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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해할 때쯤이면 전역
‘더 빨리 다가갈 걸’ 아쉬움
초심자들에 불편한 사찰
배려와 포용의 마음 필요
누가 봐도 모범적으로 신심 충만하게 법회에 참석하고 신행활동을 하던 불자들이 뜬금없이 불교의 기초교리를 공부하고 싶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불교가 뭘 믿고 어떻게 가르치는 종교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일반사찰에서 처음 불교를 접한 이들 중에 이런 경우가 더 많은데 처음 절에 나오면 일단 금강경, 관음경을 턱 안겨주고 무조건 읽으면 된다고 한다. 몇 년 열심히 독송하다보면 다 터득하게 된다는 뭐 그런 판단에서 하시는 일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그걸 읽으면 뭔가 하는 느낌은 들지 모르나 당연하게도 불교의 기초는 저절로 쌓이지 않는다. 혹시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절 돌아가는 거 다 알게 되었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눈치와 고민으로 하나하나 스스로 터득하는 고비를 끝없이 넘었을 사람이다.
군법당에 있으면 이런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정말 불교의 입문처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늘 초심자이고 늘 첫 경험인 법회를 하는 것이 벌써 10년이 넘었다. 물론 40년도 더 된 군불교 역사 내내 그랬고 아마도 앞으로 한참은 그럴 것이다. 이렇게 “불교가 뭐에요”부터 시작해서 “아 대충 이렇구나” 하고 느낄 때쯤 전역시키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이런 것이 군법당만의 일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난 아직 이런 초심자들을 잘 안내하고 안착시키는 일반사찰을 많이 만나진 못했다.
난 이런 사찰을 꿈꾼다. 많이 배우고 잘 아는 사람들은 어차피 혼자라도 신행을 잘 하니, 사찰 전체가 초보자를 위해 꾸며진 쉽고 친절한 사찰 말이다. 필자는 병사들을 위해 법요집을 새로 만들어 쓰는데 다른 국군법요집과 크게 다른 것은 없으나 설명이 상세하게 들어있는 점만 다르다. 삼귀의 반야심경보다 먼저 법회와 법사님, 법당 이런 말이 무슨 뜻인지 먼저 설명되어 있고 삼귀의, 사홍서원 등등 모든 페이지에 이 노래는 무슨 의미인지 풀어놓았다. 물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법당 내외의 벽에는 불교의 기초예절을 늘 보고 확인할 수 있게 게시하고 도량의 모든 시설물, 탑이나 종각이나 이런 것에는 다 친절한 설명이 붙어있는 것, 언제 기도 법회하고 돈은 어떻게 내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게 어떤 것인지를 종무소 직원이나 스님들께 묻지 않고도 알 수 있게 안내해 놓은 사찰이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법회 안에서도 그렇다. 늘 하는 멘트지만 법회의 시작 전부터 마지막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법회를 꿈꾼다. 요새 느낀 것인데 종단에서 만든 삼귀의나 사홍서원 반주음원은 청년 남성들에게는 음정이 높다. 그래서 가까운 시일 내에 몇몇 뜻있는 법사들이 힘을 모아 군장병의 눈높이가 아닌 목높이(?)에 맞는 반주를 만들어서 써보자고 논의도 하고 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너무 높은 소리라서 노래 할 때마다 불편해 하는 것을 알아주고 또 편안하게 노래할 수 있도록 신경써주면 그네들은 그것이 법당의 편안함이고 불법의 편안함으로 함께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초심자들의 불편함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49재를 모셔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른다고 연락해온 불자를 앉혀놓고도 그에 맞게 해설된 책자 하나 전해주지 못하는 나의 현실도 깊이 반성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먼저 연락하는 용기를 가지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법 또한 우리는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나의 군법당 생활 십 수년이 부끄러워지고 또다시 마음이 바빠진다. 할 일이 너무나도,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불교신문2955호/2013년10월23일자]
첫댓글 눈높이 불교, 눈높이 포교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글 같습니다.
우리를 한번 돌아보게 하는 글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