니라, 학교에 있었던 과학 책, 선생님들과 학자들만 이용하는 도서관의 과학 책까지도 다 보았다. 내가 보고 싶은 책은 그것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상관없이 모두 찾아서 보았다. 그러나 그때 나는 읽기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책을 읽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책 속에 있는 그림들을 통해서 나는 과학에 대한 많은 것들을 학습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그 때 뼈들과 화석을 찾기 위해 Montana의 거의 모든 언덕을 헤매고 돌아다니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만일 그 때 나와 함께 돌아다닐 수 있었던 친구가 있었다면 굉장히 좋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혼자서도 너무 즐거웠었기 때문에 친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 때도 나는 여전히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학습에서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 속은 과학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학교학습에서 실패를 경험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었다. 고등학교는 내가 과학에 대한 그 동안의 관심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우리 학교에서는 매년 과학경진대회를 개최하였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하는 동안 사거리가 굉장히 긴 매우 큰 로켓을 만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의 로켓을 알 정도가 되었고, 나는 그 과학경진대회에서 우승을 하였다. 하지만, 나는 결코 누구에게 알릴 목적으로 나의 로켓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는 그러한 작업이 매우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었을 뿐이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3학년 때에도 과학경진대회에서 우승을 하였다. 나의 고등학교 최고 학년 때의 연구주제는 공룡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10 학년 때부터 줄곧 공룡에 관한 연구를 해오고 있었다. 나는 그 때까지 Montana의 공룡들은 같은 형태의 지층에서 발견된 Canada 또는 Alberta의 공룡들과 왜 다른지 그 이유가 무척 궁금했었다. 그 해, 나는 과학경진대회에서 또다시 우승하였다. 2년 전에, 결국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던 의문점에 대한 답을 정리하여 출판하였다. 나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모든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내가 과학경진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하였었지만, 나는 여전히 과학수업에서 형편없는 성적을 보이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시험준비를 위한 암기를 하도록 원하셨다. 나는 정말이지 암기가 무엇인지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말 나에게 있어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성적을 보면 내가 암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 나는 내 생애를 통틀어 단 한번만 B학점을 받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의 성적은 몇몇 과목에서만 C 학점이었고, 대부분 과목의 성적은 D 학점, 그리고, 많고, 많고, 많은 과목의 성적이 F 학점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나 자신을 믿고 있었다. 이러한 자신감은 나는 어느 누구보다 훨씬 잘 할 수 있는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내가 과학경진대회 우승한 것과 내가 하는 일에서 대부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나는 내 방식대로 일을 한다"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결국, 나는 고등학교의 영어과목 성적이 D ̄로 졸업했고, 나의 선생님들이 나에게 들려준 말씀에 의하면 선생님들께서 나의 영어과목을 낙제처리 하려고 하셨으나 선생님들께서 내가 영어과목을 재수강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통과시켜 주셨다고 했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대학에서는 과학에 대한 더 많은 책과 더 많은 지식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해결하고 싶은 많은 의문들을 가지고 있었다. 돌이켜보건대, 나의 성적이 형편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받아주는 대학이 있었으니까 가능했지 그렇지 않았었다면 나는 대학에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에 재학하는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지만 결국 나는 낙제생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암기할 수 없었고, 강의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힘들었다. 화학 교수는 칠판에 판서를 하면서 동시에 내용을 설명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판서한 내용을 읽는 것도 힘이 들었는데 쓰면서 설명하는 것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대학에서 퇴학을 당했다. 그렇지만 나는 꾸준히 재입학을 시도했었다. 그 결과 몇몇 교수님들은 "우리는 그가 가진 문제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흥밋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총명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는 결코 우리들의 과목을 이수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나를 구제해 주셨다. 나는 대학 및 대학원에 개설된 과학관련 과목 모두를 수강했지만, 너무도 많은 과목에서 낙제를 했기 때문에 나는 학사학위를 받지 못했다. 나는 대학에서 수강하고 싶었던 모든 과목을 수강하고 난 후에, 고생물학(paleontology)관련 직업을 찾기 위해 영어권의 전 세계 박물관에 편지를 썼다. 그 결과 New Jersey의 Princeton 대학의 박물관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나에게 왔다. 그래서 나는 Princeton 대학에서 공룡 뼈를 닦고 조립하는 책임을 맡은 고생물학 조교가 되었다. 내가 이 일을 제의 받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계속 공룡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고생물학 연구에 헌신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공룡의 미스터리를 푸는 일에 도움이 되는 직업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느 것도 내가 가진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내가 Princeton의 박물관에 재직하고 있는 동안, 나는 난독증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학습장애가 무엇인지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나의 학교 공부가 왜 그렇게 힘들었었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학습장애도 내가 좋아하는 과학을 하지 못하도록 막지는 못했다. 나는 휴가 때마다 곧바로 공룡화석을 찾아 연구하기 위하여 Montana의 현장으로 갔었다. 휴가 때의 한 번은, 친구와 나는 새끼 공룡 뼈가 담겨있는 매우 흥미로운 둥지를 발견한 적이 있다. 그것은 새끼 공룡들이 그 둥지에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한 번도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것은 대단한 뉴스거리였고,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를 원했다. 그 둥지들을 발굴하는데 많은 기간이 걸렸고, 지금도 우리는 그 둥지를 발굴하고 있다. 결국, 나는 Montana로 돌아 왔고, 현장 가까이 있을 수 있었다. 나는 Rockies 박물관의 학예관이 되었다. 또한 나는 Bozeman에 소재한 Montana State University에서 가르치고 있다. 나는 나의 제자들에게 시험을 대비하여 암기하도록 하지 않는다. 지금 나는 내가 대학생 시절에 나를 퇴학시켰던 그 교수들로부터 수여 받은 University of Montana in Missoula의 명예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 나는 난독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어진 어떤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만의 다른 방법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믿고 있다. 나만의 방법이란 내 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달리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생각이 다른 의문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것은 난독증을 가진 사람들의 방식이다. 정보는 내 머리 속으로 뒤죽박죽이 되어 들어온다. 나는 내가 가장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그것들을 분류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항상 바르게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것들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정렬시킨다. 모든 생각들이 정렬이 되었을 때에 비로소 본질적인 의문들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나는 잡생각을 하거나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색다르게 의문을 제기할 뿐이다.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만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나는 아주 복잡한 것 없이, 문제의 근본을 파악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내가 흥미로운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나에게 말한다. 만일 내가 6학년으로 되돌아간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때 받았던 성적과 같은 정도의 성적을 받을 것이다. 선생님들께서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나를 가르치는 한, 내가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학교 수업의 전 과정에서 어려움을 경험하였지만 나는 항상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었다. 나는 진짜 과학다운 과학을 학습하기를 원했었다. 나는 과학다운 의문이 생기길 원했고,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되는 지식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를 원했다. 나는 내가 고생물학자가 되기 위해서 헌신하였는지는 모르지만,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나는 문제가 없는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였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그것이 어떤 주제영역이든지 상관하지 말고 그것을 해결하는데 시간을 투자하라.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든 그 말에 신경을 쓰지마라. 과학분야에서는 때때로 과학에 미친 나머지 과학밖에 모르는 따분한 아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한다. 그럴 때, 그런 소리를 무시해 버려라. 만약, 여러분이 과학에 흥미가 있다면, 과학탐구에 매진하라. 나는 단지 내가 하는 일이 즐겁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을 아주 좋아했었다. 만일, 여러분이 하는 일을 진정 좋아한다면, 그 삶이 바로 아름다운 것이다. "여러분의 방식대로 하라. 그러면 여러분은 만족하실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전전긍긍하지 마라. 여러분 자신만을 위해서 하라" -jack - -신현기 옮김. 학습장애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서- Ⅱ.특수한 영재에 대한 연구의 개요 자폐성 장애아동 중에는 10년 전 달력에 있는 특정 일자에 대한 요일을 정확하게 맞추는 아이, 처음 만져보는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아이, 모든 한글을 한자로 전환할 수 있는 아이, 한 번 가본 장소에 대한 약도를 지도를 보고 그리듯이 그리는 아이 등 재능이 너무 한 곳에 편향되어 있어서 문제일 따름이지 그 재능 자체로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의 영재성을 보이는 아동들이 있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이러한 재능을 "∼을 알다"의 뜻에서 파생된 용어인 「savant」라는 단어를 붙였고, 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왔다. 구체적으로는 무엇을 두고 savant 증후군이라고 하는지, savant 증후군의 아동들은 어떠한 범상치 않은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약 20여 년 전부터 해오고 있었으나 이에 대한 이론적 뒷받침이 될 만한 연구는 아주 미약하였다(Foerstl, 1989). 예컨대 1978년에 발표된 두 편의 개관 논문(Hill, 1978; Rimland, 1978a)이 전부일 정도로 매우 미천하였다. 그렇지만 이들 논문 중 Rimland의 논문에서는 자폐성과 영재성 사이에서의 밀접한 관련성을 savant 증후군으로 보았고, Hill의 논문에서는 1890대 말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발표된 문헌들을 종합 검토한 결과, savant들이 자신들의 특이한 재능을 어떻게 실현하였는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밖에 설명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영어 이외의 언어로 쓰여진 몇 편의 글들을 포함한 약 60여 편의 보고서와 서적을 종합 검토해 본 결과, 여기에서 약 100여명의 savant에 대한 내용이 다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연구는 많은 일화적(anecdotal) 특성을 지닌 문헌들을 근거한 것이기는 하였지만 활용가능한 과학적 연구법에 근거하여 도출된 것이다. 1978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20년 동안 savant에 관한 연구물은 다섯 권의 책(Howe, 1989; Miller, 1989; Sacks, 1995a; Smith & Tsimpli, 1995; Treffert, 1989)을 포함하여 약 100여 편이 발표된 바 있다(Nettlebeck & Young, 1999). Miller(1989), Sacks(1995a), Smith와 Tsimpli(1995)는 광범위한 이론적 배경에 터한 저서임에는 틀림없으나 주로 음악가로서, 예술가로서, 어학자로서 탁월한 능력을 보인 savant를 대상으로 한 연구의 결과를 담고 있다. 이에 반해 Howe(1989)는 기억과 달력의 날짜 계산하기와 같은 savant 기술에 관심을 두었고, Treffert(1989)는 재능이 뛰어난 savant 개인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생활사에 대한 내용을 다루면서 savant 증후군을 뇌의 구조에 근거한 추정 이론으로 광범위하게 설명하고 있다. savant 증후군에 관한 이들 다섯 권의 저서와 두 종의 개관논문은 오늘날의 지적장애를 가진 아동과 발달장애를 가진 아동의 교육에 주는 시사점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Cheatham, Rucker, Polloway, Smith & Lewis, 1995; Wehmeyer, 1992). 용어의 정의와 출현율 Savant는 영국 의사인 J. Landon(Down, 1887)에 의해서 불어【idiot savoir】로 붙여진 이름으로서 이를 영어식으로 표현한 것이 「idiot savant」이다. 그러나 초기의 이 용어는 매우 부적절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왜냐하면 「idiot savant」의 "idiot"이라는 어휘가 1950년대 정신지체의 분류인 천치(idiot), 백치(imbecile), 바보(moron) 중에서 IQ 25 또는 30이하를 의미하는 천치(idiot)에서 빌려온 매우 경멸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savant"는 "∼을 알다"라는 의미의 불어 동사 savoir(사브와르)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흔히「위대한 학자」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직까지도 "idiot savant"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부정적인 의미를 희석시킨다는 의미에서라도 "savant"라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Hill, 1978). 그래서 그는 savant에 대한 정의를 "비록 정신지체인 임에도 불구하고 비 정신지체인에게 기대하는 수준 이상의 재능을 한 가지 이상 보이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심리학이나 특수교육 분야에서 언급하고 있는 savant의 의미는 장애조건-특히 지적인 영역에서의 장애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분야에서는 탁월한 재능을 나타내는 경우를 일컫고 있다(Morelock & Feldman, 1993). 1. Savant Syndrome의 정의 savant란 심한 정신지체나, 자폐성 장애 또는 정신분열성 장애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특정 영역에서의 기능이 그 장애에 걸맞지 않게 탁월한 재능을 나타내는 경우를 말한다. 몇몇 사례들에 있어서는 이러한 재능들이 단순히 그들이 지니는 기타 영역의 재능에 견주어 볼 때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정도(talented savants or savant I)인 경우도 있지만 , 보기 드물게는 일반인들에 견주어 보아서도 눈에 뛸 정도로 탁월한 차이(prodigious savants or savantⅡ)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Treffert, 1989). 이러한 savant들이 보이는 '능력의 섬(island of competence)' 현상은 두뇌 중추신경계통의 손상이나 질환을 앓고 있는 일반인들에게서도 나타나며(Trefert, 1989), 어느 날 갑자기 이러한 능력이 나타났다가 얼마가지 않아 사라지기도 한다(Selfe, 1977). 10세 이전에 특별한 영역에서의 재능이 어른 수준에 이른 정상아동의 경우를 일컫는 신동(prodigy)들과 마찬가지로, savant들이 보이는 능력의 섬 현상도 제한된 분야에서만 나타난다. 이들이 보이는 특별한 재능들로는 날짜나 요일 계산능력(예, 1961년 4월 22일이 무슨 요일인가를 물었을 때 곧바로 월요일이라고 대답하는 능력 따위), 음악적인 재능(주로 피아노에 관한 재능), 계산능력( 평방근이나 소수값을 구하는데 있어서 놀라우리 만큼 빨리 계산해내는 경우), 미술영역(그리기나 조각 등에 있어서의 뛰어난 재능), 기계조작 능력, 놀라운 기억력, 또는 보다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비상한 감각적인 변별력(주로 후각이나 촉각과 관련된) 등이 언급되고 있다. 2. Savant Syndrome의 출현율 Bergman과 DePue(1986)는 음악적 savant의 수가 많은 것을 들어 그들의 출현율이 높을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Hill(1978)은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savant의 출현율은 약 1% 미만일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의 견해는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1978년 이후 어떤 연구에서도 Hill의 관찰에 의하면 savant의 성비는 남자가 여자의 약 6배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고, 자폐성 장애영역 내에서의 savant 성비는 남자가 여자에 비해 4배 정도인 것으로 보고 있다. Hill의 연구는 Rimland(1978a)의 연구에 기초한 것으로서, savant의 주장애는 자폐성 장애(10% 정도)가 정신지체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보았고, Treffert(1989)는 모든 savant의 반 이상이 자폐성 장애를 가진 것으로 보았다. Treffert(1989)에 의하면, 지금까지 문헌상에 언급되어진 prodigious savant(일반인들에 견주어 보아서도 눈에 뛸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 재능)의 사례는 대략 100명 정도였었고, 그나마 현존해 있는 경우는 12사례 내지 15사례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3. Savant의 기술들 Savant들이 보이는 탁월한 능력이나 토막의 기술(splinter skills)들은 극히 부분적이고 극단적이고 좁은 범위 내에서 발달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Hill(1974)은 이러한 능력들에 관한 관찰연구를 통하여 약 7가지 정도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달력 계산하기(calendar calaulating): 특정한 날짜의 요일, 간지 등 맞추기 기억(memory): 우편번호, 전화번호, 대중교통수단의 노선과 배차 시간, 운동경기 결과, 국가의 수도 명, 거리 명, 잡다한 지리관련 통계자료 등 음악적 재능(musical ability) 미술적 능력(artistic ability): 그림 그리는 재능 수학적 기술(mathematical skills) 기계조작 기술(mechanical dexterity skills) 세밀한 감각적 변별력(fine sensory discriminations) 그 밖에 언어적 표상(hyperlexia 또는 pseudoverbal skills)과 같은 운동기술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기억력 1). 기계적 기억 대부분의 savant들은 비상한 기억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Treffert, 1989). 물론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사항들은 일반인들의 경우는 금방 잊어버리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일상의 잡다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으나, 여하튼 주워담고 있는 정보의 양적인 측면이나 그 깊이의 측면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컨대 6살난 자폐성 savant의 경우는 그 주에 있었던 주택복권 당첨번호를 모조리 외우고 다니는 경우였으며, 또 다른 7살 난 자폐성 savant의 경우는 서울시내 전철역 이름을 순서대로 빠짐 없이 외우고 있는 경우였다. Treffert의 보고서에 언급되어 있는 한 사례의 경우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과 관련된 신상명세서(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으며, 재임 기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이며, 가족 구성원의 이름 및 그들의 생년월일, 그 당시의 각료들에 관한 정보 등)를 줄줄이 꿰차고 있는 경우이다. 그러나 그들의 기억은 대부분 기계적 기억력( sensory motor memory and rote memory)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였다(Hill, 1978). 2). 규칙적 기억 savant의 기억특성이 기계적이라는 주장과는 달리 규칙적 기억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 근거로는 달력의 날짜를 기억하는 과제에서 현재를 기준으로 멀리 떨어진 과거나 미래의 날짜를 기억하여야 할 경우 그 반응시간이 느린 반면 현재와 가까운 날짜를 기억하여야 하는 과제에서는 반응시간이 빠른 것으로 보아 그들이 어느 정도 규칙에 근거한 기억(rule-based memory)을 하고 있다(O'Connor & Hermelin, 1984: Hermelin & O'Connor, 1986)고 본다. 이밖에도 귀로 들어 음악을 숙지하는 savant의 경우 음악의 구조의 복잡성(음악 양식, 중심 음조, 리듬과 조화의 정도 등)에 따라 연주의 정확도가 달라지는 것으로 보아 규칙에 근거한 기억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Charness, Clifton, & MacDonald, 1988: Miller, 1989: Slobada 등 , 1985: Young & Nettelbeck, 1995). ①미술(Selfe, 1983): 피사체의 크기, 거리, 겹치는 정도에 따라 단서활용의 정도가 달리 나타남 ②수학(Kelly, Macaruso, & Sokol, 1997):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며 계산을 하는 특징이 있음. ③언어(Mottron, 1996):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는 savant는 규칙적인 명단 학습전략(list-learning strategy)을 사용 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Dowker 등(1996)의 연구에 의하면 시를 쓰는 savant의 경우 정확한 언어적 규칙(예:직유, 은유, 반복, 운율 등)을 사용할 수 있었음. 3). 선언적 기억(declarative memory)과 절차적 기억(procedural memory) 일화를 중심으로 한 선언적 기억이 우세한 편이며 이들의 경우 한 가지 영역만을 잘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영역을 잘 기억할 수 있는 특징이 있었다(Rimland, 1978). 그러나 달력의 날짜를 잘 기억하는 savant에게서는 절차적 기억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Young, 1995) 4. Savant 증후군에 대한 설명 1). 정서 savant들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어지고 있는 사항들 중의 하나는 정서의 부족에 관한 것이다(Treffert, 1989). 음악분야 savant들을 예로 든다면, 이들은 자주 작품이 담고 있는 나름의 독특한 정서를 표현해냄에 있어서 상당히 부족함을 나타내고, 또한 나름의 곡해석에서 비롯되어지는 은유적 표현이 결여된 채 단순히 들은 바를 재현해내는 데에 국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관련하여, 또 다른 이견을 내놓고 있는 연구자들도 있는 바, 몇몇 또 다른 음악분야 savant들은 그들이 암보하고 있는 곡들을 연주함에 있어서 그 곡들이 내포하고 있는 정서적인 측면을 충분히 소화해내고 있는 바(Miller, 1989: Viscott, 1970), 이러한 사례들의 경우는 음악에 대한 나름의 정서적인 교감 및 깊이 있는 이해 하에 연주재능을 발휘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음악분야 savant들과 관련된 또 다른 정서적인 특성 중 하나는, 이들이 음악을 접하면서 내보이는 정서적인 반응이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상당히 폭발적인 생리적 변화로 직결되어진다는 점이다(Winner, 1982). 음악적인 자극이 이들의 맥박, 호흡, 혈압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살갗의 미세한 전기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피로 회복 효과도 가져오기도 한다(Mursell, 1937)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생리적인 변화는 또 다른 정서적인 경험 하에서도 나타난다(Winner & Martino, 1993). 2). 창의성 대부분의 연구문헌들은 savant들이 온전히 그들 스스로의 머리로 구상하여 완성된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의성 측면에 있어서 부족함이 많음을 지적하고 있다. Treffert(1989)가 조사한 음악분야 savant들의 경우는, 기존의 정립되어진 음악법칙에 입각하여 곡을 이조(transposition)하고, 즉흥연주를 하고, 살을 덧붙이는 수준은 뛰어나나, 작곡 부문에 있어서는 별다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연구들은 음악분야 savant들도 보다 신장된 언어능력을 갖게 된다면 작곡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조심스런 결론을 내리고 있기도 하다. 이에 해당하는 일례로써 Miller(1989)는 L. L.이라는 음악분야 savant 의 경우를 언급하고 있는 바, 초기의 L. L.의 의사소통 능력은 남의 말에 반항하는 정도였다. 이 시기동안의 L. L.의 음악적인 재능은 상당히 높은 단계에 이르고 있기는 하나, 주로 다른 사람의 노래를 그대로 따라 부르거나, 다른 사람들의 연주패턴을 그대로 모방하는 수준이다. 이 당시의 L. L.의 즉흥연주나 작곡실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Miller의 관찰이 시작되고 1년여가 지나는 시점에서 L. L.의 언어능력은 갑자기 변화되기 시작한다. 언어능력의 향상과 더불어 L. L.은 수시로 자신의 음악실력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을 요구하게 되며, 음악과 관련된 다른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세련된 태도로 답할 줄도 알게 된다. L. L.에 대한 2년여에 걸친 Miller의 관찰이 끝나기 수일 전에는 스스로 작곡한 수준 높은 곡들을 발표하는 공식적인 자리도 갖게 된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하여, Miller는 음악분야 savant들의 언어능력 신장은 그들의 음악적인 창의성 계발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라고 역설하였다. 3). 재능(Talent) (1) 음악영역 음악영역은 가장 많은 수의 savant들이 발견되어지는 분야이다. 그리고, 이 분야는 또한 savant와 관련하여 가장 체계적이고 세부적인 연구들이 진행되어 온 영역이기도 하다(Miller, 1989; Rimland & Hill, 1984). 음악분야 savant들은 전형적으로 정신지체나 시각장애, 또는 자폐성 장애를 주 장애로 지니며, 미술이나 기타 영역의 savant들과 마찬가지로, 음악분야 savant들도 남자가 여자보다 많은 수를 차지한다. Miller(1989)는 이러한 음악분야 savant 연구에 있어서는 문화적인 차이를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나, 아직까지는 전혀 실천에 옮겨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써, 이제까지의 음악분야 savant들에 관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서양 음악권 내의 경우들일 뿐, 그렇지 않은 문화권의 경우에 대한 독자적인 연구나 서양 음악권 내 해당연구들과의 비교연구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실정이다. 일반적인 음악 신동들과 마찬가지로, 음악분야 savant들의 재능은 일찍부터 그 조짐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까지의 연구결과들을 살펴보면, 아동기 이후에 음악적인 재능이 처음으로 발현된 경우는 전무하다(Miller,1989). 일반적인 음악 신동의 경우와 비슷하게, 음악분야 savant들의 최초 조짐은 생후 1-2세 경에 부모들에 의해 주로 감지되어진다. 이들 대부분은 절대 음감을 지니고 있는 까닭에 길고 복잡한 노랫말이나 선율도 단번에 따라 읊거나 피아노로 옮겨 치는 등의 조짐을 어릴 적부터 보인다. 이러한 아이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의 또 한 가지는 아주 어릴 적부터 음악에 대해 강한 정서적인 반응이나 집착을 보인다는 점이다. 한 아동의 경우는 3세경에 이미 TV에서 방영하는 오페라에 심취해서 3시간 동안을 꼼짝 않고 몰두하는 집중력을 나타내기도 하였다(Rimland,1978). 또 다른 아이의 경우는 주변의 환경자극들에는 전혀 반응이 없다시피 하고, 시끄러운 소음에는 특히 발작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였는데, 유독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강한 정서적인 유대감과 집중력을 나타내었다(Miller,1989). 이들은 대개 가운데 손가락만을 사용해 피아노를 치는 수준이나, 그렇더라도 연주할 수 있는 곡은 상당수에 이르고, 4세 경에 이미 모차르트의 쏘나타 선율을 완벽히 재현해내는 놀라움을 나타내기도 하였다(Rimland,1978). 시각장애와 더불어 정신지체 또한 지니고 있는 음악분야 savant인 Tom의 경우는 3,000곡 이상을 암보로 연주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Miller,1989). 일반적인 음악 신동들과 마찬가지로 음악분야 savant들은 문자를 읽고 기억하는 능력은 그렇지 않으나, 유독 음악의 구조를 소화해서 기억하는데는 상당한 경지에 도달해 있다(Miller,1989). 23살 된 자폐성 음악 savant와 일반 음악 전문가를 비교 연구한 Sloboda et al.(1985)의 연구결과를 보면, savant의 경우 전음계적인(diatonic) 음악을 무조의(atonal) 음악보다 쉽사리 재현해 내며, 그 재현정도는 일반 음악 전문가보다도 나은 수준이다. 그러나, 무조음악의 경우에는 그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Sloboda 등(1985)의 비교연구 결과는 또한 savant들의 음악에 대한 기억력이 무작정 받아들인 결과이거나, 시각적인 직관에만 의존해 이루어진 결과가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만약에 savant들의 암보 경로가 그러하다면, 음악의 구조와 상관없이 모든 영역에서 탁월해야 할 것이나, 음악을 있는 구조 그대로(structure-preserving) 기억하는 과제에서나, 음악의 구조를 이해하여(structure-understanding) 기억하는 과제 모두에서 일반 음악전문가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을 나타내었다. 음악분야 savant들은 음악이라고 하는 일반적인 영역에 관한 한은 일반적인 음악 신동들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재능을 보이나, 날짜나 요일 계산과 관련된 savant들의 경우는 날짜나 요일 계산이라고 하는 특정한 영역상의 계산능력과 알반적인 산수영역의 계산능력간에 커다란 부조화를 나타낸다(Miller, 1989). 이 점에 관해서는 읽기 관련 savant인 hyperlexia나 미술분야 savant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Winner & Martino, 1993). Hperlexia의 경우, 이들이 글자를 잘 읽는다고 해서 일반적인 우수아동들과 마찬가지로 읽기 이해력도 뛰어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더라도, 음악분야 savant 들도 다음과 같은 사항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음악신동들과 엄연한 차이를 나타낸다. 첫째, 대부분의 음악 savant들의 경우는 일반적인 음악 신동들과 달리 음악적인 환경 하에서 그 재능을 키운 경우가 아니다(Miller,1989). 둘째, 일반적인 음악 신동들과 달리, 대부분의 음악 savant들은 피아노를 통해 그들의 재능을 나타낸다(Miller, 1989). 아마도 이는 피아노가 관악기나 현악기보다도 연주하기가 쉬운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셋째, 일반적인 음악 신동들과 달리, 대부분의 음악 savant들은 절대 음감(perfect pitch)을 소유하고 있다(Treffert,1989). 이러한 절대 음감이 음악 savant들의 음악구조를 이해하는 능력의 부족함을 보충해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넷째, savant들의 재능은 작곡보다는 주로 음악을 이조(transposition)하거나 즉흥 연주하는 쪽에서 발휘된다(Treffert,1989). 물론, Hermelin 등(1986)은 작곡에 재능이 있는 savant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 연구자들은 5명의 음악분야 savant들과 일반아동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곡의 작곡, 그리고 이의 반주능력 등을 비교한 바, 모든 영역에서 음악분야 savant들이 높은 점수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음악분야 savnat들이 단순히 남의 음악을 듣고 따라 부르거나 연주하는 정도만이 아니라, 이들도 충분히 그들 나름의 음악을 창조할 줄 알며, 또한 사람들이 어떻게 음악을 창조해내는지에 대한 '초인지적인' 지식을 갖고 있음을 반증하는 바라고 할 수 있다(Treffert,1989). Hermelin 등(1987)은 주장하기를, 음악분야 savant들도 미술분야 savant들이 그들의 작품 이미지에 대한 나름의 틀을 갖고 작업에 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나름의 음악법칙 및 구조에 대한 이해의 틀을 지니고 음악과제에 임한다고 본다. Hermrlin 등(1987)도 물론 음악분야 savant들의 음악적인 창의력이 일반적인 음악 신동들의 경우보다는 제한적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분명한 점은 음악 분야 savant로서 세계적인 수준의 연주가나 작곡가는 아직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천재적인 수준의 음악가들은 특정한 기 능력 이상의 또 다른 굉장한 무엇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내는 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음악분야 savant들은 곡의 이면에 담고 있는 내용이나 세부적인 측면의 고려가 결여된 채 경직된 방식으로 연주에 임한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지배적인 주장이다(Judd, 1988; Treffert, 1989). 이러한 입장의 표명은 savant들에 대한 초기의 입장표명, 즉 이들의 추상화 능력이 부족하고, 구체적인 정보채널을 선호한다고 하는 Scheerer등(1945)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데서 비롯된 감이 없지 않다. savant들의 음악은 줄곧 이러한 시각에서 색깔이 없고, 상동적이며, 기계적인 음악이라 불려져온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Miller(1989)는 savant들의 음악에 대한 그간의 이러한 시각, 더 나아가서는 savant들의 나름의 곡해석이나 음악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기억에 의존해 음악을 연주할 뿐이라는 편협된 주장에 강력히 반발한다. 그에 따르면, 음악분야의 savant들에게서 아무리 찾아보려 해도 일반적인 음악가들에 비해 별다른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음악분야의 savant들도 일반적인 음악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음악 그 자체에 대해 지극히 강한 정서적인 반응을 보이며, 음악활동 그 자체를 지극히 즐기고, 나름의 뚜렷하게 선호하는 음악 유형 또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영역 savant들의 병리학적인 특성을 설명함에 있어서 Geschwind Galaburda(1987)의 두뇌반구 우세론이 동원되기도 하는 바, 일반인들의 경우는 음악자극 정보처리를 주로 오른쪽 두뇌반구가 맡아서 하지만, 음악과 관련된 고도의 집중훈련을 받아 분석적인 전략들을 자우자재로 활용 가능한 전문가들의 경우는 그러한 정보처리를 왼쪽 두뇌반구가 맡아서 처리한다고 가정한다(Bever & Chiarello, 1974;Mazziota et al., 1983). 이에 비해, 음악영역 savant들의 경우는 주로 비분석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관계로, 아마도 이들의 주된 음악자극 정보처리 영역은 오른쪽 두뇌반구일 것이라고 가정한다(Treffert, 1989). (1) 미술영역 미술영역의 savant들은 종종 조각 그림 맞추기와 같이 시-공간적인 능력을 요하는 검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다. 어떤 경우에든 이것이 그들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뛰어난 기술일 수 있다(Baron-Cohen & Bolton, 1993; 강영심, 1996). 그림에서 비범한 능력을 발휘한 savant의 사례 중 하나로서 언어발달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소녀 나디아(Nadia)를 들 수 있다. 그 소녀의 그림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주목할 만하다. 처음부터 나디아가 그린 그림들은 정상적인 아이들의 그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예를 들어 3세 때 원근화법의 그림을 그렸는데, 정상아동들은 적어도 사춘기가 되어야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또 이 원근화법을 아예 평생 배울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나디아의 그림을 보면 그녀의 강박적 관심을 반영하듯 주제가 매우 반복적이지만, 각 그림은 각기 다른 이미지와 원근법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3세때 그녀는 말에 대해 강박적이었는데, 그 후 몇 년 동안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말, 그것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생하고 정확하게 수백 마리의 말을 그렸다. 그녀의 그림은 실제 눈으로 보는 것처럼 그려졌다는 점에서 매우 사실적이다. 나디아의 경우 더욱 신기한 점은 그녀가 실제로 말을 타거나 말에 대하여 공부한 적이 없고 다만 이야기책에 나오는 말의 그림을 보고 나서 그렸다는 것이다. 그 후 그녀는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 볼 수 있는 말의 모습을 끝없이 창출해 냈다. 아주 신기하게도 약 11세 경에 나디아가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녀는 점차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었고, 지금은 이따금씩 스케치만을 할 뿐이다. Ⅳ. 제언 savant들이 나타내는 행동에 대한 이론적 근거에 바탕한 정확한 설명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는 궁극적으로는 장애아동들도 영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의 전환과 이에 관한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게 되리라고 믿는다. 이러한 맥락하에, 이제까지 주종을 이루어 온 자폐성 장애아동에 국한된 음악 분야 savant들에 관한 연구뿐만 아니라, 다른 장애, 다른 분야의 savant들에 관해서도 보다 다양하고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Savant들을 대상으로 O'Connor와 Hermelin(Hermrlin & O'Connor, 1986a, 1986b,1990; O'Connor, 1989;O'Connor & Hermelin, 1984, 1987a, 1987b, 1990)이 행한 연구를 능가하는 다양한 실험연구들과 더불어, 한국 문화를 반영한 생태학적 연구들 또한 다양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두뇌조영 기술(brain-imaging techniques)과 같은 첨단 의료기술을 적용하는 연구들은 savant들의 두뇌 기능 및 구조적 특성과 관련하여 적지 않게 제기된 바 있는 가설적 주장의 허와 실을 검증하는 연구로 자리잡을 것으로 본다. |
키드카에서.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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