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두 번째 시간.
지난 시간에 내준 과제, '왜 사냐? 인터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했다.
1.
아침에 졸업 프로젝트 준비 과정을 나누는 시간에 아이들로부터 과제를 못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명은 해오고, 한 명은 오늘 점심 시간에 하고, 한 명은 어제 저녁에 짧게 하고.
그런데 따지고보면 결과적으로 다 해온 셈이다.
숲터 아이들에게 '숙제'나 '과제'는 항상 부정적인 무엇으로 들려온다.
대표적으로 '과제가 너무 많아요.'
학년이 조금씩 올라가면 나아지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학년, 나이와 무관하다.
과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얼마 전 읽었던 한 초등학교 교사의 글이 떠올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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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라는 게 참 그렇다. 교사는 무언가를 제시하고, 학생은 그것을 수행한다.
철저히 교사 입장이겠지만, 과제는 해온 만큼 얻어간다.
행해온 것만큼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많이 얻어간다.
일상의 숙제에 적극적으로 임했던 학생과 그냥 어떻게든 해오기만 했거나, 아니면 도망가기만 했던 학생.
10년 후 이 셋의 삶은 어떻게 진행될까?
교실 속 숙제뿐만 아니라 세상으로 나가서 받게 되는 숙제도 비슷하다.
숙제를 내주는 사람의 좋은 의도는 거기까지다. 일단 내 손에 들어온 숙제를 어떻게 행할 것인가 하는 것은
온전히 내가 할 문제이지.
피드백을 주는 건 다시 숙제를 내준 이의 역할이겠지만, 숙제를 하지 않으면 피드백도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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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이다.
어느 정도 동의-어, 보감 하는 글이지만,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다.
과제를 해왔든 해오지 않았든ㅡ
그것을 교사가 수업에서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따라서 그 셋의 미래를 미리 점쳐보지 않을 수 있다.
과제 좀 못해오면 어때-가 아니라,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담아온, 점심시간에라도 해온 그 과제의 내용들을 수업시간에 모두 풀어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과제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이미 그것이 놓쳐진 것이라면,
함께 나누는 수업 시간에서는 작은 것이라도 풍성해질 수 있도록 마법을 부릴 수 있는 교사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과제의 몫은 처음 내준 교사, 마지막에 다뤄야 할 교사에게 모두 있다.
아이들이 숙제 안 해왔다, 못 해왔다 라는 말보다, 내가 해온만큼 보여줄 수 있는 행동만 보여주면, 그걸로 된다.
2.
아이들의 '왜 사냐?' 인터뷰는 역시나 참 흥미로웠다.
인터뷰 때 어떤 질문을 했고, 나는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물었던 질문 속에
또- 다시 또, 자유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말들이 오갔다.
다른 사람의 삶의 이유를 알게 되는 것은 참 흥미로운 일이다. 그리고 참 배울 것이 많다.
실제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생을 왜 이어가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물어볼 일도 특별히 없게 돼 버린 일상.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 또한 고양자유학교 교사로서 옆에 있는 동료교사들이 왜 사는지, 왜 고양자유학교 교사로 있는지,
몇몇을 제외하곤 이유를 잘 모른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긴 시간을 함께 하며 서로의 생각에 대해서 깊이 있게 물어보는 시간은, 사실 잘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람에 대해서 생각한다. 아니 평가한다.
그 평가의 기저엔 오해와 편견, 무지에서부터 출발한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저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기에, 저 사람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가.
얼마 전 가족회의를 하다가 모래알이 들려준 말이 떠올랐다.
나와 타인이 달라서 힘들고, 어렵다는 이야기보다,
나 스스로가 그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안 하는 모습, 그렇게 살지 않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 사람이 변하게 하는 게 맞지 않겠냐는. 그리고 변하고 안 변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몫이라는 것을.
그렇다.
나는 왜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을까, 행동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걸 혼자 고민만 해볼 것이 아니라, 뒷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행동하는 삶,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을 보여주면 되는 거다.
삶의 이유를, 의미를 나눌 줄 알고, 귀담아 들을 줄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과 왜 사냐ㅡ로 비롯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그 사람은 평생 함께 할 사람일 수도 있으니 진지하게 임하라고 이야기해줬다.
마침 한 아이가 예전에 선배들과 나눴던 이야기를 전해줬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밤늦게 모여 허심탄회하고 학교 이야기, 진로 이야기를 나누던.
그래, 그렇다. 그런 거다.
그러곤 왜 새봄이를 낳았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바다숲은 왜 사는지 물어봤다.
하하. 성실히 답해줬다.
3.
'왜 사냐?' 인터뷰 이야기는, 유시민씨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의 내용으로 이어졌다.
그 책에는 이러한 제목의 글이 담겨있다.
'나는 왜 자살하지 않는가?'
아이들에게 책을 보여주며 이 질문을 던져보니,
자신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남기고 싶은 것, 사람, 관계, 꿈, 진로,
가족, 배움, 의미, 돈 등등ㅡ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쏟아진다.
심지어 죽고 싶은 방법들도 이야기 한다.
그래, 그러면 그렇게 죽기 위해 살면 된다.
그래, 그러면 그렇게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하면 된다.
다만, 내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고민해봐야한다.
우리가 언젠간 죽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참인 명제이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 죽지 않는가? 하면 갖가지 이유가 쏟아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ㅡ 로 이어진다.
결국 삶이란, 죽음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지금의 생을 잘 들여다보려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꼭 생각해봐야 한다.
삶은 죽음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그 순간 출발한다.
사실 이 이야기는 평생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사춘기 청소년 모드로 돌아가서ㅡ
방에 전등은 끄고, 내 책상에 스탠드만 켜 놓고, 혹은 촛불을 밝혀두고,
하얀 종이 한 장과 펜 한 자루와 함께 오늘의 질문들을 담아 시간을 보내보길 권했다.
다만, 우울하고 힘들 땐 혼자 하지 말고 같이 하라고 했다. 우물 속에 너무 깊이 들어가면 동아줄도 안 닿는다.
귀찮고, 힘들고, 별 거 아닌 것 같은 작업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런 고민을 시작하게 되면 보다 나은 삶, 풍성한 삶, 자유로운 삶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4.
한편으로, 이런 고민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히 우리가 모르고, 게을러서 그런 것일까,
하는 고민도 던져봤다.
그래서 이런 고민을 할 여유조차 없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 학교의 '가난, 우정, 대화'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이반 일리치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를 부분 편집한 글을 함께 읽으며
우리 학교에서 말하는 가난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삶을 좇고 싶은 것인지 생각해봤다.
12학년_인문학_읽기자료1.hwp
우리가 왜 가난을 이야기하는지,
왜 가난이 절제를, 자립을, 창의력을 말하는지, 그리고 왜 공생과 연결되는지.
우리가 분노하는 소수의 사람으로서 살아가려는 이야기를 끝으로 마무리했다.
다음 과제는 '나만의 추억이 있는 장소에서 멍~때리고 오기'다.
어떤 장소에서, 어떤 멍~을 때리고 올지, 기다려본다.
각자의 집에서 스탠드를 밝힐지도 모르는 아그들을 생각하며ㅡ
오늘 밤 집에 돌아가면
촛불이라도 밝혀봐야겠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이런 얘기들 나누며
칠판 가득 채워지는 것을 저도 수업 같이
하며 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