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다. 상식과 합리적 사고를 전제한 사회적 합의라는 정치의 프로토콜이 부정되고 어떠한 반론도 허용되지 않으며 질문해야 할 권능을 가진 이들은 스스로 일차원적인 존재로 전락했다. 기자는 국민을 대신해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하고 대통령과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실은 국민의 의사를 경청하여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건 민주정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마치 왕정복고시대인 양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정의 근간을 흔들고 정당한 문제제기나 의혹제기를 불순한 행위로 낙인찍음으로써 정치를 실종시켰다. 말 그대로 상식이 파괴된 세상이다.
상식에는 역사 문화적 맥락이 반영되어 있어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지만 누구나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꿈꾼다. 조선희 작가는 그의 저서 <상식의 재구성>에서 어느 집단 어느 개인에게나 통용되는 하나의 규범은 없다며 내가 틀릴 수 있고 네가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상식의 중간지대가 생겨나고 이것이 큰 배의 평형수처럼 중심을 잡아준다고 했다. 중간지대가 넓고 튼튼할수록 상식을 벗어난 행위들이 설 자리가 좁아져 그만큼 갈등관리가 용이한 사회가 되고, 그 반대라면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초긴장상태에 놓인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사전에서는 사람들이 보통으로 알고 있는 지식, 또는 사회 일반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이는 생각이나 분별력으로 상식을 소개한다. 하지만 진실 여부나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일반적인 사고방식, 즉 고정관념이나 통념(通念)에 더 가깝게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50쪽짜리 팜플릿 로 미국의 독립을 견인한 토머스 페인은 영국이 아메리카를 지배하는 것은 상식이 아니며 미국의 독립과 민주주의 수립이 상식이라 주장했다. 정치에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유효하다. 무상급식이 처음부터 상식은 아니었던 것처럼 새로운 양식은 늘 급진적이어서 갈등과정을 거쳐 보편성을 획득하면 우리는 그것을 상식이라 부른다. 공적 가치판단이라는 검토과정을 통해 ‘다수의’라거나 ‘일반적인’이라는 전제를 얻어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상식’은 기본적인 지식이나 통념이 아니라 가치판단이 전제된 분별이나 양식 또는 보편가치라는 말로 이해함이 마땅하다. 그래야 이슬람사원 건축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돼지고기 수육과 바비큐 파티를 열어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반사회적 방식에 제재를 가할 수 있고, 정치적 반대 의사 표현을 명분으로 가해지는 인권에 대한 물리적·언어적 테러를 범죄시할 수 있다. 또 인파가 몰리는 것이 분명한 시간에 대통령의 심기를 위해 행정력을 투입하는 단체장의 명령이나, 유족들을 향해 혐오를 표출하는 아스팔트 극우의 행위가 다툴 여지조차 없는 범죄행위로 다뤄질 수 있다. 이런 행위들이 ‘재량권’이나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된다면 인권이 상식이라는 보편가치로 자리잡기까지 인류의 지난한 투쟁을 통째로 배신하는 것이다.
권위주의와 군사독재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의 역사도 비상식적인 것을 상식으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쉬 얻어진 열매가 아니기에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당대표 경선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대통령실이 나서서 권력의 칼을 휘두르는 것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여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언론이나 국회의원의 정당한 의혹제기에 사법시스템을 동원해 형사고발을 일삼고 마음에 안 드는 언론을 장악하거나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것을 비윤리적인 것으로 몰아 위협을 가하는 것은 결코 상식이 될 수 없다는 것, 대통령을 배경이나 조연으로 삼아 부인이 전면에 나서고 시도 때도 없는 연예인식 이미지 메이킹에 공적 시스템을 가용하는 것은 국기문란이자 커먼센스의 실종이라는 것을 몰라서 두고 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무슨 고차원적인 정치논리가 필요하고 토론이 필요한가. 규범들이 허용범위를 습관적으로 벗어나면 극심한 갈등과 혼란이라는 자연상태가 지속되어 사회적 신뢰자본을 파탄내고 종국에는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게 된다. 표창장이 의사를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나 체험활동이 입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 엉터리 논문과 학위로 미래자본을 편취해서는 안 된다는 상식은 단순한 만큼 힘이 세다. 이런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 지속적으로 부정된다면 조지 오웰이 말한 대로 상식과 진실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혁명적인 행위가 되는 사회를 살게 된다.
지난 주말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은 추모행진을 마치고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했지만 서울시는 자진철거하라며 불허방침을 고수했다. 서울광장은 누구를 위한 공간이고, 비극적인 참사로 생을 달리 한 희생자와 유족들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도 정쟁이 아닌 상식의 영역이다. 군중관리를 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로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은 법률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이자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정파와 관계없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부는 상식에 기반한 정치를 할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된 대의 민주제에서 국민을 적으로 삼아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계속한다면 존립근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세월호 기억공간에 이어 이태원 참사 분향소와 유가족을 대하는 정부를 보며 “정부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거나 고통을 겪을 경우 차라리 정부가 없는 나라가 더 낫다. 우리를 괴롭히는 수단을 우리 자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불행은 더욱 커진다”며 모두가 떨쳐 일어나 비상식적인 것을 상식으로 바꾸는 혁명을 해야 한다는 토머스 페인의 절규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상식이 실종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저들의 반인륜과 반지성이 상식에 반하는 것임을 지적하는 용기와 비상식과 몰상식에 돌을 던지는 것만이 퇴행을 저지할 수 있다는 믿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는 것이다. 지난 세월 그것을 증명해온 시민들과 세월호가 박근혜 정부를 침몰시킨 것처럼 이태원 참사를 외면하면 할수록 윤석열 정부 스스로 숨통을 조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역사가 가르쳐 준 상식이다.
첫댓글 상식이 파괴된 세상이다ㅜㅜ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모르는...