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科擧)에서 부정을 저지른 응시자를 처벌하기 위해 과거 응시 자격을 제한하는 것을 정거(停擧)라 한다. '예종실록' 1년 6월 11일조를 보면, 커닝을 목적으로 책을 가지고 시험장에 들어간 자는 2식년(式年) 동안 정거시키도록 방침을 정하고 있다. 정식 과거인 식년시는 간지(干支)에 자(子).오(午).묘(卯).유(酉)가 들어 있는 해인 식년마다 치르므로 3년에 한 번씩 돌아온다. 2식년의 정거는 6년 동안 과거에 응시할 수 없도록 하는 벌이다.
이런 예도 있다. 유양춘(柳陽春)은 외삼촌 현득리(玄得利)와 문과 회시(會試)에 응시하는데, 현득리는 유양춘의 답안지를 베껴 합격하고 자신은 낙방한다. 유양춘이 세조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자, 세조는 도리어 자신을 키운 외삼촌을 고발했다며 유양춘을 영원히 정거시키라 명한다('성종실록'2년 4월 23일조).
"유생을 징계하는 데 정거만 한 것이 없다"('성종실록'3년 6월 2일)는 성종의 말처럼 정거는 선비들의 꿈을 앗아가는 가혹한 처벌이었다. 그런데 정거처럼 강도 높은 처벌이 있었건만 갈수록 과거는 혼탁해졌고, 19세기 말이면 정부도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그래도 과거는 모순을 안은 채 줄기차게 설행(設行)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에는 식년시 외에 증광시(增廣試), 별시(別試), 알성시(謁聖試), 정시(庭試), 춘당대시(春塘臺試) 등의 부정기적 시험이 있었다. 부정기적 과거는 필요에 따라 수시로 설행됐기 때문에 무척 잦았다. 잦은 과거의 합격자는 모두 관료 후보자였다. 원칙적으로 관직을 주어야만 했으나, 합격자 수가 워낙 많아 임용되는 수는 극소수였다. 과거 합격증인 홍패(紅牌)만 안고 생을 마치는 사람, 안 한 것만도 못한 미관말직을 전전하는 것으로 생을 허비한 사람이 허다했지만 과거는 여전히 잦았다.
잦은 과거의 설행이 갖는 문제를 정부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과거가 잦았던 것은 과거의 목적이 인재 선발이 아니라 체제 유지를 위해 민심을 무마하는 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양반을 달래는 방법으로 과거보다 더 좋은 것이 없었다. 예컨대 영남 지방 양반들이 불만이 많다 하면 영남 지방에 과거를 특별히 설행하는 식으로 말이다. 벼슬은 못할망정 과거 합격은 그래도 조선 사회 내에서 우월한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보장하는 보증수표였기에 양반들은 여전히 과거에 골몰했다. 요컨대 과거는 조선 체제를 순조롭게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수능시험 때 휴대전화와 MP3플레이어를 소지한 응시자는 내년 수능시험까지 응시 자격을 박탈한다고 한다. 현대판 정거인 셈이다. 이렇게 신식(新式) 정거를 강력히 시행한다면, 부정행위가 줄어들고 대학입시가 갖는 문제가 없어질 것인가. 천만에! 수능, 곧 대학입시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대학입시는 한 인간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차지할 계급의 위치를 결정 짓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대학 졸업자가 아니거나 또는 비명문 대학 출신으로 성공한 극소수의 예를 들며 대학을, 혹은 명문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극소수의 예외다. 환상을 갖지 마시라. 과거가 양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였듯 대학입시 역시 현재의 문제 많은 한국의 사회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동일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발본적인 반성과 대책이 없는 한 대학입시의 문제와 부정행위는 계속될 것이다. 정거를 시킨다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첫댓글 하늘님의 오상 본성 기진 을 무시한 천지만물의 사육하...노여움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