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석꾼 오 부자네 스물네칸 기와집을 짓는
도편수 황각중은 한 아이를 유심히 내려다봤다.
부잣집이 큰 집을 지으면
점심상이 지게로 바리바리 오고 새참도 적잖게 와
월천교 다리 밑의 거지 아이들이 파리떼처럼 모여든다.
오 부자가 자자손손 살아갈 보금자리를 지을 때는
덕을 쌓아야 한다며
때마다 거지 몫 음식도 만들어보냈다.
다른 거지 아이들은
오로지 먹을 것에만 눈독을 들이며 아귀다툼을 벌이는데
그 아이만은 품위를 지킨다.
특히나 먹을거리보다는
집 짓는 일에 온 관심을 쏟는 것이
도편수의 눈길을 끌었다.
목수들한테 일도 물어보고
대패며 망치·끌 등의 연장도 신기한 듯 만져보더니
어렵게 망설이다가
도편수인 황각중에게도 다가와
먹줄의 용도를 물었다.
하루는 그 아이가 못 박는 망치를 들고 와
여기서 훔치지 않았다는 듯이
“이거, 대장간에서 며칠 풀무질해주고 얻은 거예요”
신고를 했다.
“좋구나.”
도편수는 빙긋이 웃으며
망치와 못통을 허리에 차는 연장띠 하나를
그에게 줬다가 빼앗고는,
다시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던 새 연장띠를 건넸다.
아이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 아이는 사또가 칼을 찬 듯이
목수 연장띠를 허리에 차고 으스댔다.
이튿날부터 그 아이는
버려진 굽은 못을 주워 망치로 펴서
허리에 찬 못통에 넣고,
쓰다 버린 널빤지를 모아서
저녁이면 월천교 다리 밑으로 가져갔다.
며칠 뒤, 도편수 황각중이 그 아이를 불러
유지에 싼 뜨끈뜨끈한 찰떡 세개를 줬더니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먹지도 않고 품에 넣어 쏜살같이 달아났다.
두어식경이 지나서야 아이가 다시 돌아왔다.
“너 어디 갔다 왔냐?”
“월천교 다리 밑에요.”
“왜?”
그 아이 대답이 도편수 가슴을 때렸다.
“제 친구가 심한 고뿔에 걸려서
밥도 못 먹고 누워 있는데
뜨뜻한 찰떡을 줬더니 잘 먹더라고요.”
“너는 몇살이냐, 이름은?”
“열한살이고요.
이름은 공진이라 해요.”
“네 부모님들은?”
도편수 황각중은 무심코 묻고는 금방 후회했다
. 열한살 거지 공진이는 대답을 못하고
하늘만 쳐다봤다.
결국 돌아서더니 눈물을 훔쳤다.
“그래그래, 내가 괜한 걸 물어봤구나
. 미안허다, 공진아.”
아이는 금방 웃는 얼굴로 돌아서더니
“남자는 눈물을 흘리면 안되는데….”
며칠 후, 도편수가 물었다.
“공진아, 판자 조각은 불을 지피겠지만
굽은 못은 주워서 뭣에 쓰려는 게냐?”
공진이는 한숨을 쉬더니만 “
거적때기 움막 속에서 동지섣달을 나다 보면
몇사람은 죽어요.”
공진이는 아이답지 않게 또 한숨을 쉬고
“작년에도 넷이 죽어 눈으로 덮어놓았다가
이듬해 땅이 녹자 산에 묻었어요.”
그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제가 다리 밑에 판자로 집을 지을 거예요.”
도편수 황각중은 깜짝 놀랐다.
다음날 공진이 보이지 않기에
점심 남은 걸 싸서 월천교로 향했다.
어른 거지, 아이 거지 할 것 없이 모두 달려들어
흙벽돌을 옮겨 벽 쌓을 기초를 다지고
어디서 주워 왔는지 크고 작은 판자들을 늘어놓았다.
열한살 공진이가
이곳에서는 도편수로 진두지휘했다.
공진이가 황각중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보자기에 싸온 점심밥을 건네주자
또 거적때기 움막 속,
아파 누운 친구에게 들고 갔다.
어림잡아 열대여섯명의 거지 떼들은
대여섯살 코흘리개부터
벽돌 하나도 들지 못하는 늙은이까지
모두가 삐쩍 말라 피골이 상접했다.
황각중은 오만가지 생각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대설이 사흘이나 남았는데
새벽부터 눈이 펄펄 휘날렸다.
“서설(瑞雪)입니다요.”
“오 대인, 천년만년 이 집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라고
상서로운 눈이 내립니다요.”
그날은 스물네칸 오 부자네 대궐 같은 기와집 상량식 날이다.
소 한마리 잡고 전 부치고 국 끓이고 떡 하고 술독을 열고….
원래 상량식 주인공은
집주인이 아니라 목수들과 도편수다.
그들은 장롱 속에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고
훤하게 나왔다.
동네사람들이 다 모이고 거지들도 모두 왔다.
도편수 황각중이 비단 마고자를 입고 두리번거리더니
거지 하나를 붙잡고 공진이를 찾았다.
그 거지는 대답을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더니
“어제 친구가 죽었어요.
짐승들이 뜯을까봐
공진이가 돌을 모아서 덮고 있어요.”
며칠 전에 도편수가
거적때기 움막 속을 슬쩍 들여다봤을 때
귀신처럼 누워 있던 아이 모습이 눈에 선했다.
거지들과 구석에 앉아 술만 퍼마시는 도편수에게
오 대인이 술잔을 들고 찾아왔다.
“여보게 도편수
, 오늘같이 좋은 날 웬 눈물인가!”
이튿날, 판자와 기둥을 가득 싣고
도편수와 목수 여섯을 태운 달구지가
월천교 밑으로 갔다.
덜 마른 흙벽돌이 얼었다 녹으며
거지들이 짓던 집이 와르르 무너진 자리에
도편수와 여섯목수가 달라붙어
뚝딱뚝딱 판잣집을 짓기 시작했다.
사흘째 반나절도 안돼 판잣집이 완공됐다.
오 대인이 판자와 기둥을 대줬을 뿐 아니라
입주식에 돼지 한마리를 잡았다.
거지들은 엎드려서 울기만 했다.
설날 아침,
동산에 붉은 해가 떠올랐다
. 활짝 열린 대문으로
월천교 거지떼 예닐곱이 들어왔다.
오 대인이 사랑방 문을 열자
거지들이 흙마당에 꿇어앉아
“어르신, 세배받으세요”라고 하자
오 대인이 고함을 쳤다.
“행랑아범~ 빨리 대문을 잠가라.”
거지들이 마당에서 합동세배만 하고 도망치려다가
꼼짝없이 잡혀 사랑방에 들어가
한사람씩 세배를 하고
세뱃돈이 가득 든 주머니 하나씩을 받았다.
나이 지긋한 노인은
오 대인과 맞절을 하며
“어르신 덕택에 소한·대한 지나며
한사람도 얼어죽지 않았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날이 풀리면 우리 산 남향받이 자락에
제대로 집을 짓자고.
그리고 딸린 밭에 농사지어….”
오 대인의 이야기에 거지들은 울음바다가 됐다
. “여봐라~ 이 사람들 떡국상 차리고
뒤뜰에 윷판을 펼쳐줘라.
종일 술과 고기도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고.”
그렇게 겨울이 따뜻하게 지나갔다.
공진이는 설이 지나자 열두살이 돼
도편수 황각중네 집에 들어갔다.
몸만 들어간 것이 아니라
아예 호적에 황각중의 양자로 등재돼
부자지간이 된 것이다.
아버지만 얻은 것이 아니라
네살 위 예쁜 누나까지 얻었다.
황각중은 십년 전에 병으로 부인을 잃고
여섯살짜리 딸 하나를 손수 키우며 새장가를 가지 않았다.
그 딸 국화가 이제 열여섯 처녀가 되어
집안살림을 도맡아 하게 됐다.
국화도 아버지하고 둘이만 살다가
남동생을 얻자 너무 기뻤다.
공진이가 땟국물에 전 옷을 벗고
국화누나가 지어준 바지저고리에 조끼까지 받쳐입자
제법 말끔한 총각티가 났다.
황각중도 흐뭇하다.
눈썰미 좋은 도편수 후계자 아들을 얻은 것도 좋지만
항상 안쓰럽던 딸 국화가
그리 좋아하는 걸 보는 것이 더 좋았다.
국화는 뜨개질로 공진이 모자를 떠주고
토시도 만들어줬다.
꽃피고 새우는 봄에 오누이는 함께 산속으로 들어가
공진이는 지게 가득 나무를 하고
국화는 나물을 한바구니 캐 함께 집으로 왔다.
도편수 황각중이 집짓기 의뢰를 받았다.
목수를 넷 쓰고
공진이에게는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새참시간에 곰방대를 물고
비스듬히 앉은 황각중은 흡족한 미소를 흘렸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지.
공진이를 양자로 잘 들였어.’
공진이는 영리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목수일 배우는 것도 일취월장,
가을에 열여섯칸 집을 다 지었을 때
공진이는 한사람 몫의 목수가 돼 있었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나면
황각중은 파김치가 되어 골아떨어지는데,
공진이는 호롱불 아래서
제 누이와 밤새 얘기꽃을 피웠다.
삼년이 흘렀다.
열다섯이 된 공진이는
키는 쑥, 팔뚝은 무쇠, 어깨는 벌어졌다.
황각중이 특히나 기뻐한 것은
, 목수의 가장 큰 덕목인 지붕 처마 선을 잡는 데
공진이를 따를 목수가 없을 뿐더러
자신도 밀리는 것이다.
절을 짓고 여섯달 만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제 아비 눈치도 아랑곳없이
공진이와 국화가 얼싸안고 빙그르르 돌았다.
어느 날 황각중이 국화와 장에 가고
공진이 혼자 대들보와 서까래 도면을 그리고 있는데
동헌의 호적관리가 찾아와
“황각중 어른이 부탁한 호적 파기가 다 정리됐네” 하며
서류 하나를 놓고 갔다.
공진이 털썩 주저앉았다.
황각중과 공진의 부자관계가 파기된 것이다.
공진이는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동구 밖 주막으로 가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 몇번이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술을 잔뜩 마시고 나니
지난 세월이 꿈처럼 이어졌다.
“호적을 파기했어도 아버지를 원망할 순 없어
. 이때껏 나를 이렇게 키워줬는데….
내가 떠나면 되지만
국화누나를 보고 싶어 어쩌지.”
집에 돌아온 공진이는
도편수 황각중 앞에 꿇어앉았다
. “아버님, 내일 집을 떠나겠습니다.
한양에 궁궐을 새로 지어
목수들을 구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몇년 보내면 저도 도편수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만히 듣고 있던 황각중이
“지금 남촌에 짓는 집이나 마무리하고 가면 안되겠냐?
너 술에 취했구나.
네 방에 가서 자거라.”
공진이 누워 말똥말똥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데
자박자박 살며시 국화가 들어왔다.
공진이 벌떡 일어나 국화를 끌어안았다
. “누나, 잘 있어. 으흐흑~.”
“나는 이제 누나가 아니야.”
“나도 알아. 호적을 파기했으니….”
공진이 한숨을 토하자 국화가
“아버지가 고칠 수 없는 중병에 걸렸어.
의원 말씀이 일년을 못 넘긴대.
호적을 파기해야 아버지와 공진이는 남남이 되고
공진이는 나의 서방님이 될 수 있지.
남촌에 짓는 집은 우리가 살 집이야.”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공진이는 더듬거리며
“남촌에 지지, 짓는 집이, 구구궁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