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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번째 청년헌신주일을 지키는 주님의 날입니다. 오늘예배는 다음세대 우리 주향청년들이 헌신하는 마음으로 순서를 맡아 청지기 자세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청년들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고 예쁘고 든든합니다.
주보에 매주 연재된 글인데 오늘은 “청년과 노인의 차이” 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읽어 보셨습니까? 유엔(UN)이 정한 평생연령 기준이 있습니다. 1-17세까지를 미성년자........ 18-65세를 청년층.......66-79를 중년층...... 80-99세 노년층...... 100세 이후를 장수노인으로 정했습니다. 이렇게 기준을 정한 수치는 자기 나이에 0,7을 곱하여 정한 기준입니다. 그러니까..... 제 나이가 지금 60살이니까 UN이 정한 나이로 본다면 60X0.7을 곱하면 42살입니다. 현재 나이는 60이지만 42살 청년의 열정으로 살아가도록 다시 한번 나를 채찍질하고 싶습니다. (50은 35세, 40은 28세)
아내가 가끔 저를 보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여보! 걸음걸이를 좀 빨리 걸으면 안되! 아내 말을 듣고 의식하고 걸어보지만 젊은 청년의 힘찬 발걸음으로 걸어보지만 다시 발걸음의 보폭은 늦어집니다. 가끔 길에서 보면 어떤 노인은 청년 같이 사는 분이 계시고 어떤 청년은 노인 같이 비실하게 사는 청년도 있습니다.
청년헌신예배를 앞두고 기도하면서 외부 강사를 좀 모실려고 했었습니다. 이 분이면 그래도 괜찮겠다 생각하고 기도하고 말씀드렸는데 하시는 말씀이 전에는 당당하게 섰는데 이제 나이가 들고 허리가 구부러지고 하다 보니 왠지 자신감이 떨어져 거룩한 강단에 선다는 것이 쉅지 않아 좀 어렵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청년헌신 주일예배를 통해 누구를 위한 헌신예배인가 오늘 청년이나 노인이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는 삶의 자세가 되었으면 합니다.
유대인 랍비 시드니그린 버그(Sydney Greenberg)라는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사람들을 믿으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을 믿지 않으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인생을 즐길 줄 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하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의 전통과 방법에만 의지하고 있다면 우리는 참으로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만을 회상하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친교와 즐거움을 찾고 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고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행복을 갈망한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회상만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사랑을 줄 줄 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으려고만 하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꿈을 아직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꿈을 포기하고 오늘만을 바라보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 저는 청년들에게 여기 성경에 등장한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책을 쓴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면 책 내용도 어느 정도 파악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성경속에 전도서는 하나님의 사람 솔로몬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회개하는 심정으로 기록한 지혜서입니다.
함께 읽은 전도서는 12장으로 되어 있는데 1장에서부터 보면 “해 아래” 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해 아래” 란 하나님의 눈으로 신앙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이 살아오면서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해 아래 있는 것들을 보니 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나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고백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지난날 살아온 삶을 되돌릴 수는 없는 정말 후회하고 왜 내가 이렇게 살았을까? 철저히 회개하는 심정으로 자신을 드러내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12장 마지막장 1절에 와서는 여러 층의 사람들이 있지만 솔로몬이 유독 청년들을 향해 지적했습니다. “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해아래 모든 것이 허무하기만 하고 했던 일들이 다 부질 없고 공든 탑이 무너지듯 다 무너지는 무가치한 욕심 무가치한 세월을 보낸 삶을 살아왔던 것을 비로소 이제 나이가 들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고백하기를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뿐이라고 했습니다.
청년여러분!! 성도여러분!!........ 이렇게 자신의 삶을 숨김 없이 들어낸 솔로몬은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그 명성에 대해 이 세상에 그 어떤 사람보다도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사람이 솔로몬입니다. 왕에 위치에서...... 재산에 대해서 (빌게이츠, 이건희, X)
이처럼 솔로몬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말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복 받은 사람이 어떻게 복을 받았는가, 그것을 따라하면 우리도 복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걸 요즘은 벤치마킹(bendhmarking)이라고 하지요.
예수님께서도 솔로몬의 영화에 잘 알고 계셨기에 솔로몬이 얼마나 잘 살았는가를 예로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27...... “백합꽃을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라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 하였느니라”...... 그만큼 솔로몬이 누렸던 영화는 말로는 다 표현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기브온 산당이 있었습니다. 아직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기 전이었기 때문에 솔로몬 왕은 늘 그 곳에 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솔로몬이 거기에 가서 하나님께 바친 번제물은, 양인지 소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일천 마리는 넘을 것입니다. 하루에 한 마리씩만 잡아도 3년간 드렸다는 것이고, 하루에 열 마리를 잡는다고 해도 백 번은 갔다는 말입니다. 대단한 열성이지요.어느 날도 똑같이 솔로몬 왕이 제사를 드리러 갔는데,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솔로몬아, 내가 네 소원을 하나 들어주고 싶은데, 뭘 좀 해줄까, 한 번 말해 보아라.”
“주님, 감사합니다. 제가 아버지 다윗왕의 대를 이어 왕이 되었는데 저에게 맡기신 백성 애로사항도 들어주어야 하는데 그 수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저는 그들의 재산도 이 나라 국내총생산량도 계산할 줄 모릅니다. 앞으로 어떻게 정치를 해나가야 할지, 나이든 대신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 저에게는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백 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많은 주님의 백성을 누가 재판할 수 있겠습니까?”그런데 하나님께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나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지만 이런 성숙된 기도를 하는구나!...... 돈을 달라든가, 오래 살게 해 달라든가, 원수 좀 갚아 달라든가, 그런 소원을 말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렇지 않구나!!....... 하나님께서 보시고 솔로몬왕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왕상3:11-14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솔로몬은 그야말로 로토 대박이 터진 것입니다. 원래 달라고 했던 지혜는 당연히 얻었지요 그런데 덤으로 재물까지 얻었습니다.
솔로몬은 예수님보다 천 년이나 먼저 살았던 사람이지만, 예수님의 교훈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태복음서 6:33). 너절 너절하게 뭐 달라, 뭐 달라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정말 다른 것 구하지 않았습니다.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장수무강하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세워주신 주님 나라의 백성을 잘 보살피도록 지혜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왕은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이런 솔로몬을 보고 싶어서 이웃나라 왕들이 귀한 금 은 보석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지혜를 얻을수 있습니까?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찾아왔던 여인이 있었는데 시바여왕입니다. 정말! 솔로몬왕은 테평성대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이 변함없이 하나님앞에서 바르게 살았으면 좋은데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솔로몬이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살았으면 더 자신을 살피고 겸손하게 살아야하는데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인간일까요? 솔로몬도 결국 초심을 잃어버렸습니다.
첫 번째가 이방여자와 결혼입니다. 결혼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지요 이방여인이 조용히 가지고 들어온 이방 신상을 섬기는 일을 솔로몬이 한 것입니다. 왕이 못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를 따르는 수많은 여자들이 솔로몬 곁에서 수종들었는데 왕상11:3에 보면 후궁이 700명 첩이 300명이 있었는데 이 여인들이 황홀한 몸 짓으로 유혹했습니다. 왕은 온통 여인들의 치마 폭 안에서 여인들의 요구를 다 받아주는 이런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하나님께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찾아와서 솔로몬아! 왜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냐 지적하셨습니다.
열왕기상11:9-10.....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한마디로 솔로몬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만 하면 좋은데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한 것입니다. 이런 세월이 결혼 이후 노년까지 계속된 것입니다.
그렇게 왕이 방탕한 삶을 살다가 노년의 나이에 철이 들었을까요? 하나님을 극적으로 진실하게 만나고 잘못 살아온 것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싶어서 노년의 나이에 솔로몬 왕이 청년들에게 당부한 말씀이 있습니다.
1-2.......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창조주를 기억하라’ 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솔로몬왕이 노년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었을 것인데 “창조주하나님”에 대해 강조 했을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왕상4:29-34을 떠오르게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3000 잠언과 1005편의 노래를 선물했었습니다. 솔로몬 왕이 이런 지혜의 선물을 받다니요 정말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은 왕입니다. 그는 초심 때 하나님이 주신 이런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삼라만상의 초목과 동식물들과 대화했습니다. 그 때를 다시 회상하니 그 때가 내게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음을 뒤돌아보면서 우주만물을 하나님이 말씀한마디로 창조하신 세계를 다시 보며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 이런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가진 것이 많고 내 명성이 알려진들 그것이 무슨 자랑이냐 나에게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이다. 이런 심정으로 창조주하나님을 말한 것입니다.
(자료 참조)
청년여러분!! 마음이 공허하고 심신이 지쳐있을 때 산을 가십시오 자연을 보십시오 그리고 하늘을 보세요 도심속에서 보는 하늘과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산은 너무나 다릅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보십시오
그래서 시편121:1-2.....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런 권면은 생소한 하나님을 만나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일하셨던 일을 기억하여 다시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이르기 전에....... 가깝기전에...... 어둡기 전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전에... “전에” 이 말씀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에게 낮을 주셔서 일하게 하십니다. 낮이 지나가면 그 일을 마치고 끝낼 수 있는 밤을 주셨습니다. 밤이란 하든 일을 멈추고 하루 일과를 마치는 때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때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11일 인데 내일 11일 그대로 멈추지를 않습니다. 내일은 12일입니다. 그런데 어제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놓쳤네 그 일을 했으면 정말 좋았을 것인데 내일로 돌아가고 싶다고 돌아 갈 수 있나요 지나갔습니다. 종쳤습니다.......시간이 우리를 향하여 파파이!! 잘 있어 어김없이 가버린 것이 때입니다. 또한 “비가 온 다음에 다시 구름이 일어난다는 것은” 비가 오고 걷히고 다시 구름이 끼고 다시 비가 오는 기상의 변화가 있음을 말합니다. 비가 오다 날이 개고 다시 구름이 끼었다가 비가 오는 그 사이사이에는 반드시 햇빛이 비췰 때가 있습니다. 이 햇빛이 먼가하면 찬스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이 한번 기회는 지나가면 언제 다시올지 모릅니다. 왜요 내일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억”하라는 것은 돌아 갈 수 없는 인생이지만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 체험했던 이 순간 뇌리 속에서 동영상으로 그려지는 순간 아! 기회다 돌아가자 회복하자 작심하고 말씀 듣는 이 순간 돌아서는 용기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것은 하나님말씀입니다. 성령님께서 지금 내 마음을 움직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기회가 주어졌지만 너는 안되 이렇게 속삭이는 소리가 또 있습니다.
이것이 곧 마귀의 장난입니다. 이것은 창조 때 부터 오고 오는 세대 속에 원죄에서 보여준 선악과와 같습니다. 엣 뱀 마귀가 하와에게 찾아와 뭐라고 유혹했습니까? 선악과를 먹어라 괜찮아 너도 하나님처럼 될거야 마귀의 속삭임 앞에 하와는 넘어가 따먹은 것은 지금 나에게도 이런 속삭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라” 긍정과 “하지 말라” 부정 이런 자극적인 한마디가 나의 일생을 바꿀 때가 있습니다. 우리를 늘 부정하도록 영적 메개체가 누구인 줄 아십니까? 원수 마귀 사탄입니다. 사단은 언제나 긍정을 부정으로 생각하도록 노크 합니다.
어느 날 사단의 전략회의가 있었습니다. 요즘 성도들이 너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나!! 사탄의 우두머니가 말하니까 한 졸개가 말합니다. 저들을 죽이면 됩니다. 하니까 사탄의 우두머니가 하는 말이 순교는 교회의 씨가 되어 더 믿는 자들이 왕성하게 신앙 생활하니까 안되!! 다른 사탄의 부하가 하는 말이 그러면 감옥에 가두자는 제안했습니다. 그것도 안되 만약 감옥에 가두면 감옥안에서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의 역사를 크게 일으키므로 손해라고 했습니다. 이 보다 더 좋은 전략이 없을까 하고 고심하고 있을 때에 한 늙고 지혜로운 마귀가 지혜를 짜내었습니다. " 열심히 전도도 하고 사랑도 하자. 그러나 내일부터 하자" 저들에게 속삭이면 됩니다. 사단의 전략회의에서 이 전략을 체택하여 대 성공을 거두었다는 꾸며낸 이야기가 있습니다.
히말라야 산 속에를 가면 야맹조라고 하는 새가 있어요 이 새는 낮이면 신나게 즐기다가 밤이 되면 잘 둥지가 없어서 다른 새의 둥지에 가서 거하며 밤새 구박을 받는 답니다. 그는 서러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내일이면 집 지으리","내일이면 집지으리"하고 구슬프게 노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맹조는 자기의 일생이 다가도록 집을 짓지 못한다고 합니다.
사단은 지금도 다음에 하지, 내일하지 하고 우리를 무기력하게 유혹합니다. 그러나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바로 오늘, 지금 해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왜! 솔로몬 왕이 너를 이렇게 지적할까요?
아마 개인 개인에게 입술로 고백하도록 시인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지 않겠습니까? “너는” 이란 단어에 자기 이름을 한번 넣어보세요..... 승권아! 청년의 때에 승권이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할렐루야!!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으로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