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일(4월 15일) - 세 가지 길
무창포-서천-장항-군산-변산반도
어제 저녁 한참 저물어서 도착한 무창포는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옆 마을 독산해변이라는 곳까지 30여 분 자전거를 몰아 숙소를 찾았으나 번잡한 무창포와는 달리 불 켜고 손님을 기다리는 집은 없었다. 다른 마을로 가기엔 너무 멀었다. 어쩔 수 없는 무창포로의 회군이었다. 일요일을 막 넘기고 있는 무창포는 주꾸미 축제의 마지막 날이란다. 그래서 더 흥청대는 것 같았다. 모텔과 호텔, 펜션 따위가 해변 도로변을 빼곡하게 점령하고 있다. 가장 저렴할 것 같아 보이는 모텔로 낙점하고 들어섰다. 7만원 이란다. 왜 이렇게 비싸냐? 니까, 주인장은 주꾸미 눈을 하곤 “축제 마지막 날 이잖아요!” 란다. 눈알 땡그란 주꾸미가 무창포를 먹여 살리는 것이다. 지하에 노래방을 끼고 있는 모텔은 새벽 4시까지 장밋빛스카프를 듣게 했다. 저녁식사는 주꾸미 횟집 옆에 초라하게 포장을 친 선술집에서 돈까스 안주와 소주로 했다. 주꾸미 입맛이 싹 달아났기 때문이다. 설핏 잠들었다 아킬레스건의 통증에 놀라 두어 시간만에 일어났다. 잠을 설쳤지만 한 시간이라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짐을 꾸려 나왔다. 짐꾸러미 보다 내 몸이 더 무겁다. 안개는 아직 무창포에서 철수하지 않았다.
서천으로 향했다. 7시가 넘어 날은 훤했지만 짙은 안개는 자전거의 안전을 위협한다. 자전거 앞뒤로 라이트를 장착하고 나의 존재를 불특정 차량들에게 확인시켜야 했다. 한 시간 쯤 안개 속을 달리니 또 방조제다. 부사방조제라고 푯말에 씌여 있다. 이 방조제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특이하게 방조제 위로 산책로와 자전거길을 겸할 수 있도록 길이 나있다. 바다와 호수를 양쪽에 끼고 안개 속 방조제 위를 달리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마치 엔진을 끄고 저공비행하는 정찰기 같다고 생각했다. 서천 바닷가에 닿을 즈음엔 안개가 수평선 쪽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안개가 물러난 남쪽이 4월은 초여름 날씨로 돌변한다. 길 옆 자그마한 초등학교 운동장 벤치에서 여름옷으로 변장했다. 몸이 훨씬 가뿐해졌고 무창포와의 악연도 기억에서 지워진다. 옷을 고쳐 입고 운동장한 한 바퀴 빙 둘러 본다. 운동장 구조와 각종 동상들이 전국 공통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승복 동상도 빠지지 않고 서있다. 강원도 평창 출신 반공소년 이승복은 충남의 시골학교 어린이들에게 반공 공부를 시키고 있다, 아직도. 새로한 도색 빛깔은 동상을 새 것처럼 보이게 했지만 자세히 보니 코가 다 닳아 있다. 승복이 형,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편히 쉬면 안 될까? 서천 해변을 따라 장항으로 흘러간다. 어제부터 시골길의 호젓함과 흙내음, 산새소리에 깊은 숨으로 느끼고 있다. 오늘은 파도소리 갈매기 소리가 더해져 더 상큼하다. 오늘은 스마트폰에 의존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길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달리면서 든다.
서천을 거치면 장항이다. 내게 장항은 열차 노선 ‘장항선’과 탤런트 ‘장항선’의 이미지만 가지고 있다. 낯선 곳이다. 금강이 장항과 군산을 사이에 두고 바다와 만난다는 것도 장항에 와서야 알았다. 장항역과 금강하구둑을 잇는 도로 옆으로 오래된 공단의 건물들이 즐비하다. 장항역과 장항항구는 이 공단에서 생산된 상품과 원료를 실어 나르는 것이 주된 임무일 것이다. 장항공단 사이로 난 길은 어두웠고 을씨년스러웠다. 남쪽으로 보이는 언덕 위 작은 마을과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핸들을 틀었다. 작은 마을들이 매화꽃, 복숭아꽃 언덕을 사이에 두고 띄엄띄엄 이어져 있다. 길은 좁았고 시멘트로 포장된 새마을 길이다. 황톳길이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내 고향은 꽃 피는 산골도, 복숭아 꽃, 살구꽃도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이런 풍경은 마치 내 고향이 되어 버렸다. 흥얼흥얼 낮술에 가볍게 취한 기분으로 달리다 아뿔싸, 막다른 길이다. 길 끝에는 [도로끝>>>] 길이 더 없으므로 화살표 방향으로 가라는 표시가 버티고 있다. 화살표 끝은 바다로 이어져 있다.
자전거를 돌려 다시 공단 방향으로 돌아와 금강하구둑을 건넜다. 군산과 장항은 하구둑에서 시작되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 마치 서울의 강북과 강남을 한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다 보는 듯 했다. 군산 시내를 벗어나 새만금방조제로 가는 길에서 건너다본 장항은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장항인지 군산인지 잠시 헛갈리게 했다. 멀리서 본 두 도시는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았다. 아침을 거르고 달려오는 길이라 점심은 푸짐하게 먹고 싶었다. 항구도시에서 가장 흔한 식당은 횟집이다. ‘***대통령 내외 오찬회동 한 집’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집으로 정했다. 횟집이었지만 회보다 각종 해산물 탕이 더 많은 집이다. 복탕을 주문했다. 정갈한 맛이다. 아무개 대통령은 여기서 회동하며 밥을 먹었지만 난 밥만 먹었다. 우리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밥 먹을 땐 밥만 먹으라’ 셨다. 진리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횟집 벽을 장식한 대형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마치 기마전사 같았다.
군산 공단을 지루하게 빠져나오니 새만금방조제다. 서해의 방조제, 방조제, 방조제.... 이젠 물린다. 새만금은 다른 방조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길이만 34km다. 19년이나 걸려 공사하는 동안 환경의 보존과 파괴를 둘러싼 얼마나 많은 논란이 있던가. 춘천에서 횡성까지의 구불구불한 길을 쫙 펴보면 새만금방조제의 길이와 비슷할 것 같다. 저 바닷길을 건너야 이번 여행에서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곳 곳 변산반도에 이를 수 있다. 평일의 새만금에는 관광객들과 관광버스로 북적였다. 세 시 쯤 시작한 도해(渡海)는 서쪽 바다가 붉어져서야 마칠 수 있었다. 시화호방조제를 건너며 느낀 아픔은 새만금에서 최대로 증폭되었다. 변산반도 들머리에 자리한 작은 마을 민박집에서 짐을 풀었다.
세 가지 길이 있다. 익숙한 길, 낯선 길, 길 없는 길. 익숙한 길은 편안하다. 낯선 길은 설렌다. 길 없는 길은 각성하게 한다. 오늘 세 가지 길을 뒤죽박죽으로 섞어 달렸다.
첫댓글 인생도 길과 같겠네요.
오늘도 떠나고 싶네요~~ 길 떠난 중간 읽어도 또, 떠나고 싶은 충동질 일듯하네요, 멋진 기행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