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8일은 ‘산의 날’이다. 9월 15일인 ‘산악인의 날’과는 다르다. 산악인의 날은 고상돈 등산가가 우리나라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에 오른 것을 기려 대한산악연맹이 2000년에 만들었다.
산의 날은 2002년에 산림청이 제정했다. 국제연합이 2003년부터 12월 11일을 ‘세계 산의 날(International Mountain Day)’로 기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때가 한겨울이어서 가을로 앞당겼다.
9월 15일을 산악인의 날로 정한 데에 특별한 까닭이 있는 것과 달리 산림청이 10월 18일을 산의 날로 제정한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산림청은 10월 18일이 “1년 중 산이 가장 아름다운 10월에 선조들이 높은 곳에 올라 풍류를 즐기던 세시풍속 등고登高에 유래했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음력 9월 9일인 등고가 양력으로 바꿀 때 반드시 10월 18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정부는 산의 날 제정 목적이 “국민들에게 산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우고 산을 보호”하는 데 있다고 밝힌다.
‘산’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로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 대표급이다. 하지만 1924년 발표작 <마의 산>의 ‘산’은 자연의 산이 아니라 요양원을 상징한다. ‘사회적 휴머니즘’의 중요성을 주제로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산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우고 산을 보호”하자는 내용과 전혀 무관하다.
역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도 생각난다. 그런데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과거의 추억을 되짚어가는 내용으로 가득찬 이 소설 역시 산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자는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병주의 <지리산>, 김원일의 <팔공산> 등이 있다. 이들 또한 산의 가치 제고나 산 보호 의식 함양과 아무 상관이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정래와 이병주의 장편은 이념 문제를, 김원일의 연작장편은 독재권력의 부당한 인권침해를 제재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1936년 발표작인 이효석의 <산>을 독자들에게 권할 수도 없다. 머슴살이를 하던 중실은 오해를 받고 마을에서 쫓겨나 산으로 들어가 산다. 그는 산에서 열매를 따고 꿀을 채취해서 먹는다. 이웃집 용녀와 부부가 되어 재미나게 생활하는 상상에 빠진 채 잠을 청한다.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하다. 그는 자신도 별이 된 기분을 느낀다.
그렇게 쉽게 별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인간은 별이 될 수 없다. 4∼5백만 년 전에 출현한 인류는 과학이 크게 발달하기 전까지 별로 상징되는 우주의 신비 앞에서 몸을 떨었다.
칸트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 나에게 경외감을 주었다.”라고 했다. 제목이나 내용에 ‘산’이 등장하기는 해도 주제와는 동떨어진 소설이 많은 것도 아마 그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 글은 현진건학교가 펴내는 월간 '빼앗긴 고향'에 수록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투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