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얼마 전 계룡산 산세에 대하여 글을 올렸더니 령(嶺) 현(峴) 재, 고개, 치(峙)에 대한 의론이 들려 잠깐 조사를 해 보았다. 참을성이 없거나 바쁜 사람을 위하여 결론부터 내면 ‘잘 모르겠다’ “고개를 뜻하는 '치, 령, 재'가 정확하게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치, 령, 재 구별에 대한 국립국어원 대답인바 (인터넷에서 검색) 필자는 이것이 정확한 대답이라고 본다. 그런데 필자는 모르면서도 왜 굳이 글을 쓰려고 할까? 인터넷에 별 근거 없는 해설이 많이 돌아 다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래는 같은 질문에 대한 한글학회 대답이다. 치(峙)는 고개(언덕)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고 령(嶺)은 재의 한자말입니다. 따라서 치는 낮은 고개, 령, 재는 높은 고개, 산마루를 뜻하는 말로 쓰입니다. 우리말 '재'는 '령'이라는 것으로 둔갑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치'로 지방에 따라 '티'로 쓰이는 곳도 있는 듯 합니다. 타당한 설명이 아니다. 필자는 위 글을 한글학회에서 직접이 아니라 누가 퍼다 논 것을 읽은 지라 정말 한글학회 대답인지 의심이 간다. 치, 령, 재에 대한 인터넷 해설의 대세 글을 검색해 보니 대개 규모 별로 구별하려고 한다. 령(嶺)은 규모가 크고 지역간 통행의 중요한 통로에 군사 요지 백두대간 큰 고개는 령(嶺)이 우세 (예 : 대관령, 조령, 죽령, 추풍령). 현(峴)은 령(嶺)보다 한 단계 아래. 중소 산지의 고갯길 치(峙)는 꼭 높지는 않더라도 다소 험준한 느낌을 주는 곳. 나지막하면서도 우뚝 솟은 듯한 산을 경유하는 경우 치 (예 : 지리산의 정령치, 소백산의 마당치, 미내치). 재와 고개는 우리말 지명으로 민간에서 널리 사용 재가 시기적으로 다소 앞서 사용된 듯 위 해설을 읽기는 했지만 퍼다 논 사람이 밝히지 않아 출처는 모른다. 하여간 네이버 지식 in 을 비롯 인터넷에 뜬 글은 대략 이런 식이다. 현재에서 유추 보다는 어원을 살피는 것이 좋을 듯 필자는 모두 잘못된 해설이라고 생각하는데 잘못 된 원인은 현재 지명에서 유추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 옛날 지명은 일사불란한 규칙에 의한 것이 아니다. 대략의 추세는 있었을 것이나 엄격하게 이건 치, 저건 현 또는 령 하는 식으로 질서정연하게 이름 붙였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어느 나라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것을 한계령, 대관령,이화령에서 크다, 널티, 노인치에서 작다 를 뽑아내려니 무리가 따른다. 잘 맞지 않으니 무슨 영은 원 이름이 어떻다던가 옛날 사람들이 어찌 생각해서 그렇다는 견강부회 식 설명이 따라 붙는다. 따라서 현재 지명에 남아 있는 용례 보다는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을까 와 자전(字典)을 찾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다. 택리지(擇里志) 의 정의(定義-definition) 옛 사람들 생각에 대하여는 택리지가 가장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택리지 보다 더 권위 있는 옛 인문지리 책이 없질 않은가? 영(嶺)과 재, 고개는 같은 말 “ …영이란 것은 등마루 산줄기가 조금 나지막하고 평평한 곳을 말한다. (謂之嶺者 仍嶺脊梢低平處) 이런 곳에다 길을 내어 영 동쪽과 통한다. 나머지는 모두 산이라 부른다.” (택리지(擇里志) 복거총론 산수 편) 위 글에서 영(嶺)과 재, 고개는 같은 말임이 확실하다. 재와 고개 중 재가 시기적으로 더 앞선다는 추측이 있으나 그걸 어찌 알 수 있는가? 영(嶺)과 치(峙)는 크기에 따른 구별이 아니다 태백산에서 ….중략….비록 만첩 산속이나 산등성이가 연했다가 끊어졌다 하고 자주 끊어져서 큰 영이 넷이고 작은 영이 7개나 된다. (大嶺四 小嶺七) (택리지(擇里志) 복거총론 산수 편) 이중환은 크건 작건 간에 다 영(嶺)으로 쓰고 있다. …소백산 아래쪽에선 죽령(竹嶺)이 큰 영이고 (竹嶺爲大嶺) 그 아래 쪽에 천주(天柱) 화원(火院)의 작은 영이 있다.(爲小嶺) 계속 읽어도 크건 작건 다 영(嶺)이다. 게다가 다음 구절에서 치(峙)가 영(嶺)보다 결코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덕유산(德裕山) 남쪽에 있는 육십치(六十峙) 팔량치(八良峙)가 큰 영이며 여기를 지나 지리산(智異山)이 되었다…. 육십치(六十峙) 팔량치(八良峙) ! 치(峙)도 큰 영(嶺)이다(大嶺). 한자어원(漢字語源) 영(嶺)에 대하여 원류자전(源流字典)을 찾았다. 영(嶺) (1) 산지견령가통도로자 (山之肩嶺可通道路者) 위 이중환의 택리지 설명 그대로다. 산 등마루에 조금 나지막하고 평평하여 길을 내어 통할 수 있는 곳이다 (2) 고립적산봉(孤立的山峰) 재, 고개 뿐 아니라 산봉우리의 뜻도 있다. (3) 연속적산맥 (連續的山脈) 산맥도 영(嶺)이라고 하는 바 , 이중환 택리지에도 이런 용례가 나온다. …백두산에서 태백산 까지는 한 줄기의 영으로 통하여 좌우에 다른 산 봉우리가 없다. 소백산 아래부터는 맥이 자주 끊어지는데.. 위에서 영은 산맥의 뜻이다. 인터넷 글에서 대부분 영(嶺)을 규모가 큰 것으로 해설하려는 경향은 바로 영(嶺)의 세 번째 뜻 산맥에서 연상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미 논증한 대로 영(嶺)이 꼭 큰 산맥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치(峙)보다 반드시 더 큰 것도 아니다. 영(嶺)과 현(峴) 혼용했다. 차현이 곧 차령이고, 남태령은 남현(南峴)이라고도 했다. 원래 남현인데 중요하게 여겨서 남태령이 된 것이 아니다. 굳이 따진다면 남태령의 옛 이름은 여우고개다. 치(峙)와 티 (이 부분은 순전히 필자의 상상이다) 인터넷 상 해설은 치(峙)와 티를 같은 말로 본다. 옥편(玉篇)에는 산이 우뚝 솟은 것을 치(峙)라고 니온다.. 재, 고개의 뜻이 없다. 그런데 왜 고개라고 할까? 또 아직도 지명 중 ‘티’라는 곳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 ‘티’가 반드시 험준하거나 우뚝 솟은 곳이 아니다. 앞에서 든 해설 중 다음에서 ; ‘ 높지는 않더라도 다소 험준한 느낌을 주는 곳이 치’ 나지막하면서도 우뚝 솟은 듯한 산을 경유하는 경우 치 치의 옥편해설과 같으나 고개의 뜻이 더 붙었다. 우리나라 재, 고개, 령(嶺)(필자는 셋이 다 같은 말이라고 앞에서 주장했다) 에서 험준하지 않거나 우뚝 솟지 않은 곳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필자는 우리 고유어 ‘티’ 와 한자 치(峙)는 다른 말인데, 우리 ‘티’를 한자로 표기할 때 유사한 뜻 치(峙)를 빌려 온 것이 아닐까 상상한다. 즉 ‘티’는 고개 또는 언덕의 또 다른 우리 고유어로 험준한 것과는 별개고, 한자 치(峙)는 우뚝 솟은 산으로 고개, 재의 뜻이 없으나 우리 ‘티’에 치(峙)를 음차(音借) 하는 바람에 험준하고 우뚝 솟은 고개라는 설명이 붙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이미 전제 한대로 필자의 상상일 뿐이다.
이상 |
출처: 구룡초부 원문보기 글쓴이: 구룡초부
첫댓글 감사합니다 좋은공부되었습니다,치와 영 그리고 티 자세한설명 타당성있는 글 어느 설명보다
신이갑니다,
감사합니다,
오대댁 손자님 카페 고문 으로 모든분들 정말 공부 많이 합니다 언제나 새롭고 좋은글 접할수 있도록 해주시는 데 감사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