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 ◑ 인도지나 반도의 중앙부와 말레이 반도의 북쪽에 위치한 타이는 남으로 샴만 다시 남부에는 말레이 반도까지 뻗은 동남아시아 유수의 곡창지대로 년간 계속하여 고온다습한 날이 많다, 주민의 대부분이 타이족이나 말레이인, 크레르인, 중국인 또는 산악민족등이 살고 있다. 대부분이 불교를 신봉하고 있으나 이슬람교나 기독교도들도 있다. 국민의 대부분이 불교도이기 때문에 장례도 거의가 사원(寺院)에서 거행되고 있다. 사원경내(寺院境內)에 있는 불탑형으로 된 옥내 화장장이나 야회 화장장에서 화장을 하고 있다. 왕족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스님들의 장례는 사망한 후 상당한 기간이 경과된후의 날짜를 선택하여 거행되고 있다. 화장한 유회는 항아리에 담아 사원안에 있는 파고다(탑)형의 납골해두고 있다. 그외에도 중국계 사람 이외에는 묘지를 사용치 않고 집안에 있는 불단(佛壇)에 봉안하든가 벽지에 있는 묘지에 납골하기도 한다. 특히 북부의 산악지방에 살고있는 소수민족은 이동생활을 많이 하고있는 탓으로 묘지에는 관심이 없고 유체를 그대로 땅에 묻어버리거나 풍장(風葬)의 일종으로 유체를 높은 나무위에 얹어두는 소위 폭장(曝葬)의 형식을 거행하고 있으며 그곳의 일부 족속인 메오족은 유체를 나무막대기로 만든 단가에 눕혀 그대로 방치해버리는 관습도 있다. 이나라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의사의 사망진단서를 받아 가지고 가까운 관청에 신고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다. 시신은 가족들의 손으로 수시하고 입관되어 그날의 오후 4시부터 6시 사이에 상가나 사원에서 스님을 초빙하여 법요(法要)의식을 거행한다. 시신에는 사망자가 평소에 입었던 깨끗한 옷을 입히고 관은 사원에 의뢰하면 곧바로 수배해주고 있다. 장례는 사원에서 거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발인할때에는 고인이 사용하던 밥그릇을 관앞에서 상주가 단한번으로 깨트리는 관습이 있다. 사원안에 있는 화장장에서는 관을 오른쪽으로 세 번 돌려서 화장자들의 서열에 따라서 화장(火葬 )대에 올라가서 불을 붙여놓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 다음날 아침에 양초, 향, 향로, 유골함을 가지고 화장장으로 다시사서 스님과 함께 화장된 것을 수골(收骨)하여 유회는 사원안에 있는 납골당에 봉안하던가 흐르는 냇물이나 바닷물에 흘려보낸다. 중국계의 불교도들은 독립된 묘지를 조성해두고 묘비에도 한자(漢字)와 타이의 글자를 함께한 고인의 이름 사망년월일을 새겨놓고 매년 4월5일의 청명절(淸明節)에는 모든 가족들이 제물을 차려놓고 성묘를 하고 있다. 방콕시에는 화교계의 사회복지단체인 보덕당(報德堂)이 있어서 천재나 인신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현지인이나 외국인을 가지리 않고 긴급구호나 장의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 인도 ◑ 8억이 훨씬 넘는 많은 인구를 가진 인도는 북부는 히말라야 산악지대, 남부는 이도양에 걸친 역삼각형 대륙이다. 기후는 한 대로부터 아열대까지 넓게 펴져있으나 전체적으로는 고온다습한 곳이 많다. 주민의 대부분이 인도, 아-리아계나 도라비다 인종이며 일반적으로 힌두교를 신봉하고 있으나 이슬람교도나 그리스도교와 바-시교도등도 있다. 현지인의 사망시 의사의 사망진단서를 직접 화장장에 지참 제출하고 수속하는 간단한 절차이나 그곳에서 거주하는 외국인의 경우는 현지 대사관에 사망진단서, 사망계를 제출하여야 한다. 장의관습은 신봉하는 종교나 지역의 관습에 따라 다르나 힌두교에 있어서 장의는 이세상에서의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육체로부터 영혼을 해방시켜 그 영혼의 윤회전생(輪廻轉生)이 틀림없음을 확인하고 저승에서의 영원한 삶을 갖게되는 의식으로 믿고 있다.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에는 근친자들이 교회의 스님을 초빙하여 생전에 지은 죄에 대한 참회와 이를 깨끗이 정화하는 의식을 갖는다. 이때 스님에게 금전을 지불하기도 하고 일부 지방에서는 소(牛)나 가축등의 현물을 사례하기도 한다. 환자가 숨을 거두면 근친자들은 집밖으로 뚜어나가 큰소리로 곡을 하며 사신(死神)이 있는 것으로 믿고 있는 남쪽을 향해서 기도를 올린다. 유체는 흰천(여자일 경우에는 붉을 색 계통의 천)으로 싸가지고 대나무등으로 만든관대에 싣고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라마, 나마, 삿쟈, 하이) 노천화장장으로 운구하여 친족 일동이 간지스강의 물 혹은 그에 상응하는 성수로 유체의 입을 적시고 머리로부터 발까지 전신을 서수로 뿌려준다. 유체는 쌓여진 장작위에 안치되고 생화로 장식시킨후 스님의 축복을 받는다. 유체의 주변을 다섯바퀴 돌고나서 근친자가 점화하는데 장작에는 백단(白檀)의 향목(香木)이나 버터기름 또는 가솔린 기름을 부어서 화력을 보다 더 세게 하기도 한다. 화장한유회는 가까운 강물에 뿌려서 흘려 보낸다. 죽은이가 유아일 경우에는 화장을 하지 않고 유체에 돌을 달아 강물에 그대로 흘려보낸다. 화장을 한날로부터 상복을 입는데 사후 10일째에 고인의 영혼이 완전히 승천하는 것으로 믿고 그안에는 매일 빠짐없이 의식을 행하고 11일째에 상복을 벗는다. 상가의 남자는 상기(喪期)중에 길어진 머리나 수염을 비로소 깎을 수 있다. 친족 모두가 모인 가운데 한달에 한 번씩 조령제(祖靈祭)를 거행하고 만 1년만에 모든 절차를 끝낸다. 인도의 "봄베이" 부근에 많이 거주하고 있는 바-시교도들의 장의관습이 색다른게 있는데 수시가 끝난 얼굴만을 남긴 전신을 흰천으로 싸고 기도를 올린후에 집밖의 들판에 안치한다. 이때 유체의 주위에는 쇠막대기로 3중의 줄을 그러놓고 유체처리인이 와서도 그 줄안에는 들어가지 않는 상태로 철제로된 관대에 실려서 스님 두명의 인도하에 흰상복을 입은 유체처리인만이 안으로 들어가서 유체를 싼 흰천을 풀고 노천으로 된 제단에 안치하고 기도를 한뒤에 모두는 집으로 돌아가는데 유체는 까마귀나 독수리등이 날아와서 뼈까지 먹어치우는 소위 조수장이 아직도 성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 인도네시아 ◑ 적도(赤道) 바로 아래의 스마트라, 카리만탄, 쟈바들의 큰 섬을 비롯 크고 작은 1만 3천개여개의 섬으로 된 주민의 약 반수가 이슬람교도로 세계 최대의 신도수를 가지고 있고 달리 토착종교나 그리스도교, 힌두교, 불교등을 신봉하고 있다. 이슬람교도의 경우 사망자가 생겼을 경우 24시간 이내에 될 수 있는 한 빨리 매장해 버린다. 그이유는 열대지방으로서 유체의 부패가 빨리 오기 때문이기도 하나 죽은 영혼이 살이 있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상가가 발생했음을 전해들은 인근 사람들이 여자는 각각 쌀을 들고 남자는 장의용구를 들고 상가를 방문하여 목욕시킨 뒤 흰천으로 싸서 머리, 가슴, 다리 부분을 끈으로 묶는다. 이때 이슬람식의 코란이 불려지면서 출관(出棺)이 되는데 상가의 어린아이들은 죽은 영혼이 두려워 멀리 떨어져 있고 여성들은 집에 남아서 집안 구석구석에 깨끗한 소금을 뿌리기도 한다. 가까운 묘지까지의 장의행렬의 선두에는 고인의 이름과 사망년월일이 기록된 묘표(墓標)를 남자인 경우에는 끝이 뾰족하고 여자는 둥글게 만들어 짊어진 사람이 서고 그 뒤로는 쌀자루와 꽃을 짊어진 사람이 따라가면서 그 것들을 길가에 뿌리면서 행진하는데 그 뒤에 대나무로 만든 관대에 실린 유체와 일반 화장자들이 따른다. 묘소에서는 매장전에 멕카의 방향으로 향하게한 유체의 귀 밑머리를 세 번에 걸쳐 쓰다담으면서 신을 고백을 인도한다. 유체의 크기에 맞춰 기와나 돌을 그 위에 놓고 머리 부위에 묘표를 세운 뒤 여러 가지 꽃을 꽂아 놓는다. 매장식이 끝난 3일, 7일, 40일, 100일, 그리고 1년, 2년, 1000일째에 기일공양(忌日供養)을 하고 추도식을 거행한다. 매년 라마담(금식하는날)의 전후에 성묘를 하며 모든 가족이 묘역의 잡초를 뽑아주고 묘표를 손질한다. 뉴기니아등의 메라네시아 지방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변경서는 아직도 원시적인 장의습관이 남아있어서 인류학 연구의 보고(寶庫)로 되어 많은 학자와 방송 관계자들이 현지를 답사하고 그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 파키스탄, 이슬람공화국 ◑ 인도의 서쪽 가까이에 위치한 파키스탄은 역사적으로나 민족적으로도 인도를 구성한 일부였으나 국명과 같이 이슬람교의 원리에 근거하여 새롭게 이루어진 국가라 할수 있다. 내세(來世)의 존재를 믿고 있는 이슬람교도에 있어서 죽?은 생애의 종착점이 아니고 사랑하는 이와의 일시적인 이별이며 죽은자는 심판의날에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을 신아으로 알고 있다. 현지인이 사망했을 경우 의사의 사망진단서를 가지고 거주지의 경찰서에 제출하고 상가에서 장례준비를 하는데 남자의 유체는 남자가 여자의 경우에는 반드시 여자가 시신을 염(깨끗이 씻어 청결한 흰천으로 감는다.)하여 단가에 실어서 묘지로 운구한다. 묘지에서 매장의식을 거행하며 교리에 따른 고인의 평안을 기도하고 "지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소멸한다. 그러나 영원히 변치않는 것은 존엄과 영예에 가득찬 주(主)의 자비스런 얼굴"이라는 것을 부르고 있다. 이슬람교는 거의가 토장(土葬)으로서 유체의 머리는 "멕카"의 방행으로 매장한다. 이슬람교가 국교(國敎)로 되어 있기는 하나 신앙의 자유는 인정되어 있어서 흰두교나 바-시교 그리스도교가 공존하고 있으며 힌두교도는 화장, 바-시교는 조수장(鳥獸葬),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토장이 보편화 되어 있다. 묘지는 각 종교별로 구분되어 이슬람교 성자(聖者)나 돈 많은 사람의 묘는 영묘형(靈廟形)으로 시멘트로 훌륭하게 만들어진 것이 있으나 일반일들은 매장지에 무거운 돌을 놓고 그 앞에 나무 막대기를 세워놓은 것이 많다. 일부 지방에서는 유체를 입관한 상태 그대로 가까운 산에 두고 있기도 하고 힌두교에서는 분묘를 만들지 않고 들판에서 화장후 유회를 가까운 냇물에 흘려보내기도 한다.
◑ 필리핀의 장례제도 ◑ 서태평양에 떠있는 루손섬을 위시한 대소 7천1백여개의 섬으로 구성된 필리핀은 고온 다습한 열대성 기후가 연중 계속되고 있다. 주민의 대분분이 말레이 인도네시아계이나 스페인계의 백인과 혼혈족오 많이 살고 있다 현지인의 사망시에는 의사의 진단서를 가지고 장의사에게 매장의 준비 수속을 의뢰하여야 하나 지방에서는 상가나 연고자가 직접 이를 행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장의사는 상가나 교회, 혹은 장의에서 사후 3일부터 7일정도의 사이에 고인이나 유족이 속한 교회의 사제자가 주도하여 이루어진다. 장의사는 크고 작은 여러형태의 규모이며 수도 마닐라 시내에는 영구차나 예배당, 영안실, 유체보존 처치실을 갖춘 업소로부터 단순하게 상가의 심부름정도만 하는 장의사가 존재하고 있으며 필요에따라 상가에서 선택 이용하고 있다. 각급 종교가 다같이 "신의 은총을 찬미" 하고 죽은자의 부활을 기도하는 의식으로 되어있다. 최근에는 천차만별인 화장자를 고려한 나머지 장의사내의 예배당에서 간단한 의식으로 거행할 것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증가되고 있는 경향이며 영구차의 뒤를 이은 많은 회장자 차량에다 돈많은 사람의 장례행렬 선두에는 악대(樂隊)가 선도하기도 하고 마닐라 시내의 영구차는모두가 훌륭한 미국산의 최고급 차량들이다. 악대 대신에 영구차안에 스테레오로 장송곡을 틀어 놓기도 한다. 묘지는 공설묘지와 개인 운영의 기념공원묘지가 있으며 카톨릭이나 이슬람교도들은 토장을 선호하고 기독교나 불교도 또한 돈많은 사람들은 화장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옛날 필리핀이 스페인 영토로 되어 있을 시대에는 카톨릭교가 유일한 공인 종교였으므로 카톨릭교도의 묘지가 지정되어 있었으나 그 이외의 이교도(異敎徒)의 묘지는 격리되어 있었다 하나 지금은 그 차별이 철폐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도 중국계 불교도는 독자적인 묘지에 매장하는 경우가 많다. 마닐라시 교외에 "마카레이" 에는 제2차 세계대전중에 전몰한 미군의 광대한 묘지가 있는데 푸른 잔디에는 흰 십자가가 정연하게 줄서있고 시내 중심가에 인접한 화교 묘지에는 에어콘이 부설된 놀나울 정도로 호화스런 묘지도 있다.
◑ 중국 ◑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은 국토에 94%가 한(漢)민족이며 소수민족은 변경의 자치구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세계 제2차 대전이후 프로레탈리아계급 독재인 사회주의 국가로 된 후부터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종교활동은 사실상 정지되어 사원(寺院)어나 교회 등의 종교 예배시설은 문화대혁명시에 거의 파괴되고 그 지도자들 또한 탄압되었던 사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민족이 강한 근성이 있어서 신앙의 자유가 어느정도 인정 받게 됨에따라 유명한 불교사원이 다시 일어나고 종교활동도 서서히 부활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국토가 워낙 넓어 관습 또한 지역에 따라 차가 심해서 장의에 대하여도 단적으로 서술하기기가 어렵지만 사람이 죽으면서 도시에서는 상가로부터 가장 가까운 공안국 파출소에 신고하고 소속된 직장의 조합이 장의를 수배하고 유체는 마이트로 버스는 장의차에 실려 지역 민생국 직영의 화장장에 운구되어 장례식을 거행한다. 지방의 경우에는 상가에서 유체의 발을 현관 쪽으로 향하게 하고 유체는 목욕시켜 청결한 옷(수의)을 입힌다. 상망한 다음날에 입관시켜 선두에 조기를 들고 폭죽을 울리면서 영구차로 운구하며 대다수의 화장자는 인민복에 검은 완장을 차고 있으며 상복은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있다. 국책적으로 네 개의 근대화 정책인 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을 촉진하는데 장해가 된다하여 일정한 지역에 조성되어 있는 묘지를 이용하도록 되어있다. 빈장혁명(殯葬革命)에 따라 일정한 볼모지대을 묘지로 지정하여 매장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는 약 1,200여개의 화장장이 있어서 도시에서는 거의 화장을 하고 있으며 문화혁명 이전에는 불교의 스님이나 도교의 도사 기도행사 등이 있었으나 이러한 종교의식은 거의 행하여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국가 사회에 공헌이 있는 지도자의 경우 성대한 장례의식이 거행되고 있다. 중국 특유의 장송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넓은 광장에 안치된 유체와 함께 영정을 장식하고 많은 조객들이 참석하기도 한다. 중국 정부는 1985년도에 전국토를 연안지역과 내륙의 교통불편지역으로 구분하여 전자에 거주하는 자들은 사망시에 화장을 의무화시켰으나 전국적으로 화장율은 1990년도 현재 약 30%에 불과 했다. 사회주의 국가로 되었다 하나 중국인들은 조상 숭배 습관이 일조일식에 없어지지 않고 장유(長幼)의 정신은 아직도 멀쩡하게 남아있다. 또한 하남성 안양현(河南省 安陽見) 부근에서 발굴된 기원전 1300년경의 고분이나 호남성 장사시(湖南省 長沙市) 교외의 기원전 200년의 고분에서 보는 것과 같이 권력자가 죽으면 그 신하도 함께 순사(殉死)했다든가 많은 부장품이 묻혀 있던 것들의 기록이 있었다. ◆ 내몽고 자치구의 몽골족들은 토장(土葬)이 일반적이며 장례시에는 소나 양의 기름등으로 등불을 켜고 회장자들은 흰옷이나 흰모자를 쓰고 묘앞에 머리를 땅에 닿게 큰 절을 하는 관습이 있고 매년 8월 4일에는 징기스칸능에서 제사를 올리고 있다. ◆ 홍콩은 남지나해에 떠있는 홍콩섬과 중국대륙의 일부로 되어 있는 구룡반포와 그 주변의 235개의 작은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국의 직할식민지로 1898년도에 중국과의 99년간의 조차조약(租借條約)으로 금년 1997년 7월이면 중국에 환속되도록 되어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중국인이며 소수의 배인 또는 인도인들로 구성된 주민들의 생활관습은 중국적인것과 서구적인 것이 융합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공용어는 영어와 중국어를 병용하며 종교는 중국토착의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신봉하는 사람이 많다. 사망자가 생길 경우 의사의 진단서를 가지고 정청(政廳)에 사망을 등록하고 여기에서 토장, 혹은 화장 허가서를 교부 받아 가까운 장의사에 장례절차를 의뢰하게 된다. 홍콩시내 또는 구룡시내의 빈의관(殯儀館)이 있어서 여기에서 종교의식에 따라 장례를 집행하고 있다. 홍콩은 고층 빌딩이 밀집되어 있고 주거지가 협소하여 일반가정에서의 장례는 어렵게 되어 있다. 1951년 외인이 경영하던 빈의관을 싼값에 매수한 경영자가 다른 지역에 까지 지점을 증설하여 당대(當代)에 대자산가로 부상(浮上)하여 관제대왕(棺濟大王) 혹은 장식(葬式)대왕으로 호칭되고 있다. 그곳 사람들의 장의는 화려하고 성대하기로 이름나 있을 정도다. 그들은 그의 딸을 팔아서라도 부모의 장례만은 훌륭하고 성대하게 치루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관 1개가 5만~15만(홍콩달러)하는 양질의 것을 사용(1990년도)하고 있기도 하다.
◑ 일본의 장례제도 ◑ 장묘관습의 이념적 토대가 되는 조상숭배 및 사자(死者)에 대한 관념은 일본과 우리나라가 매우 흡사하다. 한국의 경우 조상숭배사상은 유교의 영향으로 효의 이념과 결합하여 강화되었으나, 일본의 경우 불교의 영향으로 환생의 개념과 결합하여 관념적으로만 존재한다. 일본은 종교 문화 및 거주양식 등의 면에서 우리와 유사한 점이 많으므로 장묘관행이 흡사하리라는 예측을 낳으나, 철저한 법적 규제와 행정지도 덕분에 화장위주(약 99%)의 관행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일본의 경우 불교가 서민층으로 확산되면서 불교문화에서 임종 및 장례를 둘러싼 의식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게 되어 장식불교(葬式佛敎)로 변모하는 과정을 밟는다. 이 과정에서 장식불교의 장례서비스는 서민층에게 크게 호응을 받아 불교의 신앙이 쇠퇴한 이후에도 사원 및 승려의 염불을 중심으로 장례의식이 계속 이루어지게 되었다. 明治政府는 강력한 행정력을 동원하여 장례 간소화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大正時代에는 새로운 장례의 풍속이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告別式과 葬儀의 분리로 葬禮行列 즉 문상객들이 관을 따라 葬地까지 수행하는 관습을 폐지시켰다는 점이다. 그 이후에도 장례의 간소화 추세는 계속되어 민간에서 생활개선 동맹회가 조직되어 주류접대 금지, 답례품 폐지, 會葬者의 범위 제한 등 장묘절차의 자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간소화가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1948년부터 '墓地 및 埋葬取締規則'을 제정하여 公營火葬場을 전국에 건설하면서 매장을 금지하고 화장을 장려하였다. 매장이나 화장된 유골에 대한 土葬은 지방 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은 묘지구역 내에서만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설치된 분묘 1기당 묘지면적은 도시주변의 경우 약 4-5m2가 많고, 지방의 경우 6m2 정도로 우리나라 묘지에 비해 차지하는 공간이 매우 작은 편이다. 또한 도시주변의 私設墓地를 금하는 대신 共同墓地를 도시계획의 일부로 도입하여 묘지의 共同化를 추진하였다. 일본의 묘지문화는 묘지에 대한 혐오시설의 인식을 떨쳐버리고 주변경 관을 살리면서 선인을 추모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될 수 있는 공원식 묘지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화장터는 물론이고 납골당도 만원이어서 시내 중심가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고층 납골당 등 도심형 납골당이 등장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납골당의 면적을 줄이는 동시에 가족 합장 납골당의 설치를 검토하고 있으며 가능하면 유골을 산이나 바다 뿌리는 ‘자연장'을 권장하고 있다. 지난해 사망한 일본의 유명 여배우 사와무라 사다코(澤村貞子)는 생전에 자신의 집 창문에서 한눈에 보이는 사가미 천변에 자신의 뼈를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결국 일본의 화장비율이 크게 늘어난 데는 전통적인 관습에 기인한 부분도 있으나 정부의 강력한 화장 장려정책과 행정지도의 결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埋葬 및 火葬葬取締法律이 제정된 이후 화장시설의 확대 및 現代化 노력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으며, 그 결과 화장에 대한 혐오관념을 크게 불식시킨 점이 화장제도 확대의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에게 개혁정부의 행정력을 동원하여 이를 강제함으로써 일반 국민에게 장묘제도의 수용을 설득 추진한 점이 큰 효과를 발휘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일본 장례식의 절차와 의례,격식 출생에서 사망으로의 이행은 몇 단계의 의식의 경과에 따라 행하여지고 확인된다. 내체와 영혼과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고 영혼은 내체를 떠나 활동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지고 있지만 죽음은 그 영혼이 사영화하는 것으로 의식에 의하여 내체에서 분리되는 것이라고 일본인들은 믿어왔다. 이와 같은 내체와 영혼과의 분리를 확인하는 것이 죽음의 확정이기도 하지만 옛날로 거슬려 올라갈수록 그 기간이 길었다고 한다. 그러면 장례에 따른 제반의식을 간략히 소개하기로 한다. ①혼 부르기 임종 또는 숨이 끊긴 사람에게 주위 친척들이 어조로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육체로부터 유리되려는 혼을 멈추게 하거나 되돌아오게 하려는 것을 많은 지방에서 볼 수 있는데 이를 [곤요비(魂呼び;혼 부르기)]라 한다. 임종을 지킨 사람이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인정이라 볼 수 있지만 넋을 부르는 데는 적극적인 주술적 행위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사자(死者)의 혼을 불러 멈추 게 하고 소생시키려는 주술적 의식에는 대나무 통에 쌀을 넣어 사자의 귓전에서 흔들어 들려주는 방법도 있다. ②사수(死水) 일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물을 먹이는데 이를 [마즈고노미즈(末期の水)]라 한다. 그러나 요즈음은 사람이 죽으면 그 가족이 나무젓가락에 탈지면을 감아 물을 적셔 죽은 사람의 입술을 적셔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옛날에는 유칸(ゆかん)이라 하여 죽은 사람을 미지근한 물에 넣어 씻어 주었는데 물은 햇빛이 비치지 않는 그늘진 응달에 흘려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다. 또 수의 평상시와는 반대로 왼쪽을 앞으로 해서 여미고 북쪽으로 머리를 향하게 눕힌다. ③사자밥 죽은 것이 확인되면 곧바로 음식을 준비하여 사자의 베갯머리에 바치는데 이를 [마쿠라메시(枕飯)]라 한다. 이는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는데 경단을 만들어 바치는 지방도 있다. 이 때의 밥이나 떡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불이 아닌 따로 특별히 설치된 불로 만들어 내 밥이 남지 않도록 그릇에 수북히 담는다던가 떡을 만들 때에는 특별한 작법을 취하든가 한다. ④장례식 장례식 전날 밤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들이 모여 사자와 함께 하룻밤을 지내는데 이를 [오쯔야(お通夜)]라고 한다. 최근에는 죽은 당일날 밤에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오쯔야에는 가까운 친척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본래는 사자와 더불어 금기생활을 빈소에서 보내는 유족으로 한정되어 있다. 일본의 장례식의 5할 정도는 지금도 자택에서 행해지며 참석자는 도쿄의 경우 1백50명 정도이다. 장례식의 평균비용은 2백8만엔(약2000만원)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집에서는 현관에 발을 뒤집어 달고 [기중(忌中)]팻말을 붙인다. 그리고 죽은 사람에게는 스님에게 부탁하여 [계명(戒名)]을 지어준다. 영결식은 장례식 사이나 후에 행하는데 영결식에 참석한 사람은 분향 또는 헌화한 뒤 유족들에게 애도의 말을 전하다.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여 친척이나 이웃 또는 그 외 친지들로부터 고인의 영정에 바치는 물품이나 금전을 넓은 의미에서 [고덴(香典)]이라 하는데 액수는 이웃인 경우 3~5천엔, 동료, 친구인 경우에는 1만엔 정도라 한다.(1990년) 영결식 후 화장터에 가서 화장을 하고 화장한 뼈는 고쯔쯔보(骨壺;뼈단지)에 담는데 이때 젓가락으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 담는다. 유골과 함께 귀가 다음 날 납골(매장)한다. 묘지가 정식으로 정해지지 않았을 경우나 멀어서 바로 갈 수 없는 경우에는 사원의 납골당에 일단 맡겨 두었다가 후일 매장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최대 재일인 49일재까지는 집안 불단에 모셔두기도 한다. ⑤출관 출관할 때는 몇 가지 의식이 있는데 먼저 참석자가 식사를 한다. 본래는 가족만이 사자와 작별을 고하기 위해 식사를 하였으며 서서 먹는다 하여 다치하노메시(立飯;입석밥)라 불렀다. ⑥소원취소 소원취소란 장례식 당일이나 다음 날 생전에 사자가 기원하고 있었던 소원을 취소하는 의식이다. 출관시에 한 되 정도의 소금을 싼 종이와 흰 부채를 넣은 것을 릿칸호도키(立願解き)라 하는데 이를 지붕 위로 던지거나 부채 심을 떼어버리고 지붕에 던져 올리는 것 외에 그 밖에도 쌀을 먹는다던가 작은 돌멩이를 던져 찻잔을 깨는 일 등이 행해진다. 여기서 릿칸호도키라 함을 신이나 부처에게 소원을 기원한 것을 풀어버린다는 뜻이다. 또는 사자가 입었던 옷을 거꾸로 흔들면서 [기원합니다]라고 외치는 지방도 있다. ⑦화장 시체는 일반적으로 화장을 한다.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으로는 일본에서는 매장(토장),화장, 풍장 등 세 가지가 있다. 옛날에는 매장이 주를 이루었지만 근년에 와서는 화장을 하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매장은 후쿠시마현(福島縣)일부 등에 남아있을 뿐이다. 풍장은 가고시마현(鹿兒島縣),아마미(奄美),오기나와( 繩)등지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화장을 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불교도래에 의하여 8세기경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불교 식으로 장례식이 행해지기 시작한 것은 헤이안시대 이후인데 신도에서는 죽음을 부정(不淨)한 것이라 하여 꺼리는 사고가 있어 서민의 장례식이 불교식으로 많이 행해지면서 묘지도 절의 부수(付隨)적인 것이 되었다. 기독교식이 행해지게 된 것은 메이지에서 다이쇼에 걸쳐서이고 꽃을 바치는 풍습도 이때부터 발생했다고 한다. 화장시 유족들이 소각로 앞 사체 옆에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유골을 수습하는 습관은 일 본인들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매장을 아직도 행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희망할 경우 먼저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무덤을 팔 때 술을 마시면서 하는 습관이 많은데 이와 같은 술을 아나호리사케(穴堀り酒)라 한다. 무덤 파는 일이 끝나면 악령이 들어가지 않도록 괭이나 낫 등의 연장을 넣어두거나 그 자리를 나뭇가지로 가린다. 매장 후 집으로 돌아갈 때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온 길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돌아가거나 인가(人家)에 들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죽은 넋이 따라오는 것을 두려워하여 이와 같은 인습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한편 묘혈을 하는 데 사용했던 괭이 ,낫 등을 가지고 가지 않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⑧묘 묘지를 구입하는 것은 [영대사용권(永代使用權)]을 얻는 것이다. 즉 묘지취득은 기한 없이 묘지를 빌린다는 것으로 묘지사용권의 상속이 인정되는 것을 말한다. 묘석(墓石)은 종교에 따라 다르지만 [각석탑형 삼단식(各石塔形 三段式)]이 일본식의 대표적인 형태이다. 최근에는 [○○家의 墓]와 같은 선조 대대로 이어져온 묘가 아니라 종교나 전통과도 벗어난 자유로운 묘를 세우는 사람도 늘고 있으며 죽어 그 재를 바다나 강가에 뿌리는 [자연장]을 희망하는 사람도 아직 소수이기는 하지만 생겨나고 있다. ⑨기일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7일마다 공양을 했는데 현재는 7일재,35일재,49일재 3번 공양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고인의 의복, 유품 등을 친척이나 친지에게 나누어주는 유품분매도 49일까지 마친다. 사람이 죽어 처음으로 맞이하는 오봉(お盆)을 [아라봉(新盆)]이라 한다. 오봉이라는 것은 7월 13~15일,3일간 선조의 혼령을 집안으로 모셔들이고 다시 보내는 의식이다. ⑩불단 사자영혼을 위한 공양의 제단으로 중앙에는 본존 또는 시조상(氏祖像)을 안치하고 위패를 세워 신에게 제를 올린다.
◑ 북한의 장례 ◑ 북한의 장례는 거의가 3일장이다. 혁명 1세대 등의 고위 간부 사망시에 치러지는 국장(國葬)도 거의 마찬가지다. 92년 2월에 사망한 인민 무력부장 오진우(吳振宇)외 서철(徐哲)등이 5일장으로 치러졌고 김일성의 경우는 12일장으로 치러진 예외의 기록도 있었다. 북한에는 장의사가 없다. 관은 가정에서 직접 만들거나 직장에서 만들어 준다. 시신을 입관 할 때에는 얼굴에 화장을 하며 종이나 헌옷가지로 관을 보공(補空)한다. 빈소도 각 가정에 마련하는 경우가 있으며 고인의 사진을 모시고 향도 피운다. 북한에서는 베감투(두건)와 베옷(상복)이 살아진지 오래다. 소리내어 곡도 못한다. 70년대 들어서 김일성이 복고주의(復古主義)와 봉건유교사상을 비판함에 따라 전통적인 장례풍습이 없어졌으며 팔에 검은 완장을 두르는 정도이나 그것마저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때문에 젊은 층에서는 장례의식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문상객은 빈소앞에서 분향을 하고 절을 한 뒤 술을 올린다. 그후 상주에게 애도의 뜻을 전한다. 이들은 주패(트럼프)놀이를 하면서 밤을 함께 지새며 상주를 위로해주고 있다. 술을 비롯한 접대용 음식은 식료 상점에서 국정 가격으로 구입한다. 북한에서는 결혼과 장례를 "큰일"로 간주해 국가가 반드시 필요한 음식을 제공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식료상점에서 구입하는 양이 적어서 애를 먹고 있다. 조의금은 각자가 내기도 하고 직장에서 단체로 추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의 시신이 방부처리 안치되어 있는 금수산 기념궁전에는 김일성이 받은 선물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에 전시중인 20만점이 넘는 선물을 비롯한 일반관리비를 제외한 김일성 시신관리에만 연평균 80만 달라(약 6억4천만원)을 쓰고 있다. 이 선물들을 다 구경하려면 30Km를 걸어야 하고 이 선물들을 경매처분하여 생기는 돈으로 식량을 수입한다면 틀림없이 북한에 기아현상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사망신고는 사회안전부(경찰)에 한다. 매장은 해당지역 행정경제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다. 묘자리는 여기에서 지정해 주고 있다. 평양에는 상원군, 중화군 등에 공동묘지가 많으며 발인은 대개 아침 10시경에 하고 있다. 영구하가 별도로 없으며 평양을 비롯한 대도시의 경우 버스를, 지방에서는 화물차를 이용한다. 차량은 대부분 직장에서 알선해 준다. 무덤은 가족, 친지, 직장 동료들이 매장 하루전에 미리 파놓는다. 상석과 비석도 세우나 대개 나무로 만들어 쓰고 있으며 고위간부들은 대리석으로 만들어 세운다. 화강암 광산에 상석과 비석만 전문으로 만드는 직장이 있다. 탈상에 대한 의식은 별도로 없고 대부분 사망이후 첫 생일날에나 1주기에 제사를 지내고 그 이후에는 한식과 추석 명정때만 제사가 있고 기제사도 거의 지내지 않는다. 각 가정에서는 고인의 사진을 벽에 걸 수 있지만 반드시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보다 아래에 걸어야 한다. 부모사망의 경우 지역에 따라 2-4일 정도의 휴가가 주어진다. 최근에는 매장보다 화장으로의 정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화장의 경우 각 직장이나 마을에 비치중인 관에 시신을 담아 화장장에서는 시신만을 끌어내어 화장을 하고 관은 다시 가지고 가서 다음에 사용하기도 한다.
◑ 싱가폴의 장례 ◑ 사람이 사망한 경우 아무리 친분관계가 있더라도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되며, 절차로는 시신을 힌 천에 감싸 24시간안에 붇어야 하는데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무덤엔 남과 여에 따라 묘비가 다르며 남자는 둥근 묘비를 여자는 납작한 묘비를 각각 2개씩 세운다.
<싱가폴의 장묘시설> 싱가폴은 국민소득이 20,000불이 넘는 선진국으로 각종 사회제도와 문화가 서구와 동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사용언어는 4개어(말레이어, 영어, 타밀어, 중국어)로 공공시설에는 4개의 언어가 공히 게시되어 있음은 물론 각 민족간 상호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다. 전국토가 국유지인 싱가폴은 사유지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로 토지사용을 원하는 경우 최장 999년까지 개인에게 임대하고 있다. 협소한 국토의 효율적 활용과 묘지 수급대책을 위해 정부에서는 1998년 11월 1일을 기해 환경보건국에서 새로운 매장정책(NEW BURIAL POLICY)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화장장 및 묘지관리는 주택건설과가 관여하고 있으며 주요 민족과 종교에 따른 장묘문화의 특성(중국인, 기독교인, 회교도인, 말레이인)을 인정하면서 국가가 장단기 매장계획을 주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묘지설치 및 매장기준 1) 모든 무덤의 매장기간은 15년으로 제한하고 그 이후에는 개장하여 화장과 함께 납골당에 안치하도록 한다. 2) 매장의 깊이는 1.8m이상 3) 수로에서 1.5m이상 떨어진 곳에 설치 4) 도로에서 60m이내는 설치가 안됨 상가폴 사망자 처리방법(최근사망자 15,777명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