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연원도통을 바르게 이해하라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연원도통(淵源道通)입니다.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각기 제 것이 좋고 옳다고
하면서 믿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보다 특히 좋고 옳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변동이 없고 죄를 짓지 않습니다. 『전경』에 다 나오는데도 분간을 못 합니다. 그러니 잘못이 나오는 것입니다. 나는 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을 알게 해주기 위해 여러 사람이 주고받는 말로써 토론을 하면 효과적입니다. 토론에는 실수도 없고 잘못도 없습니다. 그 사람이 아는 대로 하는 말이니까 그렇습니다. 모르면 죄가 없고 잘못도 없지만, 모르니까 안 좋은 일을 하기도
합니다.
대순진리회는 무엇을 알고 가르치는 곳입니까? 그것은 오직 진리입니다. 도 아니고는 진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장사하는 것과 농사짓는 것도 진리지만 우리 진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진리는 우주의 진리입니다.
이것을 배우고 가르쳐 나가는 것이 수도 과정이고 이것을 통해야 되기에 수도를 하는 것입니다.
우주 삼라만상을 낳고 키우고 없애고 하는 것이 진리이며 이것을 올바르게 키워나가는 것이 도입니다.
진리라는 것은 우주 변화 과정의 기구이며 도입니다. 생장염장(生長斂藏)의 변화 기구는 1년 12달입니다.
이것이 도입니다.
12월 26일 재생신(再生身)이 도통입니다. 26일에 4일생이면 4를 합쳐 30일로 꽉 차게 됩니다. 같은 생일도 많다고 할 수 있지만 여러 가지가 맞아야 합니다. 1년 12달이 도이며, 도라는 것을 통하는 것이 도통입니다. 12월하고 30일이 꽉 찬 것이 도입니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이 전부 1년 12달에 있습니다.
우리가 상제님 한 분만을 믿는다면 진리는 없습니다. 상제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이 범인(凡人)으로서
할 수 없고 하느님으로서만 하실 수 있다는, 상제님의 범상치 않음만을 믿는 것 외에 다른 의미는 없기 때문입니다.
철부지라는 것은 절후(節候)를 모른다는 것이고 도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도주님 함자에 철(哲) 자가 있지 않습니까?
축(丑)은 12월, 축월(丑月)입니다. 이것이 소입니다. 그래서 소를 도라고 합니다. 심우도(尋牛圖)란 소가 가는 길을 찾는다는 말이고 도를 찾는 그림입니다. 불교인은 심우도를 수도과정이라고 합니다. 닭이 또한 도입니다.
축시에 울기 때문입니다.
복희선천은 봄이며 동(東)이고 목신(木神)이며 삼(三)ㆍ팔(八), 목신사명(木神司命)입니다. 다음으로 문왕후천은 여름이며 남(南)이고 화신(火神)이며 이(二)ㆍ칠(七), 화신사명(火神司命)입니다. 이제 용화후천은 가을이며 서(西)이고 금신(金神)이며 사(四)ㆍ구(九), 금신사명(金神司命)입니다. 사명(司命)이란 무슨 일을 책임으로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금신(金神)은 가을입니다. 노래 가(歌), 새 을(乙), 그러니 을미생(乙未生)이 됩니다. 을(乙)은 갈 지(之) 자와 같고, 가는 것은 길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신미(辛未)년에 오셨고 도주님께서는 을미년에 오셨으니, 신미에서 을미년까지는 25년입니다. 절후 24를 빼면 하나가 남으니 도주님이 주인이신 것입니다. 도주님을 모르면 생각할 필요가 없고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도주님을 모르면 상제님을 옛날에 훌륭했던 분이라고 그냥 믿는 데 그치게 됩니다.
큰 것은 증산, 작은 것은 정산입니다. 솥 위에 올라가는 것은 시루밖에 없습니다. 솥을 걸고 시루를 얹으면 불을
때야 합니다. 그래야 용사(用事)가 됩니다. 그래서 숯이 필요한 것입니다. 금산사로 오라고 하신 것은 이것을 보고 깨닫고 그 진리로 들어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금불 밑에 용소(龍沼) 못이 있는데 용이 아홉 마리가 있었기에 용소라고 합니다.
도주님께서 만주 봉천에서 봉천명 봉신교하신 후, 상제님께서는 태인으로 가라고 하셨는데 태안에 닿으셨습니다. 그래서 안면도(安眠島)로 가셨는데, 안면도란 편안할 안(安), 졸 면(眠), 섬 도(島)이니 잠깐 쉬어가는 데라는 말입니다. 그다음에 마동(馬洞)에 가셨으니, 마동은 말 마(馬), 동리 동(洞)입니다. 말[馬]은 조씨(趙氏)를 가리키는 말이니, 봉서를 받으신 곳이 마동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이치로 되며 천장길방(天藏吉方) 자리입니다. 도장 자리도 천장길방 자리이고 축좌미향(丑坐未向)으로 되었던 것입니다.
1984. 12. 26(음 11. 5)
부산(釜山)은 가마솥 부(釜)로서 입금산(入金山)입니다. 부산 초량 옆에는 시루산도 있습니다. 시루와 똑같이 생긴 동산입니다.
군산(群山)에서 수륙병진(水陸竝進)이라 하시며 서울로 가는 도수를 보셨는데, 군(群)은 무리가 많다는 뜻입니다. 도수라는 것은 처음부터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목적지를 간다면 어디어디 거쳐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도주님께서는 회문리(會文里)에서 탄강하시고 을축(1925)년에 도창현에서 무극도를 창건하셨으며, 신사(1941)년에 무극도가 해산된 지 4년 만에 부산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도주님께서 무자(1948)년 부산 보수도정에 상제님을 봉안하신 후 11년 동안 계셨고, 도주님 화천하시고 10년 만에 나도 떠났습니다. 합하면 부산에서의 21년은 기도주 21자와 같은 수가 됩니다. 『전경』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까? 모든 법은 서울에서 펴나간다고 하시며 신경수의 집에서 공사를 보시고 수륙병진도수로 뱃길에 안경을 싸서 북쪽으로 던지라고 하신 것이 바로 이 자리(서울)입니다.
이 시간이 간다고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고 모레가 오는 것과 같이, 복희선천, 문왕후천, 용화후천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봄ㆍ여름ㆍ가을로 이어지는 것이 천지자연의 이치인 만큼 억지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5천 년 전, 태호복희씨가 개국 초의 임금이었는데 황하수(黃河水)에서 용마(龍馬)가 그림을 지고 나왔습니다. 복희씨가 그것을 보고 천지 이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도(河圖)입니다. 우임금 때는 낙수(洛水)에서 거북이[神龜]가 그림을 지고 나왔습니다. 이것을 보고 낙서(洛書)라고 한 것입니다. 모든 이치가 물에서 나온 것을 말함입니다. 그래서 금산사에 금불을 모신 것도 용추 못인 물에다 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원(淵源)이라고 합니다. 태호복희씨 때 용마가 하도(河圖)를 지고 나왔으니 용마부도(龍馬負圖)라고 하고, 우임금 때 거북이가 글을 지고 나왔으니 금구낙서(金龜洛書)라고 하고, 이번에는 용추 못에서 연원이 시작되므로 연원도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도통도 물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밝혀질 모양입니다. 그것이 도통인 것입니다.
물이 아니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도통이란 진리를 통하는 것입니다. 상제님, 정산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물이라는 것은 투명한 것입니다. 맑게 보입니다. 그래서 물의 짐승도 영명(靈明)하다고 합니다. 여자가 수성(水性)이기에 여자가 더 빠르다는 것입니다.
복희선천에는 건남(乾南) 곤북(坤北) 리동(離東) 감서(坎西)였고, 문왕후천에는 리남(離南) 감북(坎北) 진동(震東) 태서(兌西)였으며, 용화후천에는 곤남(坤南), 건북(乾北), 간동(艮東), 태서(兌西)가 됩니다. 그러므로 용화후천에는 지천태(地天泰)가 되고, 수명도 길어지는 것입니다. 곤도운(坤道運)이 선다는 것은 지덕(地德)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연원(淵源)을 바로 안다면 아침에 도를 받고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는 것입니다. 살고 죽는 것이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전경』에도 원통하게 죽은 신에게는 울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 운다고 했습니다.
어린애도 배우고, 배워서 아는데, 배우지 않고 앉아만 있으면 무엇을 알겠습니까? 과학, 철학도 배워서 아는 것입니다. 하도낙서도 글을 지고 나온 것입니다. 지고 나온 그림을 배우는 것입니다.
모든 이치는 물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연원도통입니다. 도가 음양이고 음양이 이치고 이치가 진리입니다. 이것도 연원에서 나옵니다. 항시 상대가 있듯이, 앞이 있으면 뒤가 있고,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옆이 있으면 다른 옆이 있습니다. 원시반본(原始返本)이란 아주 원시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글씨 그대로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만 돌아가야지 모든 것이 돌아가면 무엇하겠습니까! 원(原)이란 처음 시작한 거기에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근원(근본) 원(原)을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감천도장은 배를 안으로 대어놓은 형국이었으나, 나중에 한 달 반 걸려 백학관을 짓고 보니 다시 바다 쪽으로 나가는 모양으로 되었습니다. 그 뒤 밖에서 집들을 지은 것은 마치 파도치는 형국이었습니다. 지내놓고 보면 신기한 것이 많습니다.
1984. 12. 27(음 11. 6)
도전님 훈시|이번 호부터 게재하는 「도전님 훈시」는 1984년부터 1995년까지 훈시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종무원에서 공식적으로 기록한 것을 기본으로 하고, 여러 임원이 기록한 내용을 참고하여 대순종교문화연구소에서 정리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모두 자문위원들의 고증을 거쳤습니다. 기존의 《대순회보》에 기재한 15편의 「도전님 훈시」는 제외하고 시간적인 순차에 따라 게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